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싶은 계절은 봄

우리, 봄의 계절에 함께 살아요

by 주영헌


계절은 멈추지 않습니다. 시계의 초침처럼 부지런합니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저녁에 어둠이 내리고, 새벽이 밝아 옵니다. 사람은 자연이 정한 규칙에 맞춰 살아가는 생명체입니다. 모든 장소에서 계절의 순서가 일치하지 않지만,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사계절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지구의 북반부에 사는 우리의 크리스마스는 겨울입니다. 겨울에 맞게 털옷을 입은 산타클로스가 등장합니다. 산타는 한밤중에 썰매를 타고 와 엄마 아빠의 모습으로 바뀌어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가죠. 그런데 지구의 반대쪽도 겨울일까요. 여름입니다. 우리에게 7월에 해당하는 무더위가 남반부의 크리스마스를 지배합니다. 털옷과 썰매를 타는 산타클로스에게 지구의 절반은 극한 직업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요, 저 부지런한 시간과 계절이 겨울과 같은 한 계절에서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산타클로스는 조금 더 편한 일터를 가질 수 있겠습니다.


멈춘 계절도 있습니다. 적도와 극지입니다. 적도는 태양과 가까워서 여름만이 극지는 태양과 멀어서 겨울만 계속됩니다. 한쪽은 여름이 없고 다른 한쪽은 겨울이 없습니다. 절반의 계절만 존재합니다. 수십 일 동안의 낮과 밤이 계속되는 곳도 있습니다. 그것을 하얀 밤, 백야(白夜)라고 부릅니다. 위도 약 48도 이상의 고위도 지방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한여름에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현상입니다. 남극과 북극 모두에서 관찰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백야가 있다면, 그 반대 현상도 있습니다. 그것을 극야(極夜)라고 부릅니다. 백야가 지속하는 만큼 극야도 지속합니다. 밤만 계속되는 것입니다. 낮이 계속되는 시간과 밤이 계속되는 시간, 낮과 밤이 일정한 비율로 뒤바뀌는 우리의 관점에서, 낮과 밤, 어느 한쪽의 시간이 지속한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낮과 밤, 어느 쪽이 계속되는 것이 더 힘든지 가늠할 수도 없습니다. 낮에 일상을 살고 밤에 잠을 자는 사람에게는 밤의 시간이 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할 테지만,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일은 아니겠죠.


낮과 밤을 균형이라고 한다면, 백야와 극야가 지배하는 극지는 균형이 깨진 곳입니다. 아니, 처음부터 균형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저곳은 여름이 없는 곳이니까요. 계절을 사계절로 구분하는 우리에게 기나긴 겨울만 계속되는 극지의 환경은 계절이라는 균형이 깨진 곳입니다. 균형이 깨진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어떠할까요? 누구보다 혹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것도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서 살아가는 우리 생각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계절 때문에 더 혹독한 삶을 사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사계절에 다 적응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름옷과 봄·가을옷, 겨울옷이 옷장을 가득 채우고 있어야 하고, 거주의 환경에서도 온열과 냉방을 다 갖춰야 합니다. 알래스카만큼이나 추운 겨울에는 노지의 농사가 불가능해서, 열두 달의 1/4을 통째로 쉬어야 하죠. 그만큼 개미처럼 일해야 하는 다른 날도 있고요. 여름은 더워서, 겨울은 추워서 힘든 시간을 생각해 보면, 딱 여름과 겨울의 중간쯤에 계절이 멈춰 섰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위도의 위치가 인간 발전의 바탕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다른 지역보다 혹독한 환경이 사람의 발전 가능성을 높였다는 주장이죠.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환경이 인간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지만, 그것은 투쟁의 바탕이 될 뿐입니다. 보편성이 확증되기 위해서는 모든 위도의 사람들이 동일한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후의 혹독함도 유럽에만 국한되는 환경은 아닙니다. 추위는 사람을 웅크리게 하고, 더위는 늘어지게 하죠. 환경보다는 그곳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보편적인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행복지수입니다.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루었다고 해서, 그 성장의 달콤함이 모든 민중이 골고루 맞볼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경제성장기 다수의 부는 일부 계층에게만 쏠리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는 풍요라는 따뜻한 계절을 살고 있지만, 생각만큼 마음이 따뜻하지 않다는 것도 발견하죠.


그렇다면, 당신은 어느 곳에서 살고 싶습니까. 저는 적어도 봄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봄의 찬란함을 사랑하는 저는, 봄이라는 계절만큼은 함께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봄이 있으려면 필연적으로 겨울이 있어야 합니다. 봄만 계속된다면, 봄이라고 부를 수 없을 테니까요. 생각해보면, 겨울이라는 혹독한 계절이 앞서있기 때문에 봄이 있을 수 있습니다.






2009년에 계간 시인시각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6년 첫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담은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시인동네, 2016년)를, 2020년 위로의 시편을 담은『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걷는사람, 2020년)을 출간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한편의 산문을 쓰고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공유합니다. 브런치를 통해서는 일주일에 한두편, 재미있는 산문을 중심으로 원문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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