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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는 왜 양말을 먹었을까

유기견 강아지 초코 이야기

by 훈훈

석 달 전에 초콜릿색 예쁜 푸들을 입양했다. 이름은 초코. 초코는 유기견 사이트를 거쳐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입양 신청을 마치고 초코를 기다리는 열흘 동안 우리는 설레고 행복했다. 원래 키우던 쿠키가 듬직한 아들이라면 초코는 딸로서 키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나와 남편이 출근하고 없는 긴긴 시간을 쿠키와 초코가 서로 의지하며 재미있게 살아주기를 진심으로 바랬었다. 초코가 온 첫날, 우리는 초코와 쿠키를 함께 산책시켰다. 나란히 잠자리를 놓아주고 너희는 남매라는 사실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런데 그 초코가 집에 온 지 삼일 만에 사고를 쳤다. 모르는 사이 양말 한 짝을 먹어버린 것이 다. 씹거나 찢은 게 아니라 분명 먹었다. 신사양말 한 짝의 거의 반을.. 솔직히 나는 모든 개들이 다 쿠키처럼 얌전한 줄 알았었다. 부끄럽지만 개가 양말을 먹을 수 있다는 상식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저 찢어진 양말을 치우기에만 급급했었다.


닷새째부터 초코가 밥을 먹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 초코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그리고 초코는 그 길로 입원을 하게 됐다. 엑스레이를 찍고 위장 조영술을 받은 후, 초코는 위와 장을 절개해서 이물질을 꺼내는 이른바 ‘탐색적 수술’을 하게 되었다. 아, 초코는 3.1kg의 작은 아이였다. 임시보호가정에 있었지만 불안정한 생활로 몸이 많이 야위어 있었다. 그 조그만 아이가 생사를 넘나드는 대수술을 견딜 수 있을까. 눈물이 났다. 괜히 우리 집에 데려와서 고생시키나, 내 행동이 섣불렀나 후회가 되었다. 다행히도 어린 초코는 수술을 씩씩하게 잘 견뎌주었고 열흘 후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사건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몇 주 후엔 수건을 먹고, 또 덧신을 먹는 사건이 반복됐다. 초코가 각종 천조각을 씹어 먹는 것은 정말 눈 깜 박할 사이의 일이기에 우리 부부는 늘 조마조마했다. 수술은 아니어도 강제 구토를 시켜야 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구토를 유발하느라고 억지로 먹인 과산화수소수 때문에 눈을 끔벅끔벅하며 괴로워하는 초코를 보는 것은 참으로 미칠 노릇이었다.


초코가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괴로웠다. 어느 날 남편과 나는 집안의 모든 천을 다 치우기로 했다. 그 지긋지긋한 양말도 치웠고-남편은 양말을 신지 않겠다고도 말했다. 맨발로 신는 신사구두라니! 애끓는 부정이라니- 그때부터 빨래도 널지 않고 건조기를 돌렸다. 초코 눈에 보이는 천이란 마루에 걸린 커튼뿐이었다. 다행히 커튼은 초코를 유혹하지 못했다. 아마도 두껍고 질기고 먼지 맛이 났기 때문이리라. 얄팍한 면 재질을 앞발에 탁 끼고 질겅질겅 씹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을 테니.


개들이 양말을 먹는 원인은 불안함 혹은 심심함 때문이라고 한다. 전문용어로는 이식증. 주로 10%의 어린 개들에게서 발견되는 증상이라 했다. 커가면서 나아진다고도 했지만 사실 매우 위험한 병이었다. 나는 초코에게 이식증의 위중함을 알리고 느끼게 할 수 없어서 답답했다. 왜 먹는 거야? 배가 고파? 이상한 거 먹으면 너 잘못하다 죽어. 불안해서 그래?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해? 엄마가 예뻐해 줄게. 너 잘 키워줄게 응? 이런 대화가 절실했지만 초코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혼잣말뿐이었다.


초코는 유기견이었고 8개월 된 아기였으므로 불안이 컸을 것이다. 우리 집을 좋아했지만 새로운 환경에 혼란스러웠을 것이고, 엄마 아빠 없는 긴 시간을 견딜 방법을 몰랐을 것이다. 또 쿠키를 배려하는 엄마에게 샘 많은 초코는 조바심이 났을 것이다. 내가 직장에서 아무리 일찍 귀가를 한다 해도 7시나 8시였다. 하루 12시간 집을 비우는 동안 초코와 쿠키 남매는 뭘 하고 살까. 자도 자도 둘 뿐인 집안에서… 만난 지 얼마 안 된 두 강아지를 두고 문을 나서는 나의 아침 출근길은 참담했다. 이러려고 초코를 들였나. 초코는 어리고 얼굴도 예쁘니까 어디로 다시 보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책임감이 허락하지 않았다. 초코를 입양하면서 썼던 입양서류의 문항이 내내 생각났다. 만약 해외로 이민 갈 땐 강아지를 어쩌겠느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1초도 망설임 없이 ‘같이 갑니다. 가족이니까.’라고 썼었다.


그 후에도 몇 번의 눈물이 있었다. 마루의 벽지를 씹어먹은 일, 집안 화분의 잎사귀를 다 뜯어먹은 일, 잠깐 의자에 걸쳐놓은 아빠 옷 귀퉁이를 씹다가 들킨 일 등. 웬만한 건 이제 놀라지도 않게 되었다. 그저 생명이 위태로울 만큼 먹지만 않으면 행복했다.


초코는 산책도 쉽지 않았다. 줄을 매는 것부터 거절했으며 다른 개들과 달리 집 밖에 나가는 걸 너무 싫어했다. 그러던 초코가 요즘 많이 좋아졌다. 느리지만 분명 안정되어 가고 있다. 아직 가죽소파에 구멍을 내어 솜을 먹으려 하지만 심각한 상황 이 전에 엄마에게 들켜주는 수준이다. 대신 나는 매일 초코를 데리고 집 앞을 산책한다. 주말이면 공원에서 같이 뛰고 내가 피곤한 날이면 대신 차를 태워 창밖의 바람을 쏘여준다. 초코가 바깥세상을 궁금해하느라 양말 따위 쳐다보지도 않을 수 있게 열심히 경험치를 늘려주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초코는 자기가 양말을 먹는 개였다는 사실조차 잊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확신하려 한다. 모든 아픈 순간은 지나간다. 사람에게도 개에게도. (201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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