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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Dec 21. 2020

아들 신발 사줄까?

아버지와 반대로 살기로 했다

  행복한 시간은 잠시 머물렀다. 같이 저녁을 먹고 같이 이야기를 하고 시간을 나누는 평범한 시간이 흘러갔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거실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동안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가 말은 안 했지만 이 시간을 즐기기로 한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혹시, 캐나다에 가서 살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아버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좋지, 그 나라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살기 좋은 나라잖아.”     


  아버지는 내가 물어보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 당시 나의 여자 친구가 캐나다 사람이었다. 교재를 한 지 1년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물론 아버지가 입원했을 때도 병원에 간 적도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모두 한국 여자를 말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꿈을 꾸고 있었다. 외국인과 결혼을 해서 이 지겨운 현실은 벗어나고 싶었다. 캐나다라는 나라로 가서 모든 것을 잊고 살고 싶었다. 그리고 아버지도 아들이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나 모든 것을 바쳐서 영어공부를 했는지 아버지도 알고 있었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아마도 고등학교 자퇴가 나에게 영원한 갈증을 준 것 같다. 나는 군에서 영어공부를 하면서 많은 희망을 보았다. 토익이나 어학성적에 집착하기보다는 회화를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군사 영어반이라는 교육기간에서 6개월 공부를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지속하고 싶었다. 그래서 교육을 마치는 순간에 청원휴직을 결심했었다. 군생활에는 치명적인 결정이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영어회화를 하면서 그 당시에 자유를 느꼈다.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하면 또 다른 나의 인격이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그동안 하지 못한 말을 해도 될 것만 같았다.

꼭 동화에 나오는 것처럼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말할 수 있는 특권이 생긴 느낌였다. 그래서 회화 공부에 더욱 집착을 했다.

      

  결국 휴직 기간 동안에 무급이기 때문에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결심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를 가는 것이었다. 주변 친척 누나들은 나의 몸부림이 가여웠는지 출국 전에 용돈도 주었다. 그 당시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았다. 잘 다녀오라는 말도 어디로 가냐는 질문도 없었다. 모든 결정과 책임은 언제나처럼 나에게 있었다. 출국 하루 전날 여러 가지 준비로 정신이 없는데 전화가 왔다. 아버지였다.


“아들, 아빠가 신발 사줄게.”     
  나는 말했다. “어제 안 그래도 하나 샀어요.”      


  그러자 알았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으셨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내가 어릴 적에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우리 가족들은 손을 붙잡고 운동화 매장을 갔다. 나이키, 프로스펙스, 아디다스, 리복 매장이 일렬로 있는 동네의 대학가였다. 나는 어린 나이지만 항상 설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아버지는 항상 비싸고 좋은 신발을 사줬다. 내가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항상 사줬다. 하지만 아버지 신발은 기름 떼에 베이지색이 검은색이 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수록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왜? 아버지는 신발에 집착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중학교를 입학하면서 나는 제안을 했다. 그 돈을 나에게 주면 내가 알아서 사겠다고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어머니에게 물어봤다. 도대체 왜? 신발에 집착을 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건 니 아버지가 신발이 좋아야 꽃길을 걸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아버지가 어릴 때 그토록 좋은 신발을 신고 다니는 주변 사람들이 부러웠다고 어머니에 말했다고 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래서 유학 전날에 오랜만에 전화를 해서 신발을 사주겠다고 한 것이다.  

   



  시간이 나가고 나서 생각을 하면 그 사랑이 느껴진다. 한심하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은 아쉬움으로 돌아왔다. 한 가지 후회가 남기도 한다. 그때 아버지 전화를 받았을 때 신발을 사달라고 했어야 한다는 후회이다.       

  


https://brunch.co.kr/magazine/genes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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