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기억하며 저 메마른 땅을 걸어갑니다.
누군가와의 기억을 떠올리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내가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를 기억할 때, 그를 꼭 안았던 순간의 포근함을 기억할 때, 그 감각이 추억이 되어 되살아날 때면 밑도 끝도 없는 외로움에 빠지게 됩니다. 잘 기억나지 않아서 외롭고, 그가 지금 나와 함께하지 못해서 더 외롭습니다. 만약 그를 기록한 사진이 없다면, 얼굴은 기억에서 지워졌을 수도 있습니다. 잊어야만 덜 아프기 때문에, 내 기억은 오늘도 그를 밀어내고 있습니다.
큰딸을 의료 사고로 먼저 보내고 10년만 견디자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떠나보낸 아픔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또 아파서. 10년쯤이면 없었던 사람처럼 잊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런데요, 기억하지 못하니 잊어서 아픕니다. 기억할 수 없어서 미안합니다. 그의 목소리를 애써 기억하려고 해도, 음이 소거된 영화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꼭 얼굴만 지워진 사진처럼 그의 모습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가 웃었는지 울었는지, 찡그렸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기억나지 않는 얼굴 때문에 펑펑 울어도 좋으니 꿈속에서라도 만났으면 좋겠다고 어둠 쪽으로 애원을 해도 그 모습 보여주지 않습니다.
첫 아이를 잃었을 때 십 년만 견디자 생각했다.
앞서 떠나보낸 사람들처럼
누군가를 가슴에서 지우는 일은 딱 십 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당신은,
사랑이 그리 쉽게 떠나갔는가?
시 「첫」 중에서
죽음은 소멸입니까. 내 몸으로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확정하여 얘기할 수는 없지만, 소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멸이란 흔적까지 사라지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억하는 사람이 남아 있다면, 죽었어도 죽은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살아 있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사람들에게 끔찍한 사람이라고 여겨졌다면, 그는 살아 있는 귀신일 뿐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이 그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만큼 그는 되살아나고, 되살아온 마음이 우리 곁에 수호천사가 되어 머뭅니다. 그가 우리를 보듬어줍니다. 지켜 줍니다. 수호천사는 누군가의 아들일 수도 있고, 딸일 수도 있고, 엄마나 아빠일 수도, 할머니일 수도 있습니다. 그가 우리의 안전을 지켜줍니다.
아픔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죽음이 없는 집을 찾아 겨자씨 하나를 가져오면, 아들을 살려주겠다던 겨자씨의 비유는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안다고 해서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지는 않지만, 나와 같은 아픔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아픔을 치유할 수 없지만, 마음과 마음이 서로를 위로할 때 마음은 안정을 찾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먼저 떠나간 사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줘야 합니다. 내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 줄 수 있는 동안,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는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내 영혼만의 집이 아닌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머무르는 집이 되어, 세상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를 가든 풀 한 포기 메마른 땅을 걸어가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나는 땅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기억하며, 환하게 웃는 그 얼굴을 기억하며, 저 메마른 땅으로 걸어 나갑니다. 손을 잡고 마음의 안쪽에서 바깥으로 걷습니다.
2009년에 계간 시인시각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6년 첫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담은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시인동네, 2016년)를, 2020년 위로의 시편을 담은『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걷는사람, 2020년)을 출간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한편의 산문을 쓰고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공유합니다. 브런치를 통해서는 일주일에 한두편, 재미있는 산문을 중심으로 원문을 연재합니다.
주영헌 시인의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jooyoungh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