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가 개명을 했다. 30년을 한 이름으로 살았으니 새롭게 바뀐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도 좋아 보였다. 그러면서 나도 만약 개명을 한다면 뭘로 바꾸는 게 좋을까를 생각해 보았지만 정말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때 내 이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내 이름은 ‘하늘처럼 맑고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자라라’는 뜻이다.
중성적인 이 이름을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마음에 안 들어한 적이 없다. 그만큼 내 이름을 좋아한다.
자기애가 좀 과해진 건지 요즘 하늘색이 좋아졌다. 핸드폰 배경화면도 하늘색으로 바꿨다. 작년에 하늘색셔츠가 유행이었는데도 사지 않았지만 올해는 너무 예뻐 보여서 안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졸라 생일선물로 하늘색 셔츠를 받았다. 생일 당일에 짠 하고 입고 싶어서 비 오는 날 서울까지 가서 잘 어울릴 것 같은 바지를 샀다. 그 정도로 난 하늘색셔츠에 진심이었다. 대망의 생일날 출근길을 나서기 전에 현관에 있는 거울을 보고 내 모습이 맘에 들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고선 “오늘 하늘 참 예쁘다.” 는 말이 튀어나왔다. 내뱉고 나서 중의적 의미로 해석이 돼서 혼자 좀 웃겼다.
공주병 말기 환자라 해도 할 말이 없는 하루였다.
하지만 왜 그렇게 하늘색 셔츠에 진심이었을까를 생각해 보니 나답게 살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렇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그동안 상대의 눈치를 보며 날 바꾸어 갔다.
이 글은 아마도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처럼.
이어지는 글이 될 예정이다. 하늘이란 이름을 생각하다 보니 하늘색이 떠올랐고 하늘색을 떠올리다 보니 하늘색셔츠가 아른거렸다. 하늘색셔츠를 왜 그렇게 원했는지 마음을 들여다보니 나로 살고 싶어서였다. 어쨌든 내 정체성은 ‘하늘’을 빼놓고서는 말할 수 없으니깐.
그래서 다음 글의 주제는 하늘색셔츠이다.
‘하늘’이란 단어가 너무 많이 나오지만 식상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난 아직도 여전히 길거리에서 ‘하늘서점’, ‘하늘문구’라는 간판만 봐도 심장이 두근댄다. 하늘에 미친 사람이라 생각해도 좋다. 나를 잃어버린 적이 있기에 이제는 더더욱 악착같이 꼭 붙들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