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사랑도 우정도 기다림과 이해 위에서 싹트는 것

by 주영헌 시인



고슴도치는 세상과의 거리를 가시를 세워 지켜내는 작은 동물입니다. 천적이 다가오면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고, 온몸의 바늘을 세워 자신을 보호합니다. 그 순간의 고슴도치는 마치 작은 바위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에는 여전히 연약하고 부드러운 살결이 숨겨져 있습니다. 고슴도치의 웅크린 모습은 ‘공격’이 아니라 ‘두려움’의 표현일 뿐입니다. 고슴도치는 포식자에게 쉽게 노출되는 작은 몸을 가진 동물이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무기인 가시를 꺼내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받게됩니다. 이렇게 상처 가운데 살다 보면, 우리의 방어 본능은 누군가 따뜻하게 다가와 주었을 때조차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친절한 손길마저 의심스럽게 느껴지거나, 다정한 말이 불안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마음속에 쌓인 불안과 상처가 불쑥 솟아올라, 상대에게 날카로운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나 버리곤 하는 것입니다.


고슴도치처럼 바늘을 세울 때 우리는 종종 오해받습니다. “왜 저렇게 예민할까?”라고, 서운함을 상대가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상대를 향한 분노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향한 두려움과 미안함이 먼저인 경우가 많습니다. 내 안에서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 나조차 다루기 어려운 상처들이 순간적으로 밖으로 튀어나와 상대를 찌른 것뿐입니다. 그래서 고슴도치처럼 웅크린다는 것은 나를 내버려 두라는 선언이 아니라,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내가 다시 힘을 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와 같은 간절한 요청일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니고, 다른 환경에서 자라며,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합니다. 어떤 이는 슬픔을 눈물로 쏟아내지만, 어떤 이는 묵묵히 침묵 속에서만 삼킵니다. 어떤 이는 분노를 크게 드러내지만, 어떤 이는 미소 뒤에 숨겨두기도 합니다. 이처럼 감정의 언어는 사람마다 다르고, 그 표현 방식 또한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 차이를 쉽게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생활 방식에 익숙하다 보니, 상대가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드러낼 때 이해하기 어려워하고 서운해지기까지 합니다. 그러하기에 내 마음을 상대방이 알아주기 바라는 것처럼, 나 역시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상대방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가진 감정을 읽어내려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고슴도치의 가시를 뚫고 그 안의 부드러운 살결을 떠올리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모습 뒤의 진심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우정도, 가족과의 관계도 결국은 '기다림'과 '이해'와 함께 싹트는 것입니다. 어쩌면 재잘거리는 것보다 조용히 곁을 지켜주는 것이 가장 완벽한 위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다림의 바탕 위에서, 시간이 지나 고슴도치처럼 몸을 펴고 다가올 때, 그를 더욱 마음 깊숙이 포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슴도치


주영헌



내가 웅크리고 있을 때 다가오지 마세요.

웅크린다는 것은 꼭 안아달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조금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위로하려고 안아준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날카로운 바늘을 세워버렸습니다.


미안해하지 말아요, 당신

당신에게 화가 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나 있을 뿐입니다.


나는 내 품 안으로 삭히는 것이 익숙한 사람


조금만의 거리와

조금만의 시간을 주세요.


나를 보며, 고슴도치를 떠올려 주세요.

가시의 반대편, 연한 분홍색 피부를 가진 나는

작은 고슴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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