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그림 1일 차_선긋기

2025년 06월 12일(날씨 15° / 31°)

by 그래

"날씨 더운데, 갈 수 있겠나?"

"갈 수 있어. 전철 타고 가는 건데 뭘, 걱정하지 마."

"맨날 집에만 있다가 사람 많은 전철 타겠나?"

"지금 가면 사람도 별로 없을 거잖아?"

"야가, 8시 20분이면 출근 시간이다. 사람 진짜 많다."

"괜찮아. 나 갔다 올게."


집에서 전철까지 남편의 차로 5분이면 도착한다. 걸어간다면 아마도 20분 정도이겠지만, 지금 내 결음이면 아마도 30분은 넘을 것 같다. 근래 몇 년을 집에서 글쓰기만 했다. 유명한 작가가 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번듯한 작품 하나도 없다. 아니 내게는 작품이지만, 인지도 없는 작품으로 남았다.


순간순간 오는 좌절감과 실망, 그리고 지칠 대로 지쳐버린 사람들까지. 2024년 11월부터는 은둔 생활에 가까운 칩거를 선택했다. 원래는 2024년 6월부터 시작하기로 한 그림 공부는 12월로 미뤘다가 다시 올해 6월로 미뤘다. 더 이상 미루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집은 경기도권에 있지만, 사실상 시골 외지나 다름없다. 차로 5분 거리에 전철을 타기 위해선 30분이 넘도록 버스를 기다리거나 그만큼 걸어가야 했다. 그나마 대형 아파트가 들어옴으로 사잇길이 생겼지만, 아파트를 가로지르지 않고 가기 위해선 20분은 족히 걸어야 했다.


6월 12일, 무더울 거로 예상되는 여름이었다. 좀 선선하다는 오전도 덥기는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먼 외출을 나선 나를 걱정하는 남편의 기분 좋은 잔조리와 질문 폭격에 답한 후 가벼운 입맞춤을 끝으로 차문을 닫았다. 바로 가지 않고 잠시 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는 건 안 봐도 비디오처럼 선하다. 꿋꿋한 영심이(1990년 作, KBS 반영 애니)처럼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찰랑거리며 지하철 계단을 올랐다.


전철이 도착할 때마다 학생들이 줄줄이 나왔다가 들어갔다. 남편이 내려준 전철역이 대학교 앞까지 버스 타고 10분 거리에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남편의 말대로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학교 앞에 있는 역이지만, 크지 않는 역이기에 에스컬레이터는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어르신을 위한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이 편의 시절 전부다. 출구 또한 후문과 정문이 전부. 내려가는 개찰구는 상행선과 하행선 두 개밖에 없다. 덕분에 전철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계단은 좌측 우측 할 것 없이 올라오는 사람들로 꽉 차버린다. 내려가야 하는 사람은 그 사람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눈치껏 멈췄다 걷기를 반복했다.


다행히 방금 역을 출발한 전철이 있어서인지 계단이 한산했다. 몸매를 가리기 위해 입은 긴치마가 바닥에 끌리지 않게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글 한편, 예전에 '서울 詩, 지하철 공모전'이 생각났다. 당당히 떨어진 나, 200명이나 뽑는 공모전이었는데도 내 글은 거기서도 거부당했었다. 그래서인지 매번 지나친 지하철 글을 천천히 읽었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에 관한 글이었다. 내가 공모한 시 공모가 아니었다. A4 3분의 2 정도의 긴 에세이였는데, 필자의 노련함이 보였다. 짧은 글의 임팩트가 멋진 글이었다. 이때처럼 길에서 글만 보이면 눈을 돌리던 내가 그림을 배우기 위해 서울에 가고 있다.


다분히 내가 그린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작은 소망에서 시작한 거였지만, 내 책의 표지는 물론 글 속의 삽화를 넣고 싶기도 했다. 항상 머릿속을 채우는 상상력을 글뿐만 아니라 그림으로도 펼쳐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는데, 기회가 왔다. 지인의 제의였고, 그때의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넘쳐나고 있었던 때라 수락했다.


