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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 울만의 <동급생>

영화 <동급생Reunion> 1989년

by 노용헌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넘는, 9천 일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별다른 희망도 없이 그저 애쓰거나 일 한다는 느낌으로 공허한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갔다. 그중 많은 나날들이 죽은 나무에 매달린 마른 잎들처럼 종작없고 따분했다.

내 가장 큰 행복과 가장 큰 절망의 원천이 될 그 소년에게 처음 눈길이 멈췄던 것이 어느 날 어느 때였는지를 나는 지금도 기억할 수 있다. 그것은 내 열여섯 번째 생일이 지나고 나서 이틀 뒤, 하늘이 잿빛으로 흐리고 어두컴컴했던 독일의 겨울날 오후 3시였다.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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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치 유령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를 쳐다보았다. 무엇보다도 나를, 그리고 아마도 우리 모두를 기죽게 한 것은 그의 자신만만한 태도보다도, 귀족적인 분위기보다도, 은근슬쩍 젠체하는 미소보다도, 그의 우아함이었다. (P24)


그의 동작 하나하나 —반짝반짝 윤을 낸 가방을 여는 방식이며, 희고 티끌 한 점 없는 깨끗한 손(짤막하고 투박하고 잉크 물이 든 내 손과는 너무도 다른)으로 만년필과 화살촉처럼 날카로운 연필들을 늘어놓는 방식이며, 공책을 펼쳤다 덮었다 하는 방식— 가 내 관심을 끌었고, 그 아이의 모든 것이 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연필을 고를 때 기울이는 주의, 어느 순간에라도 일어나 보이지 않는 군대에 명령을 내려야 되기라도 하듯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몸동작, 금빛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손짓 등등 모두가 다. (...) 내가 누구이기에 감히 그와 얘기를 할 수 있었을까? ..... 유대인 의사의 아들, 랍비의 손자이고 증손자이자 하찮은 상인과 가축 장수들의 혈통인 내가 이름만으로도 내 마음을 경외심으로 가득 채운 그 금발 소년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온갖 영광에 감싸인 그가 어떻게 내 수줍음을, 내 의심스러운 자존심과 상처를 입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가 콘라딘 폰 호엔펠스가, 자신감과 세련된 우아함을 그렇게도 원하는 나, 한스 슈바르츠와 공통으로 가진 것이 무엇이었을까? (P29-31)


내가 콘라딘을 친구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날엔가는 내 친구가 되리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그가 전학을 올 때까지 내게는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 우리 반에는 내 우정의 로맨틱한 이상형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여겨지는 아이가 하나도 없어서였다. 내가 그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아이도, 내 완전한 믿음과 충절과 자기희생에 감복할 수 있는 아이도 없었다.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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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거의 따라잡았을 때 그가 돌아서더니 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어색하고 서툴게, 여전히 머뭇거리는 동작으로 내 떨리는 손을 잡아 흔들었다. “안녕, 한스.” 그가 인사를 건넸고 별안간에 나는 밀려오는 기쁨, 안도감, 놀라움과 함께 그 역시 나처럼 수줍음이 많고 친구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날 콘라딘이 내게 무슨 말을 했고 내가 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많은 것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은 다만 우리가 젊은 두 연인처럼 한 시간쯤 길을 따라 오르내렸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불안해하며 서로를 어려워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그것이 겨우 시작일 뿐이며 이제부터는 내 삶이 더 이상 공허하거나 따분하지 않고 우리 둘 모두에 대한 희망과 풍요로 가득 차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마침내 그와 헤어진 후 나는 집까지 내내 달렸다. 큰소리로 웃고 혼잣말로 떠들어 대고 하면서. 나는 소리 높여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 부모에게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내 모든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제부터 나는 더 이상 거지가 아니라 크로이소스처럼 부자라고 떠들어 대지 않고는 못 배기리란 것도 알았다. (P51-52)


