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6월 16일 월요일(날씨 21° / 25°)
아침부터 날씨가 꿉꿉하다 못해 찜찜하다. 밤새도록 내린 비는 아직도 모자란 지 무거운 구름들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다행히 내리지는 앉았지만, 우산을 챙기도록 강요하는 날씨가 원망스럽다. 집에 있는 3단 우산은 작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무거웠다. 자동 우산과 튼튼하다는 장점 빼고는 죄다 단점 투성이다. 무엇보다 자리를 너무 차지했다. 결국 노트북을 포기했다. 우산과 노트북을 모두 챙겨 들고 가방을 메면 마치 군인이 된 것만 같았다. 물론 군장은 한 번도 메 본 적도 없고 30kg이 넘는다는 얘기는 말로만 들었다. 단지 그 정도로 무겁다는 뜻일 뿐이다. 가방에는 항상 상비약, 손수건, 지갑, 핸드폰이 전부였다. 그 이상을 들고 메는 건 버거웠다. 게다가 무더위. 이건 정말 참기 힘들었다.
역에 도착해서 물을 사도 도착하면 미지근한 물을 마셔야 했다. 생각보다 뜨뜨미지근한 물은 마시기가 거북스러웠다. 집에 있는 텀블러는 휴대용이 아니었고, 물을 얼려가면 드로잉북이 젖을 위험이 더 컸다. 이미 메는 가방과 크로스가방을 메고 있기에 물통가방까지 메고 싶지는 않았다. 겨우 학원에 도착하면 정말 기진맥진이었다. 무엇보다 계단이 제일 큰 문제였다. 도착해서도 계단, 환승역도 계단, 학원 앞도 계단이었다. 매 순간 왼쪽의 3단 콤보의 계단과 오른쪽에 엘리베이터 앞에서 고민하고, 눈치를 보았다. 무거운 여행 가방을 들고 타는 엘리베이터는 짐과 사람만으로 늘 만석이었다. 어쩔 수 없는 계단행은 숨을 멎게 할 만큼 고역이었다. 틈틈이 땀을 닦으며 쉬어도 버거웠다.
그까짓 계단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한번 폐색전증을 앓았던 경험 때문이다. 심장과 폐 근처에 생긴 색전증은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격한 숨을 몰아쉬는 나에게 산소를 주지 않았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듯 숨이 턱까지 오라 숨을 쉴 수 없었던 그때 당시는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할만큼 선명하게 트라우마로 남아버렸다. 지금은 완치 판명을 받았지만,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늘도 겨우겨우 3단 계단을 올라와 학원 건물 1층 의자에 앉아 숨을 골랐다.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 심박동과 거친 숨소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큰 숨을 몇 번이고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겨우 숨을 고르고 학원 로비로 올라왔다. 겨우 3일 차, 아는 것도 없는 내가 로비에서 하는 일라곤 특별할 게 없었다. 선생님의 카페에서 다른 학생들이 올린 게시글을 보거나 평소 글을 저장하는 메모장을 열어 수정하거나 하는 것이 전부였다.
9시 30분 첫 수업이 시작한다. 내가 도착하는 시간은 매번 9시 40분이었다. 수업 시작한 후에 빈자리에 앉아 수업을 들어도 된다고 했지만, 수업 중에 들어가는 건 실례라고 배운 나에게 그건 어려운 거였다. 그래서 수업이 시작할 시간까지 이것저것 하며 시간을 때웠다. 11시 15분, 드디어 앞 수업생들이 나왔다. 지난 금요일부터 바쁜 지인으로 인해 혼자 수업을 들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 가방을 책상 아래에 넣어두고, 컴퓨터를 켰다. 이제는 익숙하게 포털사이트를 로그인하고, 의식처럼 내가 쓴 글 몇 명이나 조회했나 보는데, 신기한 게 있었다. 나를 기준으로 그전에 과제 올리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가 내가 올린 후에는 꽤 많은 학생들이 과제를 올렸다는 사실이다. 마치 너보다는 내가 낫지 하는 말을 듣은 기분도 들었다. 예전이었다면 의기소침할 수도 있을 문제였다. 무엇보다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 않고 넘겼다. 하지만 이 이후에도 여전히 나의 과제 후에 다른 수강생들의 과제가 올라오는 기이한 현상은 쭉 이어졌다.
