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포대자루 2

팔 수 없는 마지막 한 포대

by 주영헌




“형 지금 들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터졌다면서.”

아침나절만 해도 바쁘다는 녀석이 웬일일까. 녀석의 진지한 표정을 보니 어디선가 어제 청과물 가게에서 발견된 시체 얘기를 들은 것 같다.

“그냥 모른 척해라. 안 그래도 분위기 좋지 않은데. 너 그렇게 나대다가 시장 사람들한테 맞아 죽는다.”

“응, 알았어.”

그래 말이 나온 김에 말해야겠다. 지난 두 달 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앞으로 고기 포대 좀 가져오지 마라. 정육점에 고기를 맡긴다는 것이 말이 되니.”

“응. 형……. 이 포대 며칠만 맞아줘. 형 진짜 마지막이야.”

“마지막이 맞기는 한 거야. 믿을 수 있어야지.”

“진짜 마지막이야.”

“너 그런데, 이 고기 혼자 다 먹는 거야. 꼭 작은 사람 몸통만 하다.”

“사실 아는 형이 고기 집을 하는데, 냉장고가 망가졌다고 해서. 형 생각나서 내가 어떻게든 해 본다고 했어.”

“두 달째 망가지는 냉장고가 어디 있냐.”

“생각해보니까 그러네.”

“그 형이라는 사람. 네가 잘 아는 사람이니?”

“아니, 그냥 형처럼, 어떻게 하다가 알게 된 사람인데. 반년밖에 안 됐어.”

“너도 참.”

K 대단한 인간이다. 이렇게 친화력이 좋은 인간이 있을까. 친화력이라기보다 오지랖이 넓다는 말이 더 적당할 것이다.

“왜. 이 포대 안에 사람 시체라도 들었을까 봐서.”

하고많은 상상 중에 시체라니. 어떻게 그런 끔찍한 상상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간이 커도 모르는 정육점에 시체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잘 해봤자 원산지를 속인 고기일 것이다. 하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도 있다.

“너 혹시 열어본 적 있어? 이 포대.”

“아니 없는데.”

“정말 한 번도 열어 본 적이 없어?”

“정말 없다니까.”

“우리……, 이 포대 열어보자.”

“안 돼. 그 형이 열어보지 말라고 했어.”

“넌 그 형이 죽으라면 죽을 거야. 어쨌든 맡아놓는 처지에서 난 꼭 확인해 봐야겠어.”

나는 내 칼을 가져다 잘 봉합된 윗부분을 잘랐다. 잘린 부분을 투명 테이프로 붙여 놓으면 감쪽같아 보일 것이다.

“형 너무 오버하는 거 아냐.”

포대를 열자 두툼한 살집이 보인다. 부위로 봐서 벨기에산 냉동 삼겹살 같다. 한번 얼렸던 것을 녹였는지 껍데기가 흐물흐물하다.

“이런 고기를 판단 말이지. 이거 완전 양심 불량이네.”

“거봐 아니지. 그 형이 그럴 형이 아니라니까. 빨리 닫자. 형 투명 테이프 어디 있어.”

K는 나에 대해서 어떻게 얘기하고 다닐까. 머리도 좀 벗겨지고, 못생기고, 결혼도 못했지만 그럴 형은 아니라고. 애라 너도 그런 놈이다. 푼수에, 오지랖에, 키도 작은.

어, 여기 뭐가 있는 것 같다. 뭔가 익숙한 것이 보인다.

“야 K. 이리와 봐.”

“뭐가. 빨리 닫으라니까. 그 형, 그럴 형이 아니라니까.”

삼겹살 사이로 검고 긴 것이 보인다. 흔하디흔한 사람의 모발 같은.

나와 K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럴 형이 해 놓은 짓 때문에. 그 형은 확실히 그런 형이 맞는 것 같다.

이 얼굴, 내가 아는 여자다. 며칠 전에 자기 머리만 한 돼지 간을 사 간 하얀 얼굴의 바로 그 여자. 그 여자 분명 웃는 상이었는데, 죽어서는 잔뜩 찡그리고 있다.

몸이 잔뜩 긴장했는지 오줌이 잔뜩 마렵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나와 K는 서로의 얼굴만 멀뚱거리며 쳐다보고 있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데, 실어증에 걸린 것처럼 입 밖으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K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어떤 번호를 누르고 있다. 1로 시작된 번호인 것을 보니 분명 112다.

“야……, 안 돼.”

내 고함에 K가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다행하게도 통화 연결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왜, 형. 신고해야 하잖아.”

“신고 다 좋은데. 여기서 말고. 다른데 가져가서 해.”

말하는 동안에도 입은 계속 덜덜 떨린다.

“뭐야 형 혼자만 쏙 빠져나가려는 거야.”

“그래 난 빠져야겠다. 이 사건 알려지면 가게 문 닫아야 해.”

“지금 가게가 문제야. 토막 살인사건인데.”

