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얀전쟁> 1992년
변진수의 딸꾹질 사건은 1966년 우리들이 베트남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의 일이었다.
그날 밤에는 여덟 명이 청음초를 나갔는데, 하필이면 내가 변진수 일병과 같은 조로 떨어졌다. 입대하기 전에 대한극장에서 간판을 그렸다던 변 일병은 소심하기 짝이 없는 위인이라 나이 스물넷이 되었어도 고향에서는 연애 한번 신통하게 못 해봤다는데, 베트남으로 오더니 갑자기 머리가 뒤숭숭해서였는지 여자를 한 번도 품어보지 못하고 죽을 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걱정에 어느 날 오후 24고지 밑 개울가로 찾아가서 대낮에 돗자리를 둘둘 말아들고 다니며 몸을 파는 이동 꽁가이에게 동정을 바치고 그 대가로 임질에 걸려 고생하는 중이었다. 여자를 난생 처음 겪는지라 일을 제대로 치르지도 못하고 문간에다 흘려버린 주제에 장난하다 애 밴다는 격으로 성병만은 선착순으로 걸렸다고 다른 병사들로부터 조롱을 받아가며 그는 날마다 사단의 치료실을 찾아가 맥주를 박스로 갖다 바치고 페니실린을 맞았다. 푸르스름한 진물이 흐르는 사타구니를 자꾸만 휴지로 닦아내는 그를 보고 벙커에서도 병사들이 더럽다고 피해 다니던 판이었는데, 같은 구덩이에 들어가 밤을 꼬박 같이 새어야 할 청음초에서 같은 조가 되었으니 나는 그날 밤 그리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우리들이 청음초를 나간 곳은 변 일병이 임질에 걸리기 위해 베트남 창녀를 만났던 바로 그 개울가였다. 사령부와 전투단의 본대 병력이 도착해서 진지 구축이 끝났고, 9중대도 전술기지와 철조망 작업이 완료된 터라, 이제는 락닌 평야 지대의 락깐, 뚜봉, 싼미 같은 마을로 식량이나 정보를 얻으러 밤에 스며드는 베트콩이라도 잡아보려는 생각에 병사들이 날마다 야간 매복을 나갔는데, 그중에서도 개울 경계가 우리 중대로서는 가장 큰 임무였다. (P21-22)
웬일인지 어둠 속 가까운 곳 어디에서인가 베트콩들이 소리 없이 살금살금 논바닥을 기어오는 듯싶어 머리끝이 따갑기까지 했다.
앞에는 락닌 평야가 멋없이 펼쳐졌고, 띄엄띄엄 흩어진 락빈과 락깐 부락의 집들과 멀리 바닷가의 뚜봉 마을이 아스름히 보였다. 베트남에 도착해서 한 달이 넘도록 우리들은 어느 마을에도 가보지 못했다. 주민들과 베트콩이 뒤섞여 같이 산다는 소문에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베트남이란 곳은 시골 마을에 가더라도 적과 주민을 따로 식별할 방법이 없어서, 누구에게 미소를 짓고 누구에게 총을 겨누어야 할지를 모르고, 숨어 기다리던 적이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덮칠지 모르는 이상한 나라였다. 창녀를 잘못 찾아갔다가는 성기가 잘려 죽는다거나 음식점에서는 밥에다 독약을 넣어 내놓는다는 따위 온갖 해괴한 소문들 때문에 우리들은 베트남 얼굴을 한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라도 접근하기를 꺼렸다. (P23)
한 번 전쟁을 겪은 사람에게는 그 전쟁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성숙이 시작되는 시기에 의식의 밑바닥으로 스며드는 전쟁터에서의 경험, 감각을 마비시키는 그런 경험은 깨어나면 홀가분하게 없어지게 마련인 그런 악몽과는 같지 않다. 인간의 과거란 잇몸에 낀 찐득거리는 더러움이나 마찬가지로 불쾌하고 끈질기다. 과거는 현재를 파먹고 덮어버리는 침전물이다. 그래서 과거에 겪은 전쟁은 현재의 기억에서 지워지지를 않는다. 전쟁 때문에 타의에 의해서 파괴된 영혼은 십 년이 지나도 본디 상태로 재생되지 못하는 까닭에서이다. (P37)
양평역에서 우리들을 실어 가려고 기다리던 군용 열차는, 어쩐지 사과 궤짝을 뜯어 맞춰 대충 만든 듯 엉성하고 시커먼 모습에, 촌스러운 색종이를 칭칭 감고 큼직한 태극기를 달아놓은 데다가 앞뒷문에는 꽃다발이 걸려서, 마치 무슨 거대한 영구차처럼 보였었다. 바다를 굽어보던 나는 그 영구 열차가 머릿속에 떠오르자, 갑자기 옆에서 죽음이 싸늘한 손을 내 어깨에 얹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모든 것이 죽음이라고 느꼈다. 어둠과, 바다와, 하늘과, 배와, 밤의 모든 것이. 배에 실려 남지나해를 떠가며, 돌아서기가 불가능한 길을 간다는 상황도 그러했다. 검푸른 바다의 술렁대는 파도와, 뱃머리를 비껴 미끄러지는 거품을 밀고 허우적거리며, 남쪽으로 향하는 미국 해군 수송선 팻치 호에 타고 전장으로 향하는 2천 2백명의 병사들은 이제 되돌아간다는 선택이 박탈된 전투병들이었다. 앞으로 일 년 동안 그들은 전쟁을 해야 했고, 틀림없이 살아서 귀국한다는 약속은 사치스러운 환상이었다. 성난 바다를 뚫고 나가는 쇳덩이 수송선은 불구덩이를 향해 마구 돌진하는 사납고도 힘찬 괴물이었으며, 그 괴물의 등에 업혀 끌려가는 병사들은 거역할 권리가 없었다.
