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씨 451> 1966년
영화 <화씨 451>(2018)
이 소설의 제목인 '화씨 451'은 책이 불타는 온도를 상징한다. 책이 금지되고, 소방관들이 불을 끄는 대신 책을 불태우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불을 끄러 출동하는 소방관이 아니라 불을 놓으러 출동하고, 해당 장소에 있는 책을 불태우는 방화수 가이 몬태그가 주인공이다. 소설의 설정은 ‘책’이 죄악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화씨 451>의 배경은 디스토피아적 미래 사회로, 독재 정부가 모든 책을 금지하고 불태우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
불태우는 일은 즐겁다.
불꽃은 춤추면서 천천히, 그러나 결코 멈추는 일 없이 무엇이든 자기 것으로 만들어간다. 점점 색깔이 어두워지다 이윽고 검은색으로 변하고 마침내 본래의 것과는 전혀 다른 물질로 변해 버린다. 그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야릇한 쾌감이 온몸에 번져 오는 것이다. 음흉한 마음으로 가득찬 악마의 불꽃들이 손에 들린 놋쇠 분사구에서 쏟아져 나와 이 세상으로 마구 뛰쳐나간다. 뿜어지는 등유 줄기를 바라보는 그의 머리에도 뜨거운 피가 부글거린다. 분사구를 쥐고 흔드는 손은 광기에 찬 교향곡을 연주하는 지휘자처럼 불꽃들을 이리저리 뿌려 놓는다. 역사의 유물들이 넝마쪽으로 전락하여 타닥거리는 단말마의 비명으로 고통스러워 하다가 이윽고 새까만 숯이 되어 비참한 운명을 끝낸다.
(...) 벌떼처럼 우글거리며 떠다니는 재와 티끌들을 헤치고 그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전해 오는 말처럼 마지막 남은 꽃 한 송이까지 불타는 장적더미 가운데로 던져 넣어 버리고 싶다. 저택의 현관 밖에서, 그리고 잔디가 깔린 뜰에서 책들이 퍼덕거리는 비둘기 날개처럼 불타며 죽어가고 있다. 잿더미로 변하기 직전에 밝게 확 피어오르는 책장들은 이윽고 회색빛 티끌들이 되어 바람에 날려간다. (P15-16)
“저는 아저씨가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아시죠?”
몬태그는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사람들은 대게 무서워해요. 제 얘긴 방화수들을 무서워한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아저씨도 결국은 사람들 중에 하나일 뿐이잖아요. 결국......” (P21)
“그동안 태웠던 책들 중에서 읽어보신 것은 없나요?”
몬태그는 웃었다.
“그건 법을 어기는 거지!”
“아, 물론 그렇죠.”
“보람 있는 일이죠. 월요일에는 밀레이를, 수요일에는 휘트먼을, 금요일에는 포크너를 재가 될 때까지 불태우자. 그리고 그 재도 다시 태우자. 우리들의 공식적인 슬로건이죠.” (P22)
저는요,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제트카를 타는 사람들은 풀이 어떻게 생겼는지,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를 거예요. 왜냐면 그 차는 너무 빠르기 때문에 바깥의 풍경을 자세히 볼 수가 없거든요. 그 차를 타는 사람들은 녹색 얼룩을 보면 ‘아, 이건 풀이야.’ 그럴 거예요. ‘분홍색 얼룩? 그건 장미꽃 정원이지! 하얀 얼룩들은 거리에 늘어선 집들이고, 또 갈색 얼룩들은 소 떼지, 아마?’ (P23-24)
누구든지 타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바라는 환상을 만들어 내곤 그 모습이 마치 진실인 양 취해버린다. (P27)
소녀의 얼굴이 또 떠오른다. 마치 거울처럼 선명하게.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누구든지 타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바라는 환상을 만들어 내곤 그 모습이 마치 진실인 양 취해 버린다. 몬태그가 일하는 중에 때때로 미소를 보듯이. (P27)
몬태그의 미소는 어느덧 사라졌다. 미소는 접혀져서, 녹아서, 미끈미끈한 그의 피부를 타고 흘러내린다. 황홀하게 타오르던 양초가 이윽고 마지막 심지를 불사르며 극적으로 무너져 내리듯이. 어둡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 몬태그는 속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껍데기를 벗겨 보면 드러나는 나의 참 모습은..... 행복하지 않다. 나는 행복이라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었고 소녀도 가면을 쓴 채 내게서 떠나 달려갔다. (P28-29)
폭격기 소음 때문에 하늘의 별들은 죄다 부서져서 가루가 되었을 것이다. 아침이 되면 온 세상은 별들이 부서진 가루로 만들어진 낯선 눈으로 소복하게 뒤덮여 있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부들부들 떨며 몬태그는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그는 입술이 제멋대로 움직이도록 놔두고 있었다. (P31-32)
“글쎄, 결국 한 번 쓰고 버리는 휴지 같은 시대라니까. 사람들 취급하는 게 코를 풀고는 휴지를 뭉쳐서 던져 버리는 식이라고요. 그러면 그게 또 다른 사람한테 가겠지. 그 사람은 또 코를 풀고, 뭉치고, 던져 버리고. 모두들 그렇게 남한테 붙었다가 말았다 하지. 편리한 대로 이용해 먹는 거야. 운동 시합을 할 때도 우리가 홈 팀을 응원하려면 적어도 경기가 언제 열리는 지는 알아야 하잖아요? 그리고 하다못해 팀 이름은 알고 있어야지. 아 참, 말이 났으니 말인데 우리 지역 팀은 무슨 색깔 옷을 입더라?” (P36)
“처음에 어떻게 그 일을 시작하신 거예요? 어떻게 그런 일에 가담하고 직업으로까지 선택을 하게 되셨죠? 아저씨는 다른 방화수들과는 달라요. 저는 다른 방화수도 몇 명 알고 있지만 아저씨 같은 사람은 없어요. 아저씨는 제가 얘기를 할 때면 저를 쳐다보세요. 제가 달 얘기를 하면 달을 쳐다봐요. 어제 그랬죠? 다른 방화수들 중엔 그런 사람이 없어요. 전 알아요. 제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얘기를 한다 치면 그냥 무시하고 가 버려요. 아니면 야단치고 으르거나. 아무도 남들에게 관심을 갖고 시간을 내주는 사람이 없어요. 아저씨는 저하고 어울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한 분이에요. 아저씨가 방화수인 게 이상하다는 건 그 때문이죠. 하여튼 아저씨는 방화수라는 작업하고는 좀 맞지가 않아요.”