나중에 흥분이 가라앉자 나는 다음 날 아침이 두려워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혹시라도 그가 나를 이미 잊어버렸거나 자기가 굽히고 든 것을 후회한다면? 그 일이 내가 그를 얼마나 친구로 삼고 싶어 하는지를 그에게 알려 주기만 한 실수였다면? 내가 좀더 조심스럽고 좀 더 자제해야 하지 않았을까? 혹시라도 그가 자기 부모에게 내 이야기를 하자 그들이 유대인 아이와는 어울리지 말라고 다짐을 두기라도 했다면? 그래서 나는 혼자 속을 끓이다가 마침내는 불안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P5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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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몇 달 동안은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봄이 와서 온 천지가 벚꽃과 사과꽃, 배꽃과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어우러진 꽃들의 모임이 되었고 미루나무들은 그 나름의 은빛을, 버드나무들은 그 나름의 담황색을 뽐냈다. 슈바벤의 완만하고 평온하고 푸르른 언덕들은 포도밭과 과수원들로 덮이고 성채들로 왕관이 씌워졌다. 그리고 높다란 박공식 공회당이 있는 작은 중세 마을이며 그런 마을의 분수대들. 기둥 위에서 물을 내뿜는 괴물들에 둘러싸인 그 분수들은 뻣뻣하고 우스꽝스럽게 중무장을 하고 수염을 기른 슈바벤의 공작들이나 경애하는 에버하르트, 폭군 울리히 같은 이름을 지닌 백작들의 조각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카어 강은 버드나무가 심어진 섬들을 돌아 유유히 흘렀고 그 모든 것에 평화로움과 현재에 대한 믿음과 미래에 대한 희망의 느낌이 배어 있었다.

토요일이면 콘라딘과 나는 완행열차를 타고 나가 육중한 나무로 지어진 수많은 오래된 여관들 중 한 곳에서 하룻밤을 보냈고 그런 곳에서는 헐한 값에 깔끔한 방, 훌륭한 음식과 그 지역의 와인을 구할 수 있었다. 때때로 우리는 검은 숲에 가기도 했다. 호박 빛깔 수지(樹脂)와 버섯 냄새를 풍기는 짙은 색 나무들 사이로 송어 개울이 흐르고, 그 둑에는 목재소들이 늘어서 있었다. 또 때로는 먼먼 산꼭대기까지 돌아다니며 저 멀리서 푸르스름하게 급류로 흐르는 라인 강 계곡과 프랑스 동북부의 희푸른 보주 산맥과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을 바라보기도 했다. 아니면 네카어 강이 이처럼 우리를 유혹하기도 했다. (P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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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고 그 무엇도 우리의 우정을 방해하지 못했다. 우리의 마법 영역 바깥에서는 정치적으로 불안하다는 소문이 흘러들고 있었지만 태풍의 중심 ─ 나치스와 공산주의자들 사이의 충돌이 보도되는 베를린 ─ 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P61)

걱정할 거리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정치는 어른인 사람들의 관심사였고 우리에게는 우리 나름대로 풀어야 할 문제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삶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을지 배우는 것이었고 이것은 삶에 어떤 목적이 있는지, 과연 있기나 한지, 또 이 놀랍고 헤아릴 수 없는 우주에서 인간의 조건이 무엇일지 알아내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히틀러니 무솔리니니 하는 덧없고 우스꽝스러운 인물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진정하고도 영원한 의의라는 문제가 있었다. (P62)


지금도 나는 그 아버지가 그네에 앉아 있는 어린 딸들 중 하나를 어떻게 밀어 주었는지, 아이의 하얀 드레스와 불그스름한 머리칼이 어떻게 새로 돋아난 연푸른색 사과나무 잎사귀들 사이로 빠르게 움직이는 촛불처럼 보였는지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어느 날 밤, 부모는 외출을 하고 가정부는 심부름을 갔을 때, 그 목조 주택이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에 휩싸였다. 소방차들이 당도하기도 전에 아이들이 불에 타 죽고 말았다. 나는 불이 난 것을 보지도, 가정부와 어머니의 비명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단지 다음 날 시커멓게 그을린 벽과 타버린 인형들, 뒤틀린 나무에 뱀처럼 매달려 있는 숯이 된 그네 줄을 보았을 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었다. (P65-66)


