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좋은 카페들이 참 많다. 카페에서 일하지는 않지만 9개월 동안 특별한 일이 없으면 커피숍으로 출근을 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남성이지만 육아휴직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원했던 시기가 아니어서 휴직을 하는 것이 조금은 불쾌하고 마음에 걸렸지만 6살 딸아이와 보낸 시간과 육아를 마치고 남는 시간에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지금은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 등원 준비를 해서 아이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그 순간은 내 삶을 정화시켜준다. 매일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새로운 날의 연속이었다. 딸아이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고 저녁에 같이 무엇을 할지 말하면서 만약 내가 휴직을 하지 못했다면 놓쳐버렸을 이 순간에 대한 무서움과 직면한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나는 바로 카페로 향한다. 처음에는 집에서 가까운 카페를 찾아서 가다가 조금씩 범위를 넣혀서 다니기 시작했다. 카페 가면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고 노트북을 세팅한다.
휴직을 처음 했던 작년 10월에는 첫 번째 책 <보잘것없는 사람>을 쓰느라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사실 휴직 전에 직업과 관계된 다른 계획들이 있었으나, 좋아하는 것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편하게 하고 싶은 것을 했다. 책을 퇴고하는 과정에서 출판사에 검토하는 시간에는 논문 자료를 검색하고 조금씩 틀을 잡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역시나 노트북과 아메리카노가 필요했다. 작은 지방 도시여서 주변 사람들은 일을 안 하고 커피숍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나를 신기한 눈빛으로 보기도 했다.
어떤 날은 외국인 아내에게 '남편 뭐해요?'라는 질문을 하는 이웃도 있었다.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니 4월에 첫 번째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4월에 책이 출간되고 잠시 방황했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키보드를 두드려야 했다. '카카오 브런치'에 올린 재테크 글을 보고 출판사에서 기획출판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고민 없이 책을 쓰겠다고 하고 다시 아이를 등원시키고 카페로 출근을 했다. 시간이라도 아껴야겠다는 마음으로 집 바로 근처에 조그마한 카페를 주로 갔는데 어느 날 주인의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테이블도 몇 개 없는데 커피 한잔 시켜놓고 아침 9시부터 저녁 4시까지 글만 쓰는 내가 미웠던 거 같다. 주인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래서 4시간 정도 머물다 커피를 또 시키곤 했다.
이번 휴직을 경험하면서 예전에 했던 두 번의 휴직이 떠올랐다. 사실 이번에 나에게는 세 번째 휴직이다.
군 생활하면서 자비로 두 번의 유학을 다녀왔다. 무급 휴직이었지만 그 당시 내 모험심은 직장 경력보다 중요했다. 물론 직장의 공백 때문에 승진도 밀리고 조금은 엉망이 된 직장생활을 경험했지만 절대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때 휴직을 할 때도 나는 거의 점심을 먹지 않았다. 이유는 배가 고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시나 이번에 책을 쓰고 논문을 쓰면서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일할 때는 11시만 돼도 배고픔을 느꼈던 나인데 사람이란 게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인생의 먹거리 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5월부터 쓰기 시작한 두 번째 책 <가칭: 부자아빠는 중고차를 탄다>도 저번 주에 초안을 출판사에 넘겼다. 자비 출반과 다르게 책을 쓰는 과정에서 출판사와 상의하고 방향을 잡는 과정이 더 많이 필요했다. 매 순간 카톡으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정말 살아있는 게 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출판사에 글을 다듬고 추가적인 토의를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출판 시기에 대한 판단부터 홍보까지 이전 출판과정에서 느끼지 못한 세부사항을 논의하면서 기획출판과 자비출판의 차이점을 단기간에 느끼고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이런 나비효과를 불러오게 되다니 가끔 놀랍기도 하다. 이제 9월이면 복직을 앞둔 시점에 미래에 그리워하게 될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리니 벌써부터 미친듯이 그리워진다.
내 딸 인생에도 절대 돌아오지 않은 어린 시절에 속에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했고
내 삶에서도 아직은 보이지 않지만 무언가 다른 전환점을 마련해 준 지금 이 시간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