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약 그때 그 사람으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면... 상상의 날개를 펼쳐 영화 속 인물이 되어본다.
동일시를 통해 심리 위주로 이야기를 재구성했기에 영화와 전개 순서가 다를 수 있다.
이 글의목적은 성찰과 치유이며,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해석임을 밝힌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사람들... 노아
해변에서 동생들과 놀던 노아가 나무에서 떨어진 둥지에서 아기 까치를 발견했다. 상처를 입고 옴짝 달짝도 할 수 없는 아기 까치를 바다 도마뱀이 혓바닥을 날름 거리며 한 입에 베어 물기 직전이었다. 분명 둥지 안에 다른 형제 까치들도 있었을 텐데... 이미 잡아 먹혔는지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 우연은 많고 많지만, 그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노아가 그랬다.
- 어떤 아이는 아기 까치의 울부짖음을 듣고도 못 들은 척, 못 본 척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 어떤 아이는 바다 도마뱀이 무서워 아기 까치가 잡아먹히는 걸 숨죽이며 지켜볼 수밖에 없을지도...
-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거나 또는 바다 도마뱀의 생명이 까치보다 더 중요한 어떤 아이는 절대로 아기 까치를 구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노아는 울부짖는 아기 까치에게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노아의 무의식 속에서 높은 나무에서 떨어진 아기 까치는 다름 아닌 옥상 난간에서 떨어져 몸이 다친 엄마였으니까...
다 내 탓이에요... 죄책감에 괴로운 노아
그날 엄마의 사고는 모두 내 탓이다. 작은 쪽문으로 연결된 옥상 계단을 처음 발견한 것이 나였다. 옥상에서 바라본 노을 비낀 풍경은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까웠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보여주면 좋아하실 게 분명했다. 난 우리 엄마가 웃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으니까!
엄마는 피곤해 보였지만 흥분된 나의 목소리를 거절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겨 옥상 계단을 오르셨다. 바보같이 그때 엄마를 부르면 절대 안 되는 것이었는데...
"엄마 빨리 와요. 빨리!"
금방이라도 노을이 사라질까 봐, 심지어 빨리 오라고 보채기까지 했다. 이런 바보! 그깟 노을이 뭔 큰 일이라고... 슈퍼 울트라 왕 멍충이 같으니!
엄마가 썩은 난간과 함께 내 눈앞에서 사라졌을 때 쿵! 나의 세상도 함께 떨어져 왕장창 무너졌다.
엄마 대신 내가 떨어져 죽었어야 했는데... 애어른이 된 노아
휠체어에 앉은 엄마는 우리 엄마가 아닌 것 같다. 엄마는 더 이상 웃지 않는다. 대신 짜증과 욕설이 늘었다. 별 것 아닌 일에도 깔깔거리며 웃어주던 엄마가 너무 그립다.
아빠가 엄마의 옷을 갈아입힐 때 보았다. 척추뼈를 따라 길게 난 수술 자국이 엄마의 웃음과 따뜻함을 다 잡아먹었다는 걸! 죄책감이 몰려와 미칠 것 같다. 그날 엄마 대신 차라리 내가 떨어져 죽어버렸더라면...
힘들어하는 엄마를 어떻게 대해야 될지 몰라 주위만 빙빙 돌게 된다. TV를 보다 웃긴 장면에서 피식! 웃었다가 나도 모르게 얼른 주위를 살폈다. 혹시라도 엄마가 보면 아픈 엄마 놔두고 어떻게 웃을 수 있느냐며 얼마나 실망하실까?
설날도 아닌데, 하루아침에 나이 10개를 한꺼번에 꾸역꾸역 먹은 기분이다. 모든 게 시시해졌다. 여전히 철부지인 동생들을 보면 한심하다. 나는 절대로 철부지로 다시 돌아가진 못 하겠지...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의 의미
노아가 상처 입은 아기 까치를 주워왔다. 남편까지 가세하여 모든 우리 집 남자들이 작당이라도 한 듯 아기 까치를 키우게 해달라고 조른다. 아! 내 몸 하나 돌보는 것도 힘든 게 보이지 않냐고요. 만사가 다 귀찮다고...
아직 허락도 안 했는데 자기네들끼리 이름을 짓고 난리다.
"안돼! 이름 짓지 마!"
이름이 없을 땐 나와 아무 상관없는 그냥 야생 조류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름을 지어주면 그 순간부터 관계의 실타래가 스멀스멀 생겨나 내 몸과 이어진다. 연결된 실타래를 통해 나의 마음이 흐르게 되고... 내가 품어야 할 또 하나의 생명이 되는 것이다. 탯줄로 연결돼 있던 내 아이들이었기에 온 몸이 부서지는 고통과 자칫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며 낳지 않았던가?
왜냐고? 그야 물론 그 아이들에게 노아, 루번, 올리라는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서!
까치가 '펭귄'이 되다니... 네 인생도 참 엿같다!
결국 우리 집 남자들이 이름을 지어주고 말았다. 여러 후보 이름들이 거론됐지만 당첨!
'펭귄'
우하하하하하... 까치 보고 펭귄이라니... 작명 솜씨가 다들 꽝!이다.
"까맣고 하얀 게 꼭 펭귄 같잖아요."