내일, 전쟁이 시작된다.
나는 바다에다 침을 배앝았다. (P42)
틀림없이 병원에 가서 확인을 한 모양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꼬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아내는 요즈음 부쩍 어떤 비밀스러운 자신감을 지닌 여자처럼 행동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집안이 적적하다고 장인과 장모를 들어와 같이 살게 해주었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나는 아내가 병원에 가서 확인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점점 굳어졌다. 자기는 아기를 낳을 능력에 이상이 없다는 확인, 그렇다면 기초적인 번식의 능력조차 없는 인간이 바로 나라는 말인가?
아이, 자식. 내 생명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 낚시터에서 아빠 옆에 쪼그리고 앉은 어린 아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찌를 지켜보는 타인들의 모습을 나는 항상 부러워했다.
그리고 느닷없이 목소리로만 나타나서 나의 주변을 맴돌며 변진수가 원하는 바가 무엇일까? 전쟁터에서 만난 사람들. 같이 돌아온 사람들과,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따지고 보면 내 삶은 전쟁에서 전쟁으로 연결된 셈이었다. 그래서 전쟁은 끝이 없다. 내가 태어난 1941년 12월은 일본이 진주만과 필리핀을 공격해서 제2차 세계대전을 가열시키던 무렵이었다. 전쟁 속에서 태어난 나는 어린 시절을 한국전쟁 속에서 보냈고, 젊은 시절의 한 부분은 베트남에서 싸우며 보냈다. (P56-57)
다음날 주민들은 경찰관을 앞세우고는 다시 소를 끌고 찾아왔다. 그런 식으로 다리를 고쳐봤자 농사에 써먹을 수가 없으니, 차라리 우리들더러 소를 사라는 얘기였다. 물소 고기는 맛이 없어 먹기가 어려워 안 사겠다느니, 베트콩이나 잡지 소는 왜 병신을 만들었냐느니 한참 실랑이가 벌어지자, 베트남 말이 서툴러 옆에서 구경만 하다가 일이 돌아가는 꼴이 못마땅해 핏대가 난 3소대장이 “싸울람!” 하고 욕을 했다. 그러더니 욕 한 마디로는 속이 시원치가 않았던지 소대장은 칼빈을 집어 철커덕 장진을 하고 경찰관의 골통을 겨누며 “쯩또이 디 따이한!” 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최상준 소위가 내뱉은 말은 “우린 한국으로 가겠다”는 뜻이었는데, 아마도 그것은 “너희들 같은 놈들을 위해 여기서 목숨을 걸고 싸우느니 차라리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의미의 어설픈 협박이었으리라.
최 소위가 총을 휘둘러대며 하도 험악하게 나오니까 경찰관은 찔끔했고, 마을 사람들은 깁스를 한 시커먼 물소를 끌고 처량하게 집으로 되돌아갔다.
이튿날 닝화 시내에서는 “따이한 고 홈! 따이한 고 홈!”이라고 외치며 여섯 명의 주민이 “소깝 물어내라”는 팻말을 앞세우고 시위를 벌였다. 정말 하찮은 사건이었지만, 한국군더러 꼴도 보기 싫으니까 돌아가라는 시위가 벌어졌으니 사태가 사뭇 심각해졌고, 물론 이 국제적인 사건은 우리들이 모금을 해서 다리가 부러진 소값을 물어주어 흐지부지 해결이 나기는 했지만, 전희식 병장의 말마따나 정의의 십자군이라고 으스대던 병사들의 긍지는 작살이 났다.
전쟁은 정말로 한심했다. (P72-73)
소값을 물어준 다음에도 우리들은 베트남에서 줄기차게 땅을 팠고, 별다른 사건도 없이 흐느적거리며 그렇게 끝없는 나날을 지내다보니 전쟁은 실감도 나지 않았지만, 그러나 어느덧 병사들이 죽어갔다.
51포대에서 혼헤오 산에 위협 사격을 하다가 포를 너무 쏘아 포열이 쪼개져 사수가 죽거나, 수색 정찰을 나갔다가 부비 트랩에 걸려 폭사를 하는 등, 처음 한 달 동안에 사단 전 병력 가운데 열아홉 명이 죽었다. 그 열아홉 명 가운데 베트콩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병사는 하나도 없었다. 그들의 죽음은 고무나무 숲속에 숨은 베트콩의 저격을 받지 않으려고 1번 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리다 전투 차량이 전복한다거나, 기지를 구축하다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지뢰를 밟는 따위의 사고로 인한, 별로 영웅적이거나 자랑이 못되는 ‘전사’였다.