그 아이들이 무슨 짓을 했기에, 그 가여운 어머니와 아버지가 무슨 짓을 했기에 그런 일을 당해야 했을까? 내가 보기에 가능성은 단 두 가지뿐이었다. 하느님이라고는 없든지, 만일 있다면 힘이 있는데 극악무도하거나 힘이 없어서 쓸데없는 하느님이거나. 나는 자비로운 창조주에 대한 모든 믿음을 마지막 하나까지 깡그리 버렸다. (P66-67)


나는 그에게 온통 사기꾼인 그 늙은이들이 뭐라고 했건 상관하지 않는다고, 그 무엇으로도 어린 두 소녀와 한 소년이 불에 타 죽은 것을 설명하거나 변명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의 말 모두를 맹렬하게 반박했다. “너 그 애들이 불타는 건 차마 못 보겠지?” 내가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그 애들의 비명 소리도 못 듣겠지? 그러면서도 네가 두둔을 하고 나서는 건 하느님 없이 살 수 있을 만큼 용감하지가 못해서야. 힘도 없고 연민도 없는 하느님이 너나 내게 무슨 소용이지? 구름 속에 앉아서 말라리아, 콜레라, 기근, 전쟁에 눈감아 버리는 하느님이?”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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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더 이상 삶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이 가치 없으면서도 어떻게 해서인지 유일하게 가치 있는 삶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인 것 같았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슨 목적을 위해? 우리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인류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해야 이 잘 안 되는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을까? (P70)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여기가 시작도 끝도 없는 내 나라, 내 집이며,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붉은 머리가 아니라 검은 머리로 태어났다는 사실만큼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뿐이었다. 첫째로 우리는 슈바벤 사람이었고 그 다음은 독일인이었고 그 다음이 유대인이었다. 내가 그 외에 달리 어떻게 느낄 수 있었을까? 우리 아버지나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달리 어떻게 느낄 수 있었을까? (P81)


그 시온주의자가 히틀러를 입에 올리며 그 때문에 이 나라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지 않냐고 묻자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혀 아니오, 나는 내 독일을 알고 있소. 이건 일시적인 질병, 경제 상황이 나아지기만 하면 바로 사라질 일종의 홍역 같은 거요. 당신 정말로 괴테와 실러, 칸트와 베토벤 같은 우리나라의 위인들이 이따위 쓰레기에 넘어갈 거라고 믿는 거요? 당신은 어떻게 감히 우리나라를 위해, 우리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1만 2천 유대인들의 기억을 모욕하는 거요?”

그 시온주의자가 아버지를 <전형적으로 동화된 자>라고 하자 아버지는 자랑스럽게 되받았다. “그렇소, 나는 동화된 자 맞소. 그게 뭐가 잘못이라는 거요? 나는 독일과 나를 동일시하고 싶소. 나는 유대인들이 독일에 완전히 흡수되는 걸 분명히 더 선호할 거요. 그러는 게 독일에 항구적인 이익이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면 말이오. 좀 의심이 들기는 해요. 내가 보기에는 유대인들이 자기네끼리 완전히 통합하지 않은 덕에 여전히 촉매 역할을 하면서 예전에 그래 왔던 것처럼 독일 문화를 풍요롭고 비옥하게 하고 있는 거요.” (P82-83)

아버지가 보기에 나치스는 건강한 몸에 생긴 피부병에 지나지 않았고, 해야 할 일은 주사 몇 대 놓고 환자를 조용히 놓아두어 자연의 섭리에 따르도록 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P85)


