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을 지배하는 자, 조물주 위의 건물주

건물주가 된다는 것, 생각만으로 호사입니다.

by 주영헌



어린 날의 저에게 옥상은 세상에서 가장 편한 공간이었습니다. 그 시절 제가 살았던 상가주택은 1층은 상점, 2층은 주택이었는데 다섯 가족이 살기에 지독하게도 협소했고 화장실이 없어서 공중화장실을 이용해야만 하는 불편한 곳이었지만, 쉽게 옥상에 오를 수 있었고, 그 옥상에 오르면 주변의 광경이 한눈에 들어와서 좋았습니다. 저 멀리 15층 아파트가 무섭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그곳은 엘리시움과 같은 또 다른 세상일 뿐이었고, 다수를 차지하던 주택은 단층이거나 2층일 정도로 고만고만했습니다.


옥상에 신문지를 깔면, 한없이 눕기 좋은 곳으로 변했고, 바람에 펄럭이는 누군가의 낡은 옷이나 수건도 보기 나쁘지 않았습니다. 파란 하늘을 바탕으로 흰 구름이 유유히 지나갔고, 저녁에는 달과 별이 반짝였습니다. 가끔 휴대용 가스렌지에 불판을 올려놓고 고기를 구우면, 꼭 유원지로 놀러 나온 것 같았습니다. 옥상은 집 앞뒤로 창이 하나씩밖에 없어, 방문을 닫으면 빛이 한줄기도 들어오지 않았던 내 중간 방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나에게 옥상은 피난처이자 마음의 안식을 취할 수 있는, 많지 않았던 공간 중 하나였습니다.


오늘의 옥상은 다릅니다. 아파트가 땅을 지배하는 세상, 아파트 왕국이라고 불러도 부족하지 않을 오늘, 옥상은 올라갈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옥상을 지배하는 자는 세상을 지배하는 자, 조물주 위의 건물주가 되어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자입니다. 옥상 평상 위에 돗자리를 깔고 미세먼지의 습격 없이 저물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 추억이 되어버린 시절, 마음까지 손가락 사이로 잡을 수 없는 한숨처럼 빠져나갑니다.


가끔 드라마에서 옥탑방을 볼 때마다 욕망이 들끓습니다. 한 번쯤 꼭 살아봐야 하겠다고 다짐을 하는데요, 사실 옥탑방은 생각보다 편리하지 않습니다. 불편한 것이 더 많습니다. 겨울엔 지독하게 춥고 여름엔 그 반대입니다. 자연의 추위와 열기를 그대로 느껴야만 합니다. 여름에는 건물에 달린 에어컨 실외기의 소음에도 그대로 노출됩니다. 벌레들의 습격도 무시를 못 하고, 도시의 불빛과 소란함은 밤을 잊어버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보통의 주택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오르내리기도 불편하죠. 편리함을 내어주고 낭만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가치와 바꾸는 것인가요.


그래도 내 눈을 가로막지 않는, 주위를 마음껏 둘러볼 수 있는 개인용 옥상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엄청난 꿈이겠죠. 건물주가 되겠다는 마음은 꿈이기보다 실현 불가능한 허황된 욕심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작은 소도시로 이사 간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3, 4층은 아니어도 2층 정도의 작은 건물 하나는 어떻게든 장만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양한 궁리를 해 봅니다. 현실적으로는 옥탑방을 알아보는 것이 제일 빠를 듯합니다. 아니면 높은 언덕의 중간쯤에 있는 집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죠.


옥탑방 말고도 고지대의 집들은 옥상을 이어놓은 것처럼 먼 풍경을 한꺼번에 보여줍니다. 그곳에는 작은 골목들이 이어져 있고요, 작은 집들이 성냥갑처럼 붙어 있습니다. 이런 곳을 ‘달동네’라고 부릅니다. 서울에도 수많은 달동네가 있었는데요, 하나둘 개발을 마치고 달동네가 아니라 해 동네가 되었습니다. 아파트 창들이 저녁을 낮처럼 환하게 밝힙니다. 삶의 편리함에서 본다면, 올바른 일이겠지만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사야 하는 저 늘어가는 아파트를 보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옥상이 있는 작은 주택을 꿈꿉니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는 어림없는 일이겠지요.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소도시로 이사를 할 계획입니다. 집을 사도 좋고, 빌려도 좋고, 제 상황에 맞게 처신하면 되겠지요. 그렇게 작은 1인용 옥상에 누워,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볼 생각입니다. 안락의자를 옮겨와 책도 읽고, 가끔은 불판에 고기와 김치를 함께 구우면서요. 한 세상 살아간다는 것이 뭐 그리 특별하겠습니까. 이 정도의 상상만으로도 충분한 호사일 것입니다.





2009년에 계간 시인시각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6년 첫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담은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시인동네, 2016년)를, 2020년 위로의 시편을 담은『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걷는사람, 2020년)을 출간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한편의 산문을 쓰고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공유합니다. 브런치를 통해서는 일주일에 한두편, 재미있는 산문을 중심으로 원문을 연재합니다.


주영헌 시인의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jooyoung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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