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착한 호구보다는 까다로운 호구

인간관계를 분리수거했다.

by 고용환

호구(虎口)는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뜻풀이를 보면 왠지 모르게 슬퍼진다. 마치 어수룩하다는 건 자기 주관이 뚜렷하지 않고 그냥 조건 없이 무조건 착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물론 사람이 착하면 좋다. 사악한 사람보다는 포근하고 착한 사람과 왠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 근데 그 착하다는 기준이 참 모호하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착한 사람일까?'


내가 어떤 부탁을 하더라도 항상 웃으면서 들어주는 사람? 손해를 보는 것을 알면서 남을 위해서 애써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싫은 내색 못 하고 그냥 머무는 사람? 정의하기 힘들다. 어쩌면 그냥 내 기준에서 내게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직장에서 상사 입장으로 볼 때 착한 부하는 어떤 지시에도 항상 웃는 얼굴로 최선을 다해 불평불만 없이 일하는 사람이고, 아랫사람 관점에서 착한 상사는 의견을 잘 들어주고 내가 건의하는 것을 수용해 주면서 어쩌다 크게 실수해도 항상 격려만 해주고, 절대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을 하지 않는 그런 천사 상사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 기준점이 모두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구의 모습도 다양하다. 그래서 만인의 호구 또한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결국 호구처럼 보이는 사람도 그 대상에 따라 태도를 달리한다. 만약 그냥 모든 사람에게 다 착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천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정말 보기 드물다. 만약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정말 진심으로 더 잘해줬으면 좋겠다.

이용만 하려고 하지 말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사악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사악한 사람 주변에는 악마만 모인다.


그래서 까칠한 호구가 되라고 말해주고 싶다. 까칠해야 하는 이유는 나를 지키기 위함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부탁하고 받아들이는 관계의 굴레 속에 살아간다. 정말 몇 명의 소수를 제외하고 살면서 아쉬운 게 생기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에서도, 친구 관계에서도, 학교에서도 서로서로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럼 자기 능력이 된다면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에게 무조건 YES를 말하는 것이 현명한 걸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까다로운 호구는 분명 준 것이 있으면 돌려받는다는 생각으로 부탁을 들어줘야 한다. 계산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모든 이치가 이렇다. 그래서 부탁을 들어줄 때도 본인이 여유가 되고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해도 조금 고민하는 척이나, 바로 대답하는 게 아니고 자신이 이러한 일로 바쁘지만 그래도 부탁을 들어준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부탁한 사람도 더 고맙게 느끼고 나중에 보답하려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냥 무조건 다 된다고 하면 그냥 그 사람은 ‘좋은 사람’으로 각인돼서 거절 못 하는 착한 호구로 이름표가 붙게 된다. 주변에 이런 사람으로 각인되면 다음부터는 정말 사정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거절해도 이상한 소문이 퍼진다.


그중에 가장 흔한 말이 바로 ‘저 사람 변했네’ 다.


이런 말들이 자신을 따라다니면 거절한 사람은 민망해서 더 철저하게 다음부터 부탁을 들어준다. 왜냐면 나는 더 착한 사람으로 살고 싶으니까. 그리고 나는 변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고 다니는 주변 사람이 얼마나 치사하고 간사한가?


그동안 잘해줬던 것들을 잊고 거절당했기 때문에 리셋시킨다. 이용만 하려는 이런 사람들은 평소 어떤 사람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 것에 대해 전혀 고맙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착한 호구가 주변에 있으면 아무리 착한 사람들도 정말 쉽게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 사람을 이용하고 부탁하려 한다는 것이다.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는 분들이 있다면 눈을 감고 냉정하게 생각해 봐라. 분명히 나도 그랬던 적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착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으로 우리의 머리가 인식하는 것 같다. 그래서 부담 없이 약한 사람을 이용하고 부탁하려는 본능이 있는 것만 같다.


결국 착한 호구로 살아가면 이용당하는 것을 피할 방법은 없다. 특히 모두가 평등한 계급장을 달고 사는 사회도 아니기에 자연스럽게 위와 아래가 구분되기에 더 어렵다. 대안은 까다로운 호구가 되는 것뿐이다. 까다로운 호구는 착함과 사악함의 중간 지대 정도이다. 그리고 선함과 악함을 선별해서 사람을 대하는 관계의 요령이다. 내가 잘해주고 싶은 사람에게 더 잘해주고, 악마 같은 사람에게는 벌을 주는 자신만의 잣대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겉모습과 달리 거절을 못하던 나도 수없이 연습했다. 호구 짓을 당하고 속으로 억울한 경험을 수도 없이 하면서 거절하는 법도 연습하고, 남에게 상처 주는 법도 연습했다. 대신 좋은 사람들에게 더 친하도록 애를 썼다. 그러다 보니 색깔이 뚜렷하고 자기 주관이 확실한 사람으로 주변 사람들이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또 다른 장점은 내 기준에서 판단하고 거절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의견을 공식적인 자리에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졌다. 그만큼 직장에서 인정받는 속도 빨라졌다.


사람들은 그냥 착하기만 한 사람을 따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면서 소신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 때로는 싸가지 없어도 그런 사람을 자신의 리더로 두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생각하고 연습해야 한다.

평생 남들 부탁을 들어주면 착한 사람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인정도 별로 못 받고 살 것인가? 아니면 멋지게

거절도 하면서 남들이 함부로 건들지 못하게 자기를 지키면서 살 것인가?


장미 줄기에는 뾰족한 가시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장미꽃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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