어머니는 나치스니 공산주의자니 그런 류의 불쾌한 사람들에 대해 신경을 쓰기에는 너무 바빴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이 독일인이라는 데 한 점 의심도 없었다면 어머니는, 만일 그러는 게 가능하다면, 그보다도 더 없었다. 어머니의 머릿속에는, 그게 누구건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어머니가 그 나라에서 살고 죽을 권리에 대해 물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아예 들어오지도 않았다.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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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충격을 받아 소름이 끼치고 비참한 기분이 되어 주저앉았다. 대체 아버지가 왜 그랬을까? 나는 아버지가 그처럼 터무니없이 행동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또 전에 아버지가 트롬페다니 그 형편없는 바우츠니 하는 자를 입에 올린 적도 없었다. 게다가 그 역겨운 침팬지 이야기라니! 아버지가 콘라딘에게 감명을 주려고 그 이야기들을 모두 꾸며 낸 것이었을까? 내가 좀 더 교묘한 방식으로 그에게 감명을 주려고 했던 것과 똑같이? 아버지도 나처럼 호엔펠스 가문의 신비한 매력에 빠진 희생자였을까? 거기에다 구두 뒤축을 딱 부딪친 건 또 어떻고? 학생 아이에게 경의를 표할 셈으로!

채 한 시간도 안 되는 사이에 나는 내 무고한 친구를, (단지 그가 나타난 것만으로) 내 아버지의 모습을 만화에나 나올 법한 인물로 바꾸어 버린 친구를, 두 번째로 미워했다. 나는 언제나 아버지를 존경했었다. 내가 보기에 아버지는 수많은 훌륭한 자질들, 이를테면 내게는 없는 용기라든가 명석한 두뇌 같은 자질들을 갖추었고 친구도 쉽게 사귀었고 자신의 업무도 꼼꼼히 챙겼고 꾀를 부려 빠져나가지도 않았다. 아버지가 나에 대해 서름서름하고 애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기까지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아버지는 그런 이미지를 깨버렸고 내게는 그를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가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얼마나 젠체하고 비굴하게 보이던지! 콘라딘이 마땅히 존경해야 했을 사람인 그가! 구두 뒤축을 딱 부딪치는 아버지의 모습과 <환영합니다. 백작님>하며 인사를 하는 그 끔찍한 장면은 영웅시되었던 지난날의 아버지를 영원히 지워 버릴 것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다시는 전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 터였고 나는 그의 눈을 다시 들여다볼 때마다 부끄러움과 역겨움을 느끼게 될 것이며 부끄러워하는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었다. (P94-96)


“콘라딘, 어제 왜 나를 모른 척했어?”

그는 그 질문이 나오리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지만 그렇더라도 내 질문은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갔다.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가 다음에는 창백해졌다. (...)

