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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샤이닝>

영화 <샤이닝> 2023년

by 노용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샤이닝>(1980), <스티븐 킹의 샤이닝>(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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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또한..... 거대한 흑단 시계가 서 있는 것도 바로 이곳이었다. 시계추는 둔탁하고 묵직한, 단조로운 소리를 내며 왔다 갔다 흔들렸다. 그리고 ..... 정각을 칠 때가 되면, 시계의 놋쇠 허파에서 맑고 높고 깊고 대단히 음악적인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소리는 너무나 독특하고 강해서 한 시간이 지날 때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들은 손을 멈추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왈츠를 추던 사람들도 부득이하게 춤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흥에 겨운 사람들 사이에 짧은 불만이 나왔다. 그런데 시계의 종이 아직 울리고 있던 중, 가장 들떠 있던 젊은이들은 안색이 하얗게 질리고, 나이 지긋하고 침착한 이들은 혼란스러운 환상을 본 것처럼 이마에 손을 짚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종소리의 울림이 완전히 멎고 나자 곧 사람들 사이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치 긴장했던 스스로를 비웃는 것처럼..... 다음엔 시계가 울릴 때에는 그런 기분이 들지 않을 거라고 서로에게 귓속말로 다짐했다. 그리고 60분이 지나자..... 또 시계가 울리기 시작했고, 전과 똑같은 소란과 동요와 회상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흥겹고 성대한 파티였다.....

--애드거 앨런 포, ‘붉은 사신의 가장무도회’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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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토런스는 생각했다. ‘잘난 체하는 땅딸보 자식.’

울먼은 160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키에 작달막하고 살집 좋은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재빠른 몸놀림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머리의 가르마는 빈틈없이 갈라져 있었고 검은 양복은 점잖으면서도 편안해 보였다. 돈을 지불하는 고객은, 그 양복을 입은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든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고용된 일꾼들에게 그 양복은 더욱 강한 인상을 주었다. 거기, 너, 똑바로 하는 게 좋을걸이라는, 양복 깃에는 빨간 카네이션이 꽂혀 있었는데, 밖에서 사람들이 스튜어트 울먼을 장의사로 착각하지 않도록 꽂아 놓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울먼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잭은 책상 저쪽에 앉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마음에 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그는 울먼의 질문 가운데 하나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이런, 울먼은 그렇게 잠시 정신을 딴 데 판 것도 일일이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끄집어낼 인간이었다. (P13)

아마도 그 사건은, 그레이디가 몰래 잔뜩 들여놓은 싸구려 위스키를 과음한 결과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옛날 사람들이 오두막 열병이라고 부르는 특이한 상황도 겹쳤고요. 들어 본 적 있습니까?

울먼은 잭이 모른다고 하자마자 설명할 참으로, 생색 내듯 미소를 슬쩍 지어 보였고, 잭은 고소한 심정으로 재빠르고 명료하게 대답했다.

“그건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함께 갇혀 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폐소공포증 반응을 일컫는 속어이죠. 폐소공포증은 함께 갇힌 사람들에 대한 증오감으로 발현됩니다. 극단적인 경우, 환각에 빠지거나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죠. 최악의 경우는 살인이고, 식사를 태우거나 설거지 당번이 누구냐를 놓고 시비를 거는 등의 사소한 싸움이 벌어집니다.”

울먼은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잭은 속이 후련했다. 그는 좀더 밀어붙일 작정이었지만, 속으로 침착하겠다고 웬디에게 다짐했다.

“거기서 실수를 하셨군요. 그가 가족을 다치게 했습니까?”

“살해했습니다. 토런스 씨, 그러고는 자살했죠. 손도끼로 어린 딸들을 해치고 엽총으로 아내를 쏜 다음 자기도 죽었습니다. 다리가 부러져 있었습니다. 분명 많이 취해서 계단에서 넘어졌을 겁니다.” (P22)

“그럼, 쥐가 정말로 있습니까?”

“어. 몇 마리 있지 싶어, 울먼 씨가 창고랑 여기다 쓰라고 한 덫이랑 쥐약을 갖다 놓았소. 아들을 잘 챙기시오. 토런스 씨, 그 애가 무사하기를 바랄 것 아니오.”

“그럼요. 물론이죠.” 왓슨의 입에서 나온 조언은 기분 나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계단으로 갔다. 거기서 왓슨이 또 코를 푸는 동안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

“필요한 연장은 저 밖에 다 있을 거고, 필요 없는 것도 있을 거요. 그리고 지붕 널도 거기 있소. 울먼이 그 얘기 해 주었소?”

“예, 서쪽 지붕 널을 좀 다시 깔아 달라고 하더군요.”

“저 뚱땡이가 당신한테 시킬 수 있는 공짜 일은 전부 다 시키고는 봄에 돌아와서 절반도 안 해 놓았다고 징징거릴 거요. 내 한번은 면전에다 대고 말했소, 내가.....”

두 사람이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왓슨의 말소리는 기분 좋게 윙윙거리는 소리로 잦아들었다. 잭 토런스는 곰팡내 나는 칠흑같은 어둠 속을 돌아보고 거기야말로 유령이 나올 만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그는 보드랍지만 냉혹한 눈에 갇혀 서서히 미쳐 가다 분노를 폭발시킨 그레이디를 생각했다. 그들이 비명을 질렀을까? 궁금했다. 불쌍한 그레이디, 결국 봄을 맞지 못하게 되다니. 그는 여기 오지 말았어야 했다. 그리고 이성을 잃지 말았어야 했다.