한국의 휴전선만큼도 긴장이 느껴지지 않는 사이비 전쟁터에서 열아홉 명이나 죽었다니, 우리들은 아무도 그 얘기를 쉽게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죽어라고 땅만 파는 우리들에게 ‘전사’라는 거창한 단어가 현실감을 자극할 리가 없었다. 죽는 것도 우습고, 사는 것도 우스웠다. (P94-95)
여자의 아랫배처럼 볼록하게 솟아올라 사방으로 노출된 풀밭 둔덕에, 샛노란 햇빛이 깔린 풀밭에 쓰러진 이 상병의 옆구리에서는 속절없이 계속해서 시커먼 피가 콸콸 흘렀다. 끈끈한 피는 엿물처럼 흘러 잡초에 엉겨 붙었고, 놀라서 입을 벌리고 죽은 이관일 상병은 투명한 눈으로 태양을 응시했다. 찬란한 한낮에.
총성이 지워진 다음의 적막. 24고지 너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저쪽 멀리 논에서 농부들이 물소를 몰았고, 평화롭기만 한 푸른 들판 너머에서는 동하이 바닷물이 황금빛 햇살을 반사했다.
“여 따이렌! 라이라이(來來)!”
장돼지가 “손 들고 나오라”며 갑자기 베트남어로 소리를 지르고는 열두 시 방향의 대나무 숲에다 사격을 가했다. 우리들도 덩달아 쏘았다. 노란 엠원 탄피가 흙바닥에 화르륵 쏟아져 흩어졌다. 아름답고 노란 탄피들이.
하지만 베트콩 저격병은 대나무 숲에 숨어 있지 않았다.
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적의 반응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제풀에 사격을 멈추었다.
나는 이관일 상병의 시체를 쳐다보았다. 몇 발자국 안 떨어진 곳이었지만, 그는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아득한 죽음의 땅에 쓰러져 누웠다. 그래서 그는 너무나 외로워 보였다. 인간이 없는 공간을 꽉 채운 공포 속에 홀로 쓰러진 그는 혼자서 외로웠다. (P101)
이번 소탕 작전의 개요은 간단했다. 대상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베트남 주민이었지만, 그들 속에 섞여 숨어서 지내는 베트콩들을 솎아내자는 개념이었다. 그래야 아군의 기본 전술 지역 내에 침투한 적의 비밀 거점을 뿌리 뽑아 아군의 주둔을 안정시키고 닝화 일대를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작전명도 그래서 밀어내는 ‘불도저’였다.
베트콩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답시고 우리들은 마을로 진주하겠지만, 총구를 들이대며 밀어닥칠 외국 군인들이 그들의 눈에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집집마다 파놓았다는 땅굴 속으로 숨어들었거나, 수레에 세간을 싣고 마을을 떠나는 주민들의 모습을 나는 상상해 보았다. 한국전쟁 때 한겨울 산을 끝없이 줄지어 남쪽으로 걸어가던 피난민들의 행렬. 하지만 전후방이 없는 이곳 주민들은 어디로 피난을 가야 하나? (P105)
나는 ‘나’이기가 싫었다. 나는 나를 아는 인간이 아무도 없는 어떤 세계로 달아나서 처음부터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유학도 가지 않았고, 군대도 사병으로 입대해서 베트남까지 갔었고, 결혼도 그런 식으로 했다. 나는 학교에서 머리가 좋고 이지적이라면서 나를 좋아하던 여학생들을 멀리했다. 그들이 좋아하는 대상은 한기주라는 인간이 아니고, 내 마음도 아니고, 내 이성에 부수되는 장래성과 투자 가치 따위였으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생물 표본이 되기가 싫었다. 우리 증조할머니는 젊은 시절에 길을 가다가 양복을 입은 일본 사람이 방귀를 쏘는 음향을 듣고 굉장히 놀랐다고 그러셨다. 식민지 천민이었던 할머니는 하오리를 걸친 위대한 일본인과 방귀를 연관 짓는 행위란 신성모독이라고 여겼다. 하기야 대변을 보는 클레오파트라를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 그리고 나는 각광을 받는 구경거리로서가 아니라 현실의 물결을 타는 평범인으로서 살아가기를 원했다. 사실상 나는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속으로는 칼리굴라가 되고 싶었다. (P125)
변진수가 내 눈에 띈 것은 바로 이 순간이었다. 거침없이 달려오는 적을 같이 맞아야 할 전우들이 어떤 태도로 기다리는지 힐끗 둘러보던 나는 달빛에 창백하고 땀으로 젖은 여러 얼굴을 보았는데, 오른쪽으로 두 명 건너 변진수는 총을 아예 교통호 둑에다 팽개쳐버리고는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엉엉 울었다. 울음소리는 물론 들리지 않았지만 찌그러진 입과 흙으로 범벅이 된 표정을 보니, 그는 틀림없이 울어대는 중이었다. 두 손을 가재의 집게발처럼 안쪽으로 오므려 둬 무릎을 감싸고, 온몸은 간질을 일으킨 듯 움찔움찔 무슨 소리엔가 박자를 맞춰 경련하며, 그는 콧물까지 줄줄 흘리면서 울었다.