몬태그는 몸이 두 조각으로 갈라지는 기분이었다. 뜨거운 부분과 차가운 부분, 부드러운 부분과 단단한 부분, 마구 떨리는 부분과 고요히 있는 부분, 두 부분들이 맹렬하게 부딪치며 서로를 갉아먹는 느낌이었다. (P46)
“세상이 참 이상하지 않아요? 사람들과 같이 있다는 건 물론 좋지요. 그렇지만 그저 떼거리로 모여 있기만 하면 뭐해요? 아무 말도 나누지 않고 그냥 모여 있기만 해도 사회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텔레비전 수업 한 시간, 야구나 배구나 달리기 같은 체육 한 시간, 그리곤 멋대로 정리한 교과서를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역사 수업 한 시간, 그림 감상 한 시간, 그리고 또 운동 시간. 그런데 우리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아요. 대개는 침묵한 채 고분고분 받아들이기만 해요. 이미 정해진 해답을 따라가기만 할 뿐이죠. 감옥의 이 방 저 방으로 옮겨다니듯이 이 교실 저 교실을 네 시간이 넘도록 돌아다녀요. 선생님이 보여주며 설명하는 영화들을 보러 말이에요. 이런 데 함께 어울리는 것이 사회적이라니, 도대체 말도 안 돼요. 수많은 깔때기들을 들이대곤 커다란 물통의 물을 한 방울 남김없이 마구 쏟아 붓는 거예요. 그리고는 우리더러 포도주를 주었노라고 하죠. 학교에서 하루 일과가 끝날 때쯤이면 누더기처럼 축 처진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곧장 침대로 가거나 못된 장난을 즐기기 위해 놀이 공원에 가는 정도지요. 유리 성에 가서 유리창들을 죄다 깨어 부수거나 자동차 구역에 가서 커다란 쇳덩어리 공을 던지며 자동차를 박살내거나 하며 말이에요. 그렇잖으면 차를 타고 나가서 거리를 미친 듯이 질주하죠. 고속으로 달리면서 가로등 기둥에 얼마나 바짝 대고 몰 수 있는지 내기나 하다니, 참. 걔들이 날 보고 뭐라고들 하는지 다 짐작이 가요. 쟤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 즉 비정상이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한 걔들이야말로 모두 비정상이에요. 자기들끼리 서로 치고 받고 고함치고 미친 사람처럼 춤추고……. 요즘 사람들이 서로 얼마나 사납게들 대하는지 아세요?” (P54-55)
아무도 얘기하는 사람이 없어요. 자동차며 옷들이며 수영장 얘기밖엔 안 해요. 그런 것들이 뭐는 얼마나 멋있냐는 둥 그런 얘기뿐이죠. 누구든 하는 얘기들은 다 똑같아요. 남들과 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어요. 카페에서도 모여 앉았다 하면 그저 농담이나 주고받으며 깔깔거리기 일쑤죠. 똑같은 우스갯소리들만 하고 또 해요. (P57)
지하철역에서 나와 거리를 걸어가는 그의 마음에 어렴풋하게 거북한 소용돌이가 일고 있었다. 뭔가 이상이 생겼다. 뭔가가 틀에 박힌 일상 생활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지난 며칠 사이에..... 그리고 지금? 몬태그는 클라리세가 나타날 것만 같은 기대감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 갈 뻔했다. 다시 돌아가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나타날 것만 같다. 내 생활의 질서를 유지하려면 틀에 박힌 일상 생활에 충실하게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이젠 너무 늦었다. 몬태그의 생활 시간표에 어김없이 맞추어 운행하던 기차가 연착을 하기 시작했다. (P58)
“정부를 속이고 우리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놈은 누구든지 다 미친놈이야.”
“상상을 좀 해 봤죠. 그 기분이 어떨까 해서. 만약 방화수가 와서 내 집과 내 책들을 죄다 불태워 버린다면?”
“우린 책을 가지고 있지 않아.”
“물론이죠. 그렇지만 만약에 가지고 있다면 말입니다.”
“자네 가지고 있나?”
비티가 눈을 끔벅거렸다.
“아니오.”
몬태그는 건너편 벽에 붙어 있는, 100만 권은 됨직한 금서들의 목록을 쳐다보았다. 지난 몇 년 동안 그 책들은 그의 점화기에서 나온 불꽃들에 의해 한 줌의 재로 변해 가고 있다. 그들이 갖고 다니는 파이프와 분출구에선 생명수가 아니라 등유가 뿜어져 나온다. (P61)
현관문을 부수고 안으로 뛰어든 그들은 한 늙은 여자를 붙잡았다. 그 여자는 도망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비틀비틀거리고 있었다. 눈동자의 초점은 벽을 향했지만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마치 머리를 크게 한 방 얻어맞은 사람처럼. 여자는 입 속에서 혀를 이리저리 굴려 대었다. 눈을 보니 뭔가를 생각해 내려는 듯이 보였다. 마침내 생각이 난 듯 여자의 혀가 다시 움직였다.
“당당한 자세를 보여라, 마스터 리들리! 우리는 신의 자비로움으로 이 세상을 밝히는 촛불이 되어야 한다. 이 영국 땅에서 다시는 꺼지지 않을 불꽃으로 타오를 것을 나는 확신한다!”
“됐어, 그만 하시지.”
비티가 말했다.
“어디 있지? 빨리 불어!”
그는 조금도 거리낌없이 여자의 뺨따귀를 갈긴 뒤, 다시 질문을 던졌다. 늙은 여자의 시선이 비티에게 고정되었다.
“어디 있는지 알고 왔을 거 아냐? 그렇지 않다면 아예 오지도 않았겠지.” (P64)
오후의 태양 빛 안에서 시간은 깊은 잠 속에 빠져든다.’(19세기 스코틀랜드 시인 알렉산더 스미스 — 옮긴이) 그는 책을 집어던졌다. 거의 동시에 다른 한 권이 그의 손 위로 떨어졌다. (P66)
책들이 몬태그의 어깨 위로, 팔 위로, 얼굴 위로 마구 쏟아졌다. 그는 한 권을 집어들어 불빛을 비추어 보며 흔들었다. 책은 그의 손에서 하얀 비둘기처럼 펄럭거렸다. 어두운 방 안에서 춤추는 조명 사이로 책 한 쪽이 눈송이처럼 사뿐히 떨어졌다. 그 위에 그려진 섬세한 글자들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 혼란과 광기의 와중에 몬태그는 얼핏 한 문장을 보았다. 종이는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지만 그 문장은 마치 강철 도장으로 새긴 듯이 그의 뇌리에 또렷하게 박혔다. ‘오후의 태양 빛 안에서 시간은 깊은 잠 속에 빠져든다.’ 그는 책을 집어던졌다. 거의 동시에 다른 한 권이 그의 손 위로 떨어졌다.
