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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하늘 Apr 24. 2024

강아지똥이 아니어도 괜찮아



초등학교 3학년 때 학예회에서 동화 ‘강아지똥’을 주제로 동화구연을 했다. 나름 치열한 오디션을 뚫고 올라온 2명 중에 한 명은 강아지똥을 맡고 또 다른 한 명은 참새, 흙, 민들레 등의 역할을 맡아야 했다. 담당 선생님께서 나와 친구에게 어떤 역할을 하고 싶냐고 물으셨다. 제목부터 강아지똥인데 당연히 강아지똥을 해야지 생각하면서도 뭔가 단도직입적으로 주인공을 맡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10살의 이상한 부끄러움 때문에 민들레역할을 맡고 싶다고 했다. 친구는 아무 고민 없이 바로 “전 강아지똥이요!”라고 했다. 친구가 말하자마자 아차 싶었다.


‘아, 내가 먼저 말할걸..’


무대에 오르기까지 방과 후에 남아서 친구와 함께 호흡을 맞추고 집에서도 부지런히 연습했다. 처음 며칠은 묘하게 주인공을 뺏긴 것 같은 느낌에 기분이 상했다. 사실 뺏긴 적도 없지만 누구의 대사가 더 많은 지 일일이 셀 정도로 질투가 났다. 그러다 주인공만큼 멋있는 참새, 흙, 민들레가 되겠다며 대본에 깨알 같은 글씨로 각각의 캐릭터를 분석해 나갔다. 강아지똥을 보고 더럽다며 타박하는 참새는 고음에 얄미운 말투로, 흙은 강아지똥을 깔보다가 나중에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역할이기에 자신감 넘치지만 따듯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민들레는 여리지만 말투에는 강인함이 묻어 나올 수 있도록 연기를 했다.


강아지똥 역할의 맡은 친구의 연기도 훌륭했다. 자신이 똥이라는 걸 알고 슬퍼할 때는 마음이 짠해졌다. 그러다 거름이 되어 민들레씨앗을 꽃피울 때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미소가 지어졌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어두운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으며 마이크를 통해 전해지는 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짜릿했다. 친구와 함께 주거니 받거니 능청스럽게 대사를 이어 나가며 무대를 마쳤다. 어쩌면 강아지똥이 빛날 수 있도록 받쳐주는 역할을 맡았지만 동화의 주제처럼 ‘쓸모없는 것은 없다’는 교훈을 느끼게 된 날이었다.



사실 어렸을 때는 동화가 주는 교훈보다는 가지지 못한 아쉬움이 커서 그 뒤로는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눈치 보지 않고 기회를 얻어내는 당돌한 어린이가 되었다. 반장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라는 말에 망설임 없이 손을 번쩍 들어 반장을 맡기도 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질문을 해서 답을 얻어냈다. 그렇게 원하는 게 있으면 두드리면 다 열리는 줄 알았다. 취업에 실패하고 배신당하고 짝사랑은 짝사랑으로만 남겨두는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커보니 조명이 닿지 않은 무대 뒤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내 인생에서 조차 주인공될 수 없음에 실망했고 초라한 내가 미웠다.


그래도 그런 시간을 보낸 덕분에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법, 나를 소중히 대하지 않는 사람을 알아보는 법, 호감을 주는 사람이 되어 사랑을 쟁취할 수 있었다. 주인공에게도 시련은 늘 있었고 방해하는 악역도 존재한다. 시련을 이겨내며 성장하는 모습이 빛나보였던 것이다. 어릴 때는 멋모르고 그 빛남을 갈망했다. 뒤에 있는 어둠을 모르고.  


세 번의 열 살을 보내고 나니 어둠이 있어야 빛이 더욱 밝을 수 있다는 걸 안다. 쓸모없어 보였던 강아지똥이 민들레씨앗을 꽃피운 것처럼 어디서든 나의 몫을 다하며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강아지똥이 아니라 얄미운 새였다가 든든한 흙이었다가 다정한 민들레가 되었던 그날도 알았을 것이다. 무대 위와 무대 뒤는 몇 걸음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사진출처: watcha 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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