아무도 변진수 일병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옆을 돌아볼 겨를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길거리에서 딱지가 말라붙은 더러운 치부를 일부러 드러내놓고 구걸하는 불구자를 본 듯 역겨운 기분으로 눈을 돌렸고, 오랫동안 흥분해서 뻣뻣해진 손으로 칼빈을 반자동으로 돌리고는, 한 발씩 타앙타앙 공허를 겨눠 아무렇게나 방아쇠를 당겼다. 그때 나로서는 베트남의 광란적인 공격에 대응할만한 행위가 그것뿐이었다.
나는 접근해 오는 적들의 눈이 갑자기 한 부분만 괴이하게 확대한 사진의 얼굴처럼 엄청나게 커졌다고 느꼈다. 그들의 거대한 눈은 싸늘한 인광처럼 시퍼런 빛을 내뿜으며 홀로 쪼그리고 앉아 발발 떠는 나를, 나만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내 총구에서 붓끝처럼 갈라지며 튀어나가는 불꽃은 강렬한 파괴의 분출, 가슴을 치는 호소력을 지닌 거대한 힘의 전시라고 생각했다. 그 불꽃은 맥박 치는 어떤 힘을, 혼돈 속에서 이겨 살아남으려는 함성, 생명의 단말마(斷末魔), 파괴로써 그 존재를 창조하고 증명하려는 사납고 남성적인 힘의 마지막 포효(咆哮)였다. 적의 거대하고 투명한 눈 그리고 그 눈을 파괴하려는 총구의 불꽃은 자꾸만 확대되어 천지에 가득 찼다. (P143)
사단 본부를 축으로 삼아 원형 방어선을 형성한 아군이 사방에서 접전을 벌였지만, 주민들과 뒤섞인 베트콩들을 한 명씩 골라내어 사살하기란 생각만 해도 짜증스러운 상황이었다. 칸호아 군청에서는 죄 없는 주민들이 죽는다고 항공 폭격이나 포사격을 금했고, 전황을 직접 살펴보려고 사이공에서 헬리콥터로 날아온 채명신 장군도 포격 지원을 하자고 닝화 성장 푹 중위를 끝내 설득시키지 못했다. 하노이 방송에서는 쾅나이 지역 베트콩들에게 따이한 한 명이라도 더 죽이고 최후의 한 사람까지 목숨을 다해 끝까지 싸우라는 격려 방송을 오후 내내 보냈다.
오후 네 시에 아군은 벌써 40명의 전사자를 냈다. 마음대로 공격도 못하면서 당하기만 할 입장이 된 병사들은 민간인이고 뭐고 가리지 말고 마을을 모두 불싸 지르고 때려 부수고 닥치는 대로 죽여야 한다며 점점 흥분했다. (P159)
8일째 전투가 계속되었다. 미군과 베트남 민병대와 한국군은 아홉 대의 장갑차를 앞세우고 닌풍을 측면에서 쑤셔 적 55명을 사살했다. 아군도 32명이 죽고 14명이 부상을 당했다.
하루 종일 나는 거의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면서 땅바닥을 기어 다니고, 총을 쏘고, 목이 칼칼할 지경으로 먼지를 마셨다. 그리고 밤이 되어 다시 호로 들어간 나는 사라진 변 일병을 생각했다. 죽을 때까지 여자를 한 번도 품어보지 못할까봐 걱정을 하다가 성병이 걸려 사타구니를 부시럭거리며 휴지로 닦아내던 그가, 박격포탄이 쏟아지자 놀라서 밤새도록 딸꾹질을 하던 그가, 귀굴을 하면 다시 대한극장에서 간판을 그릴 테니 영화를 공짜로 구경시켜 주마고 다짐하던 그가 사방에 피를 뿌려놓고 가버렸다.
