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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뮤익 전시회: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세계(1)

by 훈훈

론 뮤익의 전시가 열리는 서울 국립현대 미술관에 다녀왔다. 몇 년 전에 리움에서 일부 작품이 전시되기도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의 작품들만 모아 아시아 최대 스케일로 여는 개인 전시다. 4.11부터 7.13까지. 장소는 삼청동 국립현대 미술관. 5천 원, 입장료도 매력적이다. 국립이라 그런 건지 조금 놀라운 가격. 나라가 개인의 문화생활을 도와주는 것 같아 그동안 열심히 세금을 낸 보람과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론 뮤익은 호주출신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다. 극사실주의 작가로서 생생한 인물 표현이 특징이다. 인물의 크기를 과장하거나 축소시킴으로써 효과를 극대화한다. 직접 보면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디테일이 기묘한 분위기를 주기도 한다. 30년 동안 완성한 작품이 총 48점에 불과하다고 하니 그가 추구한 극도의 기술적 완성도와 정교한 예술적 표현을 위한 노력이 얼마나 지극했을까 싶어 존경스럽기도.


작가는 장난감 제조업에 종사한 부모에 의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인형을 만드는 환경에 노출되었다. 그의 이전 직업은 그래서 쇼윈도 디자이너, TV 프로그램용 인형극에 쓰이는 소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상업적 비즈니스 분야에서 일하다가 순수 예술작가가 되어 성공을 했는데 이런 케이스는 론 뮤익 말고도 그동안 꽤 있어왔다. 광고 삽화를 그리다가 화가가 된 르네 마그리트가 언뜻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전시를 보는 내내 그가 만들었던 인형인 과거 상업용 소품과 지금 보는 인물 조각인 예술작품을 가르는 기준에 대해 생각했다. 극을 위한 인형을 만들 때도, 작가는 사실적 디테일에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저런 디테일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경우에 따라 조절이 가능한 것도 아니므로. 그렇다면 동일한 디테일을 놓고 소품과 작품으로 갈리는 역사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작품을 만드는 작가적 생각, 주장 혹은 철학’의 유무였을까? 성실하고 일관된 작품 발표였을까?


평범한 일상의 인물을 보여주는 일은 난해한 현대미술 작품보다 확실히 관객과의 거리를 좁혀준다. 한번 보면 비주얼적 호기심이 생기게 마련이고 극사실주의 생생한 디테일을 따라가다 보면 작품 속 인물들의 정신세계까지 상상해 보는 경험이 가능하다. 만약 인물들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면 전혀 사실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인물들은 대부분 무표정하거나 집중했거나 찡그렸거나, 정확히 모르겠는 상황에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진짜 사람 같은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 그 인물의 감정과 고민을 떠올리고 나의 경우를 생각해 보게 된다


20250418_111116.jpg 침대에서.2005.혼합재료.162*650*395cm

침대에서

개인적으로 전시의 1등은 ‘침대에서’라는 작품이었다.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긴 여자. 이부자리와 베개를 포함한 거대한 인물이 압도적이었다. 표현이 너무 생생해서 실제로 저렇게 생각하는 여자 옆에 작은 내가 서성거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침대에서 바로 못 일어나고 딱 저런 포즈로 생각에 잠길 때가 있다. 그럴 때의 나는 주로 회사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그 회사 생각이란 기쁘고 좋은 일이기보다 기분 나쁘거나 걱정되는 일이 많았었는데… 그럴 때 옆을 지나가던 남편은 “또 무슨 생각을 그렇게 뭉게뭉게 피우고 있나?”하면서 생각에서 빠져나올 것을 주문했었다. 부정적인 생각이 아침의 기운을 누르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리라. 거대한 저 인물도 행복보다는 복잡 다난한 생각, 걱정 쪽에 좀 더 가까워 보였다. 함께 간 친구는 이 상황이 공감되지 않다고 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그 친구는 일단 침대에 저렇게 누워있는 적이 없다는 것이다. 침대는 자러 가는 곳이고 자러 가면 바로 잠이 들고 깨어나서도 침대에서 뭉기적 거리는 적이 없다는 것. 나는 바로 외쳤다. 수면 천재 내 친구, You win!



1744971205192-7.jpg 치킨/맨. 2019. 혼합 재료. 86*140*80cm


치킨/맨

작품들 중에 유일하게 대결구도를 가졌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순간이 주는 긴장감이 팽팽하다. 닭이 노인에게 덤벼들 것인지, 노인이 책상을 뒤집어 닭을 잡을 것인지… 노인과 닭 사이의 사연, 그 둘의 스토리를 시원하게 설명해 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작가도 힌트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재밌다. 각자 들여다보고 상상하면 다 정답이다. 나도 아무 생각을 해봤다. 만약 한국의 작가가 만든 것이라면 복날, 노인이 닭을 잡으려는 상황으로 봐도 되겠다고. 크기가 크지 않아서 디테일을 보는 재미가 더 있었다. 노인의 신체와 자세, 시선, 긴장감을 주는 구도, 닭의 눈빛…360도로 돌며 다양한 각도에서 보면 인상이 다 달랐다.


20250418_114332.jpg 배에 탄 남자. 2002.혼합재료.159*138*429cm

배에 탄 남자

긴 보트의 뱃머리에 앉은 남자가 팔짱을 끼고 목을 앞으로 쭉 빼서 무언가를 살피고 있다. 무언가를 의심하거나 면밀히 살피는 눈길이기도 하다. 네가 하는 걸 한 번 보겠다는 남자의 마음이 읽히기도 하고 외로움도 느껴진다. 배가 떠내려가는 곳이 어디인지에 생각이 미치기도 했다. 친구는 자기 남편이 생각난다고 했다. 거북목처럼 쭉 내민 고개와 굽은 등, 접힌 뱃살, 오래 앉아 일하는 직업을 가진 듯한 인물을 보고 회사 다니는 짠한 남편이 떠오르는 걸 보면 이 인물은 앞날에 대한 의문과 현실의 힘듦과 고독을 껴안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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