그렇게 처음 홍대라는 TV에서나 보던 거리에 섰다. 한국 사람보다 외국인이 더 많았다. 어디서나 들리는 중국말과 노란 머리의 영어권 사람들, 사거리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람들, 다양한 인종과 언어, 학생들과 상인들의 분주함 그 모든 것은 정말 낯설고 정신없게 만들었다. 초행이었던 난 학원을 찾지 못해 방황했다. 어떻게 학원에 가보지도 않고 등록했냐고 묻는다면 이 학원을 소개해준 지인을 100%로 믿었기 때문이다. 학원의 가치는 딸아이가 알려줬다. 웬만하게 그림을 그린다는 친구와 디자인 쪽은 이 학원을 따라갈 수 없다고 했다. 집에서 가까운 지점을 가라고 하는 남편의 권유를 뿌리치고 여기 홍대까지 나온 이유이기도 했다.


친절한 어떤 경비원 아저씨의 도움으로 무사히 학원을 찾았다. 11시 30분 수업인데, 학원 도착 시간은 9시 30분이었다. 늘 하던 모바일 게임의 일퀘를 마치고, 노트북을 올릴 수 있는 책상이 있는 학원 로비에 앉았다. 적당한 소음과 잔잔한 음악이 집중력을 향상시켰다. 작업 중인 글의 집중한 몇 분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같이 다니기로 한 지인이 나를 찾았다.


아쉽게 노트북을 닫고, 교실로 들어섰다. U자 형식으로 되어 있는 교실에서 지인과 내가 선택한 자리는 맨 앞자리였다. 선생님이 해주는 수업 전 설명을 듣기 위해서는 고개를 90도로 올려야 하는 불편함을 빼고는 좋은 자리였다. 선생님의 피드백을 바로바로 들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요즘 친구들의 생각들을 바로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왜냐면 선생님은 기초 수업을 마친 학생들을 위해 따로 상담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20명 내외의 그룹 수업인데도, 1:1 수업인 셈이었다. 각기 다른 것을 하는 친구들은 꽤나 진지하고, 조용했다.


첫날, 준비물은 드로잉북과 4B나 2B연필 한 자루였다.

선긋기는 그림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했다. 손목의 힘을 빼고, 팔과 손목, 어깨까지 전부를 움직여 드로잉북의 가로선을 그으라고 했다.

"쓱. 줄 긋 기 "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생각보다 쉽다는 생각으로 한 바닥을 채우고 있을 때 같이 온 지인이 웃으며 말했다.

"뒷 장은 바닥에 묻으니까 앞 장만 쓰고, 선만 그어서 아까우니까 세워서 또 그어."

드로잉북을 세워서 또 신나게 선을 그었다.

"언니, 천천히. 그렇게 빨리 하면 안 돼. 나도 이거 하면서 급한 성격 싹 고쳤거든. 언니도 천천히 해."

"응"

대답은 했지만, 내 나이가 50이 멀지 않은 탓일까, 작심 3초 만에 또다시 빨라지는 선긋기는 흰 드로잉북을 검게 칠하는데 몇 분 걸리지 않았다. 막 두 번째 장을 넘기고 있을 때 선생님이 뒤에서 보시면서 말하셨다.

"그림 배운 적 있으세요?"

"아뇨. 한 번도 없는데요."

"그래요? 잘하시는데요."

선생님은 가로선과 둥글게도 그려보라고 하셨다. 손목의 입을 빼고 팔을 전부 쓰는 선긋기는 사실 11월 한 달 캘리를 배우면서 습득한 거였다. 그때는 크게 변화 없이 끝난 글씨 실력인데, 그림은 좀 다를까 살짝 기대하고 우쭐해졌다. 나이를 먹어도 칭찬은 좋았다. 웃으며 세 번째 바닥을 끝내고 있을 때 쉬는 시간을 알리는 선생님이었다.

"언니! 재밌어?"

"응. 재밌어. 종이에 연필이 그어지는 소리가 너무 좋아."

"그치, 나도 그랬어."

두 번째 시간까지 지루할 거라 생각했던 선긋기 수업은 아쉽게 끝났다.


20250612 선긋기.jpg 집에 와서 연습한 선긋기

어디가 잘한 건지 내 시선에서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잘했다고 했으니 믿어보련다. 내일은 뭘 배울지 궁금해하면서 오늘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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