뒤늦게 변 일병에 대한 죄의식이 머리를 들었다. 그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전쟁에서는 인간이 모두 죽는다. (P173)
한국에서 극장과 텔레비전을 통해 이런 ‘현지 보도’ 영화가 상영되면, 단순 사고만 하는 관객은 우리들이 두 주일 동안 이곳에서 어떤 고통을 치렀는지 전혀 짐작조차 못하리라. 그리고 그들은 우리들이 총을 들고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기나 하지, 죽거나, 불구자가 되거나, 호 속에서 겁에 질려 헛소리를 해댄다는 진실은 알 길이 없었다. 베트콩은 무수히 죽어도 아군은 한 명도 죽지를 않으며 승승장구 가는 곳마다 적을 때려 부수는데, 그런데 왜 베트남 전쟁은 끝나지 않을까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었다. 미군들도 마구 죽는다고 하는데 신기하게도 한국 군인들만 다치지를 않고, 포탄 3만 발에 베트콩 한 명이 죽는 꼴이라는 지극히 비생산적이고 비경제적인 전쟁에서 어떻게 한국군만 그렇게 수지맞는 장사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와 내 전우들이 죽거나 병신이 되어도 왜 고국에서는 그 현실을 알려고 하지 않을까? 우리들은 영광의 창조를 위해 진실을 잃었다. (P189)
캄캄한 바위 틈으로 구불구불 팔다리를 긁히며 나는 두서없이 어머니는 지금 서울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누군가 사랑을 하고 싶다. 모닥불 가에 앉아 노래를 듣고 싶은데 방금 사람을 하나,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생각을 했다. 동굴은 한없이 길기만 했고, 아무도 기어나가도 영원히 눈부신 햇빛은 도저히 나타나지를 않았다.
나는 동굴에서 뛰쳐나와 개울로 내려가 창자가 뒤집혀 올라올 만큼 한참동안 요란한 구토를 했다. 입안이 온통 시큼했고 대변도 보고 싶었다. 내 옆에서는 권영준 상병이 조금 아까 동굴 속에서 베트콩과 대검으로 격투를 벌여 피투성이가 된 옷을 벗어 빨래를 하는 중이었다. 권 상병도 구역질이 심했는지 옷을 바위에 널어놓은 다음에는 이를 닦고 소금물로 양치질을 하고는 위생병에게 무슨 알약을 타다가 삼켰다. 그의 옷에서는 핏자국이 잘 지워지지를 않아 고무나무의 수액처럼 시커먼 얼룩이 남았다. (P237)
베트남의 정글과 광기 속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통해 배운 죽음이란 그때까지 내가 알았던 고상하고 엄숙한 개념들을 모조리 까뒤집어버렸다. 죽음은 전혀 신비하지도 않고, 장엄하지도 않고, 비극적이지조차 못하다는 생각이 닝화 전투를 거친 이후로 내 관념 세계를 지배했었다. 어느 사회에서나, 천주교를 믿는 현대의 도시 사회이거나 울긋불긋 칠을 한 무당이 과학의 첨단에 선 아프리카의 원시 사회이거나 간에, 죽음의 예식은 인간에게 가장 중대한 행사의 하나이고, 죽음을 맞는 마지막 순간이 가장 인간다운 진실을 보여준다고 사람들은 역설했고, 나도 그렇게 믿었었다. 잘 죽는 죽음은 잘 사는 삶보다 더 많은 정신력을 요구한다고 몽테뉴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멋진 죽음은커녕 유언 한 마디라도 제대로 하며 죽은 자를 베트남에서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모두가 갑작스럽고, 납득이 안 가고, 설명도 되지를 않는 죽음들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바로 그런 어처구니없고 지극히 인간적이지 못한 죽음을 연출해낸 자가 된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 그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지능지수의 소유자이며 지성인으로 분류되는 내가. (P240)
나는 우중충한 풍경 속에서 기다렸다. 사직터널로 넘어가는 차들이 길에서 물창을 튀며 정신없이 달렸다. 변진수가 주고 간 봉투는 묵직했고, 속에 담긴 물건을 손으로 만져보니 큼직한 자물쇠 같은 감촉이었다.
나는 변진수를 기다리면서, 지금까지 그가 노출시킨 이상한 양상들을 잠시 내 나름대로 종합하고 분석해 보았다. 조금 아까 주고받은 우리 두 사람의 대화, 앞뒤가 맞지 않고 갈기갈기 찢어진 대화는 분명히 어떤 정신병의 징후였다. 그는 여러 사람의 성격이 한 사람 속에서 함께 존재하는 다중인격의 징후를 보여주었다. 베트남에서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던 증상이 지금쯤은 완전히 정신병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이 모두 이상했다. 그리고 조금 아까 그가 했던 말, 벌써 한 시간이 되었으니까 누가 오리라던 예고 --그렇다, 현충일에 우리 집으로 찾아왔을 때도, 그는 오늘처럼 한 시간이 되기가 무섭게 도망쳤었다. 그렇다면 시간은 그와 무슨 관계일까?
