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품어왔던 꿈을 잃어버렸을 때도 친구나 연인이 떠나갈 때도 마치 몸의 일부가 떼어지는 아픔을 느낀다. 반복되는 만남과 떠남을 겪지만 아직도 익숙지 않고 애달프다.
‘원래 줬다가 뺏는 게 더 나쁘고, 있다가 없으면 허전한 게 당연하다!’
없어도 없는 대로 잘 살 수 있는데 무엇인가 내게 주어지면 마음을 홀랑 뺏기고 만다. 그게 사람이든 사물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목표일지라도 기어코 욕심을 내고 만다.
사소한 것에도 정을 듬뿍 주나 보다. 작은 상실에도 마음이 까질 듯이 아프다. 손톱 옆에 거스러미가 어쩔 때는 더 아프고 성가신 것처럼. 차라리 마음이 무뎌져서 이런 고통을 겪지 않고 싶다. 하지만 이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서 억지로라도 머릿속에 새로운 길을 내야 한다. ‘상실’이라는 글자에서부터 벌써 슬픔이 뚝뚝 흘러내리는 것만 같다. 이별의 다른 말은 새로운 만남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상실이란 단어를 어떤 말로 바꿀 수 있을까. 생각보다 잘 떠오르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망연자실한 모습이 그려지고, 심지어 내가 잃어버린 게 아니라 누군가 나의 것을 앗아간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상태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만 같다. 너무 칙칙해서 내 스타일이 아니다.
칙칙함을 좀 더 산뜻하게 바꿔보자!
‘비움’이 좋겠다. 비운다는 것은 채울 수 있다는 걸 암시하니깐.
채우려면 비워야 하는 게 순서라는 것은 최근에 옷장을 정리하면서 느꼈다. 좋아했지만 지금은 손이 가지 않는 옷들도 다시 한번 입어보고, 안 입는 옷들은 과감히 떠나보냈다. 옷장 속에 여유가 생겼고 내가 입고 싶고 입을 옷들로만 채웠다. 누가 내 옷을 뺏어간 게 아니라 옷이 나를 떠난 게 아니라. 내가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비웠다. 그래서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상실을 했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면 상실할 것조차 없다. 내게 잠시라도 주어졌던 것을 소중히 생각하자. 그것들로부터 행복했고 많이 웃었다. 그동안 잘 만끽했으면 됐다. 고맙게 생각하자. 이렇게 생각하면서 슬픔을 비워내니까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쓸모없는 것들을 비워내니 그제야 소중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누가 내 눈을 가린 것도 아닌데 왜 못 봤을까. 욕심에 눈이 멀어 어리석었다. 이렇게 가진 게 많아서 잃을 것도 많았나 보다. 일단 잠시동안은 이런 여유를 즐기고 싶다. 소중한 것들로만, 아끼는 것들로만 채워놓으니 바랄 게 없다. 만약에 무엇인가 또 욕심이 난다면 그때는 신중하게 고민을 해야겠다. 쓸모없는 것은 이제 내 안에 들일 순 없다. 난 이미 가진 게 많고 부자니깐 괜찮다. 생각만으로 통장잔고와는 상관없이 마음이 두둑해진다.
나를 떠나가는 것들을 사랑하느라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를 잃지만 말자. 쓰레기를 비워내듯 슬픔도 아픔도 쿨하게 비우자. 슬퍼만 하기엔 시간이 아깝다. 좀만 둘러봐도 손에 잡히는 행복을 만끽하면서 살아야지.
이제 나를 사랑으로 채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