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포대자루 1

팔 수 없는 마지막 한 포대

by 주영헌



새벽 다섯 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밖이 벌써 환하다. 당장 암막 커튼이라도 설치를 해야지, 겨울철을 빼면 잠을 설친다. 잠을 깨면 좀처럼 다시 잠을 자기 어렵다. 이제 서른을 넘긴 나이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하루하루가 다르다, 는 것을 일상처럼 느낀다.

눈을 뜬 이후 나는 멀뚱히 누워 있었다. 누워있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운동은 그만둔 지 일 년이 넘었다. 삼십만 원이면 골프에 헬스까지 할 수 있다고 해서 십이 개월 할부로 긁었는데, 열두 번도 나가지 못했다. 그나마 역기 몇 번 들고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러닝머신을 삼십 분 정도 달린 것이 전부. 골프도 잠깐 배웠는데 유일한 성과는 연습장에서 가장 많이 쓰는 작대기가 러키세븐, 7번이라는 번호가 달린 것이었다.


최근 시장 통을 오가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시장 인근에 새로 생긴 대형 할인 마트 탓이다. 그나마 우리 정육점은 단골이 많아 괜찮은 편이었는데. 요즘은 단골손님도 잘 찾아오지 않는다. 졸업식 단체사진의 얼굴들처럼 그런 사람들이 살았었는가, 싶다.

어제는 열두 시를 넘겨서 개시했다. 밀가루 통을 뒤집어 쓴 것 같은 하얀 얼굴의 여자가 소 한 마리를 통째로 살 것처럼 양지와 등심, 안창살 가격을 순서대로 물어봤다. 그러다 결국 사간 것은 돼지 간이었다. 갑자기 순대에 곁들어 먹던 돼지 간 생각이 났다나. 여자는 돈 삼천 원을 내고 자신의 머리만 한 돼지 간을 사 갔다. 그 여자 100g에 육천 원이나 하는 소고기를 살 생각은 있었던 것일까.

부속물로 개시를 한 날은 부속물만 팔렸다. 허파며 간, 내장이 동났다. 부속물이 다 팔려도 오만 원이 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 가장 큰 문제이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말 그대로 억지다. 관절이 움직일 준비가 되지 않았는지, 몸에선 우두둑거리는 몸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오른쪽에 이어 왼쪽 어깨도 시큰거린다. 어제 돼지 몇 마리 해체한 것이 전부인데 몸은 돈 달라고, 젖 달라는 돼지 새끼들처럼 아우성이다. 이럴 때면 내 몸이 나와 한편인가 싶다.

냉장고 안에서 우유 통을 꺼냈다. 골다공증엔 우유가 최고라고 했다. 칼질을 오래 하다 보니 직업적으로 뼈에 신경 써야 한다고 느낀다. 좋은 뼈와 나쁜 뼈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뼈를 잘라본 사람이 더 잘 안다. 유리잔에 우유를 따르는 졸졸 소리가 맥 빠진 내 오줌소리처럼 들린다.

며칠 전부터 동네가 시끄럽다. 살인 사건에 대한 소문 때문이다. 살인 사건 같은 것은 딴 세상 얘기인 줄 알았는데, 막상 벌어지고 나니 무섭다. 죽는 게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나마 오던 손님이 끊길까 무서운 것이다. 손님이 끊기면 돈도 끊길 것이고, 돈이 끊기면 며칠 굶게 될 수도 있고, 굶다보면 내가 살인범이 될 수도 있다.



오늘은 일찍 가게에 나가 냉장고 정리 좀 해야지. 그러고 보니 며칠 전 K가 맡겨 놓은 고기 포대가 생각난다. K는 몇 주 전부터 집에 큰 냉장고가 없다며 고기 포대를 며칠씩 맡겨 놨다 찾아갔다. 최고급 한우라며 자랑하던 꼴이 얼마나 시답던지. 자기가 고기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출근해서 얼른 가져가라고 해야지. 내 마음처럼 반 지하 창문사이로 보이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딸랑거리며 문에 달아 놓은 종이 울렸다. 나는 딸랑 소리에 맞춰 의례적인 인사를 한다. 일종의 마케팅이지만, 큰 효과는 없다. 그런데 개시 손님이 K다.

