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코로나는 어느덧 3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언제 끝이 날지 앞이 보이지 않는 그 답답함의 순간이 조금씩 잠잠해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마스크 속에 얼굴을 숨기고 모두 몸조심하던 초반의 그 두려웠던 코로나는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이제 약간 경계심에서 자유로워진 모습이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서서히 풀리고 마스크를 벗고 실내에서 있는 모습을 볼 때면
한참 코로나가 심했던 작년의 기억이 떠오른다.
어깨뼈가 골절되고 한 동안 답답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엄마를 모시고 동생이 기차를 타고 우리 집으로 오기로 했다. 평소 같으면 차를 타고 왔지만, 최근에 화장실을 가는 횟수가 급격히 많아져 코로나지만 동생은 어쩔 수 없이 기차를 선택했다. 오히려 장거리 운전 고생 덜하고 편하게 내려오는 게 더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역까지 마중을 나가서 동생과 엄마를 모시고 집으로 오는 동안 동생은 계속 한숨을 쉬었다.
"왜??"
"엄마가 마스크를 안 써..."
"치매라서 인지 못하니까 그렇지... "
"근데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참 곤란하네.. 아무리 내가 직원이긴 하지만 간호사들도 힘들어하고 환자들도 눈치를 많이 주고..."
"치매 요양 병원도 아니고 재활병원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네가 고생이 많다. 이번에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좀 쉬다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조금 쉬라는 말이 전부인 못난 형이라서 미안했다. 동생을 달래고 집으로 모시고 와서 엄마를 바라보는데 가슴이 먹먹했다. 집 앞에 마트를 갈 때 잠시 마스크 쓰는 것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다. 물론 멀쩡한 사람도 불편한 마스크였다. 숨 쉬기도 답답하고, 귀에 걸려 있는 끈은 여간 불편한 게 2년을 써도 적응이 안 됐다.
치매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으로 돌아가는 어쩌면 가장 단순한 질병이라는 생각을 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싶어서 안달 나는 것처럼 치매는 사람을 리셋시켜버린다. 그동안 살면서 학습되었던 모든 것들을 지우고 그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그런 너무 단순해서 미쳐버릴 것 같은 불치병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아무리 이해시키려고 해도 힘이 빠지고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식당을 가려고 시도했지만 마스크 때문에 언성만 높아졌다. 결국 식당을 포기하고 동생과 나가서 장을 보고 집에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집에 있는 게 가장 안전하고 남들에게 피해를 적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엄마는 방금 밥을 먹어도 배고프다고 말하며, 달달한 사탕만 찾았다. 엄마는 딸아이를 따라다니면서 잠시 한눈을 팔면 어느덧 냉장고와 주방을 뒤져 아무거나 먹고 있었다.
엄마 치매에 대해서 무관심한 외국인 아내지만 그래도 집에 엄마가 오면 평범하게 대해줘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가족은 서툰 한국말로 엄마한테 몇 번이나 말했다.
"시어머니, 사탕 없어요. 저녁밥 먹으러 줄게!"
사탕을 준다는 말에 밝게 웃으며 대답하는 엄마를 보며, 어린 딸보다 더 어려진 엄마가 밉기도 했다.
"형.. 엄마 어떻게 하지.."
"형도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정말 점점 심해지셔. 의사 말대로 정말 시간이 없나 봐..."
우리 형제는 밤에 맥주를 앞에 두고 답도 안 나오는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며 한숨만 쉬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엄마가 우리 집에 머무는 3일은 총알처럼 빨리 지나가 버렸다.
출근 때문에 기차를 타고 다시 올라가는 동생을 배웅하기 위해 함께 기차역으로 향했다.
열차를 기다리며 야외 벤츠에 앉아 기다리는데 엄마는 목이 마르다고 물을 계속 찾았다. 동생은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을 사 왔고 엄마는 물을 보자마자 마스크를 벗고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 그때 건너편 벤츠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건장한 청년이 버럭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마스크 좀 쓰세요!!!"
"마스크!!! 쓰세요!! "
"마스크!!!"
처음에는 우리를 보고 하는 말인지 몰랐다. 그런데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더 큰 소리로 고함치며 소리를 질렀다.
"마스크!! 써요!!!"
동생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엄마에게 물병을 뺏고, 마스크를 쓰게 했다.
나는 그 청년을 쳐다보았다.
눈빛은 증오로 가득했고, 그 청년은 마스크 속에 입과 코를 가리고 뻔뻔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마치 정의를 실현하는 영화 속 영웅의 눈 빛을 한 것처럼 당당했다.
나도 모르게 그에게 다가가려고 발걸음이 움직였다. 그때 동생이 내 옷을 잡았다.
"형! 그냥 둬.... 요즘 애들이야.. 그냥 둬... 저렇게 살다 죽게..."
분했다. 아니 적어도 몇 마디 던져주고 싶었지만 이것은 누구의 문제도 아니었다.
코로나 때문이라면 그런 것이지.... 누구를 원망할 가치도 없었다.
단지 그 청년이 한심하게 보였다. 그토록 걱정이 되었다면 열차가 아닌 자차를 타거나 밖에 돌아다니지 말지 왜 나왔나? 싶었다.
엄마는 분해하는 우리를 보면서도 계속 마스크를 벗으려고 했다. 동생은 혼잣말로 다시는 기차를 타지 않겠다고 나지막하게 분노에 차서 욕을 했다.
나는 인간이면 하지 말아야 할 행복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내 모든 증오를 담아 속으로 그를 욕했다. 그 정의감을 부숴버리고 싶었다. 아니 엄마 앞에 굴복시키고 싶었다.
이제 예의를 중시한다는 옛 조상들의 자랑 거리도 사라져서 무늬만 남은 이 현실에서 그 청년에게 따끔하게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내 머릿속 세상에서만 이뤄졌다.
현실 속 그 청년은 고개를 쳐들고 당당하게 기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분노하는 나를 위로하고 동생도 그와 같은 열차에 올라탔다.
그렇게 나는 불편하고 억누르기 힘든 분노의 감정을 밀어 넣고, 창문 넘어 엄마와 동생에게 손짓을 했다. 그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화목해 보여서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열차는 그 영웅 주의자 청년과 함께 서울로 떠났다. 흔적도 없이.
지금은 코로나를 그냥 감기 정도로 여겨지는 순간이 왔다. 그리고 나는 그 청년이 갑자기 보고 싶어 진다. 혹시 한참 코로나가 심해서 방역 지침이 강화되었을 때, 모텔을 잡고 친구들과 밤새도록 술을 먹지는 않았는지.... 계속 그렇게 떳떳하게 당당하게 영웅처럼 방역지침을 잘 지켰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혹시나 청년의 부모님은 마스크를 잘 쓰고 다니셨는지? 내가 그분들을 만나면 너처럼 그렇게 소리 질러도 되는지 앞에 두고 물어보고 싶다.
만약 그날 조용히 다가와서 차분한 목소리로 마스크 착용을 부탁을 했더라면 얼마나 세상은 아름다웠을까 회상을 해본다.
결국 시간이 지가는 동안 어머니도 오미크론 때 확진이 되었다. 그리고 아내와 딸까지 모두 확진이 되었다. 다행히도 무증상으로 큰 증상 없이 넘어간 것에 감사했다.
코로나가 제발 빨리 끝이 났으면 좋겠다. 조금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사는 가족들에게 코로나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