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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하늘 Apr 23. 2024

어깨의 힘을 푸는 법



어느 순간, 어깨의 힘이 잔뜩 들어가서 글이 써지지 않았다. 썼다 지웠다 하며 글을 손에 쥐고 주물럭거리느라 글이 떡이 진다. 자꾸 들여다봐서 애정은 있지만 게시하기엔 추접한 글이라 나만 볼 수 있는 메모장에 가뒀다.


잘 쓰려는 마음을 버리고 그냥 쓰려해도 좀처럼 힘이 풀리지 않아 ‘에라, 모르겠다.’ 하고 놀았다. 누가 나보고 글을 쓰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묘하게 부채감을 느끼며 괴로워하다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내려놓으면 뭔가 다른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줄 알았는데 웃기게도 메모장을 더욱 들락날락거리며 글을 썼다. 모순된 상황에 웃음이 나왔다.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이 종종 있었던 것 같다. 잘하려고 하면 어그러지는 소개팅처럼 어깨의 힘을 푸는 법은 어렵다. 그러나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할만하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니깐 스물다섯 살에 처음 소개팅을 했다. 그날 나는 이상형을 만났다. 반달모양으로 눈웃음을 지으며 인사하는 그에게 반해버렸다. 너무 떨려서 3초에 한 번씩 앞머리를 정돈하며 난리블루스를 쳤다. 카페에서 빙수를 먹으면서도 숟가락에 비친 내 모습을 힐끔힐끔 바라봤다. 심지어 얼굴은 거꾸로에 오이같이 보였지만 그거라도 봐야 안심이 되었다. 그날 입에게도 자아가 있다는 걸 알았다. 머리로는 '제발!! 그만 말해!!'를 외쳤지만 내 입은 개의치 않고 떠들어댔다. 망했음을 직감했지만 되돌리는 법은 더더욱 모르겠어서 그냥 흐름에 날 맡겼다.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를 구구절절 떠들어 대면서 '아 이러면 없어 보이는구나'를 실시간으로 느꼈다.

결과는 망했다. 그래도 얻은 건 있었다. 나는 그날 나와 소개팅을 했다는 걸 알았다. 상대를 들여다보고 상황을 즐길 줄 몰랐다. 상대가 날 어떻게 볼까에 초점을 맞추느라 앞머리가 이상하진 않은지, 이에 뭐가 끼진 않았는지, 방금 내 웃음소리가 이상한 지 않았는 지를 살피다 끝이 났다. 정말 잘하고 싶을수록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는 남이 보는 '나'를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음식을 즐기고, 이야기의 내용에 빠져들면서 나의 앞머리는 더 이상 떡이 지지 않았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을 덜어내고 나를 너무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험이 들어가되 글을 읽는 누군가도 자신의 경험을 떠올릴 수 있도록 틈을 보여주며 서로 다른 시공간에 있지만 같은 마음으로 글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글의 매력이다.

끌리는 사람이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듯이 이제 어깨의 힘을 풀고 틈을 보여주려 한다. 한번 글을 쓰면 3시간 이상이 걸렸다. 글에 어울리는 사진을 찾고 더 나은 표현을 찾기 위해 수정을 거듭했다. 글쓰기가 노동이 되는 순간 힘이 풀기 어려워졌다. 필요한 노력은 맞지만 너무 잘 쓰려 애쓰지 않아도 쓸 수 있고 긴장하지 않고 즐기면서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망해보니깐 알게 된 것들이라 이제 망가지는 게 두렵지 않다. 마구마구 망가지고 구겨져봐야 힘을 빼고 시작하는 법을 배우게 되니 말이다.

글이 떡이 되든 보송하든 남의 시선을 너무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하리라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을 즐기리라 다짐하는 밤이다.





공백포함1557자#별별챌린지#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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