“당연히 가게가 문제지. 그리고 이 가게를 둘러 봐. 우리가 범인으로 몰리기 딱이다.”

“나도 혼자 못해. 절대로.”

K는 농성하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K의 행동, 나처럼 제가 살자고 하는 행동일 것이다. 그나마 설명하기가 쉬우니까. 하지만 나는 뭔가? 시체를 보관했던 정육점이라고 소문나면 정육점은 완전 끝이다. 누가 고기를 사러 오겠는가. 이 자식, 포대 안의 여자처럼 죽여서 토막이라도 내 버리고 싶다.

“야 K, 이 포대 그 형이라는 사람에게 가져다줘 버리고 끝내자.”

K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겁먹은 얼굴을 보니, 그 형이라는 작자를 만나기 싫다는 표정이다.

“그럼 어떻게 해.”

“경찰에 직접 가져다줄까.”

“그래 그렇게 해자. 대신 너 혼자서.”

K가 나를 쏘아 본다. 절대 그렇게는 하지 않겠다는 표정이다. 어찌 됐든 너는 나와 한배를 탔다는 심보다.

나는 고기, 아니 시체 포대를 냉장고 안으로 옮겼다. K가 맡긴 비닐 포대가 하나 더 있으니 냉장고 안에는 시체를 담은 포대가 두 개가 된다. 누가 본다면 100% 우리가 살인범처럼 보일 것이다. 더군다나 정육점 안은 시체를 토막 낼 도구가 산더미다. 잘 드는 칼에, 전기톱에.

“저 시체들 기계로 잘게 잘라서 파묻어 버릴까. 아니 이건 어때. 그 형이라는 사람 가게 안에 몰래 두고 오는 거야. 어때, 좋은 생각 맞지.”

“좋은 생각은 맞는 것 같은데……, 그 형 가게 며칠 쉰다고 했어.”

그런데 왜 그 형이라는 작자, K를 시켜 정육점에 보관토록 한 것일까. 그냥 가져다 묻으면 되는데. 고기처럼 숙성이라도 시키려 했던 것일까.

“그럼 어쩌냐. 너 좋은 생각 없어.”

시간은 흘러간다. 냉장고 안에 새로 넣어 놓은 시체도 조금씩 얼어붙고 있겠지.

띨릉거리며 문이 열렸지만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 소리도 자동차 경적 소리도,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냉장고 엔진 소리도. 두 귀가 먹은 듯 먹먹하기만 했다.

“저 아저씨, 삼겹살 좀 주세요.”

K가 나를 흔들지 않았다면, 손님이 삼겹살을 몇 덩어리 가져가 버려도 몰랐을 것이다.

“아, 예. 뭐 드려요.”

“삼겹살 주세요.”

“아, 예. 뭐 달라고 하셨죠. 제가 좀 정신이 없어서.”

손님은 나를 자세히 쳐다봤다. 꼭 포스터에 인쇄된 공개수배범 얼굴을 관찰하는 것처럼.

“삼겹살 한 근만 주세요.”

“한 근요.”

한 근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정작 저울 위에 올린 것은 1kg다. 한 근이 꼭 1kg처럼 들렸다.

“아저씨 1kg이 아니라. 한 근이요. 오늘 아저씨 이상하네.”

이상하다는 소리가 더 이상하게 들린다. 이 손님이 눈치를 챈 것은 아니겠지. 그러고 보니 바닥에 피가 흥건하다. 저 피, 손님이 보면 안 되는데.

“오늘 행사라서 한 근 가격으로 1kg을 드리는 겁니다. 그냥 가져가셔도 됩니다.”

내가 생각해도 꽤 빠른 순발력이다. 나는 서둘러 돈을 받고 손님을 밖으로 내몰았다. 바닥의 피를 보면 안 되니까. 바닥의 피와 함께 내 이상한 표정과 말투, 행동이 조합된다면 나는 누가 봐도 완벽한 살인범처럼 보일 것이다.

“큰일 날 뻔했어. 이 피를 봤으면.”

나는 중얼거리며 대걸레로 바닥을 밀다 생각해보니, 이 피 시체에서 나온 피가 아니다. 피가 튈 일이 없다. 비료 포대로 잘 쌓여 있으니까. 분명 돼지 피다. 돼지 피. 내가 너무 긴장해서, 돼지 피를 사람 피로 오인한 것이다. 아 아까운 돼지고기 400g. 돈으로 따지면 6천 원이나 된다. 하긴 지금 이 상황에선 돈 6천 원이 대수랴. 돈 6만 원이 들더라도 시체만 해결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K, 어쩌냐.”

K는 의자에 조용히 앉아만 있다.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있기나 한 것일까.

“형.”

“그래. 무슨 좋은 생각났어.”

“커피 한 잔만 줘. 입이 너무 텁텁해서, 아무 생각도 안 나.”

에라, 이 자식아. 내 입에선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내가 해결해야 할 것 같다. 띨릉거리며 문이 다시 열린다. 얼굴이 아까 그 손님이었다.

