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는 없다

나도 한번 시를 써 보고 싶다고 마음먹게 하는 시가 좋은 시

by 주영헌 시인


시 낭독회를 자주 개최합니다. 지금까지 30여 회 이상의 낭독회를 개최했습니다. 여러 차례 낭독회를 진행하다 보니 기억에 남는 일화들도 많습니다. 두 번째 낭독회였습니다. 낭독회 중간중간 눈을 감고 앉아 있던 분이 있었습니다. 사연을 들어 보니 아내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오셨다고 합니다. 눈에 띄기는 했으나 낭독회 분위기를 망치지 않았고, 자리를 채워주신 것에 충분히 감사했습니다.


낭독회를 하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 시는 무엇일까요?’입니다. 워낙 자주 받는 질문이다 보니, 언젠가부터 시로서 답해 보자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쓰게 된 시가, 「좋은 시는 없다」입니다.


좋은 시란 무엇일까요. 서정시를 쓰는 서정 시인으로서 저는 ‘공감’을 강조합니다. 좋은 시의 중심에 ‘시인과 나의 공감’ 또는 ‘타자와 나의 공감’이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시의 내용 가운데 ‘누군가의 이야기이지만 내 얘기처럼 들리는 시가 좋은 시라고’ 얘기한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공감이 내 가슴 속에서 제대로 작동을 하게 될 때, 발생하는 사건이 다른 시로의 확장입니다. 누군가의 시 한 편을 읽었을 때 좋은 시라고 느낀다면, 독자는 분명 그 시인의 다른 시집을 읽고 싶어질 것입니다.


시집을 다 읽은 독자는 ‘좋은 시집이었다’라고 만족하면서 시집을 덮고 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시집에 대한 호기심은 그 시집을 쓴 시인까지 확장될 것입니다. 그 시인의 삶이 궁금해지겠죠. 이 시인은 어떤 삶을 살았길래 이러한 시를 썼을까 하고, 때로는 독자가 ‘나도 시를 써봐야지’라며 시를 쓰게 되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한 명의 시인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궁극적으로 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시를 읽고 즐거울 수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즐거움이란 만들어진 웃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즐거움=웃음으로만 연결되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즐거울 수 있고, 가슴 아픈 상황에서도 마음은 깊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즐거움이란 단일한 감정으로만 환원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입니다.


좋은 시가 있다면, 나쁜 시도 있을 것입니다. 시에서 화자는 ‘나쁜 시는 없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제가 시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나쁜 시가 없다’가 아닌, ‘나쁜 시는 없어야 한다’라는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나쁜 시는 어떤 시일까요. 그것은 시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시를 쓴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나쁜 의도로 시를 썼다면, 그 시가 바로 나쁜 시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폭력이나 독재, 차별을 찬양하는 시라면, 그 시를 좋은 시라고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 시가 아무리 기술적으로 뛰어난 시라고 해도 나쁜 시임이 분명합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이 정답은 아닐 것입니다. 시에 정답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다른 것처럼, 시 또한 다르며, 독자가 시를 받아들이는 방식 또한 다릅니다. 지금까지의 설명은 서정시인으로서 살아오면서 제가 느꼈던 시의 방향성일 뿐입니다.



좋은 시는 없다


주영헌



좋은 시는 없다

우리를 너와 나라는 이분법으로 나뉘는 세상

시까지 좋은 시와 나쁜 시로 구분하여야 하겠는가?


그래도 좋은 시가 무엇인가 다시금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얘기해 줄 것이다


누군가의 이야기이지만

내 얘기처럼 들리는 시가 좋은 시라고

한 편의 시를 읽어, 또 한 편의 시를 읽어 봐야지

마음먹게 하는 시가 좋은 시라고

시를 쓴 시인의 삶이

궁금해지는 시가 좋은 시라고


나도 한번 시를 써 보고 싶다고

마음먹게 하는 시가 좋은 시라고


나쁜 시는 없다

시란 누군가가 마음을 풀어 쓴 문장

그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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