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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하늘 May 11. 2024

난 대학시절 눈썰미를 전공했단 사실



오늘은 주제은 바로 ‘눈썰미’이다.


눈썰미는 한 번 본 것이라도 그대로 해내는 재주이다. 왜 눈썰미라 부르는 것인지 찾아보니 보는 기관인 ‘눈’과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처리하는 능력인 ‘설미’가 만나 만들어진 순우리말이라 한다.


눈썰미가 있는 편이라 한번 본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한다. 그게 나의 생존전략이었다.


대학시절 우리 학과는 똥군기로 유명했다. 선배님을 만나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90도 인사를 박아야 했다. 혹시라도 못 알아보고 지나치면 연락해서 사과까지 해야 했다. 심지어 밥을 먹을 때에도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해야 해서 식판에 코 박고 밥을 먹었다.


오만가지 규율과 규칙이 있어 전공공부보다 열심히 했다. 단체생활을 위해 필요하고 납득이 가는 규칙도 있었지만 아닌 것들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살려면 따라야 했다. 인사로 선배들한테 안 털린 동기들이 없었다. 그래서 선배들을 놓칠세라 삼삼오오 모여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 학교 밖에서도 방심할 수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눈과 귀 역할을 해줬다.



그 와중에 난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혼자 잘 쏘다녔다. 맹수들이 도사리는 학교에서 신입생인 내가 활보할 수 있던 건 눈썰미 덕분이다. 학과 사무실에 가면 학과생 전원의 증명사진이 붙어있는데 사진 속 선배들을 매의 눈으로 꼼꼼히 스캔했다. 포샵이 심한 선배마저도 막상 마주치니 익은 얼굴이라 허리가 자동으로 숙여졌다.



동기들이랑 겹치는 수업이 별로 없었고 밥도 혼자 잘 먹고 다녔다. 도서관에 자주 가서 책 읽고 공부하고 자발적아싸를 하면서 행복했다. 난 행복했는데 어떤 선배는 내가 혼자 다닌다고 동기들한테 나 좀 챙겨주라고 했다. 혼나는 게 일상이었는데 챙김까지 받을 수 있었다.



또 이름을 기가 막히게 외운다. 후에 영어강사로 한 초등학교에서 2주 동안 영어캠프를 진행했다. 매 교시마다 반을 옮겨 다니며 수업해야 했는데 학생을 호명할 일이 잦았다. 그래서 “이쪽부터 한 명씩 이름을 알려줄래? 그럼 선생님이 외울게! “ 3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올망졸망 나를 바라보며 한 명씩 자기의 이름을 말했다.


다들 자기의 이름과 잘 어울리게 씩씩하게 , 수줍게 또는 귀엽게 대답했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어마어마하게 집중해서 외웠다. 누가 이름을 틀리게 부르면 어른이 되어도 속상한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속상한 학생이 한 명도 없게 싹 외워버렸다.

 

토끼 같은 눈으로 다들 자기 이름이 잘 불리기 기대하는데 그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괜히 생각 안 나는 척, 헷갈려하면 아이는 서운해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너 박땡땡이잖아~! 다 알아~선생님이 장난친 거야ㅋㅋ”하면 아이는 활짝 웃는다. 밀당하면서 마지막 한 명의 이름을 부르고 나면 아이들은 물개박수를 치고 좋아해 주었다. 좋은 분위기로 수업을 마칠 수 있었던 비법이 되었다.



카멜레온은 몸의 색을 바꾸고 하마는 큰 송곳니를 가진 것처럼 눈썰미는 나에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다.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 주는 이를 미워할 수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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