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얼린 버터

나의 oh답노트

by 글은늘



고등학생 때 모의고사를 보면 시험지와 보라색펜을 가지고 도서관으로 갔다. 내가 좋아하는 오른쪽 큰 책상 두 번째 자리에 앉아 머리를 질끈 묶고 하루종일 오답노트를 썼다. 처음에는 모르는 게 많아서 모르는 걸 알아가는 즐거움에 신나게 썼다. 성적이 오르자 욕심이 나서 어느 것 하나 틀리고 싶지 않았다. 모르는 걸 알 때까지 집요하게 오답노트를 쓰는 것에 심취했다. 아니 집착했다. 대학교에 가서도 시험이 끝나면 맞은 문제보다는 틀린 문제를 보며 아쉬워했다. 잘하고 싶은 욕심과 불안감에 책의 작은 부분조차 외우며 밤을 새웠다. 그래도 학교 시험은 범위와 유형이 정해져 있어 공부를 하면 어느 정도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반면 인생은 변수와 경우의 수가 너무나 많다. 부딪히고 깨져보니 알겠다. 세상은 매일 새롭게 변화하고 있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걸. 우주의 먼지와 같은 나는 실수와 실패를 피할 수 없다.


매일 실수와 실패를 돋보기로 보니깐 작은 것도 크게 느껴졌다.

그림자가 실체보다 크게 드리울 때가 있듯이 막연한 두려움이 내 안에 드리웠다. ‘나는 부족해. 그래서 더 노력해야 해!’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서 중요하지 않은 일도 애를 썼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타인의 비난과 부정적인 평가에도 쉽게 흔들렸다. 99도의 물에서 1도만 높아져도 화르륵 끓어버리는 것처럼. 열정적으로 산 것 같지만 애태우며 살았단 걸 요즘 느낀다.


내게도 좋은 점이 있는데 이런 점들은 망원경으로 멀리 보니깐 체감되지 않았다.


잘하고 싶었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성장의 동력은 자신감이지 자책감은 아니었나 보다. 처음 오답노트를 쓸 때는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긍정하며 공부했다. 마음이 편했고 시험을 보는 게 두렵거나 긴장되지 않았다. 점점 욕심과 불안은 채찍이 되었고 유리같은 내면은 깨지고 말았다.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줘야 했는데 무식하게 채찍만 휘둘렀구나. 도전을 하다 보니 실수가 생기고 실패도 하는 건데 큰일이 난 듯 호들갑을 떨었다. 약한 나를 자책하기도 했지만 이런 습관이 굳어져서 쉽게 민감해지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누군가는 실수와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과정이라 말한다. 나도 실수와 실패를 재정의하고 재해석하는 게 필요하다 느꼈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 쓰면서 그때의 수치심과 불안을 희석시키고 있다. 과거의 부정적인 기억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쓰다 보면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했구나, 이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구나.’ 하며 나를 위로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경험으로 인해 배운 게 하나씩은 있다. 그걸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생의 강적을 만나더라도 강력한 한방은 아니지만 여러 번 쨉을 날릴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오답에 집중하느라 놓쳤던 나의 정답들을 의식적으로 살펴야겠다. 감사한 일, 칭찬받았던 일, 스스로 뿌듯했던 일을 기억하려 한다. 좋은 점은 현미경으로 봐야지.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면밀히 봐야겠다.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칭찬을 해주는 일이 지금 나에게는 필요하다. 이렇게 글로 써서 공표하다 보면 나도 언젠가 알겠지.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눈에 보이는 걸 믿고 의심하지 말아야겠다.


매번 문제가 생기면 오답노트부터 꺼내 들었다. 나의 실수를 꼬집어내는 내가 어쩐지 냉철한 교수님처럼 멋져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교수님이랑은 가까워지기 싫다. 내가 나를 그대로 볼 수 있도록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져야겠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정답을 갈망했다. 누굴 위한 정답인지도 모르겠다. 백지와 같은 인생을 스스로 채워가면 되는 건데. 사회가 정한 틀에 맞춰 다섯 개의 보기 중 하나만 고르려 했다. OX로 쉽게 판가름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며 답을 맞히려 했다. 답을 꼭 내야 하는 것일까? 풀기 싫으면 풀지 않아도 되는 건데 틀리면 큰 일이 나는 것처럼 살았다. 하마터면 다른 사람의 평가에 신경 쓰고 사회가 정한 채점기준에 맞춰 살 뻔했다.



세상은 나에게 어떤 행복과 어떤 불행을 던진다. 그때마다 행복은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처럼 대충 접어 가방 속에 넣는다. 하지만 불행은 물이 가득 든 유리잔처럼 여겼다. 가방 속에 넣을 수 없고 계속 들다 보면 무겁게 느껴진다. 물이 흘릴세라 유리잔만 쳐다보며 조심조심 한 걸음씩 걸어왔다. 이게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이라면 이제 유리잔을 내려놓을 때다. 구겨진 행복을 꺼내어 살펴봐야겠다. 거기에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관점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나만의 기준에 맞춰 백지를 나답게 채워가야지. 관점을 바꾸니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아님을 알았다.




이제 오답은 더 이상 오답이 아니다.

오답이 oh! 답이 되도록 나만의 oh답노트를 계속 써내려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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