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7일 화요일(날씨 20° / 28°)
날씨가 너무 덥다. 사람은 너무 많고, 매일 무더기로 내리는 사람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걷다 보면 학원 도착할 때쯤엔 기진맥진 상태다. 게단은 힘들고, 사람들은 지치고 짜증이 느는 이유를 백번 천 번 공감하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남편이 새로 사준 샌들은 편했다. 발바닥의 불룩하게 볼처럼 생긴 부분이 드디어 꺼졌다. 그러나 남편의 말처럼 오래 서 있어도 덜 피곤해다. 그거와 달리 사람들에게 치이는 스트레스는 매번 가중되고 있었다. 다행히 그림은 재밌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9시 40분 도착한 학원에서 드로잉북을 꺼냈다. 연필을 꺼내 사진을 보면서 그림을 그렸다. 비슷한 구석은 찾아볼 수 없는 실사화를 그리면서 11시 30분을 기다렸다. 집중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옆 자리가 움직일 때는 또 귀신같이 알 수 있었다. 함께 일어나 각자의 교실로 들어갔다.
오늘 그린다는 배경으로 나는 2007년 애니, 츠츠이 야스타카 원작자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였다. 건물 사이에 있는 기찻길에 자전거와 함께 서 있는 여주인공의 포스터를 그려보고 싶었다. 건물이 있으니 투시 기법을 이용해 그리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나를 눈치챈 지인이 옆에서 말했다.
"안될 걸요. 선생님이 견본은 그림이 아니라 실사만 된다고 할 걸요."
그 말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역시 안되었다. 선생님은 내 마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싶은 투시 배경은 그림은 안됩니다. 실제 모습을 담은 사진만 되니까 검색란에 1점 투시 배경이라고 치면 몇 장의 사진 중 하나를 골라 그려보세요."
또 한 번의 아쉬움으로 사진을 골랐다. 짱구 같은 발상은 이 때도 발동했다. 그냥 평범하게 에시 그림을 그리면 될 것을 굳이 새로운 걸 시도하겠다고 중심에서 살짝 비켜난 구도의 투시 배경을 설정했다. 선생님은 견본 사진을 보시더니 이 그림에서는 들어가고 나온 느낌을 살려야 할 것 같다며 들어간 문을 그려주셨다. 그러나 처음 그린 투시 배경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아무리 그려도 구도가 나오지 않았다. 가운데 건물을 중심으로 그리면 점점 앞에 보이는 건물의 구도가 바뀌었고, 앞의 건물의 구도에 맞추면 뒷 배경, 중심의 있는 건물이 너무 작게 나왔다. 이유를 알지 못해 전절을 타고 오는 내내 그림을 보고 또 보았다. 집에 와서도 몇 번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알 수 없는 궁금증에 사진을 노려보고 있는데,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만약 곡선의 길에 있는 건물은 두 개의 면이 아닌 그 이상의 면이 보일 수 있습니다. 각도에 따라라 시점의 위치도 달라지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이것을 몰랐단 말인가? 오른쪽 길은 얕은 오르막이 있고, 왼쪽은 굴곡진 오르막이 있었다. 투시점이 달랐기 때문에 구도가 나오지 않았던 거였다. 각기 다른 투시점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하나의 투시점을 찍어두고 그렸으니 구도가 사진과 전혀 달라진 건 당연한 거였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지만, 알고나니 굴곡진 바닥 면이 자세히 보였다. 바닥에 그려진 돌 모양을 보면 어느 시점에서 조금씩 넓어졌다가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도 뒤쪽으로 가면 하얀 건물이 살짝 굴곡져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시 글이나 그림이나 관찰이 중요한 듯 하다. 만약 자기 직전까지 이 사실을 못 찾았다면 나는 이 숙제를 완성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림 자체에 흥미를 잃었을 수도 있다.
뒤늦은 깨달음은 연장 숙제도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이번에는 내가 그리고 싶었던 배경을 찾아 즐겁게 그렸다.
부산 보수서점의 지금 모습과 옛 모습이다. 보수동은 지금 예전의 모습은 거의 사라졌다. 사진에서 왼쪽에 보면 공사가 항상 진행 중인 골목은 예전 보수동 책방의 볼거리의 최고였다. 양쪽으로 늘어선 책방 사이에 정말 오래된 책들이 주인을 기다리며 아무렇지 않게 쌓아져 있었다. 구매자가 보기엔 널브러져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정신이 없지만, 각 책방 주인은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책을 쌓아뒀다. 덕분에 원하는 책 제목이나 내용만 말하면 마법사처럼 책을 뚝딱 찾아냈었다. 그걸 보면 재미도 좋고, 실제 만원, 이만 원이 넘는(당시에 책은 만원 이상 무료 배송이었답니다.) 책도 1000원 이내 심지어 그 아래의 돈으로도 살 수 있는 책이 있었다.
이 거리에서만 맡을 수 있는 오래된 종이의 책 냄새는 어떤 향수보다 더 자극적이었고, 특히 기분이 좋아지게 했다. 발 디딜 틈도 없는 복잡한 보수동 책방 거리가 벌써 그립다.
살짝 그림을 설명하자면 처음 보고 그린 사진은 왼쪽이다. 마치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이 보고 있는 듯한 건물은 왼쪽이 오른쪽보다 더 넓게 보인다. 반면 오른쪽은 그 반대다. 초점의 위치에 따라서 배경의 면적이 보이는 쪽인 넓거나 한쪽이 아예 안 보일 수 있다는 예시로 충분하다. 또한 양쪽의 사진을 찾은 이유은 내가 그릴 그림을 제대로 완성하고 싶어서였다. 위쪽이 잘린 왼쪽 사진을 대신해 오른쪽 사진을 찾았다. 그렇게 그림을 완성시켰다.
물론 첫 번째 그림이 오랜 걸린 만큼 새벽 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그러나 완성했다는 사실에 너무 뿌듯해 푹 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