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얼린 버터

나를 청소하는 법

by 글은늘


갑자기 불현듯 찾아오는 불안이 내 머릿속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크고 작은 태풍이 휩쓸고 간 자리는 뜻하지 않게 나를 당황시키고 비참하게 만든다. 어쩔 때는 쓰레기더미가 너무 많이 나와서 치울 엄두가 안 난다. 그렇게 케케묵은 쓰레기에서 악취가 올라온다. 청소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비워낸다. 그렇게 몇 번이고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청소기를 돌린다. 먼지투성이인 모습 그대로 화장실에 가서 샤워를 한다. 우울은 수용성이라 물에 잘 씻겨 내려간다고 한다. 거품을 내어 깨끗하게 씻어내자. 때가 꼬질꼬질하게 찌든 불안도 세면대로 가지고가 비누를 묻혀 박박 씻어낸다. 불안의 멱살을 잡고 손에 힘을 주어 비빈다. 찌든 때가 빠지는 것을 보면 마음도 개운하다. 물방울이 떨어지지 않을 때까지 꽉 짜내어 마음의 습기를 닦아낸다.


혼란스럽게 엉킨 머리를 빗으로 빗어내고 차분하게 책상에 앉는다. 컴퓨터를 켜고 나를 깨끗하게 해 주었던 거품처럼 하얀 바탕에 들어가 자판을 두드린다. 화면에 검정 글씨가 가득할수록 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까맸던 불안은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낸다.



존재감을 드러낸 불안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불안’이란, 먹구름 속에 가려진 뿌연 그림자 같은 게 아닐까. 그 알 수 없는 뒤숭숭함에 떨게 되는 것이 불안이라는 감정일 것이다.





마음에 새카맣게 먼지가 쌓이면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자. 어느 정도 정돈된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쓸 게 보인다. 그것을 글로 써내면 불안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윤곽만 드러나도 겁을 먹지 않게 된다. 불안의 이유를 점점 뚜렷하게 만드는 과정은 시간과 힘이 든다. 먹구름 같은 불안은 나를 해칠 수 없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 써내려 가면 점점 뾰죡해지는 이유를 마주하게 된다. 그 뾰죡함이 나를 아프게 했다는 걸 알면 생각보다 담담해진다.


‘이거였구나 나를 힘들게 한 게.’

원인이 보이면 해결방법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때도 있다. 당장 해결할 수 없더라도 머릿속 서랍 맨 밑칸에 넣어두자. 맘먹고 치우고 싶을 때, 힘이 나서 그것을 만만히 볼 수 있을 때 꺼내어 작살을 내자. 바닥 위에 산산조각 난 불안의 민낯을 바라보자. 뾰죡하긴 해도 힘이 약한 그것을 보고 있자니 허탈함이 든다.


실망스럽고 공허한 허탈함은 아니다. 기분 좋은 허탈함이다. 강하다고 생각한 상대보다 내가 강하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깐. 내 안에 뜨거운 태양이 발 끝부터 정수리까지 밀도 있게 차오른다. 그동안 어둡고 습했던 나를 빠짝 말려줄 고마운 태양이다.


누군가 나에게 행복했던 순간에 대해서 물었다. 행복했던 순간들이 별처럼 떠올랐다. 어두운 밤하늘에 손 닿을 수 없이 먼 행복이었다. 그 당시 나는 알 수 없는 불안으로 점철된 마음을 끌어안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다. 정작 손에 잡히지 않는 행복을 말하라니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칠흑 같은 내 안에 한 줄기의 빛이라도 들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차분히 청소를 했다. 지금은 몸도 마음도 개운하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 불안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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