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퇴직 1

찬란한 끝과 만나는 날

by 주영헌



삼십 년 동안 퇴직만을 꿈꾸며 살았다. 그렇게 지긋지긋하던 콩나물 반찬에 콩나물시루보다 더 빽빽한 버스를 타고 용케도 열흘이 빠지는 삼십 년, 회사 생활을 했다. 내가 상상하던 퇴직은 휴가 전날의 설렘 같은 것이었다. 심야영화도 실컷 볼 수 있고, 아무 때나 여행을 훌쩍 떠날 수 있는. 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어둑한 낯선 버스 종점에 내린 기분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실로 난감한.


아내와 난 평소에 많은 얘기를 나눴다. 우리가 나눴던 얘기의 대부분은 퇴직 이후의 시간에 대한 것이었다. 이천십 년 캠핑 열풍이 불었을 때 우리는 퇴직 이후 캠핑카를 구매해서 전국을 여행하자고 했다. 떨어지는 해를 보며 ‘브라보’를 외치자던 아내와 나의 희망은 맥주 거품보다도 싱겁게 꺼지고 말았다. 이천십오 년 내가 퇴직하던 그해 아내도 퇴직을 하고 말았다. 잘 가라는 짧은 인사를 할 틈도 없이, 훌쩍.

교통사고였다. 아내가 내 예상 퇴직금이 적다며 항상 투덜거렸는데, 아내가 남겨 놓은 보상금을 받고 보니 우리가 가졌으면 했던 금액과 일치했다. 아내는 언제나 자신보다 남편인 나를 먼저 배려하는 여자였다.

아내가 죽은 뒤로 나는 완전히 의욕을 잃었다. 의욕을 고스란히 아내의 관속에 순장한 것만 같다. 일 년 사이에 몸무게도 십 키로나 넘게 빠졌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지상에는 어떤 아쉬움도 남지 않을 것 같다.




왜 내가 남해까지 오게 됐는지,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차에 시동을 걸고 서울 톨게이트를 지나, 천안, 대전, 그리고 남해까지 달려온 것이다. 내가 내비게이션을 작동한 것은 대전을 지난 이후였기 때문에, 대전까지는 영혼을 잃어버린 표정으로 달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아내는 몇 년 전부터 남해에 새로 생긴 특급 호텔에 한번 가보자고 노래를 불렀었다. 내년의 그날은 기념일처럼 되돌아왔지만, 남해, 아니 남쪽 바다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수십만 원이나 하는 호텔 비용이 더 큰 문제였다.




“며칠이나 머무르시겠습니까?”

프런트 직원은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나는 그 얼굴이 얼마나 작위적인지 알고 있다. 온몸이 간지러운 것을 보내 그가 내 몸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음이 분명했다.

프런트 직원의 질문에 나는 머뭇거렸다. 솔직히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당장 오늘 다시 서울로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아쉬울 것이 없다. 기름값이나 고속도로 톨(toll)비 같은 소소한 금액은 나에게 무의미하다.

프런트 직원의 말에 나는 무심코 열흘이라고 말했다. 내가 ‘열’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남해의 호텔에 열흘이나 묵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도 없지만, 내 입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열흘이라는 말을 해 버린 것이다. 나는 왜 그런 말을 한 것일까?




장거리 운전에 몸이 지쳤는지 객실에 들어서자마자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내 코 고는 소리에 간혹 뒤척이며 깨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참 달게 잔 잠이었다. 눈을 떴을 때는 어둠은 검은 고양이처럼 창의 구석구석 직각으로 몸을 맞춰 웅크리고 있다.

창밖이 웅성거리는 것 같다. 누군가의 훌쩍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무슨 일일까? 숙면을 취한 탓에 몸은 가벼웠고, 가벼워진 몸만큼 배도 고팠다. 허기가 식탐과 함께 호기심을 자극했다.




호텔 밖에서 사람들 몇몇이 밤하늘의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큰 별이다. 못 보던.

별을 본 지가 얼마나 됐을까. 생각해보니 몇 십 년 동안 별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것 같다. 학창시절 윤동주의 시 서시 중에서도 별이 나오는 대목을 좋아했었는데. 어쩌면 저 별은, 못 보던 별이 아니라 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 별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별 참, 처녀 때 처음 봤던 아내의 눈망울처럼 유난히 반짝거린다.

“무슨 일이죠?”

“소문 못 들으셨나 봐요. 지구가 어쩌면 멸망할 수도 있답니다. 정확히 열흘 뒤에.”

미친놈. 지구가 멸망한다니.

어처구니없는 그의 말투 때문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말 보다, 어쩌면 이라는 말이 더 어처구니없다. 지구의 멸망이라는 중대한 일에, 어쩌면 이라는 지구에서 가장 불성실한 표현을 쓰다니. 또 열흘이라는 시간은 어떻게 해서 나온 기간인가. 오랜만에 맞이한 상쾌한 밤을 열대야처럼 후덥지근하게 만드는 불쾌한 농담이었다. 하지만 남자의 목소리는 너무나 진지해서, 그가 어떤 얘기를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이 선명하다.

뭐지 이 불길한 느낌은.