“몬태그, 이리 올라와!”
몬태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손에 떨어진 책을 거칠게 움켜쥐고 가슴에 대어 마구 짓이겼다. (...) 몬태그는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그의 손이 저질렀다. 그의 머리가, 양심과 호기심이, 떨리는 손가락들이, 갑자기 도둑으로 변했다. 몬태그의 손가락들이 가슴에 대고 비비던 책을 방화복 안 쪽으로 쑤셔넣었다. 땀에 젖은 겨드랑이 사이로 책을 꽉 껴 넣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빈손을 꺼냈다. 마술이다. 보라! 아무것도 없지 않는가! 자, 보라, 보란 말이다! (P66-67)
“등유!”
그들은 제각기 등에 지고 있는, ‘451’이라고 씌어져 있는 커다란 통에서 차가운 액체를 펌프로 뿜어 내었다. 그리고 한 권 한 권 빠짐없이 뿌렸다.
그들은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몬태그도 코를 찌르는 등유냄새를 헤치고 동료들을 따라 내려갔다.
“자, 이리 오시지. 늙은이!”
여자는 책들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아 등유에 흠뻑 젖은 가죽 껍데기며 책날개 따위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책 제목을 따라가며 훑는 동안 원망에 찬 시선은 몬태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들은 내 책을 뺏어 갈 수 없어.”
여자가 말했다. 비티가 대꾸했다.
“법을 잘 알고 있겠지?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누가 이런 책들을 갖고 있으라 그랬나? 이런 골방에다 책을 몇 년 동안이나 몰래 모아 놓고서 어쩔 셈이었지? 바벨탑이라도 쌓으려고 했나? 정신 차리라고! 이따위 책들에 나와 았는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에 죽어 없어진 작자들이야. 이리 나와! 불을 붙일 거니까.”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집을 통째로 태워 버릴 거야.”
비티가 소리쳤다.
(...)
여자가 성냥개비를 들어올렸다. 그녀 주위에선 등유 냄새가 촉촉할 정도로 피어 오르고 있다. 몬태그는 겨드랑이에 숨겨 가지고 나온 책이 심장처럼 그의 가슴을 쾅쾅 치는 것만 같았다.
“나가요.”
여자의 말이 떨어지자 몬태그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 문 쪽으로 갔다. 그는 비티의 뒤를 쫓아 계단을 내려가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갔다. 악마의 발자국처럼 그들이 지나간 길에 등유 냄새가 남았다.
발코니에 여자가 나와 있었다. 말없이 시선으로 방화수들을 압도한 채, 침묵으로 그들에게 유죄 선고를 내리고 있었다. 여자는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비티는 손가락을 튕겨 점화기의 불꽃을 켰다.
너무 늦었다. 몬태그는 숨이 막혔다.
여자는 경멸에 찬 눈초리로 손을 들고는 성냥개비를 난간에다 세차게 부볐다.
사람들은 한밤중의 거리를 마구 내달았다. (P67-70)
그는 고통스럽게 눈자위를 누르고 있다가 갑자기 등유 냄새 때문에 마구 구토를 했다.
밀드레드가 흥얼거리며 들어왔다가 깜짝 놀랐다.
“왜 그래요?”
몬태그는 구토물이 널린 바닥을 당혹스럽게 내려다보았다.
“늙은 여자 한 명을 책과 함께 태워 버렸어.”
“양탄자가 세탁할 수 있는 거라서 다행이네.”
그녀는 자루걸레를 가져와서 닦기 시작했다. (P85-86)
“당신이 그 여자를 직접 봤어야만 했어, 밀리!”
“그 여잔 나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어요. 애초에 책을 숨겨 놓질 말았어야지. 법을 지켜야 할 거 아냐. 당연히 그래야지. 그게 누구든 난 그 여자가 싫어요. 당신을 이렇게 만들고 이제는 우리 집과 일과 다른 모든 것을 뺏어 가려고!”
“당신은 그 자리에 없었어. 당신은 그 일을 보지 못했어. 책 속에는 뭔가 우리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게 들어 있어. 그 여자로 하여금 불타는 집 속에서도 빠져 나오지 않고 남아 있도록 만드는, 분명히 뭐가 있어. 그저 괜히 불타는 집에 남아 있었을 리가 없어.”
“정신이 이상한 거예요.”
“그 여자는 우리하고 하나도 다를 바 없이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야. 오히려 더 이성적일지도 모르지. 우리가 그 여자를 태워 버렸어.”
“익사를 했으면 좀 덜 가슴 아팠겠군요.” (P87-88)
“꼭 어젯밤에 죽은 여자 때문만은 아니야. 간밤에 나는 지난 10년 동안 내가 불사르느라 뿌렸던 등유를 생각했어. 그리고 불태운 책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처음으로 깨달았지. 불에 타 없어진 하나하나의 책들마다 제각기 한 사람씩의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그게 누구든지 한 권의 책을 채우기 위해 그 모든 것들을 생각해 낸거야. 책 한 쪽 한 쪽을 알맹이 있는 글로 채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았는지 알 수 없지. 전에는 결코 이런 생각을 해 보지 못했어.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 정리하기 위해 아마 일생을 바치다시피 한 사람도 있을 거야. 온 세상을 돌아다니고 온갖 사람들을 만나 보면서 이룩해 낸 업적을 나는 단지 일이 분 만에 재로 만들어버리는 거야. 그리곤 모든 것이 끝장나는 거지.” (P89)
한때는 책이란 것도 이곳저곳 모든 사람들에게 대접받았지. 경제적인 부담이 적기도 하고, 세상은 아직 여러 모로 여유가 많았으니까. 그런데 갈수록 인구가 늘고, 대중의 규모도 커지고, 따라서 대중 매체도 변화하기 시작했네. 인구가 두 배, 세 배, 네 배로 계속 늘어났지. 영화와 라디오, 텔레비전, 잡지, 그리고 책들이 점점 단순하고 말초적으로 일회용 비슷하게 전락하기 시작했네. 내 말을 이해하겠나?
