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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Nov 27. 2021

아이가 태어나고 아내가 우울해졌다.

제10화 #부부관계 #각방생활 #독박육아 #국제결혼 #다문화가정

민중이와 아내의 갈등은 점점 심해졌다. 


때마침 민중이는 지방에서 더 먼 곳으로 출장을 가야만 했다. 아내는 독박 육아를 해야만 했다. 그런 아내에게 민중이는 미안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이토록 손이 많이 가고 정성과 애정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외국인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갈 때도, 물품을 살 때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쿠팡 영어 버전으로 물건을 살 때 목록이 한국어로 검색하는 것과 다르게 나와서 반품을 해야 하는 일도 늘어났다. 그때마다 아내는 민중이에게 해결사 역할을 부탁했다. 

한 두 번 그런 일을 해주면서 민중이도 지쳐가고 있었다. 평범하게 한국 여자와 결혼했다면 이런 수고는 없었을 텐데... 라며 신세를 한탄했다. 

 어느 날은 출장을 마치고 늦게 집에 도착하였다. 아내는 아이를 재우고 소파에서 울고 있었다. 매번 부탁하는 것이 미안해서 직접 번역기를 통해 반품을 요청했는데 이상한 답변이 왔다고 하소연하였다. 

"얼마나 답답할까..." 민중이는 마음이 불편했다. 민중이도 짧은 유학생활의 경험이 있었다. 한국에서 단순하게 전화로 가입하면 되는 자동차 보험에 대한 절차도 몇 시간이 걸려서 겨우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작은 위로를 아내에게 주고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운 민중이에게 아내는 속사포 같은 말속도로 오늘 있던 평범한 일상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모국어도 아닌 영어를 듣는 것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너무 피곤해서 아내의 말이 머릿속에 정리가 되지 않는 것을 느꼈다. 아내는 민중이의 태도를 보고 서러웠는지 또 울기 시작했다. 민중이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아내에게 짜증 섞인 말을 몇 마디를 하고 유일한 대피소인 화장실로 들어갔다. 

차가운 대변기에 앉아서 핸드폰으로 '산후 우울증'을 검색해 보았다. 화장실 건너편에서는 아내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물어볼 곳도 없고 처갓집에 잠시 보내서 힐링을 하고 오라고 하고 싶어도 그 먼 곳에 보낼 수도 없었다. 30분쯤 화장실에 앉아있으니 민중이의 다리는 감각이 둔해졌다.


화장실을 나와서 아내에게 하고 싶은 게 있냐고 말을 건넸다.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딸이 태어난 지 9개월인데 맞벌이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아내는 직장생활을 하고 싶어 했다.

민중이는 사실 말도 못 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너무 마음에 걸렸다. 한국사회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적어도 의사표현을 할 때까지는 부모의 품에서 키우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이기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민중이는 아내에게 고민하겠다고 하면서 만약에 일을 하면 파트타임이면 좋겠다는 말을 던지고 무거운 분위기의 침대 구석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아내는 몇십 분을 울고 나서 마음이 편해졌는지 이어폰을 끼고 옆 자리에 앉아서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다음 날 직장에 가서 동료들에게 어린이집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일찍 보낸 동료들은 못 할 짓이라면서 후회의 순간들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한 동료는 냉정하게 민중이게 말을 했다.

"네가 전담해서 아이 보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일도 하면서 보낸다는데 가지 말라고 하는 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그 말을 들은 민중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동안 직장을 다닌다는 이유로 저녁에도 늦게 와서 별로 도와준 것도 없는 자신의 행동에 반성을 하였다. 주말은 주말대로 쉬어야 한다고 늦잠을 자고 평일 평일대로 야근했다면서 모든 것을 아내에게 미루고 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돌아봤다.


민중이는 그날 밤에 집에 가서 아내에게 일 자리 한번 알아보라고 말했다. 아내는 이미 오라는 곳이 있다면서 당장 주말에 어린이집을 알아보러 가자고 했다. 자고 있는 딸아이는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아는지 모르는지 세상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입은 반쯤 벌린 채 잠을 자고 있었다. 



글이 좋아서 글을 씁니다. 저서 <보잘것없는 사람>이 있으며 #가족 #부부생활 #일상 #투자 #재테크 관련 된 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99272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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