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마름=아름다움’이라 생각했다. 학교 축제에서 소녀시대의 컬러 스키니진을 입고 원더걸스의 Tell me를 췄던 시절부터 다이어트는 나와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중고등학생 때는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 생각했다. 초등학생 때는 통통한 매력을 가진 소녀였지만 키가 크면서 홀쭉해졌다. 전에는 듣지 못했던 예쁘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다. 이 말이 족쇄가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더 예뻐지기 위해 노력했다. 급식은 한 숟갈만 먹고 큰 물통을 챙겨 다니며 물배를 채웠다. 야자시간이 끝나면 교복 치마 속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뛰어서 헬스장에 갔다. 30분이라도 운동을 하고 자야 오늘의 할 일을 끝냈다고 믿었다. 배고프게 잠들 때면 희열을 느꼈다. 아침에 일어나서 쏙 들어간 배를 보며 만족했다. 예쁜 이미지의 승무원이 되고 싶어 항공서비스학을 전공했다. 무리한 다이어트 때문에 정작 대학교 가서는 살이 빠지지도 않고 최고 몸무게를 찍었다.
입학을 하고 보니 한 달을 굶어도 될 수 없을 것 같은 가냘픈 친구들이 많았다. 화려한 장미와 우아한 백합 사이에서 큰 존재감을 내는 해바라기 한 송이처럼 나의 대학생활은 시작되었다. 해바라기같이 밝은 성격으로 친구들과는 두루두루 친했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말라야 예쁜데 마르지 않으니깐 스스로를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끔찍한 생각을 꽤 오랫동안 했는데 이유는 딱 하나였다. 살이 쪘다는 이유만으로 어딜 가든 만만한 취급을 받았다. 일화는 많지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내 뒷자리에 앉은 남자 동기가 “하늘아 살 좀 빼라 등에 살이 어우~.”라고 말하며 낄낄거렸다. 지금은 “이게 미쳤나!” 하며 욕을 한 바가지를 아니 한 바가지도 아쉽다. 열세 바가지 정도로 퍼부으며 말로 때려 줄 수 있지만 그때의 나는 애써 웃어넘겼다. 그 뒤로는 어깨를 한껏 접고 다녔다. 잘 못한 게 없는데 살이 쪘다는 이유만으로 죄인처럼 행동했다. 나조차도 ‘그래, 나는 성격이라도 좋아야지.’ , ‘성적이라도 좋아야지.’ 하며 노력했다. 노력해서 얻은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그런 순간들이 지우개처럼 내가 받은 모욕의 상처를 지워주기도 했다.
살을 빼려는 노력을 안 한 건 아니었다. 운동으로 한 달 만에 7킬로를 감량해 보고, 21일을 물만 마시면서 버티기도 했다. 그렇지만 빼면 무섭게 요요가 왔고 폭식증과 우울증도 동반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고 아무한테도 먹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숨어서 먹었다. 음식에 대한 집착이 심했고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몸과 마음은 늘 지쳤다. 젊은 날의 열정과 의지를 살을 빼는 데 썼다는 게 참 아쉽다.
답을 알기에 정답을 고를 수 있지만 다른 것들이 오답임을 확실히 아는 것도 중요하다. 오답을 알기 때문에 정답을 고를 수도 있다. 지금의 내가 그렇다. 건강해지기 위해 하면 안 될 것들을 알고 있고 해야 하는 것을 하려고 노력하니 말이다.
최악의 오답은 식욕억제제를 복용하는 것이다. 폭식증과 무기력으로 인해 처방받은 식욕억제제를 남용했다. 처음에는 식욕이 없어 먹지를 않으니 살이 잘 빠지고 의욕이 생겨서 운동도 했다. 심장이 빨리 뛰고 식은땀이 나고 말할 때 단어가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이미 다이어트에 미쳐있는 상태라 더 미칠 게 없었다. 마약류로 지정된 약품이라 신중하게 복용하고 함부로 약을 끊어서도 안되는데 손이 너무 떨려서 내 맘대로 약을 중단했다. 그래서 그 후 3년을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고생했다. 서서히 나아졌지만 때때로 자기혐오에 빠져서 거울 속의 내 얼굴과 살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칼로 도려내고 싶었다. 상황이 안 좋아지거나 어그러질 때마다 아무 근거도 없이 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20대는 행복한 기억도 많지만 그만큼 엉망이기도 했다. 초등학생 때 우리 학교는 나무 책상을 썼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책상에는 누군가 볼펜으로 새긴 낙서와 칼로 벅벅 긁어낸 상처가 있다. 연필로 쓴 낙서는 지우개로 금방 지울 수 있다. 볼펜자국도 아세톤만 있으면 해결된다. 문제는 칼로 긁어서 만든 상처이다. 내가 나에게 한 말들은 칼이 되어 나무 책상 위에 낙서처럼 나의 몸과 마음에 새겨졌다. 상처투성이라는 사실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한동안 상처를 방치했고 어쩌면 스스로더 깊은 상처를 냈다. 상처를 직면하고 그 아픔을 내려놓기 위해서 명상을 하고 심리학 책을 읽었다. 천천히 사포질을 하듯이 그렇게 상처를 갈아냈다. 나에게 좋은 말을 해주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의 대부분은 나를 위한 위로와 칭찬이다. 글을 쓰며 생기를 되찾았다.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니스 칠을 하고 또 하면서 나는 그렇게 반짝여갔다.
영어강사로 일하면서 어린 학생들 입에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그 학생들이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할리는 없다.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미디어와 타인의 무례한 말 때문이라 생각한다. 여자는 예뻐야 한다는 말이 지나치게 촌스럽게 들리는 요즘이다. 지난 8년 동안 美에 미친 삶을 살았다. 미친 채로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 천천히 맨얼굴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한동안 화장을 하지 않고 다녔다. 옷도 사지 않았다. 메이크업 영상 대신 영화를 보았고 옷을 사려던 돈으로 무엇이든 배웠다.
그래도 외모에 대한 강박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아직도 화장을 하고 휴대폰에는 인터넷 쇼핑몰 앱이 가득하다. 분명한 건 꾸며진 나도 나지만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나도 나다. 나의 가치는 외모로 평가될 수 없고 나도 남들을 외모로 평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외모에 대한 칭찬도 때로는 독이 될 수 있기에 다양한 매력을 발견하고 칭찬하려 한다. 나 혼자의 노력이 아니기를 바라며 글을 쓴다.
내가 생각하는 美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이란 이상에 속지 말자. 하이힐에서 내려오면 그만인 신기루를 쫓지 말자. 밥 한번 먹으면 사라지는 행복을 위해 고생하지 말자. 장미든 백합이든 해바라기든 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거지. 꽃은 예쁘기 위해서 피는 게 아니다. 그냥 피는 거지. 그러니 그냥 생긴 대로 살자. 그리고 그것을 존중하자. 이 다짐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며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자 누군가에는 위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