왓슨을 따라 문으로 들어가는 동안, 그 말은 마치 장례식 종소리처럼 귓전을 울렸다. 연필심이 부러지는 것 같은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오, 하느님, 술이라도 한잔해야 할 것 같다. 아니, 궤짝으로 들이부어야 할지도. (P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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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웅 하는 소리는 점점 더 커지더니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대니는 어두운 복도에 웅크리고 있었다. 얼룩덜룩 검은 무늬가 짜여진 푸른 깔개 위에 웅크리고 앉아 웅 하는 소리가 다가오는 것을 들으며, 그때 어떤 형상이 모서리를 돌아 그를 향해 다가왔다. 비척비척, 피와 죽음의 냄새를 풍기며, 그것은 한 손에 방망이를 들고 무시무시한 반원을 그리며 흔들더니 (‘해살’) 벽에 처박아 실크 벽지를 가르고 석고 가루를 유령처럼 떨어뜨렸다.

이리 나와서 벌을 받아! 남자답게 벌을 받아!

그 형상이 대니를 향해 다가왔다. 시큼한 냄새를 풍기며, 방망이를 휘두르며, 그러다 벽에 부딪치면 공허한 굉음이 들리고, 풀썩하며 먼지가 떨어진다. 건조하고 근질거리는 냄새가 났다. 어둠 속에서 충혈된 작은 눈이 번뜩였다. 괴물이 이쪽으로 다가와 대니를 발견하더니 벽에 등을 대고 웅크렸다. 그리고 천장의 뚜껑 문이 잠겼다. (P58-59)

“왜 그랬니, 대니? 어지러웠어?” 웬디가 물었다.

“아뇨, 그냥..... 생각하느라요. 미안해요. 놀랄 줄 몰랐어요?”

아이는 자기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부모를 쳐다보더니 당황한 듯 조금 웃어 보였다. “햇빛 때문에 그랬나 봐요. 햇빛이 눈에 비쳤어요.”

“호텔에 가서 물 마시자.” 아빠가 말했다.

“네.”

그리고 경사가 완만해지자 좀더 확실히 위로 움직이는 차 안에서 아이는 부모 사이에 앉아 계속 밖을 내다보았다. 길이 펼쳐지며 거대한 서향 창문들이 햇빛을 반사하고 있는 오버룩 호텔의 모습이 문득문득 보였다. 여기가 바로 눈보라 속에서 본 곳이었다. 섬뜩하게 낯익은 사람의 모습이 정글 문양의 카펫이 깔린 긴 복도를 따라 그를 찾아다니던, 어둡고 시끄럽던 그곳. 토니가 가지 말라고 경고했던 그곳. 그곳이 여기였다. 그곳이 여기였다. ‘해살’이 뭔지 몰라도 그것은 여기에 있었다.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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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0분 동안 할로런은 상자와 문을 열어 웬디가 여태까지 본 적 없는 엄청난 양의 식량을 보여 주었다. 식량의 양은 웬디를 놀라게 했지만 안심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도너 일행이 자꾸만 생각났다.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이렇게 많은 식량을 가지고 서로를 잡아먹을 정도로 되려면 정말로 긴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정말 심각한 일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던 것이다. 눈이 내리면, 여기에서 빠져나가려고 할 때 사이드와인더까지 한 시간 동안 운전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대대적인 작전이 필요해진다. 그들은 이 버려진 특급 호텔에 앉아 동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남은 음식을 먹으며 눈 쌓인 처마 주위에서 찬바람 부는 소리를 듣고 있게 될 것이다. 버몬트에서 대니가 팔을 부러뜨렸을 때

(잭이 대니의 팔을 부러뜨렸을 때) (P118-119)

그리고 울먼은 그들을 안내하여 밖으로 나왔다. 엄마는 아들에게 산이 멋지냐고 물었다. 대니는 산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했다. 울먼이 문을 닫을 때 대니는 어깨 너머로 돌아보았다. 핏자국이 다시 보였다. 이번에는 방금 묻은 모습으로, 바로 그쪽을 쳐다보고 있던 울먼은 여기 묵었던 유명 인사들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대니는 입술을 하도 세게 물어 피가 났지만 그런 줄도 모르고 있었다. 복도를 걸어갈 때, 대니는 조금 뒤로 쳐져 손등으로 피를 닦아 내고 생각했다.

‘피’

‘할로런 씨가 피를 본 것일까, 아니면 그보다 더 지독한 것을 본 것일까?’

‘여기에 널 해칠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목구멍까지 비명이 치밀어 올랐지만 대니는 그것을 입밖에 내지 않을 셈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그런 것을 볼 수 없다. 그런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대니는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게 현실이다. 다른 것은 책에 나오는 그림과 같은 것일 뿐이다. 그림 중에는 무서운 것도 있지만 그것은 사람을 해치지 못한다. 그것은...... 나를..... 해치지 못한다. (P15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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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응?”

“해살이 뭐예요?”

“햇살? 햇빛 말하는 거 같구나.”

침묵.

“자니, 똘똘아?”

대니는 잠이 들어 천천히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잭은 앉아서 아이를 잠시 내려다보았고, 밀물처럼 사랑이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왜 아들에게 그렇게 소리를 질렀을까? 아이가 조금 더듬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얼이 빠져 있었거나 기절 비슷한 상태에서 정신을 차린 것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말을 더듬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너무나, 그리고 아이는 타이머란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뭔가 다른, 뜻모를 말이었을 것이다.

로크에 이닝이 있다는 것을 대니가 어떻게 알았을까? 누군가 이야기해 준 것일까? 울먼이? 할로런이?

잭은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긴장해서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오 술 생각이 너무나 간절하다.’

손톱이 조그만 낙인처럼 손바닥을 파고들고 있었다. 그는 서서히 손을 폈다.

“사랑한다, 대니.” 그가 속삭였다. “정말이야.”

그는 방을 나왔다. 그는 비록 조금이긴 하지만 이성을 잃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괴롭고 두려웠다. 술 한잔이면 그런 감정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이다. 그러면 그것과

(타이머에 관한 것)

다른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은 절대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절대, 똑똑히 들었다. 잭은 복도로 나와 뒤를 돌아보고 무의식적으로 손수건으로 입을 닦았다. (P202-203)

“그래서 토니가 말한 곳에서 아빠가 그걸 찾아내셨구나?”

