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태평시장 1

동물병원 옆 보신탕집

by 주영헌



어머니를 따라 처음 갔던 태평 시장의 풍경을 기억한다. 시장은 솔로몬 왕의 보물창고처럼 온 세상의 진귀한 보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길은 미로처럼 좁고 축축했으며, 술 취한 행인의 발걸음처럼 꼬부라져 있어 발이라도 잘못 디디면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 아프리카 오지에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모든 시장의 끝자락에는 동물을 거래하는 장소가 있다. 사람이 거래되었다면 모든 물목을 제치고 그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리라.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물목은 견(犬)이었다. 기르기도 좋고 관리하기도 좋으며 먹기도 좋은 가축이니까. 집에서 가장 돈이 되는 가축은 소(牛)지만, 환금성으로 따진다면 사실 소보다 개가 월등한 갑(甲)임이 분명하다.

그곳에서 나는 한 무더기의 개를 발견했다. 개들은 조밀한 창살 안에서 저세상 갈 날만을 기다리는 여든 노인처럼 누워 있었다. 내가 다가가 고양이처럼 맑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어느 개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개라면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것이 정상일 텐데, 왜 그렇게 시무룩한지 이상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개 한 마리를 골라 보라고 했다. 마당도 없는 우리 집에서 왜 개를 살까 궁금했다. 혹시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게될까 기대도 되었고, 무엇보다 친구처럼 지낼 개 한 마리가 생긴다는 생각에 나는 그중에 제일 잘생기고 튼튼해 보이는 한 놈을 골랐다. 어머니는 내가 고른 개를 보고 나처럼 튼실하게 잘 생긴 놈이라고 했다.




내 손가락 끝의 개는 레이저 빔이라도 맞은 듯 허둥거렸다. 좁은 창살 안을 뱅뱅 돌며 컹컹 짖었다. 꼬리가 몇 번 휘청거렸으므로 나는 그것이 반가움의 표시라고 생각했다. 어린아이와 함께 마당에서 뛰놀 것을 상상하니 개도 좋아서 방방 뛰는 것이라고. 잠시 후 창살 안에서 개와 개장수 사이의 작은 실랑이가 일었다. 개는 멱살이라도 잡힌 듯 주인 남자의 억센 손에 끌려 창살 안에서 나왔다. 그 모습이 꼭 빚쟁이들에게 멱살 잡혀 끌려 나가는 아버지 모습을 닮아서 그 개가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날 시장에 관한 내 기억은 여기까지다. 우리 가족은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지도 않았고, 시장에 다녀온 날 저녁부터 한동안 고깃국을 먹었던 것 같다. 엄마에게 그 개의 행방을 물어봤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먹고 있던 고기가 개였다는 것을 안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이미 내가 수십 번도 더 먹은 익숙한 맛이었지만 사실 고깃국의 재료는 궁금하지 않았다. 실과라는 과목을 배우며 남자도 요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음식 재료에 관해 관심을 두게 되면서 국을 무엇으로 끓였는지 조금 궁금해졌다. 다른 날보다도 더 쫀득쫀득한 고깃국을 먹었던 날 저녁, 나는 껌처럼 질긴 고기를 수십 번도 넘게 씹으며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이 고깃국 뭐야.”

“고깃국이 뭐야 라니. 말은 항상 공손하게 해야 한다고 했지.”

“그러니까. 이 고깃국 뭐로 끓었냐고요.”

엄마의 답변은 짧고 정확했다. 모든 개가 멍하고 짖는 것처럼.

엄마의 말을 듣고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국을 먹었다. 개를 먹는 것에 대한 죄의식 같은 것도 없었다. 그날 저녁 내 똥구멍에서 튀어나온 개가 반갑게 꼬리를 흔든다거나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는 식의, 말 그대로의 개꿈도 꾸지 않았다. 그때는 모든 사람이 개를 즐(好)겼다.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모두 같은 방법으로. 국을 끓여 먹기도 했고 좀 있는 사람들은 전골이나 수육으로 개를 즐겼다. 제대로 된 개 같은 추억을 갖게 된 것은 한두 해 더 지나서였다.




태평 시장은 길을 두고 반으로 접으면 대칭이 될 정도로 같은 품목의 노점이 섰다. 옷 행상의 앞에는 옷을 팔았고, 과일 행상 앞에는 과일을, 생선 행상 앞에는 생선을 팔았다. 개장수 앞에는 또 다른 개장수가 있었다. 왼편의 개들은 내 새끼손톱만큼이나 굵은 창살 안에 갇혀 있고 행색은 시골에서 막 올라온 노인처럼 남루했다. 오른편의 개들은 명동 한복판을 걸어 다니는 복부인의 자식처럼 피둥피둥하고 때깔이 훤했다. 나는 양쪽 개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엄마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엄마 왜 개가 달라?”

“쓸모가 다르니까 그렇지.”

