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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영헌 Oct 18. 2021

라떼는 말이야..!?

진심어린 마음 가득한 라떼만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달곰할까.


제가 요즘 자주 많이 하는 말에, ‘라떼’가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니 너도 이렇게 살아야만 한다’라는 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나는 이런 시간을 살아왔다’라는 의미에서 하는 말입니다. 라떼를 반복하는 까닭을 생각해보면, 그만큼 내가 오랜 시간을 살아왔고, 그 삶의 순간이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더욱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내가 조금이나마 ‘성공’했던 부분에 대한 회상일 것입니다.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기억은 많지 않지만, 몇몇 기억은 나에게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라떼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요.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라떼와 관련한 주제가 나오면 신이 나서 얘기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이렇게 해야 괜찮을 거라고, 나를 한번 믿어보라고. 만약 내가 대화하고 있는 대상이 나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면, 지시하듯 말하기까지 합니다. 전형적인 라떼의 발화방식입니다.     


미리 성공해본 사람들의 경험에 기댄다면, 성공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항상 성공이 다른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의 능력이나 시간(때), 환경, 조건, 운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딸이 다니는 연습실에 제 마음에 드는 명언이 하나 걸려 있는데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나는 지난 37년 동안 하루에 14시간씩 연습했을 뿐인데, 그들은 나를 천재라고 부른다’라고.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사테가 한 말입니다. 명언이라는 말, 좋게 말해서 명언이지 어찌 보면 ‘라떼’의 방언 중 하나입니다.     


지독한 연습만이 실력향상의 바탕이 된다는 것은 불변의 법칙일 것입니다. 능력이 부족해도 꾸준한 노력이 있다면, 어느 정도까지는 극복할 수 있을 테니까요. 특히 달성 불가능한 목표를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루어 낸 사람이라면, 맹신에 가까운 ‘라떼’를 주장할 것입니다. 저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문과 출신이자, 20대 초반까지 수학과 담을 쌓고 살았던 내가 전자공학과에 편입하여 10여 년 만에 다시 미적분과 마주했을 때, 그때의 당혹감이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미적분이 전자공학 수업을 듣기 위한 기본이 된다는 것인데요. 첫 학기에는 극복할 수 없어 보여 수강 철회 후 교수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두 과목 동시에 청강했고, 다음 학기에 수업을 듣고 학점을 받았습니다. 백미는 ‘전자기학’이라는 수업이었는데요, 알 수 없는 기호들이 가능했던 이 수업을 부족한 암기력 하나만으로 버텨 냈습니다. 한 문제가 A4 한 장을 가득 채워야 하는 수식들을 이해가 아니라, 초인적인 암기 능력으로 버텨 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불가사의한 힘이었습니다. 20대였기 때문에 가능했었던 일이었을까요.     


또 하나는 블로그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한 우물을 꾸준히 파면, 어떤 한 분야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만들어진 계기이기도 합니다. 2014년부터 운영하는 <시를 읽는 아침> 블로그는 변변치 못한 시를 쓰는 저를 ‘노력하는 시인’이라고 평가받게 했습니다. 제가 오늘까지 시인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까닭, 제 블로그가 가장 큰 힘이 되었는데요, 제 블로그의 성공 사례는 저에게, 무엇이든 꾸준히 한다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했습니다.     


만약 내 경험을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한다면, 그는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요. 나의 사례가 그에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억지로 강요한다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라떼가 모두 틀린 말은 아닐 테지만,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라떼를 말할 때도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는데 꼰대로 찍히지 않기 위해서요.     


진심 어린 마음이 가득하다면, 아무리 라떼의 사례라도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마음을 가지고 있고, 마음은 마음을 잘 알아보니까요. 또한, 마음의 진정성을 떠나서 자기 자랑의 라떼는 것 너무나 훤하게 잘 보입니다.




2009년에 계간 시인시각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6년 첫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담은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시인동네, 2016년)를, 2020년 위로의 시편을 담은『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걷는사람, 2020년)을 출간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한편의 산문을 쓰고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공유합니다. 브런치를 통해서는 일주일에 한두편, 재미있는 산문을 중심으로 원문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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