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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홍 Aug 27. 2021

매미의 시간 with 코로나 [제1화]

연홍 창작동화

(사진: EBS 지식채널 e)

(우리나라의 매미는 나무줄기 안 쪽에서 알로 태어나 긴 겨울을 지낸 뒤 애벌레로 부화한다. 땅 속으로 들어가 3~7년 정도 지낸 후, 땅 위로 올라와 탈피 끝에 드디어 날개 달린 어른 매미가 된다. 수컷 매미는 짧은 생애 동안 암컷을 향한 불타는 사랑의 노래로 여름을 뜨겁게 달군다.)


길고 긴 잠에서 깨어난 왕벚꽃 망울들이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초아가 사는 오래된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주차장의 경계를 따라 아름드리 왕벚나무가 줄지어 심겨 있었다. 자생지가 제주도인 왕벚나무는 아파트가 세워진 세월과 함께 어느덧 수령이 40년이 넘었다.

따뜻한 봄햇살이 며칠째 쏟아지자, 백년초를 물들인 쌀 튀밥 같은 꽃망울을 가지마다 방울방울 매단 왕벚나무의 마음이 바빠졌다. 준비 땅! 하는 시작 총소리와 함께 일제히 뛰쳐나가는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올 해도 어김없이 한날한시에 톡톡톡! 토도톡톡! 팝콘을 튀겨내듯 수천수만 송이의 꽃을 피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날이 밝았다.

칠이 벗겨진 낡은 건물들로 어둑했던 동네가 하룻밤 사이에 환한 꽃등을 일제히 켠 듯 환해졌다. 백 미터가 넘는 길 양쪽으로 겨우내 시커멓게 꽂아 놓은 나무토막 같았던 왕벚나무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둥실둥실 구름 같은 꽃송이들을 환하게 터트렸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멈춰버린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심장을 통통 다시 뛰게 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왕년에는 아파트 주민 자치회에서 주차장에 세워진 차들을 비우고 동네 벚꽃축제를 열기도 했었다. 하지만 전국 곳곳마다 별의꽃 축제가 요란하게 벌어지자,  단 하루라도 주차공간을 뺏길 수 없었던 주민들의 불편 민원도 해마다 늘어갔다. 그렇게 동네 사람들의 봄맞이 작은 벚꽃축제는 어느 해부턴가 슬며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작년까지만 해도 밤이 되면 입소문과 추억을 찾아 이웃 동네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왁자지껄 모여들어 밤이 새도록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곤 했었다.

어느덧 해를 넘긴 코로나19가 길어지자 떼를 지은 사람들의 물결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대신 마스크를 쓴 채 눈만 내놓은 사람들이 둘씩 혹은 혼자서 조용히 벚꽃 길을 따라 걷는 것이 눈에 띌 뿐이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초아는 개학을 했어도 학교에 가지 못 했다. 집에서 컴퓨터로 하는 개학식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단짝 친구였던 세현이가 멀리 땅끝마을로 이사 가는 바람에 마음이 더욱 뒤숭숭했다. 작년에 처음 집에서 컴퓨터 수업을 했을 때만 해도 꾀병을 부리지 않고도 학교를 빠질 수 있는 '기적 같은 날'이 왔다며 뛸 듯이 기뻤었다. 하지만 작은 회사에서 마케팅 상담을 하던 엄마가 집에서 근무하게 되자 초아에 대한 간섭이 날로 늘었다. 컴퓨터로 하는 수업은 친구들과 수다도 떨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질문도 마음껏 할 수 없어서 답답했다. 교실에서 수업할 때보다 집중도 안 되어 딴생각이 자꾸 올라왔다. 엄마의 잔소리가 귀찮아서 마지못해 재미없는 숙제를 꼬박꼬박 하는 기분이었다.


수업을 마친 초아는 답답증이 나서 현관 앞에 걸어둔 마스크를 귀에 걸고 아파트를 나섰다.

거실 창밖을 보다가 밤새 술을 부린 듯 벚꽃이 활짝 핀 걸 보고 셀카라도 찍을 생각이었다. 벚꽃이 필 때면 세현이와 깡총거리며 이 길을 걷곤 했다. 벚꽃이 눈처럼 날리는 날엔 폴짝 대며 떨어지는 꽃잎 잡기 게임을 하기도 했다. 까르르 까르르르 꽃눈처럼 웃음을 날리다 보면 컴퓨터 게임할 때와는 다른 속 시원한 무언가가 있었다.

세현이에게 활짝 핀 벚꽃을 얼른 보여주고 싶었다. 카톡 사진을 받으면

"대박! 이쁘다..."

라며 좋아할 것이 분명했다.