“이거 봐, 콘라딘, 너도 내가 옳다는 거 분명히 알잖아. 네가 나를 너희 집 안으로 불러들인 건 부모님이 출타했을 때뿐이었다는 걸 내가 알아채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너 정말 내가 어젯밤 일들을 상상하고 있었다고 생각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하고 싶어. 나는 너를 잃고 싶지 않아, 너도 알다시피...... 나는 네가 오기 전까지는 외톨이였고 네가 나를 버리면 더더욱 외톨이가 되겠지만 그렇더라도 네가 나를 부끄러워해서 네 부모님께 인사시키지 못한다는 생각은 견딜 수가 없어. 나를 이해해 줘. 나는 네 부모님을 사교적으로 만나 뵙는 거에 대해서는 신경 안 써. 내가 너희 집에 침입자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딱 한 번, 딱 5분만 만나 뵙게 해달라는 것 말고는. 그리고 또 나는 모욕을 당하기보다는 차라리 외톨이가 되겠어. 나는 세상의 모든 호엔펠스 집안 사람들 못지않게 가치 있는 사람이야.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누구도 나를 모욕하게 놓아두지 않을 거야. 그 어떤 왕도, 왕자도, 백작도.” (P11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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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좋아, 그렇다면. Tu l’as voulu, George Dandin, tu l’as voulu(이건 네가 초래한 거야, 조르주 당댕, 자업자득이라고). 네가 진실을 원한다고 했으니 이제 알려 주지. 너도 보았다시피,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어떻게 그걸 보지 않을 수 있었겠냐만, 나는 너를 인사시킬 수가 없었어. 그 이유는, 모든 신들에게 맹세하건대, 부끄러운 것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고 —그 점을 너는 잘못 알고 있어— 훨씬 더 단순하고 더 불쾌한 거야. 우리 어머니는 명망 있는 —한때 왕가였던— 폴란드 귀족 집안 출신인데 유대인을 싫어해. 몇백 년 동안 어머니 집안에 유대인이라고는 없었고 그들은 농노보다도 더 비천한, 이 세상의 최하층민, 불가촉천민들이었어. 어머니는 유대인을 혐오해. 유대인을 한 사람도 만나 본 적이 없으면서도 그들을 두려워해. 만일 어머니가 죽어 가고 있는데 살려 줄 수 있는 사람이 네 아버지 하나뿐이라고 해도 어머니는 그분을 집 안으로 들이지 않을 거야. 너를 만나 보겠다는 생각 같은 것도 절대로 하지 않을 거고. 어머니는 너를 경계하고 있어. 유대인인 네가 자기 아들을 친구로 삼았다는 이유로. 그리고 내가 너와 함께 있는 게 남들 눈에 띄는 걸 호엔펠스 가문의 오점이라고 생각해. 어머니는 또 너를 두려워하기도 해. 네가 내 종교적인 믿음을 갉아먹고, 네가 속해 있는 유대인들 집단이라는 건 볼셰비즘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고, 내가 네 악마 같은 간계의 희생물이 될 거라고 생각해. 웃지마, 우리 어머니는 심각하니까. 나는 어머니와 말다툼을 벌였지만 어머니 말은 이런 거였어. <이 불쌍한 녀석아, 너는 네가 이미 그자들의 손아귀에 있다는 걸 모르니? 너는 벌써 유대인 같은 말을 하고 있어.> 그리고 네가 진실을 모두 다 알고 싶어 한다면 말인데, 나는 너하고 같이 보내는 한 시간 한 시간에 대해 싸워야 했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악인 건 내가 어젯밤에 너한테 말을 걸지 못했던 건 네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는 거야. 아니, 너는 나를 비난할 권리가 없어, 그 어떤 권리도 없어, 분명히 얘기하지만.” (P117-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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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 그는 용케도 침착함을 유지했지만 갑자기 격정에 휩싸여 내게 소리를 질러댔다. “나를 그런 두들겨 맞은 개 같은 눈으로 보지 마! 내가 우리 부모님 때신 책임을 져야 해? 그게 뭐 하나라도 내 잘못이야? 세상이 그렇게 돌아간다는 것 때문에 나를 비난하고 싶니? 이제는 우리 둘 모두 꿈꾸기를 그만두고 성장하면서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 아니니?” 그렇게 토해 내고 나서는 그가 다시 침착해졌다. “내 소중한 한스,” 그가 아주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제발 나를 하느님이 만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 대로 받아 들여 줘. 나는 이 모든 걸 너한테 숨기려고 했지만 너를 오랫동안 속일 수는 없다는 걸 알았어야 했고 이 일에 대해서 너한테 미리 얘기할 용기를 냈어야 했어. 하지만 나는 겁쟁이야. 그래서 단지 네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없었던 거고. 하지만 그게 온전히 다 내 탓만은 아니야. 너는 누구에게나 네 이상적인 우정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너무 심하게 세워! 너는 단순한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해. 내 소중한 한스, 그러니까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도록 애써 봐. 그리고 우리 계속 친구이기로 해.” (P1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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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에게 손을 내주었지만 차마 그의 눈을 들여다보지는 못했다. 그랬다가는 우리 둘 중 하나가, 아니면 둘 다 울기 시작할 것 같아서였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겨우 열여섯 살짜리 아이들이었으니까. 천천히 콘라딘이 철 대문을, 그의 세상으로부터 나를 갈라놓는 문을 닫았다. 앞으로 내가 그 경계선을 다시는 넘지 못할 것이고 호엔펠스 가문의 저택은 영원히 내게 닫히리라는 것을 나도 알았고 그도 알았다. 그가 천천히 현관문까지 걸어 올라가 버튼을 누르자 문이 불가사의하게 뒤로 미끄러지듯 열렸다. 콘라딘이 돌아서서 내게 손을 흔들었지만 나는 같이 손을 흔들어주지 않았다. 나의 손이 풀어 달라고 울부짖는 죄수의 손처럼 쇠창살을 꽉 그러쥐었다. 부리와 발톱이 낫처럼 생긴 독수리들이 호엔펠스 가문의 방패 문장을 높이 치켜들고 의기양양하게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다시는 나를 자기 집으로 부르지 않았고 나는 그에게 그런 꾀바름이 있다는 게 고마웠다. 우리는 전에 그랬던 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만났고 그도 우리 어머니를 보러 왔지만 차츰차츰 횟수가 줄어들었다. 상황이 다시는 전과 같아지지 않을 것이며 이제 우리의 우정과 어린 시절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우리 둘 모두 알고 있었다. (P121-122)