상상을 해봐. 자네가 영사기를 돌린다고 생각해 보게. 19세기 사람이 말과 개와 짐마차를 끌고 느릿느릿 꾸물거리던 광경을. 그 다음 20세기엔 화면이 좀더 빨라지지. 책들이 점점 얇아지기 시작했지. 요약, 압축, 다이제스트판, 타블로이드판, 그리고 내용들도 죄다 말장난 비슷하게 가볍고 손쉬운 것들로 변해 갔지.
고전들이 15분짜리 라디오 단막극으로 마구 압축되어 각색되고 다시 2분짜리 짤막한 소개 말로, 결국에는 열 내지 열두 줄 정도로 말라비틀어져 백과 사전 한 귀퉁이로 쫓겨났지. 물론 내가 좀 과장하긴 했지만, 백과사전은 원래 그렇게 보라고 만든 거 아닌가. 아무튼 예를 들면 “햄릿”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차츰 줄어들었네. “햄릿”이란 제목은 자네도 알고 있을 거야. 부인도 아마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겁니다. 나중에 ‘햄릿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드립니다.’해서 보면 기껏해야 한 페이지 정도 설명해 놓은 게 다가 되었지. 그러면서 광고엔 이렇게 나오고. 이제 당신은 모든 고전들을 완전히 통달할 수 있습니다. 읽으십시오!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 되십시오. 알겠나? 보육원을 나와서 대학에 들어갔다가는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가는 거네. 지난 5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사람들의 지적인 문화 형태라는 건 그런 식이었네.
영사기를 더 빨리 돌려보게. 몬태그. 더 빨리, 찰칵, 그림, 시선, 눈, 지금, 철컥, 여기, 거기, 빨리, 질주, 위로, 아래로, 안으로, 밖으로, 왜, 어떻게, 누가, 뭘, 어디서, 응? 오! 펑! 휙휙! 철썩, 핑, 퐁, 쾅! 줄여줄여, 짧게 짧게, 간단간단, 정치? 칼럼 하나, 문장 두 줄, 됐어, 한 줄 짜리 헤드라인, 끝! 그러고는 허공으로 죄다 사라져 버리는 거야. 이기적인 출판업자들의 손이 결국은 사람들의 마음을 마구 망가뜨려 놓는 거지. 방송인들? 재미없는 건 죄다 내팽개쳐 버리는 거야. ‘왜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그러면서.
“학교 교육도 단순해져 갔지. 규율은 느슨해지고 철학과 역사와 언어는 비참하게 몰락하고 영어의 철자법은 갈수록 변질되어 갔지. 마침내 모든 것이 완벽하게 탈바꿈했네. 인생은 말초적이고 단순한 것으로, 일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으로,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후닥 일을 끝내고 나면 그때부터 마냥 놀고 즐기는 시간이 시작되는 거지. 단추만 누르면, 스위치만 잡아당기면, 나사만 조이면 그만인데 그밖에 뭘 더 배우고 일을 한 단 말야?
인생 자체가 얼음판에서 엉덩방아 찧듯이 볼썽 사나운 희극으로 타락해 버렸어. 알겠나 몬태그? 모든 건 그저 펑, 쾅, 우와! 그리고 끝장나는 거야.” (P93-95)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집단 의식을 고양시키는, 함께 즐길 수 있는 것들이지. 그런 생각은 못 해 봤겠지, 자네? 조직하고 조직하고 또 조직하는 걸세. 집단 운동, 집단 의식. 책에는 좀 더 많은 만화를, 좀 더 많은 그림을 집어넣고. 머리로 가는 지식은 가면 갈수록 적어지는 거야. 점점 더 단순하고 말초적이 되어 가는 거지. 고속도로는 온통 어디로들 몰려다니는 사람들로 꽉꽉 메워졌네. 여기로, 저기로, 결국은 도착하는 곳도 없지. 가솔린 방랑자라고나 할까.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모텔로 변하고, 주민들은 마치 파도처럼 왔다가 밀려가는 방랑자들로 끊임없이 뒤바뀌지. (P97)
지금 학교는 더 많은 야구선수, 높이뛰기 선수, 레이서, 땜장이, 강도, 날치기꾼, 비행사와 수영선수를 양산해 내고 있지. 연구원이나 비평가, 지식인, 그리고 상상력이 풍부한 창작가들 대신 말일세. ‘지성인’이란 말은 물론 들어도 마땅한 욕이 되었고, 자네는 늘 낯선 것을 두려워해 왔지. 틀림없이 기억날 걸세. 학교 다닐 때 자네 반에서 특별히 ‘총명’했던 친구, 다른 애들이 납인형처럼 멍하게 앉아 있을 때 열심히 손들고 대답하던 친구가 있지 않았던가? 다들 그 친구를 미워했겠지. 그래서 수업이 끝난 뒤에 몰려가서 때리고 짓밟았겠지, 그렇지? 그래, 물론 그랬어. 우리 전부가 똑같은 인간이 되어야 했거든. 헌법에도 나와 있듯 사람들은 다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는 거지. 그리고 또 사람들은 전부 똑같은 인간이 되도록 길들여지지. 우린 모두 서로의 거울이야. 그렇게 되면 행복해지는 거지. 움츠러들거나 스스로에 대립되는 판결을 내리는 장애물이 없으니까. 그래, 바로 그렇기 때문이야! 책이란 옆집에 숨겨 놓은 장전된 권총이야. 태워 버려야 돼. 무기에서 탄환을 빼내야 한다고. 사람들 마음을 파괴하는 거지. 다음엔 누가 박식한 인간으로 낙인찍힐까. 나? 아니, 난 책이라면 질색이야. 조금도 소화해 내지 못해. 자, 본론으로 돌아가자고. 마침내 전세계 집들이 전부 불연성이되자 예전처럼 불을 끄는 소방수란 존재가 필요 없게 되었지........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는 새로운 일거리가 할당된 거야. 우리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열등한 인간이 된다는 두려움, 그 타당하고 정당한 두려움에 초점을 맞춘 거지. 정부 검열관이나 판사, 집행관 같은 파수꾼, 몬태그, 그게 바로 자네고, 나라는 존재야. (P99-100)
“난 행복해지고 싶어라고 말야. 글쎄, 사람들은 불행한가? 우리는 사람들한테 감동과 즐거움을 제공했어.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도 그게 전부고. 쾌락, 자극? 자네도 인정해야만 돼. 우리 문화는 이미 이런 것을 많이 제공했어.” (P100)
사람들에 대한 추억이 어떠니저떠니하는 쓸데없는 논쟁은 그만두세. 잊어버리라고. 모든 추억을 태워 버리고, 모든 걸 태워 버리는 거야. 불은 현명하고 깨끗하지. (P101)
그 소녀? 그 앤 시한폭탄이었다고. 가족들은 그 애의 잠재의식을 부추겨 왔던 게 틀림없어. 학교 기록을 보면 확실하지. 그 앤 ‘어떻게?’ 아니라 ‘왜?’를 알고 싶어했어. 정말 골치 아픈 일이지. ‘왜?’라고 의문을 품고 그걸 고집할수록 불행해지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야. 그 불쌍한 애는 죽는 편이 훨씬 낫다고. (P102)
