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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Nov 20. 2022

27화. 엄마 이빨이 왜 하나도 없어?

동생이 엄마를 집으로 모시고 왔다. 내가 가끔 올라가는 만큼 손녀딸을 그리워하는 엄마를 모시고 종종 내려오곤 한다. 엄마가 아파도 크게 신경 안 쓰는 외국인 며느리인 아내가 밉기는 하지만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살기로 마음먹으니 그냥 기분이 조금 상할 뿐이다.


저녁 늦게 내려온 엄마와 동생에게 이불 자리를 깔아주고 무거운 마음으로 거실에서 잠을 잤다. 아침에 눈을 뜨니 할머니와 삼촌의 깜짝 등장에 신이 난 딸아이가 고함을 치며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나는 분주하게 아침 상을 차리기 위해 동네 마트로 향했다. 언제나처럼 집에 손님이 오면 아내보다 내가 더 바쁘다. 엄마가 좋아하는 달달한 옥수수 마요네즈 반찬과 동생이 좋아하는 음식 몇 가지를 빠르게 고르고 요리를 했다.


차린 건 없지만 나름 집 밥이라고 좋아하는 동생 놈을 보면 언제나 가슴이 멍이 든 것처럼 아프다.


식사가 시작되고 모두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는데 엄마가 옥수수 반찬을 밥과 함께 잔뜩 넣고 씹더니 바로 식탁에 뱉어 버렸다. 아내와 딸은 비위가 상한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고, 나는 왜 안 먹냐고 엄마에게 물으니 엄마는 환하게 내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웃음 속에 자세히 볼 것도 없이 엄마의 아래 앞니 한 개를 빼고 다 없는 것이 눈에 보였다.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구기며 바로 동생을 바라봤다. 

동생은 내 시선을 피하며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딱 잘라 말했다.


엄마가 젊을 때부터 치아가 좋지 않아서 치과를 달고 살았던 것은 알고 있지만 충격적이었다. 

동생의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바로 물었다. 


"어금니는?"

"다 없지... 엄마 어금니도 없어.."


그 순간 그냥 고개를 숙였다.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숟가락을 들려고 하는데 무릎으로 눈물이 흘렀다. 짜증이 나고 화가 나고 분했다. 그리고 더는 엄마가 불쌍해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눈앞에 현실은 치아가 없어서 어떤 것도 씹을 수가 없는 상태로 식욕만 남아 있는 치매 환자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 사람은 바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엄마였다.


나는 밥 숟가락을 내려놓고 아파트 주차장으로 향했다. 동생은 바로 내 뒤를 따라왔다.


"왜? 말을 안했냐?"

"아니. 숨긴 게 아니고 말을 하려고 왔잖아."

"넌 그래도 병원에서 매일 엄마 보자나.. 그래서 그곳에 계시는 건데.."

"갑자기 다 빠졌다고... 나도 당황했어. 엄마가 이빨을 들고 왔어며 칠 전에.."

"뭐? 무슨 치아가 레고냐? 한 번에 다 빠지게.. 아..."


동생에게 짜증 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 조절할 수 있는 감정의 한계가 존재했던 것이었다. 그래도 미안했다. 그래서 바로 사과를 했다.


동생은 자기도 당황했다면서 생각해보면 맨 날 사탕만 먹고, 병원에서 남에 사탕까지 숨 쳐서 먹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이빨 닦는 것을 신경 쓰지 못하니 좋지 안 던 치아가 한 번에 빠진 거 같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집에 내려오기 전에 이미 치과를 들렀다가 왔다고 덧붙였다.


매일 밤 딸아이 치아는 구석구석 대신 닦아주는 나인데, 그 말을 들으니 참으로 못된 자식이 된 것만 같아서 죄책감이 몰려왔다. 사실 말이 좋아 동생 일하는 병원에 있는 거지. 그것도 방치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엄마가 입원한 곳은 치매 전문 요양병원도 아니었다. 

관리적인 부분에서 소홀할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동생은 내게 이제 병원비도 많이 나오고 요양 등급 4등급 이번에 받았으니, 모시고 살아야 할 것 같다고 지나가는 공기에 숨죽여 말을 던졌다. 

동생을 말을 듣고 반사적으로 말을 회피했다. 그냥 눈에 보이지 않는 산소처럼 못 본 척 딴짓을 하며 저녁때 이야기하자고 말을 돌려버렸다. 


대신 치과 의사 선생님 소견을 물었다.


선생님은 임플란트를 추천했는데 치료 기간도 오래 걸리고 병세 때문에 과정을 잘 견딜지 걱정이 되고 연세가 아직 젊어서 비용도 많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고 동생은 전했다.

나는 비용 문제는 형이 어떻게든 마련할 테니 엄마한테 가장 좋은 쪽으로 하자고 말했다. 근데 선생님 말대로 비용이 문제가 아니었다. 돈이야 없으면 빚이라도 져서 해드리면 되는데 문제는 손녀 딸보다 더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엄마였다. 하지만 치아가 없어서 아무것도 씹지 못하는 상태로 두는 것은 영양분 섭취에 문제가 되어 다른 합병증을 유발할 것은 의사가 아니라도 알 수 있는 당연한 것이었다.


 

다음날 장을 보러 나와서 먹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평소 엄마가 좋아하던 소고기 미역국 거리를 샀다. 

이제는 엄마가 씹을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해야만 했다. 

더 이상 엄마가 차려주는 집밥이 먹고 싶다고 투정을 부릴 수도 없다. 이제 그 음식을 평생 맛볼 수도 없다. 그래서 대신 내가 만들어드리고 싶었다. 먹지 못한다고 해도 말이다.


밥상을 다 차리고 기운이 없어서 누워만 있는 엄마를 부축해서 모시고 왔다. 엄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지만 습관적으로 숟가락을 들고 본인이 좋아했던 미역국을 웃으면서 입에  넣었다.

아들이 속상해하는 것을 마치 알았다는 듯이 부드러운 미역을 삼키고 밝은 미소를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미안함이 밀려왔다. 

우리가 어린 시절 치아가 없는 우리를 위해 이유식을 만들고 먹이면서 힘들게 키운 엄마였다.

그런 사람의 손길과 정성 때문에 이처럼 고단하기도 하면서 때로는 웃음 짓게 만드는 삶을 이어왔다.


이제는 그 사랑을 돌려드려야 한다고 속으로 수천만 말하면서 그냥 보낸 세월들이 한스러웠다.


부모는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자식을 버리지 않는다고 하던데

왜 자식인 우리는 틈만 나면 부모를 버리려고 하는지...


어두운 무채색으로 변해버린 요즘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그날 저녁 시골 동네 공원을 동생과 함께 산책하면서 서로 말을 했다.


'우리는 엄마 곁에 남아서 함께 하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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