“예, 선생님. 근데 토니가 말해 준 것은 아니에요. 보여 주었어요.”

“알겠구나, 대니. 어젯밤에는 토니가 무엇을 보여 주었니? 네가 욕실 문을 잠그고 앉아 있었을 때 말이다.”

“기억이 안 나요.” 대니가 재빨리 대답했다.

“확실하니?”

“예, 선생님.”

“좀 전에 내가 네가 욕실 문을 잠갔다고 했는데, 하지만 그게 아니지? 토니가 문을 잠근 거지.”

“아뇨. 선생님, 토니는 진짜가 아니라서 문을 잠글 수 없었어요. 그 애가 저보고 문을 잠가 달라고 해서 제가 잠갔어요.”

“토니가 항상 잃어버린 물건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 주니?”

“아뇨, 선생님. 어쩔 때는 일어날 일을 보여 주기도 해요.” (P220)

“또 토니로군.” 잭이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일까요? 선생님은 혹시 아세요?” 웬디가 물었다.

“약간은 알 것 같습니다. 두 분께서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어쨌든 말씀해 주십시오.” 잭이 말했다.

“대니가 해 준 이야기를 분석해 보면 ‘보이지 않는 친구’는 여러분이 뉴잉글랜드에서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는 진짜 친구였어요. 토니는 이사 온 이후부터 위협적인 존재가 된 겁니다. 즐거운 놀이가 악몽이 되었는데, 아드님은 그 악몽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기억할 수 없어서 더욱 무서워하고 있어요. 그건 아주 당연한 일이지요. 우리는 누구나 무서운 꿈보다는 즐거운 꿈을 더 잘 기억하지요. 의식과 잠재 의식 사이에는 완충기가 있고, 거기에는 청교도들이 잔뜩 살고 있어요. 이 검열관이 적은 양만 걸러 보내 주고 보통 걸러져 나오는 것은 상징으로만 나타날 뿐이지요. 프로이트의 이론을 아주 단순하게 설명한 것인데, 어쨌든 우리가 정신의 작용에 대해서 알고 있는 바를 충분히 설명해 주는 것이지요.”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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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은 1961년까지 문을 닫았다. 그것에 대한 기사는 단 하나, “과거의 특급 호텔 몰락하다”라는 헤드라인의 일요일판 특집 기사였다. 관련 사진을 보니 잭의 마음이 아팠다. 정문의 칠은 벗겨지고 잔디밭은 헐벗고 폭풍우와 돌팔매에 창문은 부서져 있었다. 정말로 책을 쓰게 된다면 이 장면도 등장할 것이다. 새로 태어나기 위해 잿더미가 되는 불사조 같은 모습, 잭은 이곳을 잘 돌보겠다고. 아주 열심히 돌보겠다고 다짐했다. 이전까지 잭은 오버룩에 대해 자신이 맡은 책임이 얼마나 큰지 깨닫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과도 흡사했다.

1961년, 퓰리처 상 수상자 두 명을 포함한 네 명의 작가들이 오버룩을 임대하여 작가 학교로 다시 열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그러나 학생 가운데 하나가 3층 방에서 술에 취하여 창문을 깨고 아래 시멘트 테라스로 떨어져 죽었다. 신문에서는 자살일 가능성도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큰 호텔에는 스캔들이 있게 마련이지.’라고 왓슨이 말했다. ‘큰 호텔마다 유령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요, 왜냐? 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니까......’

갑자기 잭은 오버룩의 무게가 자신을 위에서 짓누르는 것이 느껴지는 듯했다. 110개의 객실, 창고, 주방, 식료품 창고, 냉장실, 라운지, 무도회장, 식당......

‘방에는 여인들이 오고 간다’

‘...... 그리고 시뻘건 죽음이 모두를 덮쳤다!’

잭은 입술을 훔치고 스크랩북의 다음 장을 넘겼다. (P251)


대니는 시즌 중에 오버룩에서 근무했던 다른 사람의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여자가 객실 한 곳에서 뭔가를 보았다고..... 그 방에서는........ 음, 나쁜 일이 일어났단다. 217호 실이었는데 거기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해 줬으면 좋겠구나. 대니..... 가까이 가지 마라......’

문은 아주 평범하게 생겼다. 호텔의 1층과 2층의 다른 문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그 문은 짙은 회색이었고 2층 중앙 홀과 직각으로 연결되는 복도 가운데쯤에 있었다. 문에 적힌 숫자는 그들이 살았던 볼더의 아파트 건물 번호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2.1.그리고 7. 별것 아니잖아. 그 바로 밑에는 조그만 유리 구멍이 있었다. 대니는 그 안을 들여다본 적이 몇 번 있었다. 문 안쪽에서는 복도가 커다랗게 보인다. 바깥쪽에서는 아무리 눈을 찡그려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지저분한 속임수.

‘왜 여기 와 있니?’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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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인간적인 장소는 인간을 괴물로 만들어.’

그게 무슨 뜻이었을까? 대디는 하느님께 기도했지만, 하느님은 말이 없었다. 게다가 아빠가 여기 일을 그만둔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빠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해 보았지만 아빠도 모른다는 사실이 분명했다. 가장 분명한 증거는 오늘 저녁때 앨버트 아저씨가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서 치사한 소리를 했지만, 아빠는 스타빙튼 교장 크로머트 씨랑 이사회 사람들이 선생님 일을 그만두게 했을 때처럼 앨버트 아저씨가 이 일자리를 그만두게 할까 봐 아무 말도 못한 것이다. 그리고 아빠는 아빠 자신뿐만 아니라 대니와 엄마 때문에 걱정이 되어 죽을 뻔했다.