그러자 나는 불현 듯 변진수가 화장실로 가지는 않았으리라는 짐작이 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수영장 옆의 공중변소로 가보았다. 변진수는 그곳에 없었다. 공원을 다 찾아보고 심지어는 활터까지 올라가 봤지만, 변진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공원 매점 옆 벤치에 앉아서, 변진수가 왜, 어디로 도망쳤으며, 이 봉투는 왜 주고 갔을까 의아해졌다. 나는 마닐라 봉투로 손을 집어보았다. 매끄러운 쇳덩이가 만져졌다. 봉투를 벌리고 들여다보니, 새까만 권총이었다. (P263)
언덕 위에는 별들이 하늘에서 끝없이 넓은 물 위로 와르르 쏟아져 내릴 기세였다. 황금빛 별들이, 저 검고 깊은 우주에는 얼마나 많은 신비가 숨어서 인간의 두뇌를 비웃을까? 축구공만한 중성자별 하나의 무게가 수백만 톤이나 된다는 불가사의, 별들의 죽음과 탄생이 펼치는 우주의 모험들, 그리고 소우주와 대우주가 감춰둔 무궁무진한 수수께끼, 인간이란 --우주의 박테리아에 불과한 인간은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가? 사랑과 증오는 얼마나 부질없고 미적분학적 추상 개념인가? 자연의 무서운 정확성, 달의 인력에 의해서 철저히 계산된 거리를 들락날락하는 바다를 멀리 쳐다보면서 인간은 허무와 무상을 생각하고, 젊은 인간 암컷과 수컷은 감흥을 느껴 모래밭에서 교미의 제전을 거행한다.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이라고 정의한 궁극적인 운동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토록 웅장한 우주의 교향악 속에서 월급이 안 오른다고, 누가 권력을 남용한다고,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사람들은 푸념한다.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대폭발 이전에는 무엇이 존재했고, 천지창조는 진실로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한 주일 전 신문에는 지구로부터 3만 광년 떨어진 은하계 중심부에서 태양보다 수백만 배나 더 큰 거대한 기체군(氣體群)을 발견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특수 무선 망원경으로 관찰했더니 1백 50 광년 이상의 길이로 뻗은 이 기체 덩어리는 양극 현상으로 야기되는 형태를 취하고 엄청난 은하 동력을 발전시킨다고 했다.
화성의 핑크빛 하늘, 보야저 호가 관측한 토성의 얼음, 우주의 신비한 음향, 퀘이자(quasar)의 지극히 정확하고 규칙적인 발신음, 이런 광대한 신비 속에서 티끌 같은 인간은 티끌 같은 땅에서 티끌 같은 관념과 이념을 놓고 전쟁을 벌이고, 질투하고, 자살하고, 웃고, 울고....... (P292-293)
내가 피해망상증에 걸렸을까? 최근 몇 달 동안 나에게 벌어졌거나 현재 진행되는 사건들, 그 사건들이 뜻하는 변수들 --변진수와 회사와 아내, 내 주변의 세계는 어떤 설정된 계획에 따라 어디론가 나를 이끌고 가려 하는데, 나에게 주어진 가로 6미터 세로 6미터짜리 이 골방에 갇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밀실 공포증. 요즈음 호흡 장애가 더욱 심해지기 시작한 까닭은 이 망각의 감금 생활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연스러운 세계와 차단되어 갇혀 사는 사람들, 저마다 따로 설정한 관념과 의식과 허상을 신봉하며.
성대를 고음으로 떨게 하려고 뇌수술을 시킨 소년 합창단원들과 테너 음량을 푸짐하고 기름지게 하려고 불알을 잘라버리는 수술을 받은 남성 오페라 가수들의 목소리에 황홀해지는 사람들. 이 세상에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채색된 거짓일까? 나도 앨라배마의 실험용 흑인들이나 마찬가지로, 나를 둘러싼 현실을 전혀 모르면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P330)
“....제군들은 적을 만나더라도 전투를 피하고, 누구의 눈에도 뜨이지 않으며 정글 속에서 이동하여, 적의 집결지를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적의 집결 위치가 포착되면 제군들은 당장 철수하고, 그 지점으로 사단 전체 병력이 투입되어 대대적인 작전을 벌여 콩들을 까부술 예정이다. 제군들이 맡은 임무가 워낙 중대하기 때문에 단 한 사람이라도 적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질문 있나?”
우리들은 정밀한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게 지정된 시간과 지정된 장소에 시누크로 공수되어서, 혼바 산으로부터 2킬로미터쯤 떨어진 황량한 벌판에 내렸다. 지급 받은 까만 베트콩 옷과 고깔모자(농)를 배낭에 매달고 우리들은 묵묵히 잡목이 우거진 숲과 갈대밭을 지나 산기슭에 이르렀다. 그곳까지는 혹시 베트남군이나 미군을 만나 오인을 받고 사격을 당할까봐 위장을 하지 않았다.
산기슭의 바위가 많은 숲에서 우리들은 군복을 벗고는 얇고 기분 나쁘게 매끈거리는 까만 베트콩 옷으로 갈아입었다. 너무 불편해서 호 찌 밍 샌들 대신에 정글화를 그냥 신은채로, 우리들은 배낭을 큼직한 잎사귀로 완전히 덮었으며, 탄띠와 수통은 눈에 띄지 않도록 헐렁헐렁한 지고리 속에다 찼다.
“어째 기분이 좀 드럽다.” 윤주식 일병이 몸에 옴이라도 오른 듯 거북하게 엉거주춤 서서 말했다. (P338-339)
“......왜 날 죽이려고 그래?..... 신 병장 시체는 잘 치웠는데..... 걱정 마. 잘 치웠으니까. 그런데 누가 날 찔렀지? 봉굘 짓이야?..... 왜 찔렀어?...... 내가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모르지? 눈앞이 아물거리고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아 미칠 지경이었어.