[형태]
오늘 수업의 주제었다. 형태라고 하기에 뭘 그리나 하고 수업 전 선생님이 올린 게시물을 보았다. 아무래도 오늘부터 보고 그리기가 시작될 거라는 묘한 들뜸이 설레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은 사진에 있는 커피잔을 보고 그려보라고 했다. 처음엔 사각형에서 깎아가려고 시도했다.
처음 이 실물 사진을 봤을 때 뚜껑이 컵보다 크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뇌가 기억하는 커피컵을 그리고 있었다. 큰 사각형을 그리고 점점 둥글게 깎아가고 있는데, 또 다른 지인이 다가왔다.
"저기, 그렇게 그리면 오늘 안에 다 못 그리실 텐데...."
걱정 가득한 목소리에 멋쩟게 웃었다.
"그냥 대충 그리라고 하면 어찌하겠는데, 도저히 감도 없네요."
"감으로 그려도 될 텐데요."
"그런가요? 그래도 수업에서 배운 대로 해보려고요."
"음...."
지인의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고리타분하게도 나는 1시간이 넘는 동안 사각형을 깎는 수고를 계속했다. 전혀 얼음처럼 보이지 않는 다각형의 얼음과 도무지 커피잔이라고 하기엔 어딘지 딱딱하고 비배율적인 모습까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생님은 2교시가 시작되었을 때 내가 처음 생각했던 부분은 그대로 얘기했다. 역시 뚜껑이 컵보다 배는 컸다. 네모난 건 깎아도 되지만, 대충 원으로 그려도 된다는 코멘트에 내 얘기를 들었나 순간 움찔했다. 2교시에서는 형태로 그리기엔 새만 한 동물도 없다며 새 그리기에 도전해 보라고 했다. 새의 구조를 설명하면 어떻게 표현할지 예시를 보여주셨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그리고 싶은 새를 찾았다.
가운데 있는 새가 제일 처음 그린 새다. 2분 정도 걸린 것 같다. 그다음은 왼쪽 위, 아래에서 위를 본 듯한 새가 세 번째. 네 번째로 그린 것이 오른쪽 아래, 그 위에 있는 등을 맞댄 새는 마지막으로 그렸다.
새 그림은 각각 몇 분 걸리지 않았다. 상세한 표현이 없는 새 자체를 그리는 것은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움직이는 새도 아닌 사진 속에 새였기에 아무 어려움 없이 새를 그려나갔다.
선생님은 그런 나의 스케치를 보면서 다시 물었다.
"그림 배운 적 있으시죠?"
"아뇨. 전혀요."
"잘 그리시는데요!?"
'어디가?'
여전히 선생님의 눈을 이해 못 하는 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그리고 싶은 새를 찾아 스크랩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밥을 먹고 나서 새를 그리려 준비하고 있는데, 퇴근하는 딸을 보며 남편이 외쳤다.
"오늘 너희 엄마, 진짜 귀여웠다."
"??"
남편은 내 시선도 무시하며 딸에게 말하기 바빴다.
"팔을 요렇게 하고, 터벅터벅 걷는 게 진짜 귀였웠다니까!"
"엄마, 귀엽지. 그렇게 걸으면!"
도통 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대화에 나의 궁금증은 아무도 풀어주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살이 찐 후에 걸음걸이가 좀 바뀌긴 했다. 뒤뚱뒤뚱 걷나? 생각하다 내가 나를 볼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만 생각을 멈첬다. 다시 그림에 집중했다.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다른 것 같다. 게다가 맨 아래의 사진은 AI 그림인 듯했다. 오른쪽에 그려진 건 과제였던 커피잔, 모과처럼 보이겠지만 레몬이다. 전구인가? 맞다. 전구다. 누가 위에서 옆으로 때린 듯 살짝 찌그려진 모래시계까지 그림은 어딘지 엉성하지만, 새벽 1시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렸다. 찾는 재미와 그리는 재미를 동시에 즐기며 오늘 하루도 마무리했다.
혹시 그림 처음 그리는 사람이 있다면 새를 그려보길 바란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디테일한 표현은 못해도 그림처럼은 그릴 수 있다. 무엇보다 나보다는 잘 그릴 테니 걱정하지 말고 그려봤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도 즐거웠다. 비록 글 작가라는 사람이 글은 하나도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