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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Dec 25. 2020

이루지 못하는 버킷리스트

아버지와 반대로 살기로 했다

 

  주유소에 도착했다. 뒤쪽으로 차를 대고 길을 건너서 주유소로 향해 걸어갔다. 잠시 들려서 아버지를 태우고 집으로 가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위해서 아버지의 일터에 간 것은 처음이었다. 저 멀리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자동 세차기계 앞에서 정신없이 차량의 유리를 닦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주유소 쪽으로 걸어갈 수 없었다. 그대로 멈춰서 멀리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한때는 석유 소매업을 하면서 친척들에게 일자리도 주면서 석유 소매업계에서는 나름 인정받으면서 일을 했던 아버지였다. 그런 사람이 도시가스로 난방 연료가 전환되면서 일찍 사업을 정리하지 못한 것이 문제가 되고 IMF를 맞이하면서 폐인이 되었다.  

    

  아버지가 열심히 살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항상 바쁘게 지냈고 언제나 육체적 노동으로 몸은 멀쩡하지 않았다. 그래도 착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한번 무너진 삶은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 그것이 문제였다. 그러다가 아들의 협박 아닌 협박으로 동네에서 같이 일을 했던 친구의 주유소에 취직을 했던 것인데 이렇게 고생하면서 일하는지 몰랐다.

가끔 아버지에게 물어보면 대형면허를 따서 큰 유조차로 주유소에 기름을 운반한다고 했다. 그래서 운전만 하면 되니까 크게 고생하지 않으시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날 내가 본모습은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중년의 남자의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입이 무거웠다. 정말 큰일이 아니면 간섭이나 충고 조차 하지 않았다. 서운하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 관심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간섭을 할 만큼 본인의 삶이 본보기 되지 않아서 참견 안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약한 모습을 자식에게 보이기 싫었던 것이었다.

가장의 뒷모습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아버지의 공백에 우리 집에 가장 인척 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내가 결혼을 해서 진짜 아버지가 되고 나서 깨달았다. 그 무게감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무겁고 어깨는 감각이 없어졌다.


삶이 힘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퇴근하면 어느 날은 연기자 되어야만 했다. 사회는 전쟁터다. 수많은 일들이 생겨나고 내 뜻대로 되는 일보다 남의 뜻을 따라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실수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때로는 나의 잘못이 아닌 것에도 책임을 지고 욕을 먹어야 했다. 그렇게 때문에 퇴근할 때 그 감정을 가지고 현관문을 들어서면 안 된다. 항상 그 감정은 버리고 현관문을 열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할 때가 많다. 아버지는 고수였다.  

   

  그래서 세차장에 있는 아버지에게 다가서지 못했다. 그날 계획은 간단했다. 아버지를 만나서 같이 퇴근을 하고 소주 한잔을 먹으면서 물어보는 것이었다. 남자 대 남자로 솔직한 아버지의 답변을 듣고 싶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다가서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후에 만들어진 나의 버킷 리스트에 절대 이루지 못할 한 가지를 할 수 있던 날을 영원히 놓첬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아버지와 밖에서 일대일로 소주 한잔하면서 취해보기.”     


나의 리스트에 이렇게 써져 있다. 시간이 많은 줄 알았다. 영원히 곁에 살아 계실 줄 알았다. 암이라는 진단은 우리 가족에 영원히 내려지지 않을 줄 알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다.

    

“ 아들아, 친구 오라고 해도 되지?”     

나는 대답했다. 오라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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