종말이 오기까지는 시일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동쪽에서부터 불기 시작한 돌풍이 이제 슈바벤에도 닥쳐왔다. 그 돌풍은 격렬하기가 토네이도의 위력만큼 거세어졌고, 12년쯤 뒤 슈투트가르트의 4분의 3일 초토화되고 울름은 돌무더기 폐허로, 하일브론은 1만 2천 명이 죽어간 도살장으로 바뀔 때까지 잦아들 줄을 몰랐다. (P123)


우리들마저도 이제는 우리의 성전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르기만 할 수는 없었다. 시내 도처에 베르사유 조약과 유대인을 비난하는 커다란 핏빛 포스터들이 나붙었고, 하켄크로이츠와 망치와 낫이 곳곳의 벽을 보기 흉하게 더렵혔고, 실업자들의 긴 행렬이 거리를 휩쓸며 왔다 갔다 했으니까.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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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 나는 계층이 다르고 관심사가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보통 생겨나는 적대감 이상의 것에 접해 본 적이 없었다. 누구도 나에 대해서 강한 악감정은 품지 않는 것 같았고 나는 어떤 종교적이거나 종족적인 편협에 부딪히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어느 날 내가 학교에 이르렀을 때, 우리 교실의 닫힌 문 너머에서 열띤 논의가 벌어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유대인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유대인들.> 알아들을 수 있었던 말은 그것뿐이었지만 그 말이 합창처럼 되뇌어졌고 그 말이 입 밖에 나올 때의 격렬함을 잘못 들었을 리는 없었다.

내가 문을 열자 논의가 뚝 끊겼다. 예닐곱 명의 아이들이 한데 모여 서 있었다. 그 아이들이 마치 나를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빤히 쳐다봤다. 그 아이들 중 다섯은 천천히 자기네 자리로 돌아갔지만 두 아이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볼라허는 동물원에서 원숭이를 볼 때 어떤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우월감에서 멍청하게 씩 웃는 그런 웃음을 지었지만 슐츠는 고약한 냄새가 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코를 움켜쥐고 도발적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잠시 나는 머뭇거렸다. 그 덩치 큰 시골뜨기를 쓰러뜨릴 가능성이 적어도 반은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문제가 더 잘 풀릴지 어떨지는 알 수 없어서였다. 학교 분위기에 이미 너무도 많은 독소가 스며들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 자리로 가 숙제를 마지막으로 점검해보는 척 했다. 너무 바빠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돌릴 틈이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던 콘라딘처럼.

