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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하늘 Apr 25. 2024

나는 작가

“나 나는솔로 나가려고!”



지난여름 갑자기 삘이 꽂혔다. ‘나는 솔로’라는 연애프로그램에 나가야겠다고. 그 당시 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사랑’이었다. 엄청난 사랑꾼이 할 법한 말이지만 나에게는 글을 잔뜩 써 내려가고 싶은 소재였다. 남의 사랑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재밌어서 연애 중이거나 결혼을 한 친구를 만나면 ‘너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물어보았다. 다들 처음에는 오글거린다며 머뭇하면서도 묵직하게 자신의 진심을 뱉었다. 자신만의 사랑의 정의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게 멋있었다.


나도 그런 사랑을 찾고 싶었다. 책과 영화에서 말하는 사랑을 모으고 적극적으로 인연을 만들었다. 그렇게 찾은 누군가와 만나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 법한 행동을 하며 사랑을 알아갔다.


‘사랑의 모양은 다양하다.’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사람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고 느끼는 것에도 차이가 있었다. 나는 어떤 모양을 가졌는지 세심히 살펴보고 나와 맞는 조각을 찾는다면 알아볼 수 있도록 글로 남겨두었다. 어느덧 사랑에 대한 메모가 4000개가 넘어 이 정도면 어디 가서 사랑꾼이라고 콧방귀 좀 뀌어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솔로에 지원했다. 이 프로그램 애청자여서 출연하면 재밌을 것 같았고 날 것 그대로인 방송에서 날 드러내고 객관적으로 보고 싶었다. 특히 데프콘 씨가 촌철살인으로 출연자에 대해서 말하는데 나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지 궁금했다. 거기서 좋은 인연을 만나면 좋지만 아니어도 좋은 글감이 될 수 있겠다 싶어 과감히 신청메일을 보냈다.


답장과 함께 지원서를 받는데 지원서에는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 지에 대한 질문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결혼생각보다는 연애를 더 많이 하고 싶어 지원했기에 뚜렷한 결혼관이 없었다. 그래도 결혼을 하게 된다면 긍정적이고 친구처럼 편안하고 재밌는 사람과 하고 싶었다. 외적으로는 웃을 때 예쁜 사람이었고 이런 사람은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이기도 했다.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친구들과 고르고 골라 예쁘게 나온 사진을 보내고 답장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은 후에 작가님과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고 면접날짜를 잡고 면접 보게 되었다. 티비에서만 보던 장소에서 피디님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 장면이 분명 방송으로 나올 걸 알고 최대한 예쁜 척을 하면서 성심껏 대답했다. 인터뷰 내내 너무 재밌었고 적극적으로 나를 어필하고 와서 잘 될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면접장소에서 나와 친구들을 만나 맥주를 마시며 후일담을 신나게 나누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받지도 않았는데 느낌이 왔다. ‘나 됐구나!’ 신호가 끊어지기 전에 얼른 밖에 나가 전화를 받았다. 합격소식에 전화기를 붙잡고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다. 나긋한 작가님의 목소리가 더욱 꿀처럼 달콤하게 들렸다.


며칠 뒤 촬영이라 나와 친구들은 난리가 났다. 예쁘게 나와야 한다며 같이 쇼핑을 가주는 친구, 본인의 아끼는 옷을 선뜻 빌려주겠다는 친구, 먼 촬영장소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친구, 방금 그 표정 예쁘다며 이대로 연습해 가라는 친구, 웃을 때 코로 “컹” 소리만은 내지 말라며 부탁하는 친구도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솔로 애청자인 언니에게 먼저 이야기를 했다. 내 이야기를 듣고 웃겨할 줄 알았는데 정색을 하며 나가지 말라고 했다. 미용실을 예약해 둔 터라 길게 이야기는 못하고 나가는데 나의 의견에 항상 딴지를 거는 가족이 미웠다. 언니가 안되면 부모님도 절대 설득이 안될 것 같아 미용실의자 앉아서 구구절절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반응은 냉랭했다. 가족들의 차가운 반응에 마음이 쓰여 앞머리가 생각보다 짧게 잘라졌는데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얼른 일을 마치고 집에 왔다. 분위기를 풀 겸 치킨을 시켰는데 엄마랑 언니는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했다. 어떻게 화두를 던질까 감을 잡지 못해서 조용히 치킨만 먹었다. 많은 말을 준비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방송에 나가면 좋은 반응만 있지 않을 것도 알고 있지만 마음먹은 일은 꼭 해내고 싶었다.