나처럼....... 혼자 떨어져 봐. 기분이 어떤가...... 시체하고 단둘이서 말이야..... 얼마나 무서운데...... 나 담배 피오고 싶어.“
조만길 병장이 고깔모자로 비를 가리고 담배에 불을 붙여 그의 입에 물려주었다. 그는 겨우 두 모금을 빨더니, 맥이 풀리는 듯 목을 축 늘어뜨리고는, 움직이지를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 기미를 나는 이때 문득 감지했다. 변진수 일병은 신기해하는 듯한 시선으로 윤 병장이 죽어가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게 눈여겨 지켜보았다. 윤 병장은 닝화 전투 때 변 일병이 보였던 발작과 상당히 비슷한 행동 양상을 나타내었고, 김문기 하사도 죽기 직전에 그런 모습을 보였었다. 정신적인 공포의 병이 전염되는 과정이었을까? 그런데 이 공포의 병을 사방에 퍼뜨려놓은 변진수가 이제는 오히려 사뭇 차분한 태도였다. 그는 타인들의 공포 증후군을 구경하는 방관자가 된 셈이었다. 이렇듯 윤 병장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변진수를 줄곧 지켜보면서, 나는 잠시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P367)
처음 출발한 44명 가운데 21명만이 남아서 수색 정찰을 계속했고, 이렇게 차례로 쓰러지는 전우들을 지켜보며 나는 전쟁을 심하게 앓았다. 육신이 들끓는 병균에 시달리면 정신이 환각을 일으키듯, 죽음의 벌레들이 우글거리며 뒤쫓아 오는 정글 속에서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없이 반복되거나 중첩되는 잡념에 시달려 두뇌가 기진맥진했다.
인간은 과연 이런 전쟁에서 무엇을 얻는가? 전쟁은 나를 무엇으로 만들었나? 먹고 생존하려는 감각만이 괴이하게 큰 더듬이처럼 발달된 기형 동물이 되어 숲속을 헤매던 우리들은 과연 무엇이었나? 폭탄이라는 쇳덩이로 서로 갈기갈기 찢어 내버리는 인간이 다른 짐승을 죽여 아삭아삭 씹어 먹는 짐승들의 세계보다 과연 얼마나 떳떳할까? 전쟁터의 인간은 얼마나 초라하고 추하고 교활한 존재인가? 그 교활함의 극단적인 상징이 베트남의 정글이다. 존엄성도 없고, 남성적이지도 못하고, 오직 비열하기만 한 싸움, 장쾌한 도전도 없고, 그저 가장 비열한 방법으로 하나씩 하나씩 죽이기만 하는 싸움. 이곳에서는 죽음조차도 모욕을 당했다. (P379)
“다들 어디로 갔어요? 왜 이렇게 사람들이 없어졌죠? 다른 잠자리로 오나요? 하지만 다른 잠자리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요.”
“전사한 전우들 찾는 모양이구먼.” 조의철 병장이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전사라뇨? 누가 전사했어요?”
나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왜 그가 죽음의 계곡에서 그토록 태연하고 침착했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죽음의 계곡에서 우리들과 함께 다니지를 않았다. 육체는 우리들과 줄을 지어 걸었지만, 그의 영혼은 어딘가 다른 곳에서, 환각이 지어낸 다른 세계에서 혼자 헤매고 돌아다녔다.
“너 죽음의 계곡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기억나지 않아?” 내가 물었다.
“죽음의 계곡요? 우리들이 죽음의 계곡엘 갔었어요?” 변진수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
“저 새끼 또 시작이구나.” 장돼지가 말했다.
요란하게 딸꾹질을 시작한 변진수와 우리들을 태운 헬리콥터는 야자수와 논과 개울로 구성한 찬란하고 아름다운 들판의 풍경을 가로질러 9중대 전술기지를 향해 날아갔다. (P390)
귀국 장병 환송식은 야전사령부 근처의 냐짱 바닷가 모래밭 야자수 밑에서 거행되었다. 투실투실한 미군 중령과, 야전사령부와 9사단 소속의 한국군 장교들이 임시 사열대 위 초록빛 철제 의자에 나란히 앉았고, 방송차에서는 “아느냐 그 이름 무적의 사나이....” 해가며 사단가(師團歌)를 확성기로 틀어주었고, 군악대의 튜바가 햇빛에 반짝였다. 돈 무오이 닝화 성장이 띠억 뚜옹 뻑 거려가면서 베트남 말로 기계처럼 연설을 했다.
환송식은 지루했다. 야자수에 매달려 늘어진 하얗고, 노랗고, 빨간 현수막들도 맥이 빠졌다. 똑같은 현수막 한 벌이 두 주일에 한 번씩 저기 같은 장소에 내걸렸다. 사열대 위에는 항상 똑같은 사람들이 환송식에 참여했다. 그들 앞에 늘어선 장병들의 얼굴은 항상 바뀌었지만.