“야. 고기 가져가.”

“이따 가져갔게. 형 혹시, 열어 보지 않았지.”

“내가 그걸 왜 열어봐. 우리 정육점에도 좋은 고기가 쌔고 쌨는데.”

“매번 고마워.”

“마음에도 없는 말 하지 말고. 커피나 한잔 하고 가라.”

“됐어. 오늘 좀 바빠서.”

개시도 하지 못했는데 K라니. 오늘은 일진이 좋지 않은 것 같다.

K를 알게 된 것은 한 사 년쯤 되었을 것이다. 가게 앞 막창 집에서 우연히 만났다.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한 야구팀이 우승했을 때 K와 나는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때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우리는 그 자리에서 키스라도 할 뻔했다. 그날 이후 K와 나는 가끔 같은 막창 집에서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야구 얘기를 했다.

K는 해태 타이거즈의 팬이라고 했다. 술만 취하면 기아타이거즈는 짝퉁에 불과하다며 야구는 해태가 우승하던 90년대가 좋았다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원년 우승팀 OB베어즈의 골수팬이었기 때문에 K의 말도 조금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K가 처음 고기를 맡기던 날, 앞뒤 말은 다 잘라먹고 ‘고기 좀 맡길게’ 라고만 했다. 피가 흐르지 않도록 남해화학 비료 포대에 담겨 있는 것을 보니 K의 솜씨는 아니었다. 내용물이 잘 보이지 않도록 비료 포대 안에 이중으로 노란색 쌀 포대로 감싸 있었다.

고기를 맡기는 것이 미안했던지 한번은 고기를 나눠 준다는 말도 한 적이 있다. 분명 빈말이었을 것이다. 다음에 준다고 했으니까. 나는 괜찮다고 했다. 괜찮다는 말은 귀찮다고,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의미였지만, K는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딸랑거리며 종이 다시 울린다. 이번에도 손님이 아니다. 요 앞집 가게 김 씨 아줌마다. K에 김 씨 아줌마라니. 오늘은 제대로 된 손님 받기는 그른 것 같다.

“이봐 총각 얘기 들었어.”

총각이라는 단어는 상인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내가 총각이 된 이유는 내가 아직 결혼을 못해서다. 내가 결혼만 못한다면 육십이 넘어서도 나를 총각이라고 부를 것 같은 말투다.

“경찰에서는 쉬쉬하고 있다는데, 살인사건 벌써 다섯 번째래. 그런데 아직 시체를 하나도 찾지 못했나 봐.”

시체를 찾지 못했다는 말뜻은 살인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시체를 못 찾았으니 사람이 죽었는지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내 경험상 죽었다는 사람들의 결과를 알고 보면 십중팔구 돈을 띠어먹고 도망을 갔다거나, 계돈 때문에 야반도주를 한 경우가 많다.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것은 시장의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하고 있던 청과물 가게였다.

공동화장실 근처에 있던 청과물 가게는 특히 여름철엔 냄새도 심하고 파리도 들끓어 볼일이 급한 사람들을 제외하곤 왕래가 없었다. 시장에 김 씨가 다섯이나 있어 가게 주인은 대전 김 씨라고 불렸는데, 그는 말수가 적었고 시장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시장이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시장 입구에 청과물 가게가 하나 더 있어서 시장상인들이나 동네 주민 누구도 대전 김 씨에 대해선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모두 어려운 시기였기에, 푼돈을 빌려준 몇몇을 제외하면 가게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내가 없어져도 마찬가지일까.




