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날 없는 마당 깊은 집

집 없는, 세상의 모든 순돌이 아빠를 위하여

by 주영헌




김원일 소설가의 「마당 깊은 집」이 연재되기 시작한 것은 1988년입니다. 계간 <문학과 사회>를 통해서 였습니다. 소설이 말하는 마당 깊은 집이란 다양한 구성원들이 한 마당을 끼고 사는 집을 말합니다. 그런데요 이 마당, 물리적인 마당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마당이 길어봤자 얼마나 길겠습니까. 10m 정도 될까요. 사람들은 10m정도를 가지고 깊다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100m는 넘어야 되지 않을까요. 간혹 역사적인 유물로 남은 99칸 고택이라면 깊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마당이 깊다는 말은 물리적이기 보다 은유적입니다. 40여 년 전 내가 시골에 살 때만 해도 안채와 바깥채라는 구분이 있는 집이 몇 채 있었습니다. 보통의 집이 정사각형이라면, 이런 집은 직사각형의 모양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안채와 바깥채가 구분되었는데, 안채에는 주인이 살고 바깥채에는 주인집 일을 봐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이런 집의 특징 중 하나는 안채의 마당은 바깥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는데요, 바깥채의 마당을 지나야 안채의 마당으로 들어갈 수 있었죠. 여기서 안과 밖은 물리적인 구분이기도 하지만, 신분의 구분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주인과 종은 구시대 개념으로 사라진지 오래이지만, 높고 낮음이라는 구분은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안채와 바깥을 구분하는 집이 있을까요. 신분제가 그리 쉽게 사라지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신분이 사람을 지칭했다면, 요즘은 부(副)가 새로운 신분이 됩니다. 어디에 사는가도 부의 상징 중 하나이고요. 최근에 읽었던 전범선 작가의 산문집 <해방촌의 채식주의자>(한겨례 출판)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부모가 의사, 교수, 변호사, 대기업 임원이라고 자식도 그리되란 법은 없었다. 그러나 재벌급은 달랐다. 학력이 필수라기보단 품위유지였다(134쪽)’ 이 문장을 읽으며, 보통사람이 생각하는 부와 부를 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부는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가 평등한 사회라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나 허상일 수도 있습니다.


마당 깊은 집에도, 마당이 짧은 집에도 그 곳을 비추는 달이 있습니다. 마당의 언저리에 살거나 가장 깊은 곳에 살거나 달은 동일하게 비춥니다. 저 달은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요. 한 집에 한 가족만 살아도 바람 잘 날 없을 텐데, 마당 깊은 집은 여러 가구가 함께 사니, 바람만 불어도 태풍이 부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오래전 MBC에서 방영한 <한 지붕 세 가족>이라는 드라마를 기억하시나요. 이 드라마를 통해서 순돌이 아빠 임현식씨가 유명해졌죠. 한 지붕에 세 가족이 모여사니 이 집은 매번 떠들썩했습니다. 저 환경이 우리 이웃의 얘기라고 포장되었었죠. 이후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는 한 지붕에 사기꾼, 춤 선생과 같은 다양한 사연을 가진 군상들이 모여 사는 현실의 서울을 보여주기도 했죠.


두 드라마 모두 마당 깊은 집에서는 벌어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많으니 얘기가 끝이지 않고, 어떤 얘기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삶이란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 삶들이 가지려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요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는 점이죠.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처럼 주택복권과 같은 로또에나 당첨이 되어야 삶이 나아지는 행운과 만날 수 있을까요. 문제는 불행만 당첨이 되고 행운은 언제나 요원하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시쳇말로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아서)을 해서라도 집을 마련하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집주인이 되고 싶어 했던 순돌 아빠의 욕망처럼, 집 한 채에 웃고 울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쉽게 바뀌지 않는 풍경입니다.






2009년에 계간 시인시각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6년 첫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담은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시인동네, 2016년)를, 2020년 위로의 시편을 담은『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걷는사람, 2020년)을 출간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한편의 산문을 쓰고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공유합니다. 브런치를 통해서는 일주일에 한두편, 재미있는 산문을 중심으로 원문을 연재합니다.


주영헌 시인의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jooyoung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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