남자의 말과는 달리 홀로 지구의 멸망을 피해 갈 수 있다고 장담하는 것처럼, 호텔은 평온했다. 지금껏 나는 지구 멸망에 대한 일체의 얘기도 들은 적이 없다.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도 없었다.

우리 정부가 하는 것을 봐선 지구가 멸망하는 순간까지 분명, 공식적인 발표는 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을 발표해 봤자 사람들에게 큰 혼란만 줄 뿐일 것이고, 멸망 전에 스스로 자멸할 수도 있을 테니까. 인류에게 가장 큰 위험은, 팩트(fact)가 아니라 공포(fear)다.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공공연하게 살인을 하게 만든다. 그러고 보니 영어단어 fact와 fear가 많이 닮았다.




식당을 찾았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밥 한 그릇을 비워야겠다. 식당도 평온하다. 호텔 식당도 멸망을 피해 간 것만 같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이 아가씨. 낯이 익다. 어디서 봤더라. 동네에서 보던 아가씨였나. 아니면 회사 거래처에서 봤던……. 도통 생각나지 않는다. 분명 익숙한 얼굴은 맞는데. 누굴까.

그래. 잊고 있었다. 아내의 젊을 때의 모습. 아내보다 키가 좀 더 크고 마르기는 했지만, 아니 얼굴도 좀 갸름한 것 같고, 코 위에 점이 있는 것도 다르고, 가슴도 이 아가씨가 더 큰 것 같지만, 어쨌든 내 기억 속의 아내는 저렇게 고왔던 것 같다.

솔직히 내 기억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 아내가 저렇게 고왔을까. 내가 짝사랑했던 아가씨와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울에 난 큰 물난리로 사진첩이 떠내려간 날, 과거의 모든 기억 까지 같이 떠내려갔다. 이제는 치매 끼가 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해서, 오른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을 왼손에서 찾는 일이 잦다.




내가 고른 것은 복국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시원한 복국을 좋아했다. 비싼 가격 때문에 자주 먹지는 못했지만, 아내 생일이면 꼭 복집을 찾아 시원한 복국을 먹었었다. 아내 죽기 전 남해에 와서 시원한 복국을 같이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드문드문 떠오르는 아내 생각이 싱겁다.

펄펄 끓는 뚝배기에 복국이 담겨 나왔다. 남해가 바다와 가깝긴 가까운 모양이다. 반찬으로 그 비싼 어리굴젓이 딸려 나온 것을 보면. 아쉽게도 난 어리굴젓을 잘 먹지 못한다. 비릿한 맛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아내는 철이 덜 들었다고 했는데.

“지구가 어떤 행성과 충돌한다는 것이 사실이래요.”

내 귀가 모처럼 쫑긋하고 섰다. 아까 호텔 밖에서 남자가 했던 말과 같다. 정신이 이상한 놈의 말이라고 치부했는데. 뭘까, 이 불길한 느낌은. 혹시 그 남자의 일행? 뭐 사이비 종교의 신도들이 단체로 이 호텔에 숙박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밥을 먹은 후 인터넷을 확인 해 봐야 겠다. 꼭. 그런데 젠장 복국, 너무 싱겁다.




룸으로 돌아와 프런트에서 빌려온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검색했다. 인터넷엔 의심스러운 내용이 검색됐다. 한 블로거가 전하는 말에 따르면 미 국방성과 나사에서는 3년 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지구를 위협하는 가상의 운석을 저격한다던 야심 찬 프로젝트도, 미 정부가 현실성 없는 화성 식민지 건설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 부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설마……. 믿기지 않는다. 어떻게, 어떻게.

설마, 아닐 거야. 아니야. 수십 억년 동안 멀쩡했던 지구가, 어떻게.

다른 블로거들도 생각보다 구체적인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도, 지구 멸망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혹시 아까 그 별이. 죽음. 설마……. 그래 사실이라고 해도 뭐, 괜찮다. 괜찮아. 내가 바랄 것이 뭐가 있다고. 죽어서 빨리 아내 곁으로 가는 것이 속 편하겠지.




아내가 죽은 이후 나는 여러 번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었다. 홀아비의 구질구질한 삶을 이어가는 것보다 아내를 따라 깨끗하게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나아 보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죽음에 대한 집착은 나에게 무기력감과 우울증, 불면증이라는 종합선물세트를 선사했다.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 목을 맬 줄을 준비한 적도, 수면제를 수십 알 입안에 털어 넣은 적도 있다. 그때마다 왜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는지, 몹쓸 사람 같으니라고.

지금 지구가 멸망한다면 아내는 나에게 일생일대의 쇼를 지켜볼 수 있는 얼마간의 시간을 더 준 것일 수도 있다. 죽는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내 생명이란 초라한 대가만으로 지구의 소멸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일생일대의 행운일 것이다.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이왕에 죽는 것 모체와 함께 사멸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지구에서 사멸한 모든 亡者(망자)가 인류 역사상 살아남은 극소수의 生者(생자)에게 선사한 특별한 저주이자 축복일 것이다.