그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아 괜히 서러워서 발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앉아있는데 엄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생각을 좀 해봤냐고 방송에 나가면 좋은 점도 있지만 내 딸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안 좋은 소리 듣는 거 보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언니도 방송 나가면 평생 기록으로 남는 건데 자기도 애청자지만 너를 생각해서 못나게 하는 거라고 너 때문에 일이 눈에 안 들어와서 죽는 줄 알았다고 하는데 한껏 걱정스러운 표정이라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이 나왔다. 마음은 알지만 속상해서 입도 삐죽 콧물도 삐죽 나왔다.


엄마는 이제 그만 뚝하고 놀이공원티켓을 사줄 테니깐 친구들이랑 놀다 오라고 했다. 엄마 눈에는 내가 여즉 애기로 보이나 보다 싶으면서도 나를 걱정해 주는 게 내심 좋았다.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연하기엔 일주일 내내 마음이 편치 못할 것이 분명하다. 방송끝날 때까지 가족들이 전전긍긍하고 있을 게 보여서 포기하기로 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작가님께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하고 정말 죄송하다고 전화를 마쳤다. 이제 두 번의 기회는 없는 것 같아 아쉬웠지만 해볼만큼 해봤기에 후련했다.


콧물이 채 마르기 전에 얼른 메모장을 켜 글을 썼다.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일단 재밌는 글감이니 살리고 싶었다. 그럼에도 글을 바로 게시하지 못했던 이유는 사랑이 무엇인지 그때 당시 답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름의 노력은 했지만 별다른 수확이 없었기에 싹이 틀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여름이 다시 돌아오기 전에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 되어서야 알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나서 연애하고 결혼하는 게 사랑인 줄 알았다. 결승점만 보고 달리느라 미처 보지 못한 게 있다. 사랑에는 끝이 없고 과정뿐이라는 것을.


사랑의 흔적을 글로 남겨 두어 그때를 곱씹어보니 모든 순간이 좋았다. 달리는 동안 스치는 바람이 좋았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친구들의 응원은 배경음악이 되어 경쾌하게 내 귓가를 울렸다. 결승선이 내쪽으로 오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더욱 박차를 가했던 시간이었다. 가족들의 걱정이 처음에는 방해물로 여겨졌지만 그것도 나에 대한 사랑임을 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만 이미 배가 부르다.


사랑에 미쳐본 바로는 사랑하면 목적이 불분명해진다. 이유 없이 그냥 좋고 상대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고 자꾸 보고 싶고 걱정된다. 사랑은 계속되고 있었는데 코 앞에 두고 찾고 있었다. 그래도 시도하지 않았으면 못 느껴봤을 텐데 용기 내길 잘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뛰고 있다. 다만 함께 달릴 누군가를 만났다. 서로 각자의 시간에서 만들어온 사랑의 모양이 참 비슷하다. 모양만 견주어 봤을 뿐인데 그 사람의 지나온 시간이 보였다. 시간이 조각해 준 둥글고 고운 모양새가 마음에 든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사랑의 형태가 조금은 달라져 있기를 바란다. 서로의 빈 틈을 매만지고 채워주면서 기꺼이 달라지고 싶다.




글을 쓰면 연애프로그램에 나가지 않아도 사랑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사랑의 순간을 카메라처럼 글로 담아둘 수 있기에 나는 작가가 되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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