그런데 내가 슐츠의 도전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에 기가 살아서 볼라허가 내게로 달려들었다. “너 왜 너네가 떠나온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지 않는 거냐?” 그애가 소리를 지르고는 호주머니에서 글자가 인쇄된 조그만 쪽지를 꺼내 침을 발라서 내 앞자리의 걸상에 붙여 놓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유대인들이 독일을 망치고 있다. 깨어나라, 시민들이여!>

“그거 치워.” 내가 내뱉었다.

“네가 직접 치워.” 그가 되받았다. “단 이건 알아 둬, 그렇게 하면 네 뼈를 모조리 다 분질러 놓겠다는 거.”

우드득 하는 소리가 들렸다. 콘라딘까지 포함해서 모든 아이들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려고 일어섰다. 이번에는 너무 놀라서 머뭇거리고 말고 할 틈도 없었다. 한판 붙느냐 아니면 죽느냐였다. 나는 있는 힘껏 볼라허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가 비틀비틀하다가 다시 내게로 달려들었다. 그 아이도 나도 싸우는 기술이나 요령이라고는 없어서 마구잡이 난타전 —그래, 마구잡이 난타전 맞았지만, 그렇더라도 나치 대 유대인의 싸움이기도 했고 나는 더 나은 대의를 위해 싸우고 있었다.

그때의 내 격렬한 감정으로는, 만일 볼라허가 나에게 한 방 크게 날리려다 내가 피하는 통에 고꾸라져 두 책상 사이에 끼었던 바로 그 순간에 폼페츠키가 교실로 들어서지 않았더라면, 나 자신을 돌아보기에 충분치가 못했을 것이다. 볼라허가 몸을 추스르고 일어섰다. 그리고 억울해하는 듯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가리키며 고해바쳤다. “슈바르츠가 나를 덮쳤어요.”

폼페츠키가 나를 보고 물었다. “왜 볼라허에게 덤벼든 거냐?”

“저 애가 나를 모욕해서요.” 내가 분노와 긴장을 가누지 못해 몸을 덜덜 떨면서 대답했다.

“너를 모욕했다고? 뭐라고 했는데?” 폼페츠키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저보고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라고 했어요.” 내가 대답했다.

“아, 알겠다.” 폼페츠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건 모욕이 아니다, 슈바르츠! 그건 옳고 우정 어린 충고야. 자리에 앉도록, 너희 둘 다.” (P128-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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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다가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자 나는 모두들 갈 때까지 기다렸다. 마음속으로 여전히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내가 그를 가장 필요로 하는 이때에 나를 도와주고 위로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서, 하지만 내가 학교를 나섰을 때 길은 겨울날의 백사장처럼 싸늘하고 텅 비어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그를 피했다. 나와 함께 있는 것이 남들 눈에 띄면 그는 곤란해지기만 할 것이고, 그래서 나는 그가 내 결정을 고마워하리라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다시 외톨이가 되어 있었다. 누구도 내게 여간해서 말을 걸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것이 더 좋았다. 뿌리째 뽑아 버리려는 길고 잔인한 과정은 이미 시작되었고, 나를 인도하던 불빛들도 이미 가물가물 흐릿해져 있었다. (P132-133)


“네 어머니하고 나는 너를 미국으로 보내기로 했다. 뭐 어쨌든 당분간,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말이지만. 뉴욕에 우리 친척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너를 돌봐 주고 네가 대학에 가도록 손도 써줄 거다. 우리는 그러는게 너를 위해 최선이라고 믿어. 네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네가 견디기 쉽지 않았으리라는 상상은 할 수 있단다. 대학에서는 상황이 더욱 나빠질 거다. 아! 헤어져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몇 년 내에 제정신을 차리게 될 거다. 우리에 관해서라면, 우리는 그대로 남아 있을 거야. 여기는 우리 조국이고 고향이고 우리는 여기에 속하니까. 그리고 또 우리는 그 어떤 <오스트리아의 개>도 이곳을 훔쳐 가도록 놓아두지 않을 거고. 나는 내 습관을 바꾸기엔 너무 늙었다. 하지만 너는 젊고 네 모든 미래가 네 앞에 놓여 있어.” (P135-136)