순하고 웃음이 많던 세현이는 유치원 때부터 친구였다. 세현이 부모님은 햇빛에 바래 간판 글씨가 흐릿해진 낡은 건물 2층에서 노래방을 운영했었다. 작년 겨울 끝무렵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그나마 간신히 유지하던 노래방에 몇 달째 개미 한 마리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소상공인들에게 주는 정부지원금으로는 가겟세를 내기도 턱 없이 부족했다. 마음씨 착한 어떤 건물주는 다 같이 힘든 시기이니 고통을 분담하겠다면서 가겟세를 깎아주기도 했다는데 그런 미담은 어디까지나 뉴스 속 얘기였다. 노래방 건물주인은 자기도 살다 살다 이렇게 힘든 때는 처음이라면서 오히려 세현이 부모님 앞에서 죽는소리를 늘어놓았다. 결국 밀린 가겟세라도 벌어볼까 하여 세현이 엄마는 새벽에 우유 배달과 신문 배달을 시작했다.


세현이는 엄마가 잠시 노래방을 비운 사이에 초아를 데리고 제일 넓고 시설이 좋은 VIP룸을 보여줬다. 그리고는 갑자기 마이크를 들더니 한여름밤 매미처럼 악악 대며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세현이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평소 조용한 성격에 시답잖은 얘기를 잘 들어주고 까르르 소리 내어 곧잘 웃어주기는 했지만 록가수처럼 머리를 흔들면서 울부짖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얼마 전 세현이와 함께 보았던 동영상의 한 장면이 떠오른 건 왜일까... 땅 속에서 조용히 기어올라 온 매미 유충이 마지막 탈피를 하는 영상이었다. 3시간에서 길게는 6시간까지 걸린다는 우화과정을 짧게 편집해서 보여줬다. 딱딱하게 식은 껍질이 갈라지더니 으으으... 시커먼 에일리언 같은 게 머리를 쑥 내밀었다. 까맣고 둥근 눈이 돌출된 커다란 머리는 몸부림치면서 활처럼 뒤로 꺾더니 거꾸로 매달렸다. 그리고는 껍질을 빠져나오기 위해 6개의 다리를 버둥거리며 앞뒤로 격렬하게 몸을 흔들어댔다. 낯설면서도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열 손가락을 오글거리던 세현이는 필사적인 매미의 몸짓이 계속되자 징그럽다는 생각을 잊었는지, 어느새 매미를 응원하고 있었다.

"힘내 매미야! 힘내! 힘내!"     


어쩌면 지금 세현이도 매미처럼 고통의 몸부림을 치면서 탈피 중인지도 모른다. 코로나19는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걸 바꿔놨으니까. 초아는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탬버린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머리 높이 흔들면서 세현이를 따라 미친 매미처럼 꺅꺅 소리를 질러댔다. 얼마쯤 지났을까... 허리를 반으로 접고 괴성을 질러대던 세현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까지 맺힌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배꼽을 틀어잡고 한참을 웃었었다.

그 뒤 얼마 있다가 세현이네는 결국 가게를 닫고 말았다. 다들 그랬던 것처럼 처음에는 몇 달만 참으면 코로나가 끝나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슈퍼 DNA라도 장착한 듯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면서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가게를 정리한 세현이네는 겨울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땅끝마을에서 고구마 농사를 짓는다는 할아버지 댁으로 내려갔다.   


초아는 눈길을 사로잡는 벚꽃 아래 걸음을 멈추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기다란 꽃자루 끝, 진분홍 별 모양 꽃받침 위에 암술과 수술의 털을 감싼 5장의 하얀 꽃잎이 벙글어진 왕벚꽃이 솜사탕처럼 뭉게뭉게 떼를 이룬 모습은 맨 눈으로 봐도 이뻤다. 그런데 찰칵! 폰 카메라에 담기자 생각보다 더 멋진 작품 사진이 되었다. 겨울을 이기고 피워낸 화사한 꽃송이 사이에 비록 마스크에 가려 까만 눈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마스크를 쓴 자기 얼굴 화면을 바라보던 초아의 두 눈이 짓궂게 둥근 초승달을 그렸다. 세현이를 골려줄 썰렁 퀴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세현아, 맞춰봐? 내가 지금 웃고 있게, 아니게."

영악하지 않은 세현이는 그런 시시한 질문이 어딨냐며 내 말을 뭉개지 않고 선선히 대답을 할 것이다. 만약 세현이가 웃고 있다고 대답하든, 웃지 않는다고 대답하든 무조건

"땡! 틀렸지롱..."

하며 놀려줄 생각이다. 마스크로 가려서 보이진 않았지만 초아의 작은 입이 벚꽃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마스크가 사람들의 입과 코를 가리듯 화사하게 핀 하얀 벚꽃송이들이 가린,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지만 놀라운 세상이 있었다.

초아도 다른 사람들처럼 활짝 핀 꽃들만 바라볼 뿐 그 뒤에 꽃들을 피워낸 까만 벚나무 가지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만약 관심을 가지고 벚꽃 송이를 매달고 있는 나무 가지를 자세히 살펴본다면 작은 빗살무늬 같은 생채기들을 보았을 것이다. 생채기들 안 쪽으로 누군가 단단한 송곳으로 뚫은 것 같은 구멍들이 여러  있었다. 벚나무 껍질을 뚫고 단단한 목질 안쪽 수관 근처 구멍들에는 쌀밥처럼 하얀 매미 알들이 겨울을 무사히 지내고 봄을 맞고 있었다.


(사진: EBS 깨미랑 부카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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