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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흔적

검은 우산, 그

초단편 소설/장르 한국 오컬트

by 그래

여름이 익은 7월, 유독 올해는 비가 많이 왔다. 수명이 사는 곳은 전철을 내려 좁은 골목길을 지나야 아파트 입구가 나오는 곳이었다. 다세대 빌라가 많았지만, 단 한 번도 집에 가는 길에 다른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늦은 귀가 탓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리기는 했지만, 간혹 캄캄한 골목을 지날 때면 모르는 동행자가 있었으면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였다. 동행자가 생겼다. 무슨 일을 하는지 볼 때마다 까만 정장을 입고, 커다란 검은 우산을 쓴 사람이었다. 어떤 교통수단으로 이동하는지 모르지만, 항상 수명 뒤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걸어왔다. 굵은 빗방울 소리 때문에 그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존재감은 없었지만, 알 수 있었다.


매일 보다 보니 궁금증이 생겼다. 과연 그는 어디에 살까? 무슨 일을 할까? 실수인 척 부딪혀서 안면을 트고 말이라도 걸어볼까? 실없는 상상을 해보지만, 행여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아 어렵사리 생긴 동행자를 잃고 싶지 않아 그만두었다.


검은 우산은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일정한 속도로 걸었고, 수명 앞으로 앞지르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가 잦아들 때 검은 우산이 수명을 앞질렀다. 빠른 걸음으로 걸었지만, 흐트러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수명은 이제야 검은 우산이 어디에 사는지 알 수 있겠구나 싶어 그를 따랐지만, 골목을 돌았을 때는 이미 그는 없었다. 수많은 빌라 입구를 보며 그가 갔을 법한 집을 유추해 보지만, 움직임을 포착했을 때만 켜지는 센서 등도 보이지 않아 집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어? 비가 그쳤네. 와, 하늘 파랗다. 조금 전까지 비 왔었다고 해도 아무도 안 믿겠네.”

그랬다. 검은 우산이 사라지면 하늘은 맑게 갰다. 상가조차 없는 동네라서 그런지 비가 오지 않는 날은 마치 시골처럼 별도 볼 수 있을 만큼 짙은 어둠 속이었다. 그나마 짙은 어둠 덕에 달빛이 주는 밝음이 얼마나 환했는지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수명이 이 동네로 이사한 온 것은 1년 전이다. 재수 옴이 붙은 건지 수명이 손이 대는 것마다 망하고, 입사하는 곳은 폐업할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 지인의 도움으로 어렵게 입사한 이곳은 마음 하나 맞는 사람은 없었지만, 망하지 않고 쫓겨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비록 인원 부족으로 막차를 타고 퇴근해야 할 만큼 일은 많았지만 말이다.


오늘은 새벽이 되어서야 끝나 이 대리가 골목 어귀까지 데려다줬다. 수명보다 두 살이나 많았지만, 수명보다 직급은 낮았다. 그래서인지 의견 충돌이 생기면 서로 지려고 하지 않아 회의가 길어질 때가 많았다. 게다가 먹는 음식도 취향이 맞지 않아 메뉴를 정할 때마다 다른 직원들이 난감해질 때가 많았다. 개와 고양이 같은 사이였지만, 수명이 늦게 근무할 때는 이 대리도 함께였다. 수명을 위해 야식을 챙겨주는 이도 이 대리였다. 미워하고 싶지만, 미워하지 못하는 사이였다.


“와, 수명 씨 여기서 어떻게 살아? 나는 무서워서 하루도 못 살 것 같은데?”


동네 입구에서 이 대리는 동네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어두워지는 거리를 보면서 한 말이다. 그런데 동네 이름을 적힌 표지판을 지나가는 순간 이 대리의 차가 퍼져버렸다.

“어? 이상하네. 며칠 전에 점검받았는데! 미안해서 어떡하지? 아파트까지 못 가겠는데? 캄캄해서 데려다주고 싶은데, 난감하네. 같이 걸어갈까?”

“아뇨. 1년이나 산 곳인데요. 뭘요. 매일 걸어가는 길이기도 하고요. 그나저나 이 대리님 차 어떡해요?”

“나야 뭐 보험사 부르면 되지. 수명 씨는 참 겁 없는 사람이야. 조심해서 가. 내일 봐. 참, 우산은 있어? 비 올 것 같네.”

“네. 있어요. 보험사 올 때까지 같이 있을까요?”

“아냐, 비 오기 전에 얼른 가.”


이 대리가 등까지 밀면서 가라고 재촉해서 못 이기는 척 인사하고 돌아섰다. 이 대리가 차에 앉자마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차도 잘 다니지 않는 도로에 혼자 있을 이 대리가 걱정될 정도로 까만 골목마다 하얀 빗줄기가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이미 양말까지 들어온 빗물로 인해 터벅터벅 골목을 걷고 있는데, 어디서 ‘탁’ 소리가 났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가로등이 꺼졌다. 첫 번째 가로등을 선두로 차례대로 전등이 탁 소리를 내며 꺼졌다.