전장에서는 많은 풍문이 떠돌기 마련이고, 우리들은 또다시 그런 ‘바람소리’의 제물이 되었다. 어젯밤 미 제5 특전단 정보부가 냐짱 시내에서 베트콩을 한 명 잡아 심문했더니, 지역 베트콩 세포 조직이 항구로 침투해서 군용선에다 시한폭탄을 장치했다는 ‘급박한 정보’가 문제였다. 그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몰라서 냐짱 항구의 군용 선박들은 출항 정지 긴급 명령을 받았다. 우리들을 한국으로 태워다 줄 미 군용선 가이거 호도 발이 묶였다. 병사들은 맥이 풀려 해변 야자수 밑에서 하루를 보낼 생각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나무 밑에다 아예 잠자리까지 마련했다.
시한폭탄은 결국 헛소문으로 결론이 났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우리들이 타고 갈 미 군용선 가이거 호는 정오까지 출항이 연기되었다. 승강장에는 병력을 실어 나를 상륙선 LCU 다섯 척이 대기했다. 거의 2천 명이나 되는 장병은 더블백을 베고 콘크리트 산책로 바닥에 즐비하게 널브러져 누워 기약 없는 출항을 기다렸다. 배가 떠나기는 틀림없이 떠나겠지만, 그래도 영원히 떠나지 않으려는 듯한 기분.
전투의 대부분은 어디를 가나 끝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전투지에 투입되려면 미군이 언제 보내줄지 모르겠는 헬리콥터를 한없이 기다리고, 작전 지역에 들어가서는 일어나지 않기를 기다리는 전투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작전이 없을 때는 타오르는 태양 밑에 멀거니 앉아서 아무 상황이라도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양평 골짜기에서 유격 훈련을 마친 다음에도 우리는 베트남으로 오는 배를 탈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베트남에 와서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귀국선을 타게 될 날을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렸다.
전쟁에서의 기다림은 기쁨과 희망이 다가오기 때문이 아니라, 짓누르는 권태를 벗어나고 싶어서 소망하는 도피였다. 전투가 없으면 전투병은 견디기가 어렵다. 권태보다는 차라리 죽음이 쫓아온다는 긴장이 전투병에게는 훨씬 견디기가 수월했다. 전투가 없는 전쟁의 괴로움은 사랑하지 않는 아내와의 결혼생활처럼 숨막혔다. 차라리 전투에서는 막연하게나마 목적의식이 살아났다. 살아야 한다는 가장 본질적인 욕망이. (P413-414)
전장에서 보낸 일 년 동안에 나는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지만, 전쟁터로 간 우리들은, 총을 장전하는 순간에 타인을 파괴할 능력을 부여받아 갖춘다는 야릇한 힘의 역학에 오랫동안 익숙해졌고, 우리들은 사랑보다도 깊고 커다란 경험을 함께 나누고 나서 고향으로 돌아와 뿔뿔이 흩어져 군중 속에 파묻혀서는, 저마다 살인의 비밀을 지닌 외로운 영혼의 범죄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갓 대학을 나와 군대에 가서 집단사고(集團思考)와 획일적인 행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받은 충격도 나에게는 물론 컸지만, 전쟁은 인간에 대한 개념 자체를 새로운 각도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순결과, 꿈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종교를 잃은 댓가로 과연 나는 무엇을 찾았으며, 무엇을 누렸던가? 막걸리를 마시며 친구들에게 늘어놓을 소설 같은 무용담과 ‘인생 경험’이 소득이었을까? 전쟁은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준 스승이었나? (P425)
자살..... 죽음이란 생명체로서의 기능이 정지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 살이 과정을 끝내는 현상이었고, 죽음이란 추상화할 내용이 전혀 남지 않는 최후의 현실이었다. 괴롭지도 않고, 깊고도 평화로운 잠에 안식하리라는 도피, 하지만 자살은 자연스러운 종결 과정이 아니라 삶이라는 과정을 인위적으로 중단시키는 행위요, 그래서 하나의 행동이었다. 도피 또한 결단력으로 추진하는 행동이니까. 힘겹고 더러운 삶을 버려야 하는 용기.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는 건 타인을 죽이기보다 훨씬 힘들어요. 그래서 전 한 병장님을 찾아가기로 결심했죠.”
나는 시계를 보았다. 오후 1시 15분. 답답하고 고요하고 싸늘한 사무실로 돌아가 처박혀 폐쇄된 시간을 뭉기적거리는 무료함을 다시 계속할 때가 다 되었다.
“그럼 그 얘기를 해봐, 왜 나를 찾아왔는지.”
“저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는 나를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빤히 내려다보았다.
“도움이라니?”
“날 죽여주세요.”
나는 공중전화 옆 벤치에 닭장의 암탉들처럼 나란히 앉은 여고생들과 그들의 앞에 서서 무엇인지 호소하는 남학생들을 구경했다.
“제가 한 병장님을 찾아갔던 이유는 나 대신에 나를 죽여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어요.” (P440-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