뭐, 노아의 설명이 아주 설득력이 없진 않다. 나도 언뜻 봤을 땐 펭귄인 줄 알았으니까.
매년 까치 부부는 키 큰 나무에 튼튼한 둥지를 틀어왔을 텐데... 하필 올해 불어닥친 폭우가 예년보다 거셌다. 거친 바닷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둥지도 함께 삐그덕 거리다 어느 순간 툭! 떨어졌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부모 형제를 잃고, 고아가 된 아기 까치!
다행인지 불행인지 목숨은 건졌지만 부상을 입고, 까치가 하루아침에 날지 못하는 '펭귄'이 되다니...
참 나, 네 인생도 나만큼이나 엿같구나! 어랏, 이 녀석 이제 보니 내 신세와 어쩜 그리 닮았니...
펭귄 찾아 삼만리!
우리 집 남자들이 모두 일상으로 떠난 아침.
삑삑 삑삑 삐이익
불면증으로 밤새 뒤척이다 간신히 잠들었는데 단잠을 깨우다니... 내 이럴 줄 알았다. 결국 똥 치우고 씻기고 밥 먹이는 것도 내 일이 될 것을! 항상 일은 자기네가 벌여놓고, 그 뒷감당은 내 차지지... 몸이 힘드니까 과거에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기억까지 불쾌하게 소환되어 화가 더욱 치밀어 오른다.
- 이놈의 펭귄, 지금이라도 당장 밖으로 내놔야지!
그런데 거실에 둔 펭귄 집 바구니가 텅 비어있다. 어디로 간 거야? 안방에서 소리가 나서 갔는데 안 보인다. 그렇게 펭귄의 삑삑 대는 소리를 따라 부엌 거실 서재 다시 거실... 온 집안을 휠체어를 끌고 돌아다녔다. 병원에서 집에 온 이후 오늘만큼 많이 움직인 날이 있었던가? 땀을 흘리고 끙끙 대면서 일주일치 움직일 걸 단숨에 다 채우게 하다니 귀찮은 녀석...
- 아니, 딸랑구(암컷)라고 했던가? 암튼 꽤나 신경 쓰게 만든다.
펭귄의 애착 인형.
드디어 노아 방에서 펭귄을 찾았다. 침대 밑에 떨어져 있던 헝겊으로 만든 원숭이 인형 머피에게 꽂혀 놀고 있었다. 부리와 뺨을 비비고 머피를 제 집으로 가져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헝겊 인형을 엄마로 착각한 걸까? 아님 엄마의 따뜻한 품이 그리웠을까? 그렇게 헝겊 인형 머피는 펭귄의 애착 인형이 되었다.
사랑은 마음속으로만 간직하지 말고... 표현하세요! 따뜻한 온기로!!
아기 원숭이 터치가 현대인에게 던진 메시지...
펭귄이 헝겊 인형에게 집착하며 재롱 피우는 장면은 자연스럽게 한 유명한 실험을 떠올리게 한다.
1950년대 할로우 박사는 당시 미국 일반인 가정의 양육 방식이 아기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원숭이를 통해 실험했다. 아기가 운다고 안아주면 나약하게 자란다고 해서, 정해진 시간에 우유를 주면서 아기방을 따로 만들어 재우는 게 올바른 육아법으로 통하던 시대였다.
할로우 박사는 갓 태어난 아기 원숭이 '터치'를 어미 원숭이로부터 분리시킨 후, 2개의 대리모 인형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는지 지켜봤다. 하나는 철사를 엮어 어미 원숭이 크기로 만들고 젖병을 묶어뒀다. 다른 하나는 마분지로 만든 뼈대 위에 포근한 헝겊을 씌웠지만 젖병은 없는 인형이었다. 과연 터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당시 사람들의 통념으로는 젖병이 있는 인형을 선택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터치와 다른 아기 원숭이들은 사람들의 예상을 깼다. 하루 종일 어미의 따뜻한 품을 연상시키는 헝겊 인형에게 달라붙어 있다가 배가 고프면 얼른 가서 젖병만 빨고, 배가 부르면 다시 헝겊 인형에게 돌아왔던 것이다.
터치와 아기 원숭이들에겐 매우 잔인했던 이 실험이 준 충격 덕분에 많은 인간 아기들이 따뜻한 품을 되찾고,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할 수 있었다.
아기 까치 '펭귄 블룸'이 내게 준 첫 선물
휠체어를 탄 채 처음으로 펭귄을 안아본다.
헝겊 인형 머피 곁을 떠나지 않기에 함께 집 바구니에 넣어줬다. 두 손에 안긴 아기 까치가 바르르 떨면서 나를 올려다본다. 그 순간 왠지 서로 닮은 듯한 4개의 눈동자가 공중에서 마주쳤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까만 눈이 맑고 깊다.
- 네가 무슨 죄겠니? 너라고 그 높은 가지에서 떨어지고 싶진 않았겠지. 그래, 상처가 나을 동안만이다!
"알았지? 펭귄!"
나도 모르게 이름을 부르고 말았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게다. 더 이상 동네 새나 야생 조류가 아닌 우리 블룸 가족의 6번째 일원인 '펭귄 블룸'이 된 것이...
어쩌면 아기 까치의 까맣고 둥근 눈동자가 딱딱하게 굳어버린 내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 구멍에 딱 들어맞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