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피는 물보다 진하다. 하지만 무섭다.

인간관계를 분리수거했다.

by 고용환

관계에서 뺄 수 없는 것이 바로 핏줄이다. 특히 우리는 핏줄에 대단히 관대하다. 그런데 사실 큰 도움 안 되는 무늬만 혈연인 무시무시한 사람들도 많다. 만약 관계가 좋고 정말 보고 배울 것이 많다면 정말 복 받은 것이다. 멘토가 될 수도 있고 올바른 행동을 통해 인생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자랑은 절대 아니지만 내 친동생은 형인 나를 우상이라고 어디 가나 말하고 다닌다. 그리고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지금은 보면 내 동생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시간을 짜고 짜내서 무언가 이룰 수 있는 작은 성취를 찾아서 끝없는 여행을 떠나는 모습 말이다. 동생은 말한다. 형이 어릴 때는 정말 보고 배울 것이 하나도 없어서 싫었는데 지켜보면서 내가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고 말이다. 모두 사실이라서 할 말이 없다.


지금은 서로 의지하면서 힘든 일을 생기면 부딪치고 상의하고 도우면서 살고 있다. 형제 사이지만 우린 참 다정하다. 근데 반대로 악마보다 더 사악한 혈연도 있다. 절대 인생에 도움 안 되고 어떻게든 이용해 먹으려는 그런 사람들이다. 당연히 해결책은 관계는 빨리 정리하고 아주 굵은 선으로 중간에 그어두는 것뿐이다.

나 또한 본받고 싶은 친척과 그렇지 않은 친척이 있다. 어린 시절 어려운 환경에서 하나씩 만들어가면서 지금은 평범을 넘어 지금은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가끔 진심을 담은 메시지나 안부를 내게 물어봐 준다. 이런 모습은 내게 큰 동기가 되었다. 나도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이렇게 받은 것을 돌려주면서 살고 싶다고 다짐했다. 요란한 움직임이 아니고 잔잔하게 응원해 주는 그런 핏줄이다. 물론 이런 관계가 주변에 넘쳐나면 정말 좋겠지만 인생은 참 공평하다.



반대로 힘들어서 쓰러지기 직전인 친척 동생인 나를 등쳐먹고 아쉬울 때만 연락하는 핏줄도 존재한다. 처음에는 그런 의도가 아니겠지?라고 넘기지만 몇 번 당하면 역시 사람은 절대 안 변한다고 정의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영원히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한다. 특히 피는 물보다 진하므로 쓰레기 짓하는 행동을 보고 자란 자식은 똑같이 쓰레기 짓을 한다. 평생을 옆에서 보고 배웠으니 당연한 이치이다. 냉정하지만 정말 별로인 어르신들이 있으면 자녀도 미리 선을 그어두는 둘 필요가 있다.


어이없던 일이 하나가 있다. 아버지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아서 시한부의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것도 아버지는 집안에서 막내였다. 아버지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형과 누나들은 정말 건강했다. 예상하지 못한 암으로 우리 집은 초비상이 걸렸다. 당시 서른 살이었던 나는 막막했다. 아버지가 능력이 좋던, 나쁘던 아빠라는 존재를 내가 대신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병원비 등 조치할 것이 넘쳐났다. 충격받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관계가 별로인 동생까지 달래가면서 아버지가 입원해서 항암치료 및 검사를 받으면 내가 병원에서 잠을 자고 간호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아버지 중 한 분이 내게 전화하셨다. 당연히 병문안 또는 아버지 병세를 묻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이없는 요구를 내게 너무 당당히 하셨다.


“네 아빠, 핸드폰 번호 그거 큰 아빠 줘라.”

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간호하는 내게 전화해서 한다는 말이 핸드폰 번호를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입에서 말도 혀도 움직이지 않았다. 머릿속에 이게 사람이란 말인가?라는 생각만 떠돌아다녔다.

결론적으로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핸드폰 번호를 아무에게도 주지 않았다. 좋은 번호였다. 초창기 핸드폰이 생길 때 지인이 만들어 준 골드번호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비공식적으로 그쪽 집안과는 연락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달이 지나서 그 집의 아들인 사촌 형에게 전화가 왔다. 한다는 말이 안부를 묻는 것도 아니고 열 살도 넘게 차이 나는 내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급한 일이 있다면서 말이다. 사실 놀라지도 않았다.


‘언제나 콩 심은 곳에 콩이 난다.’


추측이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큰아버지가 용돈을 줬거나 했을 것이다. 그 집안은 이런 식으로 언제나 돈을 회수했다. 나는 쿨하게 돈을 빌려줬다. 아니 줬다. 물론 10년 다 되어 가지만 친척 형은 내게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말하기 쪽팔린 가족 이야기지만 나라는 사람은 이런 경험을 통해 핏줄도 분리수거 또는 쓰레기 처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냥 좋은 게 좋다는 천사 마음으로 살면 작은 날개의 깃털까지 빼서 팔아먹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대신 혈연보다 차라리 주변에 당신에게 잘해주는 사람들에게 더 마음을 표현하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인생에 이롭다고 본다. 물론 정말 도움도 주고 의지가 되는 수많은 핏줄이 존재한다.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잊지 말자.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그런데 핏줄도 핏줄 나름이다.



내가 아플 때 수혈받지 못하는 피는 물보다 보잘것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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