“어떻게?”

“저거는 먹을 수 있는 거, 저거는 아닌 거.”

나는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세상을 나누는 엄마의 이분법적인 말투를 들으며 세상을 다 배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 지식은 세상이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뉜다는 분수의 개념만 배우면 족하기에, 사실 초등학교 5학년이 됐던 나는 이미 세상을 다 안 셈이었다.

먹는 개를 파는 노점 옆으로는 어깨동무라도 하듯 개고기를 파는 정육점과 보신탕집이 있었고, 반대쪽에는 애견물품을 파는 가게와 동물병원이 있었다. 마치 한동네 안에 최고급 주상복합단지와 무허가 주택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오늘의 서울처럼.




정육점에는 고기가 잘 보이도록 냉장고가 밖으로 돌출되어 있었다. 사실 고기가 아닌 동강 난 동물의 사체를, 관심 있게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전처럼 나는 무심코 지나가다 몇 발자국 뒷걸음쳐 냉장고 앞에 섰다. 수십 번도 더 걸어갔던 길이었는데, 왜 보지 못했던 것일까? 꼭 잡은 엄마의 손 때문일 수도, 냉장고보다 작았던 키나, 동물병원에 진열된 강아지 때문일 수도 있다.

절단된 몸통에선 갈비뼈가 선명히 드러나 있었다. 검붉은 피멍이 군데군데 뭉쳐있었고, 갈비뼈 몇 개는 부러져 날카로운 절단면이 피부막을 뚫고 튀어나왔다. 날카로운 개 뼈가 내 심장을 찌르는 것만 같아 나는 뒤돌아서지도 못하고 뒷걸음질 쳐 엄마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후로도 가끔 밥상에 개국이 올라왔지만, 엄마 쪽으로 국을 밀쳐냈다. 개국을 볼 때마다 절단된 개뼈다귀가 생각이 났다. 엄마는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내가 개국을 몇 번을 더 밀쳐내자 더는 권하지 않았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개국을 먹지 않자, 자연스럽게 개국은 우리 집의 식탁과도 멀어졌다. 그 자리를 닭과 돼지가 대신했다. 달콤했던 개고기의 맛도 다른 고기 맛에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이십 년이 더 지났지만 팍팍하기만 한 사람들의 삶처럼 시장통도 바뀐 것이 없었다. 유일한 변화라고 한다면 시장에 뚜껑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의 삶도 바뀐 것이 없기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실 난 의사가 되고 싶었다. 사람에 대한 사랑보다, 의사가 되면 꽤 멋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수능 점수가 문제였다. 동네에선 나름대로 공부를 꽤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의대를 갈 성적은 못 됐다. 그래서 비슷한 이름인 수의과대에 진학한 것인데……. 잘한 짓이라고 생각했지만, 졸업할 때가 되니 말짱 도루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좋은 자리는 서울대에서 다 차지하고 개업을 제외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졸업 후 내가 대전으로 되돌아와 얻은 자리는 유년가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그곳, 태평 시장이었다. 사실 은행동 목 좋은 곳에 자리를 알아봤지만, 권리금이나 월세가 턱없이 높았다. 집안 형편도 예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어 이 자리를 얻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싼 월세만큼 손님이 너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신탕집 앞의 동물병원에 누가 애완견을 데리고 온단 말인가. 그나마 식용 개를 팔았던 개 행상이 없어진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시장에 뚜껑이 덮이고 행상이 정리되면서 개나 염소를 팔았던 행상도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했다. 발바리에 붉고 푸른 물을 들여 애완견이라고 속여 팔았던 행상도 마찬가지였고.




“장사는 잘되세요.”

맞은편 보신탕집 딸이다. 이 시장 골목에서 제일 잘 나가는 집. 보신탕집은 내가 처음 이 시장을 찾았을 때부터 있었다고 하니, 꽤 오래되었다. 돈도 꽤 많이 벌었다고 했다.

여자는 보신탕집 딸이라기보다 양장점집 딸이라고 해도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옷을 입었다. 젊은 때문인지 보신탕 효과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평범한 시장 사람 중에서 유독 튀어 보였다. 여자는 자기 말로 대전에만 살았다고 했지만, 신기하게도 정확한 서울 말씨를 구사했다. 사투리를 쓰는 것을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오늘도 별로 손님이 없네요.”

‘오늘도’ 라는 말이 가슴을 찔렀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예의상으로 따지면 ‘오늘도’ 보다는 ‘오늘은’이 더 나은 표현이지 않겠는가.

“그냥 둘러보러 왔어요.”