최소한 이 직업에 들어선 방화수들한테는 전부 견디기 어려운 갈망이 하나 있어. 도대체 책에는 어떤 말이 들어 있나 하는 걸세. 자네도 그런 갈망을 풀고 싶겠지, 안 그래? 하지만 몬태그, 내 말 명심하게. 나도 젊었을 땐 몇 권 읽어본 적이 있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알고 싶어서 말이야. 그런데 책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가르치거나 믿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소설책에는 그저 상상으로 지어낸, 실재하지 않는 사람이나 이야기가 있을 뿐이야. 그리고 소설이 아니라면 그건 더 나빠. 어떤 교수는 다른 사람을 바보라고 하고, 또 어떤 교수는 다른 사람들 목구멍 속으로 비명을 지르더군. 그러고는 그저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별을 괴롭히고 태양을 식게 하려고 발버둥치는 거야. 자네는 책 속에 들어가는 즉시 길을 잃을 걸세. (P104)
밀리! 제발 내 말 좀 들어 봐, 잠시만.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이 책들을 태워선 안 돼. 읽고 싶단 말이야. 한 번이라도. 읽은 다음에 서장 말이 옳았다고 생각되면 그 때, 그 때 태웁시다. 날 믿어줘. (P110)
하지만 책을 읽으면 뭔가 알 수 있을지도 몰라. 이 캄캄한 동굴 같은 신세를 좀 벗어날지도 몰라. 너나없이 똑같이 이런 광기 어린 삶을 살아가는 운명에서 벗어나도록 해 줄지도 몰라. 난 저 벽면에서 밤낮없이 떠들고 노는 바보 같은 자식들 얘기는 듣지 않겠어. 제발 밀리, 모르겠어? 하루 한 시간씩만, 하루 두 시간씩만 이 책들을 읽으면, 어쩌면...... (P121)
당신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당신은 우리들을 파멸의 길로 이끌고 있어요.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요? 나예요, 아니면 성경이에요? (P125)
이 책을 아주 빨리, 그리고 죄다 읽는다면 어쩌면 체에 모래가 담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면 그때는 비티가 기다리고 있다. 결국 책을 그에게 넘겨주어야만 할 것이다. 그래 좋다. 이 책의 단 한 줄, 단 한 구절도 내 머리에서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꼭꼭 씹어 읽자. 나는 해내고야 말겠다.
몬태그는 책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P128-129)
파버는 킁킁거리며 책의 냄새를 맡았다.
“책의 냄새가 열대 지방의 나무나 아니면 다른 이국의 생소한 향료와도 같다는 걸 아시오? 나는 어릴 적부터 책 냄새 맡는 걸 좋아했소. 아아, 세상이 이 지경이 되기 전만 해도 얼마나 향긋한 책들이 많았는데.” 파버는 책장을 넘겼다.
“몬태그 씨. 당신 앞에 있는 이 늙은이는 못난 겁쟁이라오. 나는 오래전 세상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알면서도 보고만 있었소. 아무 말도 안 했소. 나는 소리 높여 외칠 수 있는 ‘결백한 사람들’중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죄인’에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결백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결과 나 자신도 죄인이 되었소. 마침내 저들이 방화수를 동원해 책을 불태우는 지경이 되도록 나는 그저 몇 마디 혼자 구시렁거리다 제풀에 수그러들었지. 그때까지 나와 함께 불평하거나 소리 질러 주는 사람이 그 누구도, 단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라오. 이젠 너무 늦어 버린 것 같아.” (P134-135)
“당신은 어떻게 해서 마음에 갈등이 생긴 거요? 무엇이 당신의 마음에 불을 당기고 당신 손이 도둑질을 하게 만들었소?”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건 뭐든지 있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무엇 하나 모자란 게 없는 세상인데 우린 행복하지 않아요. 뭔가가 빠져 있어요.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제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단 한 가지는 그 동안에 사라진 거라곤 지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제가 불태워 없앤 책들, 책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에 뭔가 해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구제 불능의 낭만주의자군. 심각하지만 않다면 꽤나 즐길만할 텐데. 당신에게 필요한 건 책이 아니오. 지난날 한때 책 속에 들어 있었던 그 무엇이오. (...) 당신이 찾아 헤매는 건 책이 아니야! 당신은 낡은 축음기 음반에서, 낡은 영화 필름에서, 그리고 오래된 친구들에게서 책에서 구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것들을 얻을 수 있지. 자연 속에서, 그리고 당신 자신 속에서 찾아보시오. 책이란 단지 많은 것들을 담아 둘 수 있는 그릇의 한 종류일 따름이니까. 우리가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것들을 담아 두는 것이지. 책 자체에는 전혀 신비스럽거나 마술적인 매력이 없소. 그 매력은 오로지 책이 말하는 내용에 있는 거요. 우주의 삼라만상들을 어떤 식으로 조각조각 기워서 하나의 훌륭한 옷으로 내보여 주는지, 그 이야기에 매력이 있는 것이오.
(...)
당신은 이와 같은 책들이 왜 중요한지 알고 있소? 왜냐하면 이런 책들은 좋은 ‘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질이라는 건 과연 무슨 뜻인가? 내게는 짜임새를 의미하오. 책은 아주 세밀하게 짜여진 것이오. 아주 작은 숨구멍들이 셀 수 없이 많이 붙어 있소. 자기 나름의 뚜렷한 생김새를 지니고 있단 말이지. 현미경으로도 들여다봐도 여전히 짜임새가 눈에 보일 정도로 아주 세밀하게 엮인 것이오. 현미경을 통해서 당신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발견할 것이오. 끊임없이 넘쳐 나는 이야기와 깨달음을 발견할 것이오. 그 현미경을 통해서 한 제곱 센티미터마다 얼마나 많은 숨구멍들이 보이는지, 책장 하나하나마다 진실한 삶의 이야기들을 얼마나 많이 얻을 수 있는지, 이것이 내가 내리는 ‘질’의 정의요. 그렇지만 질이 좋은 책도 읽는 사람을 잘 만나지 못하면 빛을 못 보지. 아무튼 내 생각은 이렇소. 세밀하게 이야기하라. 생생하게 이야기하라. 좋은 작가들은 진실한 삶의 이야기를 담지만, 그저 그런 작가들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쓱 어루만지고 지나갈 뿐이오. 아주 형편없는 작가들은 삶의 이야기를 제멋대로 농락한 뒤에 파리똥이나 쌓이는 신세로 내팽개쳐 버리지요.
