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_주제 아이
“당신은 몇 살 때까지 기억하시나요?”
혹시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중학교 때쯤 문득 천장에 매달린 전등줄이 왔다 갔다 하는 장면이 스쳤다. 커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내 기억이 맞는지 의문스럽던 이 기억은 결혼 10년 차, 친정 방문에서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큰 아이가 6살, 작은 아이가 4살 때 맡길 곳이 없어서 일하는 곳에 데리고 다녔다. 당시 구내식당 전처리 작업자로 일하고 있었다. 회사 직속이 아니었기에 쉼터도 따로 없었다. 본사 직원 휴게실에서 같이 보냈는데, 거기에 있기 무섭다고 작업장으로 따라왔다. 바쁜 식당에서 둘 곳 없는 아이들은 냉장고와 냉장고 틈 사이에 앉아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이는 그때가 재밌었는지 외할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친정 엄마는 아이 말을 듣고, 옛날이야기를 해줬다.
아이가 셋이던 엄마는 언니는 학원에 맡기고, 막내는 너무 어려 업고 일했다고 했다. 아이가 엄마는 어디에 있었냐는 물음에 친정 엄마는 방에 두었다고 했다. 불 켜진 방에 누워 울지도 않고, 친정엄마가 올 때까지 있었다며 그때는 내가 말 못 하는 아이인 줄 알았단다. 태어나 울고 나서 거의 울지 않았다며 잘 때도 살아있나 코에 손을 대보기도 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확신했다. 매일 보던 전등줄이 실제 경험한 기억이라는 것을.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매일 보는 전등줄의 흔들림은 늘 그렇게 흔들렸을까? 아니면 기억처럼 움직임 없는 모습일까? 나의 아이에게는 같은 기억을 주고 싶지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아이에게도 같은 기억을 주었다.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보면서 고작 근처에 있는 엄마가 있어서 무섭지 않았노라 말하는 걸 보며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또한 그때 아이였던 나는 무섭지는 않았는지 궁금하다.
아이
나이가 어린 사람
남에게 자기 자식을 낮추어 이르는 말
아직 태어나지 않았거나 막 태어난 아기
어른이 아닌 제삼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낮잡아 이르는 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