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최선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든다
영화 속에서 사막을 굴러다니는 덤불을 본 적이 있습니다. 덤불은 영화 속에서 시각 장치로 활용됩니다. 촉촉함이 단 한 방울도 없는 환경, 식물이 지표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말라서 굴러다닐 수밖에 없는 대지의 황량함을 표현하고 있죠.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요 그 식물이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죽지 않고 잠 속에 빠진 것이라고 합니다. 덤불은 지구 최강의 생명력을 가진 ‘곰벌레’만큼이나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은 덤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보통의 식물은 땅에 뿌리내리지 않고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식물=뿌리=생명’이라는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상식이라는 개념은, 보편인 상황을 설명할 뿐입니다. 그래서요, 상식의 개념을 넘어설 때, 때때로 ‘기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기적과도 같은 사실이 너무 많습니다. 불가능했다고 믿었던 상상 속의 일들도 속속 정복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하늘과 우주에 관한 것입니다.
하늘을 난다는 것은 사람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의 ‘이카로스’는 난다는 것이 얼마나 원초적인 욕망이었는지를 말해주는 이야기입니다. 하늘과 우주는 신의 세계였으며, 인간은 지하라는 지옥과 하늘 사이에서 생을 이어나가는 하찮은 존재라고 생각했죠. 하늘에는 공중도시와 같은 불가사의한 땅이 있을 것이며, 신은 그 땅에서 영생을 사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19세기까지 하늘은 무한한 동경의 공간이었습니다. 날기 위해서는 가볍고 강력한 날개 뼈와 깃털, 날개를 지탱하는 강한 근육이 있어야 하는데요, 사람은 가질 수 없는 것이었죠. 그래서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의 사람은 다른 방식을 고안했습니다. 사람의 몸에 붙은 날개가 아닌 외부의 날개가 달린 비행기라는 도구를 만들었죠. 날 수 있는 사람을 신이라고 통칭했는데요, 이제 사람은 신이 된 것입니까.
만약 영생과 육체의 힘이 신의 조건이라면, 사람은 기계를 신으로 모셔야 합니다. 어쩌면 이미 기계를 신적인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사람은 기계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인간의 몸이 기계 인간으로만 바뀌지 않았을 뿐, 은하철도 999의 기계문명이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사람은 탱크·비행기·잠수함 등의 무기를 절대자인 양 숭배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기계들이 없다면, 두려움에 떨것입니다. 적대국에 미사일로 조준하며 쏠 테면 쏴보라고 엄포를 놀 수 없을 테니까요. 누군가 감정의 동요나 치명적인 실수가 무자비한 전쟁과 인류의 멸망을 가져올 수 있는 까닭입니다.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오늘의 삶은 어제의 내가 만든 연장선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최선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을 보편입니다. 그러기에 사막의 덤불이나 곰벌레도 내일에 희망을 걸고 꿋꿋이 살아가는 것이겠죠.
영생과 후생까지는 모르지만, 어제가 오늘을 만들고 오늘이 내일을 만든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영생이란 매일의 오늘에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내일 같은 것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누가 신이더라도 권력과 폭력을 숭배하는 사람보다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영생을 허락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니체의 말처럼 사람들을 억압하던 ‘(권력의) 신’은 죽었을지 모르지만,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신만큼은 살아 있다고 믿습니다.
2009년에 계간 시인시각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6년 첫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담은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시인동네, 2016년)를, 2020년 위로의 시편을 담은『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걷는사람, 2020년)을 출간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한편의 산문을 쓰고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공유합니다. 브런치를 통해서는 일주일에 한두편, 재미있는 산문을 중심으로 원문을 연재합니다.
주영헌 시인의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jooyoungh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