이제 알겠소? 왜 책들이 증오와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렸는지? 책들은 있는 그대로의 삶의 모습을, 숨구멍을 통해서 생생하게 보여지는 삶의 이야기들을 전해 준다오. 그런데 골치 아픈 걸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저 달덩이처럼 둥글고 반반하기만 한 밀랍 얼굴을 바라는 거야. 숨구멍도 없고, 잔털도 없고, 표정도 없지. 꽃들이 빗물과 토양의 자양분을 흡수해서 살지 않고 다른 꽃에 기생해서만 살려고 하는 세상,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참모습이오. 우리는 꽃에 물을 주면 그것이 저절로 자라는 줄 알지만, 현실의 진짜 모습은 그게 아니지.” (P135-137)
"첫 번째는 말했다시피 정보의 질이오. 두 번째는 그 정보를 소화할 충분한 시간이지. 그리고 세 번째는, 지금 말한 두 조건의 상호 작용으로 얻어지는 우리의 배움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권리요. 그렇지만 나는 늙은이와 방화수 둘이서 뭘 해 보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소……." (P139)
우리는 정상적으로 숨쉬며 살아가야 하오. 우리는 지식이 필요하오. (P141)
몬태그, 당신이 찾아 헤매는 건 이 세상 어딘가에 있소. 그러나 그런 것들 중의 99퍼센트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오. (...) 당신은 당신 몫만큼의 보존을 스스로 해내야만 합니다. 언젠가 물에 빠져 헤엄치다 지쳐 죽게 될지라도 적어도 그때는 뭍 쪽으로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는 사실은 알고 죽는 거니까. (P141-142)
자신의 무지를 감춘다면 아무도 당신을 공격하지 않겠지. 그 대신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게 되는 거요. (P170)
“자, 몬태그. 세상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우리가 가고 있네!”
비티의 번들거리는 양 볼따구니가 어둠 속에서 언뜻언뜻 번쩍거렸다. 그는 일그러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 왔다!”
방화차가 요란하게 멈추어 섰다. 모두들 날렵하고 사뿐하게 뛰어내렸다. 그러나 몬태그는 손으로 꽉 쥐고 있는 차가운 손잡이에 시선을 고정한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난 할 수 없다. 어떻게 또 이 짓을 한단 말인가? 어떻게 그걸 불태운단 말인가? 난 할 수 없다.
그들이 휘저어 놓은 밤 공기의 냄새를 맡고 있던 비티가 몬태그의 팔꿈치를 잡았다.
“자, 괜찮나, 몬태그?”
방화수들은 거추장스런 방화복장 때문에 절름발이같이 엉기적거리며 거미처럼 소리 없이 달려갔다.
마침내 몬태그는 고개를 들고 몸을 돌렸다.
비티가 그의 얼굴을 보았다.
“왜, 뭐가 잘못됐나, 몬태그?”
“아아.”
몬태그는 천천히 내뱉었다.
“여긴..... 우리 집이야.” (P178-179)
정말 아찔할 정도로 놀랍군. 누구나가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지. 절대적으로 확실한 사실. 바로 나한테는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으리라는 착각이야. 다른 사람들은 죽지만 나만은 계속 살아간다. 그런 일도 없고, 또 남들의 일에 책임도 없다. 그러나 분명 누구에겐가는 일어나는 일이지. 하지만 그것에 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겠네. 그 일이 자네에게 일어났을 때는 이미 늦은 거니까. 몬태그,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P185-186)
“불만큼 사랑스러운 게 어디 있을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게 말야.”
비티는 불을 껐다가 다시 켰다.
“이건 영원한 움직임이지. (...) 만약 계속 타오르게 놓아둔다면 사람의 생애도 다 태워 버릴걸. 도대체 불이란 게 뭘까? 수수께끼야. 알아듣기 어려운 말만 써서 마찰이 어떻고 분자가 어떻고 하고 떠드는 과학자들도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네. 불의 참된 아름다움은 책임과 결과를 없애 버린다는 데 있지. 견디기 힘든 문제가 있으면 화로에다 던져 버리면 돼. 몬태그, 이제는 자네가 바로 짐이라고. 그래서 불이 내 어깨에서 자네를 들어낼 걸세. 깨끗하고, 빠르고, 확실하게. 앞으로 그 어떤 것도 되돌려 놓지 못하도록. 아름답고 실제적인 항생 물질이지. 불이란.” (P186)
몬태그는 점화기의 안전 장치를 찰칵 풀었다.
“쏴!”
거센 불길이 솟구쳐 나와 책을 덮쳐 휘감아 벽에 내던졌다. 침실로 들어가 한 번 더 쏘자 침대가 쉿쉿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열기, 정열, 빛. 자신이 언제나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 열기와 정열, 빛으로 타오르는 두 사람의 침대. (...) 모든 것, 이렇게 공허한 집에서 자신이 살았던 흔적, 내일이면 그를 잊어버릴, 아니 떠나는 순간 이미 그라는 존재를 깡그리 잊어버렸을 여자를, 그녀와 함께 살았던 흔적을 나타내는 모든 것을 태운다. 귀마개 라디오에 푹 빠져 시내를 가로지르고 있을 밀드레드. 혼자서. 몬태그는 예전처럼 태우는 일에 빠져들었다. 자신이 불길 속에서 분출해 불꽃과 어우러져 찢기고, 내동댕이쳐지고, 타오르는 듯한 쾌감을 느꼈다. 그래서 무의미한 문제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해결책이 없다면, 이제 문제도 없다. 불이야말로 만병통치약이다!
“몬태그, 책을 태워!”
책은 펄쩍 뛰어올라 불붙은 새처럼 춤춘다. 붉고 노란 깃털이 달린 날개가 타오른다. (P187-188)
“밀고한 사람이 바로 제 아내입니까?”