“안 그래도 무서운데, 더 무섭네. 오늘 그분은 안 오시나? 아, 이쪽으로 방향이 아니지.”


괜히 아쉬운 마음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검은 우산이 보였다. 그는 마치 수명이 걷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제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수명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수명이 걷기 시작하자 검은 우산은 같은 보폭으로 따라왔다. 간혹 누가 있는 것처럼 고개가 돌아가기는 했지만, 특별한 움직임 없이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힐끔힐끔 검은 우산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겨우 골목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골목 입구에서는 보이지 않던 아파트 입구가 골목을 나오자 바로 보였다.

“저 큰 아파트가 안 보일 정도로 어두웠나? 에이, 내일 아파트 반장님한테 꼭대기에 조명 달자고 건의해야겠네. 어둠 속에서도 보이도록 해야지. 비행기는 어떻게 지나가지? 보이지도 않는데.”

무서워서 그런지 괜히 실없는 소리를 소리까지 내며 혼잣말했다. 투덜거리며 단지로 들어왔는데,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평소에 20층 꼭대기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춰있었다.

“오, 럭키.”


기분 좋게 탔는데, 닫히는 문틈으로 검은 우산이 보였다. 수명은 다급하게 ‘열림’ 버튼을 여러 번 눌렀다. 다행히 문이 열렸다. 억수 같은 빗속에서 같이 걸은 사람인데, 다 젖은 수명과 달리 검은 우산은 우산조차 물방울 하나 없었다.

‘그런데 우산은 왜 펼치고 있지? 부끄러움이 많나? 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 그렇지 않나?’


이상함을 감지하기는 했지만, 어두운 골목을 동행해 준 게 고마웠기에 그 정도 이상함은 모른 척해주기로 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가 탈 수 있도록 왼쪽 벽으로 붙어서 비스듬하게 섰다. 들어오라는 제스처였지만, 우산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한 건지 검은 우산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타세요.”

“타도 돼?”


처음 듣는 그의 목소리는 수명보다 나이가 많은 듯 중년의 목소리였다. 작은 체구 때문에 또래일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래서 그의 반말이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당연하죠. 타세요.”

“정말? 내가 들어가도 돼?”


이게 무슨 상황인가? 어색한 대화가 불편해졌다. 아니 불편하다기보다는 다시 권하기를 망설이게 했다. 수명이 망설인다는 걸 검은 우산도 느꼈는지 몸을 돌렸다.


“괜찮아, 다들 그러니까.”

차마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으로 검은 우산을 내몰고 싶지 않았다. 서둘러 손을 뻗어 그를 잡았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감촉, 마치 바람을 잡은 것만 같았다. 놀란 수명과는 달리 그는 천천히 우산을 접었다. 드디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제일 처음 보인 것은 검붉은 입술이었다. 경계가 없는 코, 다크서클이 짙은 눈과 새하얀 피부 산 사람은 맞는지 확인하고 싶을 만큼 이질감이 느껴지는 외모였다. 수명을 살짝 지나치는 그는 짧은 머리카락인데도 불구하고 보여야 할 귀는 보이지 않았다. 낯설고 이상한 외모는 거울 앞에서 멈춰 서서 거울 속에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한가?”

“아, 아니요.”


닫힌 문은 천천히 움직였다. 수명의 집은 4층에 있었다. 옆집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빈집이었기에 안 그래도 조용한 아파트는 더 조용했다.


“어디까지 가세요? 눌러드릴게요.”

“맨 위.”

“20층이요? 우와, 20층에 사시는 분은 처음 봐요. 거기 어때요?”


20층은 로열층이다. 한 층의 4 가구가 있는 아파트에서 20층은 1 가구만 살았다. 수명이 알기론 오른쪽은 집이고, 다른 쪽은 다른 용도로 쓴다고 했다. 게다가 옥상까지 20층 소유라고 했다. 처음 여기 이사 왔을 때 입구라도 구경하고 싶어 20층을 눌러보았지만, 그때는 눌러지지도 않았었다. 안면인식을 하나? 20층 집주인이 타니, 버튼이 눌러졌다.


“글쎄,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 그냥 그래.”

“그래요? 그래도 좋은 곳이겠죠?”

“모르지. 나도 가보는 건 처음이니까.”

“오늘 처음 가보세요? 그렇구나. 혹시 저랑 친해질까요?”

“왜?”

“거기 가보고 싶어서요.”


해맑은 수명과는 달리 그의 표정은 무섭도록 차가워졌다. 그는 수명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호통을 치듯이 단호하고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돼.”

“네? 아, 네. 안되는구나. 죄, 죄송해요. 제가 예의가 없었네요.”


수명은 어색한 공기를 풀려 사과했지만, 그의 표정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오늘따라 엘리베이터가 늦어지는 것 같다. 평소 5분이면 도착하던 4층이 그와 긴 대화를 하는 동안에도 도착하지 않았다. 괜히 마음이 전전긍긍해졌다. 그때 ‘띵’ 소리와 함께 4층에 도착했다. 이제 문만 열리면 어색한 자리를 피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대신 그가 물었다.


