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끝과 만나는 날
룸으로 돌아가다 보니 짐을 챙겨 퇴실하는 사람이 눈에 띈다.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마지막을 가족과 보내고 싶을 것이다. 나도 가족이 있는데. 출가한 두 딸이 눈에 선하다. 떠날까.
다시 2번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간다. 나쁜 녀석들 같으니라고. 아비에게 전화 한 통 하지 않다니. 딸이 울먹인다. 아버지 어디 있느냐고. 하지만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하지 않는다. 밥 잘 먹고, 이제 필요도 없는 건강 타령뿐이다. 열흘밖에 남지 않는 지구에서 말기 암 환자나 나나 모두 같은 시한부 생명인 것을. 할 말이 그렇게 없었던 것일까. 모두 내 탓이다. 살아오면서 살갑게 대하지 못한, 내 탓. 3번 버튼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도 야속하다. 수십 번은 접어야 종이학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을 접고 접어야 한다. 자식은 품안에 있을 때 뿐,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면 그것으로 끝인 것을. 생각해보니 나도 그랬다.
로비로 내려갔다. 입안에서 단내가 났다. 커피 한잔을 시켰다. 습관대로 넣던 각설탕도 빼고, 단숨에 들이켰다. 쓰다. 죽음의 맛이 꼭 이 커피 같지 않을까. 달짝지근한 향기로 사람들을 미혹하게 하는.
커피숍에는 아직 직원이 있다. 솔직히 궁금하다. 지구가 멸망한다는데, 출근한 이유가.
“여유가 없어서요. 집안이 어렵거든요. 남동생 등록금도 마련해야 하고. 어머니 병원비도 꽤 들어가거든요.”
“지구가 멸망하는데 등록금도, 병원비가 무슨 소용이 있다고.”
“혹시 모르잖아요. 지구가 멸망하지도 않았는데, 제가 일자리라도 잃는다면 정말 큰일 나잖아요.”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1%의 천재들과 절박함을 가진 다수의 가난한 노동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안타까운 사연을 눈앞에서 직접 듣고 나니 가슴이 뚝 떨어진다. 만약 이 여자와 나 둘 중에 한 명 살아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나의 생명을 여자에게 양보할 것이다. 생명이란 그 생을 절실하게 여기는 자의 것이어야 한다고, 육십 가까이 이 소소한 믿음 하나만을 쥐고 살아왔다. 나도 진심으로 그들 중의 한 명이기를 바랬었고.
이제 어디로 갈까. 저쪽 세계에서 지상의 풍경 한쪽 추억할 수 없다면 그것보다도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한적한 바닷가로 가 볼까. 그러기엔 아직 시간이 많다. 아니면 교회……. 그래 이왕이면 교회가 좋지 않을까.
도로는 한산했다. 드문드문 있는 작은 교회 근처로만 차가 빽빽이 주차가 되어 있다. 찬송가 소리와 간절히 울부짖는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브레이크를 밟으려다 다시 가속 페달을 밟았다. 광신도처럼 울부짖는 무리 가운데, 적응하지 못하고 멀뚱히 앉아있는 모습이라니. 죽음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불쌍한 영혼처럼 보일 것이다. 나는 제법 큰 교회를 찾아가기로 했다. 불신자에게까지 나누어 줄 수 있는 영생의 여유가 작은 교회보다 큰 교회가 더 많지 않겠는가.
차는 1km 정도를 더 전진하다 멈춰 섰다. 도로는 한 시간째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고가 났을까. 고개를 빠끔히 빼고 앞을 바라봐도 차 앞은 차로 길게 이어져 있다. 서울도 아닌데 교통체증이라니. 수십 년 이상을 길에 기대어 살면서도, 교통체증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지구가 멸망한다면 나는 가장 앞쪽의 번호표를 뽑고 싶다. 지구의 모든 인간이 죽는다면 죽음의 문을 통과하는데도 상당한 교통체증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저승 문을 지나가기 위해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한다면 그것보다 최악의 상황은 없을 것이다.
나는 반대편 차선으로 차를 돌렸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차를 한쪽에 세우고 걸어가는 것이 빠르지 않을까. 내가 차를 돌리자, 몇몇 사람들도 같이 차를 돌린다. 꼭 무리를 이탈한 아프리카의 누우떼 같다. 설마, 모두 같은 교회로 몰려가던 것은 아니겠지. 내 옆으로 사람들의 무리가 조금씩 늘어난다. 모두 차를 놓고 걷는 사람들이다. 뛰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같이 뛴다. 뛰는 이유는 모른다. 같이 뛸 뿐이다. 멀리 교회건물이 보인다. 가슴이 뛴다. 교회 십자가가 마지막 천국행 급행열차 암표처럼 번쩍거린다. 저 십자가만 잡을 수 있다면…….
