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를 분리 수거했다.
대인관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쓰기에 내공이나 학문의 깊이가 형편없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살면서 그리고 20년 직장생활에서 버틴 결과를 그냥 이야기하고 싶었다. 어쩌면 독자분들이 아닌 나에게 하는 이야기가 더 많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 그렇지만 우리는 평가하고 평가받으며 살아간다.
‘누구는 이렇게 한다는 데….’
‘어떤 부장님은 이것도 도와준다는 데….’
‘거기 신입은 아침에 커피를 들고 인사도 온다면서?’
‘밥을 사비로 사줘도 요즘 애들은 고맙다는 말을….’
모두가 자기 마음처럼 움직여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건 가족, 친구, 직장 모두 같은 거 같다. 그런데 본인도 마음먹은 것을 하지 못하면서 남들이 자기 생각처럼 움직였으면 하는 바람은 어쩌면 이뤄질 수 없는 소원일지도 모른다.
특히나 관계에서 얼마나 많은 순간이 행복한가?
대부분은 행복의 순간은 짧다. 시원한 봄바람처럼 이마를 스치고 지나가는 그 정도 순간뿐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매일매일 행복해서 미치겠다면 아마도 병원을 추천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걱정과 상처를 더 많이 받으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대부분 걱정과 상처를 주변 사람으로부터 받는다. 어쩔 수 없으니 그 사람을 피하기도 하고, 선을 긋고 버리기도 하고, 잠시 이해관계 때문에 포옹하는 척 위선자가 되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것도 저것도 싫다면 아마 산속에서 자급자족하면서 어떤 접촉도 없이 살아가는 것이 속 편한 것이다. 그런데 죽음이 가까워진 상태가 아니라면서 우리는 그런데도 사람 속에서 살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나는 인간관계를 분리수거해서 가볍게 만들고 상처를 최소화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물론 그 기준은 각자 만드는 것이다. 내가 정한 쓰레기 유형들이 다른 사람들이 볼 때 그저 그런 분리수거 품목일 수도 있으니까.
또한 예의를 갖춘다는 것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서 싸가지 없는 모습이라도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연습도 필요하다. 태생이 싸가지는 드물다. 자연산보다는 가공이다. 어쩌면 생존하기 위해서 스스로 포장지를 덮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요즘 나는 더 싹수없기 위해 노력한다. 신기한 것이 싸기지 없는 내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착한 가면을 억지로 쓰고 살 필요가 있을까? 정말 착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말이다.
불필요한 사람에게 베푸는 호의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런 사람들은 그 호의를 이용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차라리 사람을 가려서 호의를 베푸는 것이 더 현명하다. 적어도 호의를 이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싹수없지만 마음은 따스한 자기 주관이 확실한 사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주변 눈치 안 보고 피해를 주라는 말이 아니고 소신이 있는 싸가지를 말하는 것이다. (오해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나 또한 소신과 이익이 주변과 자기 이익에 따라 변하는 간헐적이고 편식하는 줏대를 가진 사람이나 간신(奸臣)이 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반성하고 노력한다.
그래서 오늘도 인간관계를 분리하기 위해 집게를 들고 봉투에 분류한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고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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