“오늘 행사라고 하셨죠. 생각해보니 고기를 덜 산 것 같아서. 두 근만 더 주시겠어요.”

이걸 어쩌지. 행사라고 했다가, 착각했다고 하면 분명 의심할 거야. 밑지지는 않지만 한 근 가격에 1kg을 주면 손해다. 어떻게 하지. 손님은 내 얼굴을 자세히 살피는 것 같다. 뭔가 수상한 점을 눈치를 챈 것일까. 평소에도 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떤 감정이든 얼굴에 그대로 드러냈다.

“알았습니다. 바로 드릴게요.”

죽을상인 내 얼굴과는 달리 손님의 얼굴은 안개꽃처럼 활짝 폈다. 문득 비료 포대 안의 여자 얼굴이 생각났다. 토막 난 얼굴로도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

“아저씨 화끈하네.”

화끈하다는 표현은 뭘까. 분명히 지금의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저 아줌마 혹시, 나도 몰랐던 성적 매력을 찾아낸 것일까. 아줌마는 종종걸음으로 정육점 문을 나섰다. 최고의 아이템을 득템이라도 한 듯 뒷모습이 의기양양하다.

“형 괜찮아. 그렇게 팔아도.”

“그래도 남아.”

K는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형 참 대단하다는 표정으로.

그런데 어쩐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나도 K처럼 입안이 텁텁하다. 커피라도 한잔 마셔야겠다. 커피 물을 끓이려는데, 띠릉 거리며 문이 열린다. 손님이다.

“저 아저씨 여기 쎄일 한다면서요.”

소문 참 빠르다. 저 여자 어떻게 알았을까.

“저도 삼겹살 세 근만 주세요.”

“예. 드리죠. 드리죠. 오랜만에 장사 잘돼서 좋다.”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흥얼거렸다. 그런데 이 손님들, 시체랑 같이 재운 고기인 줄 알면, 고기가 목으로 넘어갈까.

“아줌마 소문내면 안 돼요. 비공식적인 행사라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지만, 나는 알고 있다. 벌떼처럼 아줌마들이 몰려오리라는 것을. 소문이 살인 사건을 앞서는 동네다. 벌써 두 명이나 사갔다면 게임 끝이다. 한 명이 두 명이 되고 두 명이 네 명이 되고 네 명이 여덟 명이 되고……. 입소문은 쥐나 바퀴벌레가 새끼 치는 것보다 몇 배 더 빠르다.

손님이 또 온다. 온다. 이번에는 두 명이다. 두 명 뒤에도 또 두 명이 서 있다. 이미 정육점 안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줄도 제법 길어졌다.

“야 K. 냉장실 안에 들어가서 삼겹살 좀 가져와.”

K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냉장실 안으로 들어간다. 몇 분이 지나도 고기를 찾지 못한 듯 냉장실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혹시 그 자식, 토막 난 시체포대를 가져 나오는 것은 아니겠지. K는 뒷짐을 지며 냉장실 저곳을 기웃거리고 있다. 꼭 표정이 얼어붙은 시체라도 찾는 듯하다.

“야, K 뭐해. 삼겹살 가져오라니까.”

“뭘 가져가야 할지 몰라서.”

K에게 심부름을 시킨 내가 잘못이지. 삼겹살 뭉치를 들고 냉장실을 나섰다.

“자 자, 잠깐만 기다리세요. 금방 잘라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장사가 잘됐던 적이 있었을까. 큰돈은 벌지 못하지만, 이대로 팔면 수입이 꽤 괜찮을 것 같다. 손님이 많아지니 기분도 좋다. 고기야 내일 또 들여 놓으면 된다. 앞으로도 계속 세일이라는 것을 해야지. 박리다매다 박리다매.




고기를 사러 온 사람들 때문에 시장도 덩달아 활기를 띤다. 고기 사러온 김에 상추도 사고, 대파도 사고, 구멍 난 양말이며 옷도 산다. 내일 아침거리인 두부나 콩나물도 사고.

익숙하지 않은 광경에 주변 상인들 몇몇은 궁금했는지 정육점 안을 기웃거리기까지 한다. K도 적극적으로 내 일을 거들고 있다. 나는 고기를 썰고, 담고, K는 돈을 받는다. 삼겹살이, 목살이 다 떨어지자, 이번에는 소고기를 싸게 판다. 돼지고기를 사서 돌아간 아줌마들도 되돌아와 사간다. 왜 처음부터 싸게 팔지 발품 팔게 하냐며 몇몇은 불평까지 한다.

내가 정육점에서 팔 수 없는 고기는 딱 두 포대뿐이다. 고기가 다 떨어지고, 몇 배로 비싼 값을 치러 준다 해도 팔 수 없는, 두 포대의 고기.

그런데 어떻게 하지. 저 비료 포대를……. 가장 중요한 것을 처분하지 못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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