“사는 게 좋아?”

“네?”

그의 생뚱맞은 질문에 수명은 그를 돌아보았다. 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왜 눈 맞춤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때?”

“뭐, 싫지는 않아요. 힘들긴 하지만요.”


“그렇군. 그러면 다른 곳으로 이사 가. 이사하게 되더라도 4층은 가지 말고, 골목이 많은 곳은 피해서 가. 음, 조만간 누가 이사 오라고 할 거야. 군말 없이 그냥 가. 그리고 그 사람, 자네한테는 길인이야. 그만 투덕거리고 잘 지내봐.”

수명은 그의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했다. 무심결에 생각했던 것이 입 밖으로 나왔다.

“혹시 무속인이세요?”


수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웃었다. 웃는 모습이 인자한 할아버지같이 보였다. 한참 웃던 그는 수명을 바라보며 답했다.


“그랬지. 오래전에. 지금은 아니야.”

“그러시구나.”

“오늘, 날 태워줘서 고마워. 이건 거기에 따른 보답이야.”

“제가 뭐 한 것도 없는데요.”

“어서 가.”

그의 말이 끝나게 무섭게 열리지 않던 문이 열렸다. 수명은 닫힌 문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으며 집으로 들어왔다. 오늘이 너무 길었다.

“몇 시지?”

늘 그렇듯 바지 뒤쪽에 있을 핸드폰을 찾았다. 그런데 없었다. 다급하게 문을 나와 바닥을 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있나 싶어 버튼을 누르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4’라는 빨간 숫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막 열리던 문 안쪽에 수명의 핸드폰이 보였다. 서둘러 들어가 핸드폰 줍고 고개를 들었다. 벽마다 걸린 거울로 인해 수명의 모습이 끝없이 이어졌다. 깨닫는 순간 수명은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조금 전 검은 우산 그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않으려는 발을 겨우 움직여 집에 들어왔다.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잔 건지 만 건지 피곤한 몸으로 출근했다. 어젯밤 그와의 대화가 꿈일 거로 생각했다. 꿈이라고 인정하기 위해 20층을 눌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20층 버튼이 없었다. 1년 동안 분명히 있었다. 잘못 본 거로 생각하며 우편함을 확인했다. 역시 20층은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일까? 수명의 기억이 잘못된 걸까? 그와 대화를 나누지 말아야 했나? 별별 생각을 다 하며 출근했다.

그날 이후 비는 오지 않았다. 어쩌다 비가 오는 날에도 검은 우산은 다시 보지 못했다. 캄캄한 골목은 피했다. 가능한 큰길로 나갔고, 늦어지면 콜택시를 불러 집으로 왔다. 얼마 후 회사 회식이 있었다.

“저번에 우리 집 2층이 비면 말해 달라고 했지? 신혼부부가 갑자기 이사 간다고 하네. 수명 씨가 올래? 시세는 좀 올랐지만, 신혼부부하고 똑같이 받을게.”


수명은 검은 우산 그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의 존재가 미스터리였지만, 수명은 그가 시키는 대로 바로 수락했다. 아직 임대 기간이 남았지만, 더 이상 이상한 아파트에서 살고 싶지 않아 졌기 때문이었다. 주인 할머니한테 어떻게 말하나 싶었는데, 그날 저녁 먼저 전화가 왔다. 외국에 나가 있는 딸이 갑자기 들어오게 됐다며 나가 줄 수 있냐고 말이다.


우연의 일치는 이것만 있지 않았다. 집을 소개한 사람이 길인이라고 하던 말도 맞았다. 이 대리와 점차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수명에게 좋은 일만 생겼다. 이 대리가 소개해 준 여인은 아내가 되었고, 건강한 두 아이와 특별하지 않았지만, 행복했다. 어느새 검은 우산 그는 기억에서 잊혔다. 그를 다시 본 건 ‘만신’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였다. 그는 실존 인물이었다. 단지 조선 시대에 있었던 만신이었다. 양반 출신이었지만, 박수가 되었고, 신분 구분 없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마지막까지 가난했다고 했다. 그의 마지막은 자주 찾던 작은 암자였다. 그 암자는 현재 꽤 큰 절이 되어 있었다.


수명은 그 절을 찾아갔다. 그의 이름은 김 아무개라고 했다. 태어나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을 버린 그는 누가 물으면 아무개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죽음을 함께 해준 스님은 아무개 앞에 자신의 성을 주었다고 했다. 그렇게 검은 우산 그는 김 아무개로 죽었다.

평생 신앙을 가져 본 적이 없는 수명이었지만, 그를 위해 부처님 앞에 빌었다. 안내해 준 스님에게 절하는 법을 배워 이따금 찾아와 김 아무개 만신을 위해 그의 평안을 빌었다.

ChatGPT(어두운 골목, 불빛도 없는 깜깜한 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 속을 걷는 우산 쓴 남자와 그 뒤를 따라가는 검은 우산을 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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