비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부인 친구들이 한 걸음 빨랐지. 몬태그, 어떻든 간에 자넨 이렇게 해야만 될 운명이었어. 정말 어리석지 않나. 시구나 인용하면서 이렇게 자유롭고 쉬운 삶 주위를 어정거리다니. 정말 어리석고 쓸데없는 짓이지....... 자넨 책만 가지면 물위를 걸어다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글쎄, 과연 그럴까. 지금 세상은 책 없이도 모든 걸 잘 해내고 있어. 그것들이 자네를 어디로 몰아넣었는지 잘 보게나. 자네 입술까지 진흙이 차 있어. 이렇게 작은 손가락으로 휘젓기만 해도 자네는 금방 익사할 거라고!” (P189)
몬태그는 이렇게 되뇔 뿐이었다.
“우리는 절대 정의를 태우지 않았어요.....”
“자 이봐, 그걸 끄라고.”
비티는 기계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 다음 순간 비티는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불꽃이 되어 뛰어올랐다. 비티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마치 인체 해부도의 사진처럼 온몸을 펼치고 뜻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몬태그가 액체 총탄을 한 번 더 쏘자 불꽃 덩어리가 잔디밭 위에서 몸부림쳤다. 한 입 가득 머금은 침을 벌겋게 달아오른 화덕 위에 뿜는 것 같은 쉭쉭 소리가 났고, 온 몸뚱이는 괴상한 검정 달팽이한테 소금을 집어던져 거품을 일으킨 것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노랗게 끓어오른느 거품. 몬태그는 눈을 감고 소리치고, 또 소리쳤다. 그리곤 두 손을 귀에 꽉 붙인 채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 비티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쿵. 쿵. 마침내 숯덩이가 된 왁스 인형처럼 몸을 한 번 뒤틀곤 그대로 잠잠해졌다.
다른 방화수 두 명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몬태그는 구역질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 다음 다시 점화기를 겨누었다. (P191-192)
비티, 당신은 이제 문제가 아냐. 당신이 언제나 말했지. 문제에 직면하지 말고 그냥 태워 버리라고. 그래, 이제 난 두 가지 일을 다 해낸 거야. 안녕, 서장이여. (P194)
명심해야 해. 그들을 태워 버리지 않으면, 그들이 널 태워 버릴 거야. 그래, 바로 그순간 그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었다. (P197)
태양은 날마다 타오른다. 시간을 태운다. 이 세상은 축을 중심으로 빙빙 돈다. 그리고 시간은 세월을 태우고, 사람들을 태운다. 몬태그 자신이 돕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만약 그가 방화수들과 함께 사물을 태우고 태양이 시간을 태운다면, 모든 게 타버리는 셈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태우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태양은 멈출 수 없다. 무엇보다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몬태그와 또 몇 시간 전까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막아야 한다. 어디에선가 은닉과 보관을, 누군가가 그것을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책이나 기록, 사람들의 머리, 그 무엇이든 숨겨야 한다. 좀이나 녹, 곰팡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냥 든 사람한테서 안전하게 살아 남을 수 있도록 숨겨야 한다. 이 세상은 다양한 형태의 방화범들로 가득 차 있다. (P218)
몬태그는 마침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 여러분들 틈에 끼여들 자격이 없습니다. 전 여태까지 어리석은 짓만 해왔습니다.”
“우리 역시 다 그렇소. 우리 전부는 실수를 저질렀다오. 그렇지 않다면 여기에 있지도 않았을 거요. 우리가 개인으로 분리되었을 때 우리한테 남는 것은 분노뿐이라오. 난 몇 년 전에 내 서재를 태우러 온 방화수를 두들겨 팼지. 그 뒤로 계속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고, 몬태그, 우리와 어울리고 싶소?”
“그렇습니다.”
“뭔가 우리한테 줄 건 없소?”
“없습니다. 전도서 가운데 일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아마 요한계시록일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전도서라니, 아주 좋아. 그런데 그 책이 어디에 있었소?”
“바로 여깁니다.”
몬태그는 머리를 가리켰다. (P230)
“몬태그, 플라톤의 <국가>를 읽고 싶지 않소?”
“물론 읽고 싶지요!”
“내가 바로 플라톤의 <국가>라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시몬스 박사가 바로 마르쿠스라오.”
(...)
“사악한 정치 소설인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나단 스위프트를 소개합니다. 이 사람은 찰스 다윈이고, 이 사람은 쇼펜하우어이고, 이 사람은 아인슈타인, 그리고 여기 바로 이 사람은 아주 관대한 철학자인 앨버트 슈바이처입니다. (...)” (P231-232)
“우리는 책 방화수이기도 하지. 일단 읽은 책은 태워 버립니다. 발각되면 안 되니까. 축소 필름도 소용없지요. 늘 돌아다녀야 하는 신세라 어딘가에 묻어 두었다가 다시 찾는 일은 하고 싶지 않소. 발각될 위험은 언제나 따라다니지. 늙은 머릿속에다 감춰 두는 게 제일 안전하오. 다른 사람이 보거나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까.” (P232)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식을 원래대로 안전하게 보관하는 일이라오. 우린 여태껏 누구를 자극하거나 화나게 하는 일을 하지 않았소. 우리가 죽는다면 지식도 영원히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지. (P233)
오늘 밤 길 위나 버려진 철로를 오가는 수천 명이 밖에서 보면 부랑자지만, 안은 도서관이라오. 처음에는 계획적이지 않았소. 기억하고 싶은 책이 있는 사람들 각자가 그렇게 했지.... 우리가 명심해야 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결코 중요한 존재도, 박식한 사람도,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잘난 인물도 아니라는 거지요. 우린 그저 책을 보관하는 지저분한 책덮개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오. (...) 한 사람마다 수많은 페이지를 담당하고 있소. 앞으로 언젠가, 어느 해인가 전쟁이 끝나면 책은 다시 쓰여질 것이고, 그 때 사람들은 하나하나 호출되어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을 암송하겠지. 그러면 우리는 또다시 암흑시대가 도래해서 이 빌어먹을 일들을 다시 시작해야 될 때까지 책을 만들어 낼 것이오. 하지만 이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훌륭한 일이지. 인간은 용기를 잃거나 비겁해져서 이런 일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오. 아주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아니까. (P233-234)