나는 멈춰 섰다. TV 속에서 보던 광경이었다. 통로는 고사하고 열차 지붕까지, 앉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공간이라면 사람들로 빼곡한 방글라데시 열차의 풍경 같은. 내가 저 인파를 뚫고 교회에 들어갈 절박함이 있을까. 본당까지 들어갔다고 해서, 영생에 이르는 표 한 장을 얻어 낼 수 있을까. 씁쓸했다. 확신할 수도 없는 순간을 위해, 소중한 지상의 몇 시간을 공으로 허비했다는 것에 대하여. 구원받지 못한 영혼이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뒤숭숭한 마음처럼 호텔 방도 어지러웠다. 청소해달라고 표지판을 붙여 놨는데. 그러고 보니 청소하는 직원들이 보이지 않는다. 청소직원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괜찮다. 물과 전기만 끊기지 않고, 여벌의 수건만 있다면 호텔 직원이 없어도 괜찮을 것이다.
냉장고를 열었다. 아침에 사다 놓은 맥주가 있다. 맥주 캔을 집었다, 놨다. 이렇게 우울한 날, 맥주보다는 독한 양주가 어울릴 것 같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21년산 발렌타인, 호텔에선 족히 오십만 원은 받을 것이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방을 옮겨 볼까. 이왕이면 스위트룸으로.
“제일 좋은 룸으로 방을 바꿀까 하는데요.”
“하루에 백만 원이 넘는데 괜찮으십니까. 청소가 안 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아직, 카드 되죠.”
일상적인 대화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멀뚱히 혼자 한참을 웃었다. 돈이라니, 어이없다.
직원은 키 하나를 건넸다.
“저랑 술 한 잔 하겠습니까.”
“전 제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왜 이 자리에 연연해하는 거죠.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제 근무시간이라서 그렇습니다.”
“지구가 멸망한다는데, 근무시간이 무슨 소용이 있나요.”
직원은 아무 말 없이 흰 이빨을 드러내며 살짝 웃는다.
“아 그리고, 내일 중으로 방을 비워 주셔야겠습니다. 오늘 본점에서 숙박객의 안전을 위해 호텔 폐쇄를 결정했습니다.”
방을 비우라는 것은 당연한 순서일 수 있다. 하지만 며칠 후 다 죽을 판에 숙박객 안전이란 명분을 내세우다니. 내 참, 어이가 없다.
내가 남해까지 오게 된 것이, 아내가 보내준 특별 선물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죽기 전에 한번 특급호텔 스위트룸에도 묵어 볼 수 있으니, 특별 선물은 못 되어도 서프라이즈 이벤트 정도는 되지 않을까.
바뀐 룸은 호텔의 마지막 층에 있었다. 방 키를 꼽고, 뺐다. 녹색 불이 들어오며 문이 딸꾹질하는 것처럼 딸각, 열렸다.
이게 말로만 들었던 스위트룸. 아니 룸, 룸이 아니라 고급 아파트 한 채를 통째로 옮겨 놓은 것만 같다. 동유럽을 연상시키는 고풍스러운 가구들이 가득 들어차 있고, 방 한편에는 날개를 연 큼직한 피아노도 있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니, ‘미……’라는 음의 여운이 방의 넓이만큼 길고 넓게 흩어졌다. 진열장에는 발렌타인 21년산뿐만 아니라 무려 30년산도 있다. ‘와’라는 감탄사가 입에서 흘러나온다. 한 병 깔까. 마음은 굴뚝같지만, 나는 21년산으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만약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다면…….
TV도 처음 보는 최신식이었다. 100인치는 족히 넘어 보이는 얇고 커다란 TV가 거실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다시 ‘와’라는 감탄사가 흘러넘친다. 특급호텔 스위트룸이라니! 지구의 멸망이 아니었다면 경험할 수 없을 호사다.
몸이 끈끈했다. 욕조는 일반 룸과 어떻게 다를까. 나는 YTN을 고정해 놓고,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의 크기나 화려함보다 욕조에서 뜨거운 물이 나오는 것이 더 신기했다. 프런트 직원과 커피숍 직원 말고도 출근한 직원이 있었던 모양이다. 욕조에 더운물을 가득 받아 놓고, 냉장고에 있던 발렌타인 21년산 병마개를 땄다. 사형수에게 교도소에서 주는 마지막 만찬처럼, 달콤하고 호사스러운 목욕. 그런데 아뿔싸, 크리스털 유리잔을 가져오지 못했다. 발렌타인을 이빨이나 닦던 일반 유리잔에 마실 수 없지 않겠는가.