그러니 대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냥 잠자코 지켜보면서 인디언이 나타나지 않기를, 또는 나타나더라도 더 큰 사냥감을 기다리기로 하고 그들의 조그만 짐마차는 내버려 두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그렇게 되리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오버룩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곧 눈이 내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금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가능성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눈이 오고 나면 어쩐다? 눈에 갇히고 나면 대체 무엇을 믿고 살 수 있을까?

‘이리 나와서 벌을 받아!’

그럼 어쩌지? ‘해살.’ (P307-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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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게 뭐지?’

그는 전정 가위 옆에서 걸음을 멈추었지만 집어 올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 뭔가 변한 것이 있었다. 전정 나무에, 게다가 그건 너무나 명백하고 쉽게 눈에 띄는 것인데, 그가 쳐다보지 않았던 것뿐이다. 이봐, 네가 방금 저놈의 토끼를 다듬었잖아. 그가 스스로를 꾸짖었다. 그러니까

(바로 그거였다)

잭은 숨이 탁 막혔다.

토끼는 잔디밭에 쫙 뻗어 있었다. 배가 땅에 닿아 있었다. 하지만 토끼는 10분 전만 해도 뒷발로 서 있었다. 물론 그랬다. 그는 귀랑..... 배를 다듬어 주었다.

그는 강아지로 시선을 돌렸다. 오솔길을 내려올 적에는 강아지가 사탕을 달라고 하는 것처럼 몸을 일으키고 서 있었다. 지금은 고개를 숙이고 웅크리고 있었다. 다듬은 입 모양은 소리 없이 으르렁거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사자는.....

(오, 안 돼, 오, 안 돼, 어....... 어, 절대 안 돼)

사자들은 오솔길에 더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오른쪽의 두 마리는 자세를 약간 바꾸어 더 바짝 다가가 있었다. 왼쪽 사자의 꼬리는 길에 거의 닿아 있었다. 그가 놈들을 지나쳐 문을 지나갔을 때 사자는 오른쪽에 있었고 꼬리는 말려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이제 길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길을 막고 있는 것이다.

잭은 갑자기 손으로 눈을 가렸다가 다시 떼어 보았다. 그림은 바뀌지 않았다. 신음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약한 한숨 소리가 나왔다. 술을 마시던 시절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늘 걱정했다. 하지만 술을 많이 마실 때는 그럴 수도 있다. ‘잃어버린 주말’의 레이 밀런드 할아범이 벽에서 벌레가 기어나오는 것을 보았던 것처럼.

하지만 멀쩡하게 제정신일 때 어찌 된 영문일까? (P321-322)

그래서 대니는 샤워 커튼을 젖혔다.

욕조 안의 여자는 죽은 지 오래되었다. 그녀는 시퍼렇게 변색되어 퉁퉁 부어 있었고, 가스가 찬 배는 살덩이로 만든 섬처럼 가장자리에 얼음이 언 차가운 물에서 솟아나 있었다. 대리석처럼 투명하고 커다란 눈은 대니의 눈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씩 웃으며 자주색 입술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젖가슴은 축 처져 있었다. 사타구니의 털이 물에 떠 있었다. 손은 게의 집게발처럼 욕조 양면에 얼어붙어 있었다.

대니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소리는 입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안으로, 안으로 꾸역꾸역 밀려든 소리는 우물에 돌멩이가 빠지듯 속으로 떨어졌다. 대니는 움찔거리며 한 발자국 물러섰고 발뒤꿈치가 육각형 타일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오줌을 지렸다.

그 여자는 일어나 앉았다.

미소를 지으며, 커다란 대리석 눈동자로 대니를 노려보면서 그녀는 일어나 앉았다. 죽은 손바닥은 욕조에서 끼익끼익 하는 소리를 냈다. 젖가슴은 오래된 샌드백처럼 출렁거렸다. 얼음이 깨지는 작은 소리가 났다. 그녀는 숨을 쉬지 않았다. 그녀는 시체였다. 그것도 오래전에 죽은. (P336-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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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딕 할로런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무나도 갑자기. 예상치 못한 순간에 너무나도 침착하게 들려왔고, 대니는 닫혔던 성대가 열리자 힘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안도감 덕분에.

‘그것이 너를 해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책에 나오는 그림 같은 것이야...... 눈을 감으면 사라질 것이다.’

아이는 눈을 감았다. 손을 모아 쥐었다. 집중하느라 어깨를 움츠렸다.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없다고!’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대니는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이제야 문이 잠기지 않았으므로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바로 그때, 몇 년 동안 물에 빠져 있던 퉁퉁 불어터진 손이 비린내를 풍기며 아이의 목을 가만히 움켜쥐더니 다짜고짜 홱 잡아 돌렸고 아이는 시체의 얼굴을 정통으로 마주보았다. (P337-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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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니의 얼굴로 변했다. 자신의 예전 얼굴과 너무나도 닮은 얼굴, 자신의 눈은 새파랗고 대니는 흐린 회색이었지만, 입술은 활 모양이었고 피부도 허옜다. 서재에서 체육복 바지를 입고 있는 대니, 원고가 전부 젖어 있고 맥주 냄새가 퍼지고 있었다..... 불같이 화내며 한 대.... 때리고, 효모의 날개를 타고 솟아오르는 술집 냄새..... 뼈가 부러지는 소리..... 술 취한 자신의 목소리 ‘대니, 괜찮니, 똘똘아?’ 오 하느님 오 하느님 이 불쌍한 팔.... 그리고 그 얼굴은)

(엄마의 얼굴로 변했다. 얻어맞고 피를 흘리며 멍하게 탁자 아래서 일어서는 엄마의 얼굴로. 엄마는 말했다)

(“네 아버지다. 반복한다. 네 아버지가 보내는 급전이다. 행복한 잭 주파수로 맞추고 잘 들어라. 반복한다. 지금 당장 행복한 시간 주파수로 맞추어라. 반복한다......”)

