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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Apr 27. 2021

자식자랑은 끝이 없다.

18화 보잘것없는 사람 - 베스트 치유 에세이


장례식이 진행되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도 벌어졌다. 장례식 문 앞을 지켜주던 후배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몇 시간 자리를 비우게 되었고 친척들에게 부탁하고 싶지 않았기에 어머니 친구분이 잠시 앉아 계셨다. 그런데 갑자기 큰아버지 중 한 분이 어머니를 밖으로 불러내서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외가 쪽 식구들에게 전해 듣고 황급히 복도로 뛰어나가니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소리가 복도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유명한 분이 친척과 같이 일하는 것 때문에 장례식장에 오신다는 것이었다. 그분이 오시면 잘 모셔야 하는데 왜 여자가 조의금을 받고 있냐며 무슨 일을 이딴 식으로 하냐고 어머니에게 고함을 치며 뭐라고 하고 있던 것이다. 그 순간 큰아버지가 내 핏줄이라는 게 정말 부끄러웠다. 도대체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묻고 싶었다.     


“그만하세요. 알겠어요.”

내가 가로막으며 말하니 큰아버지는 씩씩거리며 집으로 가 버렸다.


“그따위로 할 거면 장례식 알아서 하세요.”     

주변 친척들은 그냥 우리가 이해하라며 위로의 말을 건넬 뿐이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저게 할 소리인가? 그 유명인이 죽은 동생보다 더 중요하다고 광고하는 것만 같았다.

부끄러움을 뒤로한 채 나는 손님을 맞이하러 다시 장례식장으로 들어갔다. 울분이 터져 나왔다. 속으로 수없이 다짐했다. 나중에 정말 잘 되고 부러울 정도로 성공할 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어머니께 준 모욕감에 대해 복수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신기한 것을 알게 되었다. 몇 년 만에 겨우 얼굴을 본 친척들이 내가 유학 다녀온 것과 군대에서 영어 교육 과정에 합격한 것, 그리고 이번에 미국 교육에 선발된 것까지 전부 알고 있었다. 아버지 친척들과의 왕래가 거의 없었을뿐더러 친척들과 그런 말을 전할 정도로 친한 관계도 아니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어머니께 여쭤봤다.

     

“엄마가 다 말했어요?”     


어머니는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런 자랑을 하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분이었다. 친척 중 한 분에게 가서 물어봤다.     


“형, 제 소식 어디서 들었어요? 오래된 일들도 있는데 어떻게 다 알아요?” 형이 웃으면 말했다.

“야, 삼촌이 네 자랑을 얼마나 하는지…. 가끔 만나면 너 이야기만 하고 갔어. 그래서 다 알고 있었지.”     


충격적이었다. 아버지는 내 앞에서 한 번도 내색한 적이 없었다. 물론 부사관이 되고 나서 큰 상을 받거나 하면 사진을 찍어 보내드리곤 했다. 장기 복무자로 선발돼서 정규직이 되었을 때도 제일 먼저 말을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답장이나 리액션은 없었다. 아버지가 반대했던 직업을 선택한 것 때문에 싫어하시는 줄만 알았다. 가끔 집에서 대화할 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을 해도 본인 방위 시절 이야기로 답변을 대신하던 아버지였다. 그런 분이 친하지도 않은 친척 집에 일부러 찾아가서 자식 자랑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나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자랑 그 자체였던 거 같다. 그런 아버지를 미워하기만 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후회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더 짙어진다. 사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걱정할 게 사라져서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다. 살아계실 때는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또 어디서 무슨 사고를 치지 않을까? 이번에는 왜 전화가 온 거지? 이런 의문과 불신 때문에 아버지의 진정한 사랑을 보지 못했다. 분노의 감정은 우리 관계에 큰 벽을 만들어 주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아버지를 항상 자랑하는 분들을 보면 부러웠다.


저렇게 자랑거리가 많을까? 그들은 아버지에게 전화가 걸려올 때면 항상 행복한 목소리로 통화를 했다. 그리고 아버지 전화를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조금이라도 내가 마음의 문을 열었어야 했다. 아버지가 들어오실 수 있도록 기회를 드리는 것은 자식의 몫인 거 같다.


본문은 글은 책, <보잘것없는 사람>의 일부입니다.

이미지 출처: google.co.kr


#장례식장 #보잘것없는사람 #사랑 #후회 #자식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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