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내 몸과 마음을 육화하여 써 내려간 문장
쉼 없이 하루를 마치면 녹초가 됩니다. 영혼까지 탈탈 털린 것 같습니다. 해야 할 집안일이 있지만, 몸이 움직임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암시합니다. 깊은 생각에 빠져야 할 일이 아니라면, 설거지나 빨래 집 청소 등은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글을 쓰는 일이나 책을 읽는 일이라면, 사정이 다릅니다.
작가로 살아가는 것이 겉으로는 근사해 보이지만, 삶의 만족도는 생각만큼 높지 않을 수 있습니다. 때로 몸을 혹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글을 써낸다’는 것은 육체노동이 아니기에 노동의 강도가 높지 않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육체노동만큼이나 높은 에너지를 소모를 필요로합니다. 또한 정신노동은 육체의 상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하지 않으면, 만족할 만한 글을 써낼 수가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철학은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플라톤을 이어가는 철학자의 핵심은 정신이었고, 그 정신을 통해서 참, 이데아의 세상을 갈구했습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여기서 생각이란 정신을 의미하며, 존재의 근원에 정신을 위치했습니다. 동양철학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신을 집중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철학의 전통은 오늘까지도 이어져서 ‘안 되면 되게 하라’와 같은 정신에 근거한 무시무시한 문구를 우리는 접하고 있습니다.
근대 철학은 정신만큼이나 신체도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니체도 신체의 중요성을 강조한 철학자입니다. 신체를 정신 지배하에 둔 것이 아니라, 정신과 신체를 같은 높이에 위치하게 합니다. 메를로퐁티는 ‘형이상학은 모두 헛소리’라고 주장했던 인물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그의 책 <지각의 현상학>(문학과지성사)을 통해 신체가 우리 삶의 기초라고 말합니다. 인간을 육화된 정신으로 확립하고,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넘어서는 성과를 확립했습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말이 성립될 수 있는 까닭입니다.
저는 정신의 가치를 강조하는 철학보다 니체나 메를로퐁티의 철학을 긍정합니다. 내가 만약 체력이 좋은 사람이었다면, 아직 한참의 청년기를 살아오고 있는 사람이라면, 무한한 체력이 샘솟는 샘물을 마실 수 있어 정신의 역할을 강조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때 신체는 정신의 지배를 받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신체의 기능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이 나를 지배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과 기대는 마흔을 넘어서면서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신체가 정신을 담아내지 못하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초라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피곤함에 절어있는 저녁, 책상에 앉으면 단 한 줄의 문장도 완성하지 못합니다. 억지로 짧은 산문 하나를 완성했다고 해도, 그것은 억지로 완성한 문장일 뿐,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사이 틈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대충 만들어진 오두막처럼 그 틈 사이로 차가운 겨울바람이 오갑니다. 이런 글들은 뼈대만 남기고 다시 써야 하거나, 지워 버려야 합니다. 새벽과 아침에 글쓰기를 선호하는 나에게 저녁의 글쓰기는 엉성함만을 안겨다 줄 뿐입니다.
글쓰기에 적당한 몸 상태를 만드는 것은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운동을 통해서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는 신체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나, 내가 가장 완벽한 신체를 유지하고 있을 때 글을 쓰는 것입니다. 사실 앞의 방법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신체의 체력이 왕성하다면, 하루의 일과로 피곤이 쌓였어도 금방 회복할 수 있을 것이고 저녁 시간의 글쓰기도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어서 뒤의 방법을 사용합니다. 작가로서의 삶을 강조하고 싶은 내 삶의 의지입니다.
오늘은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있습니다. 새벽이 내 생각과 감각을 깨워, 몸에 담기 좋은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을 합하여, 짧은 문장을 완성합니다. 이 글은 몸과 영혼이 써나가는 육화된 내 모든 것입니다.
2009년에 계간 시인시각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6년 첫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담은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시인동네, 2016년)를, 2020년 위로의 시편을 담은『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걷는사람, 2020년)을 출간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한편의 산문을 쓰고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공유합니다. 브런치를 통해서는 일주일에 한두편, 재미있는 산문을 중심으로 원문을 연재합니다.
주영헌 시인의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jooyoungh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