천천히 장면 전환, 컴컴하고 끝없는 복도처럼 뒤죽박죽된 음성이 메아리를 울렸다.

‘자꾸 거치적거리는 일이 생겨, 사랑하는 토미......’

‘메덕, 여기 있어? 나는 다시 몽유병 환자가 되었어. 내가 두려워하는 건 비인간적인 괴물들이야.....’

‘실례지만 울먼 씨, 여기 혹시......’ (P17)


“잭!” 웬디가 겁에 질려 소리쳤다. “오, 하느님! 잭, 얘가 왜 이러지?”

그는 걸상에서 달려왔다. 허리 아래에 감각이 없었다. 평생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놀랐다. 대체 아들이 무슨 짓을 하다가 무엇을 본 것일까? 무엇을 들여다보다가 어떤 일을 당한 것일까?

“대니!” 잭이 고함쳤다. “대니!”

대니가 그를 보았다. 아이는 갑자기, 죽을힘을 다해 엄마를 밀치고 나와 웬디는 잡을 도리가 없었다. 웬디는 탁자 한 곳에 부딪히고는 쓰러질 뻔했다.

“아빠!” 대니가 겁에 질려 눈을 커다랗게 뜨고 소리 지르며 잭에게 달려갔다. “오, 아빠아빠, 그 여자였어요! 그 여자요! 그 여자! 오 아아아아빠아아.....”

아이는 쏜살같이 아빠 품으로 달려가 부딪혔고, 잭은 휘청거렸다. 대니는 아빠를 미친 듯이 끌어안았다. 처음에는 아빠를 칠 것 같더니 허리띠를 붙잡고 셔츠에 얼굴을 묻고는 흐느꼈다. 잭은 배에 닿은 아들의 뜨거운 얼굴을 느낄 수 있었다.

‘아빠, 그 여자였어요.’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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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잭이 다시 말했다. “그 멍 말이다, 대니, 누가 네 목을 조르려고 했니?”

대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여자요. 저 방에 있는 여자요. 217호 실이에요. 죽은 여자요.” 입술이 다시 떨리기 시작하자 아이는 찻잔을 쥐고 마셨다.

잭과 웬디는 아이의 숙인 머리 위로 두려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 일에 대해서 아는 것 있어?” 잭이 웬디에게 물었다.

웬디는 고개를 저었다. “몰라.”

“대니?” 잭이 아들의 겁먹은 고개를 들게 했다. “말해 봐. 얘야. 아빠랑 엄마가 들어줄게.”

“여기가 안 좋은 곳이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대니가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볼더에 있었을 때부터요. 토니가 꿈에서 보여 주었거든요.”

“무슨 꿈인데?”

“다는 기억나지 않아요. 토니가 밤중의 오버룩 모습을 보여 주었어요. 앞에 해골이랑 뼈가 있었어요. 그리고 쿵쿵거리는 소리도 났어요. 뭔가..... 기억은 안 나는데..... 저를 쫓아왔어요. 괴물이었어요. 토니는 ‘해살’도 보여 주었어요.”

“그게 뭐니, 똘똘아?” 웬디가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햇살이라니. 반짝반짝 햇빛 말이야?” 잭이 물었다.

대니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그리고 우리는 이곳으로 왔고, 할로런 씨가 차에서 이야기를 해 주었어요. 그분도 빛을 갖고 있으니까요.”

“빛이라고?” (P46-47)


하지만 뒤죽박죽이 된 사고 아래서, 맹렬하게 뛰는 심장 아래서, 잭은 갇혀 있는 무엇, 그를 만나고 싶어하는 무엇, 밖에서는 폭풍이 불고 밝은 햇빛이 새카만 밤으로 변하는 동안 그의 가족과 인사를 나누고 싶어하는 무엇이 문 손잡이를 앞뒤로 돌리면서 나지막하고 공허한 소리를 내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눈을 뜨고 손잡이가 돌아가는 것을 본다면 미쳐 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눈을 감고 있었고, 얼마가 지났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이 흐르자 정적만 남았다.

잭은 억지로 눈을 떴다. 눈을 뜨면 그녀가 앞에 서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복도는 비어 있었다.

그는 누군가가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문 한가운데 구멍이 보이자 거기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다. 누구와 눈알을 맞대고 있게 될 것인가?

발이 움직였다.

‘이제 발이 말을 듣는다.’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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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애를 붙잡은 게 뭐였을까?”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니는 뭔가를 갖고 있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없는 능력이겠지. 아니, 우리 같은 대부분의 사람들이라고 해야 정확하지. 그리고 어쩌면 오버룩에는 뭔가가 있을 지도 모르고.”

“유령 말이야?”

“나도 몰라. 앨저넌 블랙우드의 소설에 나오는 유령 같은 것은 아니고, 여기 살았던 사람들의 감정의 앙금 같은 것이지.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 큰 호텔에는 어디든 유령이 산다고 생각해. 특히 오래된 곳에는 말이야.”

“그렇지만 욕조 안에 죽은 여자라니...... 잭, 대니가 이상해지는 건 아니지, 그렇지?”

