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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Dec 17. 2020

첫 사랑은 만났니?

아버지와 반대로 살기로 했다

  기억을 되돌려 보면 정말 어이없는 일들도 많았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부모님은 내가 집에 친구들을 불러서 술을 먹는 것을 허락해 주셨다. 물론 아버지는 늦게 들어오고 어머니는 밤에 식당일을 하시기 때문에 집이 비어 있었다. 하지만 몰래 먹는 것이 아니고 술을 사주시기도 했고 안주도 만들어 주고 일을 나가시기도 했다.


덕분에 밖에서 사고를 치거나 나쁜 사람들을 만날 틈도 없이 순수한 동네 친구들과 소소한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여름방학 어느 날 나는 부산을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어머니에게 이유를 말을 했다. 중학교 때 채팅으로 연락했던 누나가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연락이 안 되지만 한 번은 직접 얼굴을 봐야 될 거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이야기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물었다. 어머니는 물었다.

      

          “첫사랑이었니?”       


  나는 말했다. 모르겠다고 하지만 꼭 찾아서 한 번은 보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녀오라고 했다. 부산 어디를 가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돈도 주지 않았다. 물론 달라고 한 적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혼자 부산에 내려가서 사진 2장을 가지고 2주 동안 별짓을 다해가면서 찾고 찾았다. 돈이 없어서 학교 벤치에서 밤에 잠을 자기도 하고 남의 신세를 지고 교회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나중에는 방학 중인 친구 한 명이 부산에 내려와서 찾는 거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3년 전 얼굴 사진 한 장과 학교 배경 사진으로 현재 다니고 있는 학교를 찾았다. 2살 연상이었던 나이 차이 때문에 방학중에 야간학습을 하고 있었기에 그 여고 앞에서 기다릴 수 있었다. 학교 끝나는 시간을 맞춰서 밖으로 나왔을 때 내 친구와 부산에 내려와서 알게 된 동생 2명이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학교를 마치고 나가는 길의 모든 동선에 흩어져서 내려오는 학생들을 잡고 물었다. 누구 아세요? 그리고 나는 스스로 포기하고 있었다. 이렇게 찾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념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그 친구가 전해달라고 하는데 찾지 말라고 돌아가라고 전해 달래요. 결국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이 소문이 나서 알게 된 거 같았다. 나는 제발 보게 해달라고 애원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됐다고 생각했다.


  채팅으로 만나서 밤새도록 수화기를 붙들고 통했던 그 추억과 삐삐의 음성 사서함으로 충분했다. 그래도 결국은 찾았기 때문에 나는 단념하고 서울로 올라갈 수 있었다. 서울역에 도착하니 비가 미친 듯이 내리고 있었다. 거의 3주 동안 외박을 하고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어머니는 웃으면서 말했다.

    

“찾았어? 후회했지? 첫사랑은 그냥 두는 게 가장 아름다운데”     

  나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밥을 달라고 했다. 집밥이다.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당시 나도 모르게 성장 하고 있었다. 스스로 선택을 하고 책임지는 행동을 너그럽고 자식을 믿어주는 그런 부모님 밑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려서 우리 가족을 바라보았다. 즐길 여유도 없이 살아온 안타까운 인생들이었다. 지금 이 순간 에도 가장 힘들고 막막한 사람은 바로 아버지 본인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막걸리 한 잔이 먹고 싶다고 하셨다. 간암 환자인 것을 떠나서 드려야만 했다.     

 

  암이 뇌로 전이되기 전에 약간의 희망을 우리 가족들은 품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담배도 피우지 말고 술도 먹지 말라고 강요를 하면서 위하는 척을 했다. 어느 날 밤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리 집 빌라 주차장 구석에서 어깨 좁은 한 남자가 꾸부정하게 벽을 보고 앉아 있었다.


아버지였다. 황급하게 무엇을 숨기는 듯했으나 숨길 곳이 없었다.


바로 막걸리였다. 안주도 없이 혼자 숨어서 먹고 있던 것이다. 얼마나 눈치가 보였으면 저리도 초라하게 그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말했다. “먹지 마요, 올라가요.” 그리고 남은 막걸리를 버렸다.      


  그런 아버지가 큰 고비를 넘기고 가족 여행을 와서 막걸리를 먹고 싶다고 했다. 사실은 예전 생각이 나서 한 병을 사 왔는데 아마도 보셨던 거 같다. 막걸리 한잔을 먹고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먼 산을 바라보면 말했다.     


“맛 좋다, 오늘따라 참 더 맛있네.”       


  죽음과 친구사이가 되고 마시는 막걸리의 맛은 어떨까? 나중에 나에게도 그 시간이 오면 내 가족들 앞에서 저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수 천 번도 더 들었던 자신의 인생의 성공할 뻔했던 이야기를 해주셨다. 반대로 말하면 성공을 하지 못한 실패의 원인을 말해 주는 것이다. 우리 가족들은 건성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뻔한 후회 덩어리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계속 생각했다. 분명히 남들에게 피해 안 주고 성실히 착하게 나름 살아온 아버지에게도 그 50년 인생에 성공의 기회는 분명히 있었을 텐데 무엇이 성공에서 실패로 엔딩을  달라지게 한 것일까?

 그것 또한 가르침었다.


본인처럼 살지 말라고 자식들에게 해주는 인생 수업이었다.      





미래의 거지 VS 지금만 부자 매거진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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