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라서 미안해, 아빠도 학부모는 처음이라서.

두근두근 그러나 걱정되는 첫 아이 초등학교 보내기

by 고용환

지나간 시간이 이토록 빠르다는 것이 서운하기도 하면서 벌써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딸을 보니 대견하기도 한 감정이 오늘 교차되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돌아보면 그 무수한 감정들이 그냥 8년이라는 시간으로 함축되는 것 같아서 아쉽기는 했다.


초등학교 취학확인서와 각종 안내 자료를 받은 저번 달부터 마음 한 편이 걱정으로 무거웠다.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나서 고집 센 아내와 의견 충돌을 피해 가면서 어렵게 어렵게 키워왔다. 아니 의견충돌을 피하기보다는 적당히 싸우고 서로 무시도 하면서 각자 딸아이의 걱정을 표현하는 시간들이었다.


묘하게도 흘러간 시간은 이미 흘러가서 인지 추억처럼 여겨졌다.

지금과 같은 비슷한 감정과 걱정으로 독감보다 더 심한 몸살을 겪은 그 시간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딸을 보면서 그냥 가슴속 추억이 돼버린 것 같았다.


맞벌이를 하는 입장에서 어린 자녀를 보낸다는 것은 언제나 가슴이 아프다.

13개월 이 세상에 대한 어떠한 표현도 하나 제대로 못하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프지 않은 딸을 어린이집에 보낼 때도 지금처럼 걱정스러웠다. 물론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아내를 설득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맞벌이를 한 동안 하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문제없다고 말해도 아내는 하루빨리 새로운 직장을 얻고 정해 진 근로시간에 남들처럼 일하고 싶어 했다. 만약 아내가 외국인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더 설득해서 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늦게 보 낼 수 있었을 테지만 우리는 시부모님도 친정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였고, 아내는 규칙적인 생활을 너무도 사랑했다.


그렇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지 벌써 6년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초등학교로 다시 보내야 한다.


입학설명회라고 거창할 줄 알았는데 사실 서류만 제출하고 교실만 둘러보고 오는 정도였다. 딸아이는 인형과 장난감이 없는 교실을 보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내도 한국의 초등학교는 경험한 적이 없어서 딸과 아내는 두 손을 꼭 잡고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주변을 빠르게 확인하고 있었다.


작고 작은 책상에 앉아서 몇 가지 서류에 서명을 하고 중앙에 앉아 있는 선생님에게 제출을 했다. 궁금한 것이 너무도 많았다. 대부분 인터넷으로 알아본 방과 후 수업이나, 학교에서 운영하는 자녀 돌봄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그런 것을 물어볼 상황이 아니었다. 하교하는 아이들은 정신없이 복도로 내려오고 예비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와 어린 천사들은 교실로 계속 밀려들어왔다.


선생님에 서류를 제출하면서 왠지 모르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뒤로한 채 방과 후 수업에 대해서 물어봤다. 대답은 아주 짧았다.


"서류받아 가시면 돼요. 안에 내용이 다 있습니다."


나만큼 궁금해하고 뭔가 입학설명회라서 선생님과 질문도 하고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내는 바로 실망하는 눈치였다. 뭐라고 하는지 정확한 정보를 엿들을 수도 없는 그 심정은 언제나 이해하나 항상 오늘처럼 내게 통역을 재촉하거나 부정적인 말을 영어로 늘어놓으면 나는 감정이 상했다.


나는 아내에게 짧게 모든 궁금 사항은 이 서류에 있다고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하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아이는 이곳저곳을 보면서 넓고 넓은 학교 크기에 압도당한 것만 같았다.


나 또한 오랜만에 초등학교 안에 들어와서 교실을 보니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신기한 것은 몇십 년 전에 내가 입학했던 그 순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렴풋이 운동장에 줄을 서서 뭔가 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나는 딸아이의 손을 꽉 1층 교실과 학교 운동장을 둘러봤다. 아내는 외국에 자신이 다녔던 학교를 떠올리며 비교하는 것 같았다. 아직도 이렇게 어리고 어린 딸이 초등학생이 된다니 참 믿어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아마 오래전에 나의 부모님도 이렇게 불안하게 첫째인 나를 학교에 보냈을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당시 엄마, 아빠도 먹고살기 바빠서 장사하는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처럼 이렇게 미안했을 그 감정을 떠올리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만약에 할아버지가 이 세상에 계시고, 할머니가 아프지 않았다면 나보다 걱정하셨을 두 분이었기에 더 그리웠다.


학교를 빠져나와 집까지 오는 길을 차근차근 설명해 줬다. 다행히도 2차선 도로 하나만 건너면 가까운 곳에 학교가 있었고, 돌봄 신청을 하고 학원 셔틀을 한 타임 하면 퇴근시간에 맞출 수 있어서 도로를 혼자 건널 필요는 없었을 테지만 그래도 이 작은 아이에게 가장 위협적으로 보이는 장애물은 도로 위에 차였다.


'아.... 이래서 초품아 대단지 아파트를 선호하는구나...'


이런 짧은 생각까지 하면서 말이다.


물론 잘 적응하면서 성장해 줄 거라고 믿고 있다. 그럼에도 그냥 미안하다.

1살 때부터 지금까지 온전히 부모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자녀를 키웠나 스스로 묻기도 하면서

일찍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아이를 아빠, 엄마 퇴근 시간까지 밖에 둬야 하는 것이 여전히 불편했다.


이렇게 나는 두근두근하면서 무섭기도 한 학부모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학부모가 되는 모든 부모님들 화이팅 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출근길에 한약 두 봉지를 가방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