설마 그냥 둘러보러 왔을까. 언제 동물병원이 문을 닫을 것인지 염탐하러 온 것일 것이다. 난 전 동물병원 원장에게 똑똑히 들었다. 앞 보신탕집에서 이 동물병원을 인수하려 했었다고. 돈이 길이요 진리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신탕집에서 동물병원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겠지만, 상식적으로도 보신탕집과 동물병원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임에 분명했다. 요즘 유행어로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

인수를 하려던 까닭은 따로 있었다. 보신탕집이 잘 되자 가게를 늘릴 궁리를 했고, 눈독을 들인 것이 바로 동물병원이었다고 했다. 시세보다 더 쳐준다는 말에 매매 계약이 성사될 뻔도 했다고 했다. 그러나 동물병원 원장이라는 양심이 살아 아직 숨 쉬신 탓이었는지, 전 주인은 가게를 팔기보다 세를 주기로 했다. 싼 월세라도 동물병원을 할 사람에게. 그 썩은 동아줄을 잡은 사람이 바로 나였다.

“왜 동물병원을 하게 됐어요?”

“어찌하다 보니.”

여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동물을 사랑해서요라는 예상 답변이 나오지 않은 까닭일 것이다.

“혹시 보신탕 먹어봤어요.”

답하기 난처한 질문이다. 먹어보기는 했지만, 동물병원 원장 체면에 보신탕을 먹어봤다고 말하기도 난(難)하다. 하지만 안 먹었다고 하면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먹어봤구나. 말 못 하는 것을 보니.”

내가 뜸을 들이자 여자는 먹었다는 것을 확신하듯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아니라고 할 수 있었지만, 잠자코 있었다. 별것 아닌 것에 거짓말까지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말하는 내내 여자의 얼굴이 풍부한 유분기로 번들거렸다. 오십이 되어도 주름 하나 생기지 않을 얼굴이다. 저게 다 보신탕의 힘일 것이다. 한국인이 선택한 최고의 보양식 보신탕. 여자는 어제저녁도 아침도 보신탕을 먹었을 것이다. 보신탕집에서 가장 흔한 것이 보신탕이니까. 나는 매일 점심을 컵라면으로 때우는데.

여자는 병원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보신탕집으로 되돌아갔다. 만족할만한 답을 얻었는지 흐뭇한 얼굴로.




생활인의 처지에서 시장 골목에 있는 동물병원을 운영한다는 것은, 창창한 미래는 고사하고 당장 이번 달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답을 찾을 수 없는 일이었다. 광견병 주사를 놔주는 것을 제외하면 손님도 없었다. 애견용품을 팔아 겨우 입에 풀칠하는 것이 전부였다. 당연히 개업 이후 계속 적자였다. 차라리 보신탕집 딸이 부러웠다. 보신탕집 정도의 재력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은행동에 번듯한 동물병원도 개원할 수 있을 정도로…….

아니, 아니지. 동물병원 원장의 양심을 보신탕집에 팔 수 없다. 냉장고에 걸려있던 동강 난 개의 사체가 아직 눈에 선한데. 수의학과에 들어가 동물에 관하서 공부하며, 보신탕을 끊은 것을 내 인생에 가장 잘한 일이라 생각했다. 생활이 조금 어렵다고, 그 마음을 접을 수 없다. 돈 때문에 흔들린 난, 개보다도 간사한 인간이라고 자책했다.

입에서 한숨이 연달아 터졌다. 나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암울한 현실, 헤어날 수 없는 경제적 위기감 때문이었다.

나는 물끄러미 보신탕집을 응시했다. 삼복이 지난 지도 한참인데 보신탕집에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분명 무슨 비법이 있을 것이다. 노린내가 나지도 않고 고기가 흐늘거리지 않게 끓여내는 비법이. 부러운 마음에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까아-악.”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이 예고도 없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어찌 된 일일까. 뜨거운 보신탕을 엎질러 몸을 데기라도 한 것일까. 그렇다고 하면 칠칠치 못한 여자의 성격 때문일 것이다.

여자가 보신탕집에서 뛰어나왔다. 물에 분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여자의 얼굴이 창백하다. 그런데 그녀의 몸엔 덴 흔적이 없어 보인다. 보신탕을 엎었다면 개 선지만큼 붉은 국물이 몸 이곳저곳에 튀어있어야 했다. 유명 브랜드 상표가 찍혀있는 보라색 남방은 세탁이라도 한 듯 깨끗하다. 그렇다면 뭐가 잘못된 거지?

여자와 내 눈이 마주쳤다. 여자의 눈은 간절히 누군가의 도움을 구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도움을.

“무슨 일이죠.”

“빨리 와주세요. 어서요.”

여자의 호흡이 불규칙하다. 목소리는 두루마리 화장지가 풀릴 때 나는 소리처럼 덜덜거렸다.

“아버지가 숨을 쉬지 않아요.”

“예!”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심근경색이었다. 초기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면 소생한다고 하더라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릴 수 있는.

여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 내 발은 가운을 벗어 던지고 보신탕집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다. 막대기를 던지면 반사적으로 뛰어가는 개처럼, 고도로 잘 훈련된 발이었다.




다음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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