그는 아내를 짧게 안아 주었다. “대니가..... 이따금..... 음, 딱히 적당한 말이 생각 안 나는군..... 최면에 걸리는 것은 우리도 알잖아. 그러다가 이따금 뭔가를..... 보곤 한다는 것도..... 자기도 모르는 걸 말이야. 예지 최면이 가능하다면, 그건 아마도 잠재의식의 기능일 거야. 프로이트는 잠재 의식은 우리에게 사실 그대로 말해 주지 않는다고 했잖아. 상징을 통해서만 말해 준다고 영어로 말하는 사람이 없는 빵집에 간 꿈을 꾼다면, 그건 가족을 먹여 살릴 걱정을 하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어. 혹은 아무도 자기를 이해해 주지 못한다는 뜻일 수도 있고, 어디서 떨어지는 꿈은 전형적인 불안의 표현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 수수께끼 같은 거지. 한쪽에는 의식, 다른 한쪽에는 잠재 의식이 터무니없는 그림을 이리저리 보여 주는 거야. 정신병이나 직감 같은 것도 마찬가지이고. 그러니 예지력도 다를 게 뭐가 있겠어? 어쩌면 대니는 정말로 프레지덴셜 스위트룸 벽에 온통 피가 묻어 있는 장면을 보았을지도 몰라. 그 또래 아이들에게 피의 이미지와 죽음의 개념은 거의 같은 것이니까. 아이들에게 이미지는 개념보다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고,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는 그걸 알고 있었어. 소아과 의사였거든. 나이를 먹어 가면서 점차 개념 쪽이 더 쉬워지고 이미지는 시인들만의 몫이 되는 것이지..... 횡설수설하고 있군.” (P72-73)

무릎을 꿇고 있던 것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마치 애원하듯. 그것은 딱히 얼굴이라 부를 수가 없었다. 피를 뒤집어쓴 얼굴에 눈만 보였다. 잭은 마지막, 마지막으로 바람을 가르며 방망이를 들어 올렸고, 정통으로 때리기 직전. 그 애원하는 얼굴이 조지가 아니라 대니임을 보았다. 그것은 아들의 얼굴이었다.

“아빠......”

그리고 방망이는 정통으로 맞아 대니의 정수리를 때렸고, 두 눈은 영원히 감겼다. 그러자 어딘가에서 뭔가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안 돼!’

잭은 벌거벗은 채 대니의 침대 옆에 서 있었다. 빈손으로 온몸을 땀에 적신 채. 마지막으로 지른 비명은 마음속에서 지른 것이었다. 그는 다시 낮은 목소리로 그 말을 되풀이했다.

“안 돼, 안 돼. 대니, 절대로.”

잭은 감각이 없어진 다리로 침대로 돌아갔다. 웬디는 곤하게 자고 있었다. 스탠드 위의 시계가 5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잭은 대니가 깨어나 움직이기 시작한 7시까지 잠들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는 침대 밖으로 나와 옷을 입기 시작했다. 지하로 내려가 보일러를 점검할 시각이었다.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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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멈추었고 잭은 다시 기계를 쳐다보았다. 혐오스러운 물건이었다. 정말로, 꽁무니에는 길고 나긋나긋한 침이 솟아 나와 있을 것만 같았다. 잭은 빌어먹을 설상차가 전부터 싫었다. 그것은 겨울의 성스러운 고요함을 산산조각내 놓았다. 그것은 야생 생물을 놀라게 했다. 그것은 뒤에 푸른 휘발유 연기를 뭉게뭉게 내뿜어 공기를 오염시켰다. 콜록콜록 켁켁 숨 좀 쉬자고. 그것은 어쩌면 화석 연료 시대 최후의 기괴한 장난감일지도 몰랐다. 열 살짜리 꼬마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는.

그는 스타빙튼에서 읽었던 신문 기사 하나가 기억났다. 메인 주 어딘가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한 아이가 설상차를 타고서 난생 처음 다녀 본 길을 내달린 것이다. 시속 45킬로미터로. 한밤중에. 헤드라이트도 끄고서, 양쪽 기둥 사이에 묵직한 체인이 걸려 있고 그 중앙에 ‘통과 금지’라는 표지가 매달려 있었다. 아무래도 아이가 그것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고 기자는 말했다. 달이 구름에 가렸을지도 몰랐다. 체인에 아이는 머리를 잘렸다. 그 기사를 읽은 잭은 고소하다는 기분을 느꼈고, 지금 이 기계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그때의 기분이 되살아났다.

‘대니만 아니라면, 저 방망이를 하나 집어서 엔진 덮개를 열고 두들겨 주었으면 딱 좋겠다.’

잭은 참고 있던 숨을 서서히 길게 내쉬었다. 웬디 말이 옳았다. 어떤 곤경이 닥치더라도, 또는 생활 보호를 받게 되더라도 웬디 말이 옳았다. 이 기계를 두들겨 부수는 것은 엄청난 바보 짓이 될 것이다. 아무리 그 바보 짓이 즐겁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기 아들을 때려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P90)

대니는 건물 동쪽의 연회장에서 쿠션을 잔뜩 댄 등받이 높은 의자에 서서 유리 아래 시계를 쳐다보고 있었다. 시계는 연회장의 높다랗고 화려한 벽난로 중앙에 서 있었고, 양쪽에는 커다란 상아 코끼리가 한 마리씩 서 있었다. 대니는 그 코끼리가 다가와 엄니로 자신을 찌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것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안전’했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던 밤 이후로 대니는 오버룩의 모든 것을 두 가지로 나누게 되었다. 엘리베이터, 지하실, 놀이터, 217호 실, 프레진덴셜 스위트룸, 그곳은 위험한 곳이었다. 그들의 숙소, 로비, 현관은 안전한 곳이었다. 아마도 연회장도 그런 듯 했다.

‘어쨌든 코끼리는 안전했다.’

대니는 다른 곳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지 못했으므로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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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일. 그리고 공포에 질려 눈을 휘둥그렇게 뜬 대니는 ‘해살(Redrum)'이라는 단어가 유리 돔에 희미하게 비친 것을 보았다. 이중으로 반사된 것이었다. 그리고 대니는 그것을 ’살해(Murder)'라고 읽었다.