시장엔 청과물가게도 있고, 정육점도 슈퍼도 있지만 없는 가게가 하나 있다. 바로 복권 판매점이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 년 전까지만 해도 한집 있었다. 유동인구가 급격히 줄자 복권 판매점은 큰길가로 이사를 해 버렸다. 시장이 지긋지긋하다는 듯 아주 먼 큰길가로. 복권은 서민들이 꿀 수 있는 유일한 일확천금의 꿈이 아니던가. 번호 여섯 개만 잘 고르면 하루아침에 동그라미가 아홉 개나 찍힌 통장을 가질 수 있다. 세상 천지에 이렇게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단 세 개의 번호도 맞춰 본 적이 없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내가 고른 번호만 비켜갔다. 돈도, 사랑도 지금껏 다 그랬다.

K답지 않게 언젠가 내 사생활을 물어본 적이 있다.

“형 왜 결혼 안 해?”

“가진 것이 없으니까.”

“가진 것 없는 사람들도 그렇고 그런 건 다 하잖아.”

“그것도 그나마 가진 사람들의 얘기지.”

“형이야말로 번듯한 정육점도 있잖아.”

“이거 다 빚이야. 빚. 빚잔치하면 남는 것 딱 두 쪽 부랄 뿐이다.”

없는 것이 유일한 자랑인 것처럼 나는 K의 말에 대꾸했다. 마장동 정육점에서 오 년을 일해서 기술을 배우고, 무리하게 빛을 내 정육점을 열었을 때 사장님이란 입바른 소리처럼 아주 잠깐 앞길이 훤히 열릴 것이라는 착각을 했던 때도 있다. 소고기도 팔고 돼지고기도 팔아 중형차도 사고 아파트도 분양받고, 미스코리아 뺨치는 아내와 밤마다 씩씩거리는 상상까지 했다. 허튼 잔소리처럼 허튼 상상도 쉽게 깨지기 마련일까. 은행 고지서 앞에서 나는 냉동실의 고기처럼 얼어붙었다. 채 몇 달도 지나지 않아 마장동에서 일하면서 오 년간 부은 암 보험까지 모두 깼다. 불황이라는 놈이 암(癌)보다도 더 지독하고 전염성 강한 병(病)인 듯싶다.




누가 죽어나가야 끝을 낼 것처럼, 살인사건에 대한 소문은 더욱 확산됐다. 경찰은 실종사건에서 시작된 소문일 뿐이라고 평가 절하했지만, 민심이 일렁거리자 일주일 전 서(署)에서 형사 몇몇을 수사에 투입했다. 형사들은 사이비 기자처럼 시장 사람들과 그 주변을 탐문 했다. 그들은 매처럼 날카로운 눈을 가졌지만, 수사하겠다는 의지는 없어 보였다. 마지못해 왔다는 것을 만방에 공표하기라도 하듯 이쪽저쪽 가게를 다니며 봉지 커피만을 축냈다. 그렇게 이틀을 넘게 수소문했지만 어떤 냄새나 낌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실 수상한 냄새는 벌써부터 풍기고 있었다. 약간 퀴퀴한 냄새는 시장 고유의 냄새와 달랐다. 형사들은 그 냄새를 시장에서 나는 썩은 냄새이거니 생각했던 것 같다. 그만큼 오래된 시장이었다. 형사들이 철수한 뒤, 시장 상인회를 중심으로 냄새의 출처를 찾기 위해 시장을 이 잡듯 뒤졌다. 냄새는 시장의 구석으로 갈수록 심해졌다. 냄새가 시작된 곳은 한동안 문을 닫은 청과물 가게였다. 굳게 닫힌 셔터 사이로 고기 썩은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잠기지 않은 셔터를 올리기 전부터, 사람들은 직감했다. 모든 사람들이 기대하던 소문의 완성을.

두 구의 시체였다. 시체는 말려 놓은 시래기처럼 목이 꺾인 채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잘 말려진 육포처럼 살이 내린 몸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홀쭉했다. 청과물 가게에 어울리는 죽음이었다.

주검을 발견했지만, 소문은 완성되지 못했다. 타살이 아닌 자살이었기 때문이다. 시장 사람들이 기대하던 죽음은 아니었다.



다음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