그것보다도 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이라면, 나도 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풋, 웃음이 나왔다. 말도 안 되는 사실에 집착하고 있는 내가 우습다. 정말 말이 되지 않는다. 잠깐이나마 지구의 멸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었다니. 나이 육십이 됐지만 확실히 철이 덜 들었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 놓고도.

어, 그런데 인터넷에 속보로 뉴스가 뜬다. 뭐지, 이 뉴스는. 설마…….

지구멸망, 외계 행성이 지구를 직격, B5070, 2029년 아포피스, 인류의 대다수가 사망할 듯, 지구의 폭발 가능성, 외계 행성의 지름 20Km…….

타자를 치듯 상당히 구체적인 소식들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다.

제기랄, 남자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말인가. TV를 틀었다. 연예인들이 몇몇이 웃고 떠들고 있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채널을 바꾸려는데, 속보다.

“공식 확인되지는 않지만, 익명을 요구한 유력한 소식통에 따르면, B5070이라고 명명된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얘기까지도 나오고 있는데요, 충돌 시점이 약 열흘 후라고 합니다. 청와대에서도 이에 대한 발표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출입 기자를 연결해 보겠습니다…….”

가슴이 떨린다. 이대로라면 심장이 잠시 쉬어가도 야속하다 말할 수 없겠다. 뉴스에 보도될 정도라면, 정말로 큰일이다.

“대통령입니다. 지금 B5070이라고 명명된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는 뉴스가 쏟아져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분명한 오보입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정부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국민들을 기망한 언론사 모두를 중징계할 방침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지금 B5070이라고 명명된 소행성이…….”

누구 말을 믿어야 할까. 대통령의 말을, 아니면 언론사의 말을. 분명 어느 한쪽은 거짓이다. 이럴 수가. 인터넷에 올라왔던 뉴스들이 재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대통령의 힘이 세긴 센 모양이다. 이렇게 해프닝으로 끝난다면 다행일 테지만. 불안이 확신을 더한다.

대통령의 담화는 간단하게 끝이 나고, 화면이 바뀌었다. 지구의 멸망도 연예인들 농담 몇 마디에 덮을 수 있다는 듯, 화면 속에서 잡담을 주고받는다. 뭘까. 뭘까. 분명히 뭔가가 있다. 나는 다시 인터넷을 검색했다. 어어 이거, 검색되지 않는다. 충돌, 멸망이라는 단어가 금칙어라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우리나라 인터넷에 금칙어가 있었나? 정부에서 분명 무엇인가 중요한 사실을 숨기고 있다. 상황을 조합해 보면 지구와 소행성이 충돌하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면 나는…….

그래 난, 살 만큼 살았다.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은 삶 아니었던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죽을 자리도 괜찮은 편이고. 창밖엔 넘실거리는 검은 물결 사이로 먼저 세상 떠난 영혼들이 산 사람을 위로하는 것처럼 어선의 집어등이 환하게 밝히고 있다.

아이들에게 전화를 해야지. 내가 죽는 것은 상관없지만, 우리 아이들은……, 가슴이 짠하다. 결번이 된 1번 버튼을 지나 2번 버튼을 꾹 눌렀다. 통화가 되지 않는다. 3번 버튼을 꾹 눌렀다. 역시 전화가 되지 않는다. 한참을 반복해서 눌러 봐도 통화가 되지 않는다. 그래, 천천히 하자. 오늘 당장 지구가 멸망하는 것도 아닌데. 좀, 졸린다. 잠이 온다. 지구가 멸망한다는데 잠이라니. 허리에서 진물이 나도록 잘 수 있을 텐데. 눈이 감긴다. 얼굴 위까지 흰 이불을 끌어당긴다.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눈이 부시다. 여기가 어디지. 기억의 파편들이 이곳저곳에 뒤섞여 있는 것 같다. 서울에서 출발해 대전, 그리고 남해. 어제 남해에 왔었다. 그리고 숙박을 했고. 무엇인가 아주 기분 나쁜 꿈을 꾼 것 같다. 지구 멸망이라는. 꿈, 그래 꿈일 거야. 눈이 번쩍 열린다. 아니다. 꿈이 아니다.

TV는, TV는 평온하다. 어제처럼 강간, 살인사건들을 태연하게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강간, 살인사건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피해자 명단에 유명한 연예인들도 몇 있다. 아나운서의 입이 하지 못한 말로 실룩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지구 멸망 때문이라면, 논리적으로도 맞다.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지막 발악.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갔다. 생각 밖으로 호텔은 조용하다. 어제 본 아가씨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을까. 잠깐 말이라도 붙여 보고 싶었는데.

프런트에 물어보니, 호텔에선 오늘부터 숙박 연장이나 새로운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호텔 직원들 절반이 출근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정부에선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열흘이나 묵기로 했으니, 죽기 전까지 호텔에서 편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호텔 한 편의 편의점으로 내려갔다. 먹을 만한 것을 방 안에 쟁여 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호텔에서 손님을 내 쫓지 않더라도, 밥까지 기대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부족하지만 아직 물건이 있다. 물도, 맥주도, 햇반도 몇 개씩 담았다. 이 정도면 죽기 전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겠지.



다음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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