대니 토런스는 끔찍한 공포에 비명을 질렀다. 문자반에서 날짜가 사라졌다. 문자반 전체가 사라지더니 검은 구멍으로 바뀌어 점점 더 커졌다. 홍채가 커지듯이. 그것은 모든 것을 빨아들였고 대니는 앞으로 넘어져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계속. 대니는....... (P136)


죽음? 한순간 자신의 평생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할로런 부인의 셋째 아들 딕이 살아온 과정이 시간 순서나 지역 순서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지나간 것이다. 마틴 루터 킹은 총에 맞아 순교자의 길을 가기 얼마 전 산에 올랐다고 말한적이 있었다. 딕은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산은 아니었지만, 오랜 노력 끝에 햇빛 잘 비치는 평원에는 도달했다.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어디서든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경력을 쌓았다. 같이 잘 여자가 필요하면, 뭐, 꼬치꼬치 캐묻거나 무슨 의미 같은 걸 따지지 않는 싹싹한 사람을 사귈 수도 있었다. 그는 흑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였다. 만족했다. 그는 예순 살을 넘기고 있었고, 다행히도 순조롭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 자신의 삶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말인가? 알지도 못하는 백인 세 사람을 위해서?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할로런은 그 소년을 알고 있었다. 마음씨 좋은 친구들과 40년을 사귀고도 나눌 수 없는 것을 둘은 교감했던 것이다. 그는 소년을 알았고 소년은 그를 알았다. 둘은 갖자 머릿속에 원하지는 않았지만 거저 받은 탐조등 같은 것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네 것은 회중 전등이고, 그 애 것이 바로 탐조등이야.’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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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개 같으니!” 드윈트가 큰 소리로 말했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바닥에 오줌을 싸다니 나쁜 개로군.”

“물론 알고 계시지요.” 그레이디는 비밀 얘기하듯 손수레 위로 몸을 숙이며 말했다. “아드님은 외부 사람을 불러들이려고 합니다. 아드님에게는 아주 큰 재능이 있습니다. 지배인님은 그 재능을 이용해서 오버룩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을 겁니다.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아드님은 바로 그 재능으로 우리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일부러 그러는 겁니다. 토런스 씨, 일부러.”

“외부 사람이라고요?” 잭이 멍하게 물었다.

그레이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 말이죠?”

“검둥이입니다.” 그레이디가 말했다. “검둥이 조리사.”

“할로런?”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P204-205)

“가면을 벗으십시오!” 쩌렁쩌렁 울렸다. “가면을 벗으십시오! 가면을 벗으십시오!”

그러더니 긴 시간의 굴을 지나가는 것처럼 소리는 잦아들고 다시 웬디 혼자 남았다.

아니, 혼자가 아니었다.

웬디가 돌아보자 그가 다가오고 있었다.

잭이었지만, 잭이 아니었다. 눈에는 살기가 번득였다. 낯익은 그의 입가가 바들바들 떨면서 잔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한 손에 로크 방망이를 들고 있었다.

“나를 가둔 줄 알았지? 그럴 생각이었나?”

방망이가 공중을 가르는 소리를 냈다. 웬디는 뒤로 물러서다가 방석을 밟고 로비 카펫 위로 쓰러졌다.

“잭.......”

“이 나쁜 년.”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네 속셈을 알고 있어.”

방망이가 또 소리를 내며 내려왔고, 치명적인 속도로 웬디의 배를 쳤다. 갑자기 고통의 바다에 빠진 웬디는 비명을 올렸다. 시야가 흐릿해지면서 방망이가 다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잭이 손에 들고 있는 방망이로 자신을 때려죽일 작정이라는 생각이 몽롱한 현실로 다가왔다.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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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는 화쟁대 모서리를 붙잡고 거기에 몸을 의지한 다음, 문짝을 붙잡았다.

잭이 고함쳤다. “그 문 닫지 마! 빌어먹을, 그 문 닫기만 해 봐!”

웬디는 문을 세게 닫고 빗장을 걸었다. 왼손이 화장대 위에 올려놓은 것을 세게 쳤고 동전이 바닥에 떨어져 사방으로 굴러갔다. 방망이가 문을 쳐서 문짝이 흔들거릴 때, 웬디는 열쇠 꾸러미를 손에 잡았다. 그녀는 열쇠를 두 번 찔러 넣었고 오른쪽으로 돌렸다. 열쇠 돌아가는 소리에 잭은 비명을 질렀다. 방망이가 또 문을 내리쳤고 웬디는 주춤하며 물러섰다. 등에 칼을 꽂은 채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어디서 저런 힘이 난 걸까? 잠긴 문에다 대고 대체 왜 안 죽은 거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 대신 뒤로 돌아섰다. 잭이 정말로 침실 문을 부수고 들어올 때를 대비해서, 웬디와 대니는 욕실로 들어가 욕실 문을 잠그고 있어야 할 것이다. 소형 승강기를 타고 도망칠 생각이 퍼뜩 들었지만 그건 포기했다. 대니는 거기 들어갈 수 있겠지만, 자신은 밧줄을 조종할 수 없을 것이다. 대니는 지하실 바닥까지 추락할 수도 있다. (P289)

라이터가 나왔다. 할로런은 뚜껑을 열었다. 사자는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손가락이 라이터를 켰고 탁 하며 불이 들어왔고

‘내 손’

휘발유에 젖은 손에 파르르 불이 붙었다. 파카까지 불꽃이 붙었지만, 아직은 아프지 않다 아프지 않다. 사자는 눈앞에서 갑자기 타오른 횃불을 보고 뒤로 물러났다. 눈과 입이 달린 끔찍한 전정 나무가 뒤로 물러났지만 너무 늦었다.

아픔에 얼굴을 찡그리며 불 붙은 팔을 놈의 단단한 옆구리에 찔러 넣었다.

사자 몸뚱이에 순식간에 불이 붙었고 사자는 눈 위에서 펄쩍펄쩍 뛰고 굴렀다. 놈은 분하고 괴로워 울부짖으며 불붙은 꼬리를 쫓아 할로런으로부터 멀어졌다.