열린 욕실 문 사이로 YTN 뉴스 소리가 들렸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신입 아나운서인가? 말을 더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적당히 몸을 닦고 욕실 밖으로 나갔다. TV에서 나오는 뉴스는, 어제 TV에서 사라졌던 외계행성 B5070에 관한 것이었다. 정부의 전면 부인 하루 만이다.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도 막을 수 없었던 이유는 외국 정상들의 발표와 전 세계에서 전송되는 SNS 속보 때문이었다. 대통령은 퇴임식 날의 침통한 표정으로 지구 멸망의 공식 발표와 동시에 계엄령 발동을 공표했다. 지금 이 시간부터 이후부터 종교행사를 제외한 일체의 집회를 할 수 없으며, 도시의 경계도 벗어날 수도 없음을 알렸다.
문제는 항상 나였다. 아내가 죽었을 때도 그랬다. 누구도 반겨주지 않는 천덕꾸러기 신세.
그래 어떻게든 될 거야. 그래도 아직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던가. 지금이라도 떠날까. 아니야. 어차피 지금 떠나나 내일 떠나나 마찬가지일 것이야. 누릴 수 있는 마지막 호사라면, 이 스위트룸 느낄 수 있을 만큼 느껴보고 싶다. 아니, 아니지. 지금이라면 어떻게 될지도 몰라. 계엄령을 늦게 들었다고, 사정 하면 혹시 서울까지 갈 수 있을 거야. 어림도 없는 얘기. 오늘 밤이라도 편하게 지내는 것이 차라리……. 졸졸, 잠그지 못한 수돗물이 욕조를 타고 흐르듯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못한 생각이 식은땀이 되어 흘러내렸다.
딩동. 벨이 울렸다. 누굴까. 날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서둘러 가운을 입었다. 문 앞엔 프런트를 보던 직원이 서 있다.
“룸 괜찮으신가요?”
싱겁기는. 방의 상태를 확인하러 온 것일까. 그의 손에는 양주가 들려 있다.
“예. 괜찮습니다. 들어오시겠어요.”
인사치레 같은 말투였지만, 진심으로 들어오기를 바랬다.
“룸 괜찮으실 겁니다. 이 호텔에서 가장 좋은 룸이거든요. 외국의 귀빈들이나 모시던 프레지던트 룸이었거든요. 아시죠. 미국의 탑 영화배우, 아놀드도 이룸에서 묵었습니다.”
혹시 내가 아는 아놀드 슈알즈제너거를 말하는 것일까. 그 사람이면 나도 영화를 봐서 아는데.
“퇴근하다, 아까 한 말이 기억이 나서요. 술 한잔 하시자는…….”
“근무는 끝이 났습니까.”
“예, 뭐, 허허. 다음 근무자가 오지 않은 것이 문제지만.”
“커피숍 여직원은요?”
“퇴근했죠. 퇴근이기보다 퇴직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네요. 저도 마찬가지고. 어떤 식으로든지 밀려서 퇴직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후배들에게 밀릴 줄 알았는데, 어이없이 행성에 밀렸네요.”
직원의 손엔 발렌타인 30년산 두 병이 손에 들려 있다. 아직 진열되지 않은 상품이었는지 고급스러운 나무 상자에 담겨 있다.
“이놈 꼭 한번 목을 따서 마셔보고 싶었거든요. 프레지던트 룸에서 폼 나게.”
그의 눈에 물기가 어린다. 진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아니, 여기가 스위트룸이 아니었던가요?”
“여기는 프레지던트 룸입니다. 외국 귀빈들만 묵고 가는.”
“이거 설마 바가지는 아니겠죠…….”
그래 차라리 바가지였으면 좋겠다. 그것으로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다면.
“멋진 방과, 밤을 위하여, 우리 같이 건배하시죠. 건배.”
한 낯의 이면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어둠이 창밖의 풍경을 가득 채운다. 오늘은 집어등을 킨 고깃배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고깃배도 제 집과 가족을 찾아 항구로 제각각 흩어졌을 것이다.
운 좋은 몇몇 사람들이 지구 멸망을 앞설 수 있었는지 큰 별똥별이 뚝뚝 떨어진다.
“이제 9일 남았군요.”
“9일이면 충분한 시간이 아닌가요. 사실 아직까지 전, 9일 연속으로 휴가를 내 본적이 없습니다.”
“그러시겠죠. 젊었을 때는 저도……. 참 열심히 살았는데.”
술기운 때문일까. 눈물 한 방울 뚝 떨어진다.
“아, 아마도 저 별이겠죠.”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둠 속에서 큰 별 하나가 유난히 반짝거린다.
“저 별은 알까요. 자기 자신이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우리와 저 별은 같은 입장일지도 모릅니다.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은.”
“말씀이 상당히 철학적으로 들리는군요. 철학적.”
“철학은 요, 뭘.”
불과 며칠 후, 지구가 멸망하면 지구위의 모든 문명도, 종교나 철학도 끝이 날 것이다. 철학은 누누이 우리에게 말해왔다. 모든 존재는 무에서 시작해서 무로 끝난다고. 생각해보니 무에서 시작한 인류는 이대로 끝나도 아쉬울 것 없다.
문득, 무(無)로 되돌아 간 아내가 그립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