그들은 자신들이 머릿속에 넣고 다니는 지식이 미래의 새벽을 순수한 빛으로 밝히리라는 사실을 확신하지 않는다. 그들의 조용한 눈동자 뒤에 쌓인 책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확신하지 않는다. 한 페이지도 잘려 나가지 않은 그 책들은 앞으로 손님들이 찾아와 깨끗하기도 하고 더럽기도 한 손으로 만져 주길 기다릴 뿐이다. (P236)
“사람들은 전부 자신이 죽을 때 뭔가를 남긴단다. 아이나 책, 그림, 집, 벽이나 신발 한 결레, 또는 잘 가꾼 정원 같은 것을 말이야. 네 손으로 네 방식대로 뭔가를 만졌다면, 죽어서 네 영혼은 어디론가 가지만 사람들이 네가 심고 가꾼 나무나 꽃을 볼 때 너는 거기 있는 거란다. 무엇을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아. 네 손이 닿기 전의 모습에서 네 손으로 네가 좋아하는 식대로 바꾸면 되는 거란다. 그저 잔디를 깎는 사람과 정원을 가꾸는 사람과의 차이란 바로 매만지는 데 있지. 잔디를 깎는 사람의 마음은 전혀 정원에 있지 않지만 정원을 가꾸는 사람은 언제나 그곳에 있단다.” (P238-239)
납작하게 누워 한없이 침몰해 가던 몬태그는 그저 보고 느낄 뿐이다. 자신이 본 장면을 상상하거나, 밀리의 얼굴에서 어두워져 가는 벽을 느끼고, 밀리의 비명을 듣는다. 남겨진 찰나의 시간 속에서 수정구가 아닌, 거울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 한순간 텅 비어버린 얼굴이 홀로 방안을 가득 채운 채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굶주려 자신을 먹어 치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밀리의 울부짖음. 마침내 밀리는 깨닫는다. 그 얼굴이 바로 자신의 것임을. (P242)
사람들이 육지에 내팽개쳐진 물고기처럼 숨을 헐떡거리며 누워 있다. 어린아이들이 손때 익은 물건을 움켜잡듯 땅을 움켜잡은 채. (...) 그리고 모두들 고막이 터지는 것을 막으려고, 이성이 파괴되는 것을 지키려고 입을 벌리고 소리쳤다. 몬태그도 그들과 함께 소리쳤다. 그들의 얼굴을 때리고, 입술을 찢고, 코피를 강요하는 바로 그 핵폭풍에 항의하는 외침이었다.
몬태그는 그들의 세상에 거대한 먼지 더미가 자리잡고 거대한 침묵이 내려앉은 모습을 지켜보았다. 누워 있는 그에게 먼지 입자 하나하나, 풀잎 줄기 하나하나가 다 보였다. 또 지금 세상에 울려 퍼지는 울부짖음, 외침, 속삭임 하나하나가 다 들린다. 침묵은 체로 친 듯 고운 머니지 위에 내려앉는다. 그리고 이날의 현실을 그들의 의식 속에 차곡차곡 개켜 넣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는 데 필요한 휴식 위로 내려앉는다.
몬태그는 강을 바라본다. 우리는 저 강을 지나가리라. 그리고 낡은 철도 선로로 눈길을 돌린다. 아니면 저 길을 따라가리라..... 책을 우리 머리 속에 집어넣을 여유도 있겠지.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에게 부과된 그 오랜 시간이 지나면, 책은 우리의 손과 입에서 나타날 것이다. 물론 나쁜 책도 많겠지만 그만큼 좋은 책도 많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 당장 출발해서 이 세상과, 이 세상이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 이 세상의 실제 모습을 관찰할 것이다. 지금 난 모든 것을 보고 싶습니다. 물론 그 모든 것들이 다 내 머리 속에 들어올 수는 없겠지만, 얼마 뒤 내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 바로 내가 될 것입니다. 저 멀리 세상을 보십시오. 오 하느님, 하느님, 저 바깥 세상을 보십시오. 나라는 존재 밖, 내 얼굴 저편을 말입니다. 저것을 실제로 만져 볼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내 몸, 내 피, 하루에도 수천만 번씩 맥박치는 내 피 속에 흘려 보내는 것입니다. 다시는 달아나지 않도록 꽉 붙들겠습니다. 언젠가는 세상을 꽉 붙들고 놓지 않을 겁니다. 이제 우리는 손가락 하나를 올려놓았습니다. 첫 발을 내디딘 거지요. (P244-245)
자, 이제 상류로 갑시다. 그리고 한 가지 생각만은 잊지 맙시다. 우리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생각 말입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짊어지고 가는 이 짐이 누군가를 도울 것입니다. 하지만 아주 옛날, 우리 손에 책이 쥐어져 있을 때는 그것을 올바로 쓰지 못했습니다. 그저 죽은 사람을 모욕했을 뿐. 우리보다 먼저 죽은 가엾은 사람들의 무덤에 침을 뱉었습니다. 우리는 다음 주, 다음 달, 다음 해에 외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것입니다. 그때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고 있냐고 물으면,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기는 길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거대한 굴착기를 만들어 역사에 남을 거대한 무덤을 파서 전쟁을 쓸어넣고 완전히 덮을 정도로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될 겁니다. (P247-248)
문: 사람들이 <화씨 451>을 읽으면서 간혹 간과하는 것이, 처음에 책을 태우기 시작한 것은 정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바로 책읽기를 싫어하는 보통 사람들이 그랬지요. 책을 읽고 생각하고 되새김으로써 다시 또 책을 들게 하는 습관에서 멀어진 사람들이요. 나중에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정보를 통제하기 시작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지요. 우리와 같은 민주주의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독서는 얼마나 중요한 겁니까?
답: 어떤 학술 도시에 내일 지진이 일어난다고 가정해 봅시다. 지진이 끝나고 온전하게 남은 건물이 두 채밖에 없다고 할 때, 손실된 것들을 복구하기 위해 그 건물들은 가장 먼저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요? 우선 첫 번째 건물은 병원이 되어야겠지요. 부상자들을 속히 치료해서 살려내야 할 테니까요. 다른 하나의 건물은 도서관이 될 겁니다. 다른 모든 건물들이 죄다 그 하나에 담기는 겁니다. 사람들은 도서관에 가서 필요한 것을 뭐든지 얻게 됩니다. 문학에서부터 경제, 정치, 공학 등등 뭐든지 필요한 책을 갖고 나와서 잔디밭에 앉아 읽는 겁니다. 독서란 우리네 삶의 중심이에요. 도서관은 바로 우리의 두뇌죠. 도서관이 없다면 문명도 없습니다.
(P268-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