할로런은 자기 팔을 눈에 깊이 묻어 불을 끄면서도 괴로워하며 죽어 가는 전정 나무 사자에게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숨을 몰아쉬며 일어섰다. (P297)

대니는 오른쪽으로 돌아 걸음을 멈추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발목 주위에 뜨거운 바람이 느껴졌다. 물론, 통풍 장치에서 나오는 바람이었다. 오늘은 아빠가 건물 서쪽에 난방을 하는 날임에 틀림없었다.

‘네 아버지가 잊은 것을 너는 기억할 거야.’

그게 뭐였지? 기억날 것 같았다. 자신과 엄마를 구해 줄 수 있는 것? 하지만 토니는 대니가 스스로 해야 한다고 했다. 그게 뭘까?

대니는 벽에 기대어 주저앉아서 필사적으로 생각해 내려고 했다. 너무나 어려웠다..... 호텔이 자꾸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방망이를 휘둘러 벽지가 찢어지는 모습..... 먼지가 풀썩 떨어지는 모습.

“도와줘.” 대니가 중얼거렸다. “토니, 도와줘.”

그때 불현 듯 대니는 호텔이 쥐 죽은 듯 고요해진 것을 깨달았다. 모터의 웅웅거리던 소리가 멈추었다.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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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는 갑자기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방망이가 올라갔다 내리치면서 마지막 남은 잭 토런스의 모습을 부쉈다. 복도에 서 있던 그것은 방망이를 내리치는 소리에 맞추어 기괴한 폴카 춤을 추었다. 벽지에 피가 튀었다. 부서진 피아노 건반처럼 뼈 조각이 사방으로 튀어나왔다.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대니 쪽을 쳐다보았을 때 아버지는 영원히 사라지고 없었다. 얼굴에 남은 것은 여러 얼굴이 기괴하게 뒤섞인 합성 사진 같았다. 217호 실의 여자가 보였다. 개 옷을 입은 남자도 보였다. 콘크리트 링 안에 있던 굶주린 아이 같은 것도 있었다.

“그럼 가면을 벗지.” 그것이 속삭였다. “더 이상 방해받지 않겠다.”

방망이가 마지막으로 올라갔다. 대니의 귀에는 고동 소리가 가득 찼다.

“더 할 말은 없나?” 그것이 물었다. “정말로 도망치지 않을 거냐? 술래잡기 어때? 가진 건 시간뿐이라고. 영원한 시간, 아니면 지금 끝장을 낼까? 그래도 상관없어. 파티가 끝나 가니까.”

그것은 부러진 이빨을 드러내며 탐욕스럽게 웃었다.

그때 대니는 생각해 냈다. 아버지가 잊은 것이 무엇인지.

갑자기 승리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것이 표정을 보더니 놀라서 머뭇거렸다.

“보일러!” 대니가 소리쳤다. “오늘 아침부터 압력을 빼지 않았어! 압력이 올라가고 있어! 폭발할 거야!”

기괴한 공포와 자각의 표정이 눈앞에 서 있는 그것의 부서진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꽉 쥔 주먹에서 방망이가 떨어져 나가더니 카펫 위에 굴렀다.

“보일러!” 그것이 소리쳤다. “안 돼! 그럴 순 없어! 절대 안 돼! 이 빌어먹을 개새끼! 절대 안 돼! 오, 오, 오......”

“맞아!” 대니가 세차게 맞받아 쳤다. 대니는 부서진 그것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지금 당장이라도 터질 거야! 맞아! 보일러, 아빠는 보일러를 잊었어! 그리고 너도 잊었고!”

“안 돼, 안 돼, 그럴 순 없어. 그래선 안 돼. 이 더러운 꼬마야. 벌을 받게 해 주마, 끝까지 받게 해 주겠어. 오 안 돼, 안 돼......”

그것은 홱 하고 돌아서 휘청휘청 걸어가기 시작했다. 잠시 그 그림자가 벽에 비쳤다. 그리고 낡은 파티 리본처럼 비명소리가 뒤에 질질 끌렸다.

몇 분 후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빛이 느껴졌다.

‘엄마 할로런 씨 친구들에게는 딕 함께 살아 있어 그들이 살아 있어 밖으로 나가야 해 터질 거야 하늘 높이 솟아오를 거야.’

그 빛은 마치 해가 떠오를 때처럼 눈부시고 환했다. 그리고 대니는 달리기 시작했다. 한쪽 발에 피 묻은 로크 방망이가 채였다. 상관하지 않았다.

대니는 울면서 층계로 달려갔다.

밖으로 나가야 했다. (P3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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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할로런을 꽉 껴안았고 할로런도 아이를 안아 주었다.

“대니? 내 말 잘 들어라. 이 이야기는 이번만 하고 다시는 하지 않을 거다. 여섯 살짜리 꼬마에게 할 이야기가 아니기는 하지만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랑 실제 돌아가는 것이 같을 때는 거의 없단다. 세상은 힘든 곳이야. 대니, 세상은 상관하지 않아. 너랑 나를 미워하는 건 아니지만 사랑해 주지도 않아. 세상에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아무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단다. 착한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죽기도 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홀로 남겨 두고 떠나기도 하지. 어떤 때는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 세상은 너를 사랑하지 않지만 네 엄마는 너를 사랑하고 나도 사랑한다. 너는 착한 아이야. 아버지를 위해 슬퍼하고 아빠 일이 생각나서 울고 싶을 때는 장롱이나 이불 속에서 펑펑 울지. 착한 아들은 그래야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제 일어서라. 이 힘든 세상에서 네가 할 일은 그거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사랑을 잃지 말고 일어서는 거야. 기운을 차리고 계속 살아가는 것.”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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