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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Dec 24. 2020

아버지의 애인을 보았다

아버지와 반대로 살기로 했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나니 간호사가 우리를 불렀다. 아버지와 나는 의자에 앉았다. 최근에 일어난 증상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설명했다. 선생님의 표정은 정말 담담했다. 꼭 예상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말을 꺼냈다.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 저번에 하셨던 종양 제거 수술 있죠? 그거 한번 더 받으셔야 할 거 같아요.”     


  뇌로 다시 전이가 된거 같네요. 사람따라 다른데 이렇게 전이가 빠르게 되기도 해요. 나는 순간 당황했다. 이제 겨우 머리카락이 자라서 수술의 흉터가 희미해져 가는데 다시 머리에 주먹 두 개를 합친 거 보다 큰 구멍을 내고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표저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항상 친절하게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었다. 나는 선생님에게 가족들과 상이하고 수술을 결정하게 되면 입원 수속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 공기는 무거웠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기적인 나는 수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몇 달 후면 미국으로 교육을 받으러 출국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교육 전에 어떤 상황이든 좋은 모습을 보고 떠나고 싶었다. 그래야 교육에 집중할수 있을거 같았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 모든 것은 반대로 흘러갔다. 그리고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수술 나는 한번 더 해도 괜찮다. 이렇게 살수는 없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고 아버지는 다시 기억력에도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저번과는 다른 마비 증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스스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불안감은 당사자가 아니면 그 누구도 알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들은 아버지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병실에 입원을 했다. 수술일정을 잡기 위해서 선생님을 만났다. 이번에는 좀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아버지와 병원에서 동숙을 하게 되었다.


  왠지 모르는 불안감이 나를 찾아왔다. 아버지의 증세가 하루가 다르게 나빠졌다. 그래도 저번처럼 수술만 하면 다시 멍쩡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아버지를 버티게 했다. 그리고 나도 믿고 있었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는 나를 효자로 생각했다. 병실에 다른 환자분들은 간병인과 함께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간병인을 고용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너무 아버지를 사랑해서 옆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해야만 했다. 그래야 나중에 자책하거나 쓸데없는 후회를 하지 않을거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저녁 밥을 먹고 나면 나는 아버지 옆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무엇인가 불안한지 주변 지인들과 통화를 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리고 어떤 중년 여성분의 목소리가 전화기 넘어로 들려왔다. 아버지는 괜찮다고 그러니까 병원에 오라는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 분은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가. 아들이 있다면서.”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소리는 들렸다. 그리고 잠시 잊고 있었지만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애인이 있었다. 비공식적이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26살 쯤 잠시 서울집에서 부대를 출퇴근 할 때가 있었다. 동생이 군대를 가서 방이 비어 있었고 직업 군인지만 부대와 어머니 집이 무척 가까웠다. 그래서 미혼이지만 부대에 보고를 하고 집에서 출퇴근을 했다. 독신숙소 생활을 벚어나서 퇴근하면 어머니가 해주는 김치찌개를 먹는 저녁이 행복 그 자체였다. 그렇게 출퇴근이 익숙해져갈 무렵 나는 퇴근하고 동네 마트를 가고 있었다. 초 저녁에 아버지가 주차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일찍 집에 온 아버지가 신기해서 차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데 조수석에서 어떤 긴 머리를 한 여성분이 내리는 것이었다. 난 얼굴을 보지 못했다. 뛰어가서 당장 누군지 물어봐야 했다. 하지만 내 발은 땅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멀리서 걸어가는 두분의 뒷모습은 별다른 스킨십은 없었지만 다정해 보였다. 나는 시야에서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지켜만 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는 느낌을 받았다.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 시기에 나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수치가 끝도 없이 높았다. 군생활 4년차를 접어들고 있고 어머니도 열심히 일을 하는데 가정 형편은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지쳐가고 있었다. 왠지 계속 이렇게 희망없이 살아야 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욱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두 사람이 사라진고 난 후에도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고민을 하고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동네친구들에게 모두 전화를 했다. 술이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다행이 한명의 친구가 시간이 돼서 술집에서 만났다. 나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막 늘어놓았다. 그리고 술이 취해서 결국은 내가 본 것을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는 그냥 아는 사람일거라고 나를 달래면서 별일 아닐테니 걱정말라고 했다. 그렇게 소주 계속 먹고 나는 다음날 시체처럼 출근했다. 그리고 퇴근 전까지기 어머니에게 말을 해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만 생각했다.


그래서 퇴근하고 아버지가 일하는 주유소를 가서 직접 물어보기로 용기를 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ultiwe

https://brunch.co.kr/magazine/genes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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