떠나기 이틀 전, 나는 편지를 두 통 받았다. 그 중 하나는 볼라허와 슐츠가 함께 공을 들여 운문으로 쓴 것이었다.

조그만 유대놈아 — 우리는 네게 작별을 고한다

네놈이 지옥에서 모세하고 이삭과 만나기를.

조그만 유대놈아 — 네놈은 어디에 있을 것이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다른 유대놈들과 합칠 것이냐?

조그만 유대놈아 —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안 그러면 네 놈의 모가지를 부러뜨릴 테니까 (P136-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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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한스,

쓰기 힘든 편지를 쓴다. 우선 먼저 네가 미국으로 떠나게 되어 얼마나 서글픈지 모르겠다는 말부터 하게 해다오. 독일을 사랑하는 네가 미국에서 —너와 내가 공통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 쉬울 수는 없는 일이겠지. 나는 네가 틀림없이 나보다 더 쓰라리고 불행하리라는 것을 상상할 수 있어.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어쩌면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일일지도 몰라. 앞으로의 독일은 우리가 알고 있던 독일과는 달라질 거야. 이 나라는 앞으로 수백 년 동안 우리의 운명과 전 세계의 운명을 결정할 남자의 지도하에 새로운 독일이 될 테니까. 너는 내가 그 남자를 믿는다고 한다면 충격을 받을 거야. 오로지 그 사람만이 우리의 사랑하는 조국을 물질주의와 볼셰비즘으로부터 구할 수 있고 그를 통해서만 독일은 어리석음으로 인해 잃어버렸던 도덕적 우월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면, 너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나는 독일을 위한 다른 어떤 희망도 찾아볼 수가 없어. 우리의 선택은 스탈린과 히틀러 사이의 선택이고 나는 히틀러를 선택할 거야. 그의 사람됨과 성실함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나를 감동시켰으니까. 최근에 내가 뮌헨에 있었을 때 어머니와 함께 그를 만나 보기도 했도, 겉보기에 그는 별로 인상적이지 않은 작은 남자지만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사람들은 그의 확신에서 오는 순수한 힘과 강철 같은 의지, 천재적인 강렬함, 예언자적인 통찰에 휩쓸려 들고 말아. 그곳을 떠날 때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 말을 계속 되뇌었어. <신께서 저분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어>라고, 나는 네게 한동안은 —아마도 1년이나 2년쯤은— 이 새로운 독일에 너를 위한 자리가 없을 거라는 말을 하는 게 너무도 미안해. 하지만 네가 나중에 돌아오지 말아야 할 이유는 찾아볼 수가 없어. 독일은 너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고 나는 총통이 유대적인 요소들 중에서 좋은 것과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완벽하게 가려낼 능력과 의지를 지녔다고 믿어. (P137-139)


변호사로써 나는 <썩 나쁘지는 않게> 업무를 수행했고 사람들은 내가 인생에서 성공했다는 데 대체로 동의하곤 했다.

피상적으로는 그들이 옳다. 나는 <모든 것>을 가졌으니까. 센트럴 파크가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자동차들, 시골에 있는 별장, 서너 곳의 유대인 클럽 및 기타 등등의 회원. 하지만 나는 더 잘 알고 있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일, 그러니까 훌륭한 책 한 권과 한 편의 좋은 시를 쓰는 일은 결코 하지 못했다는 것을. 처음엔 돈이 없었기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했고 돈이 있는 지금은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는 나 자신을 실패자로 본다. 그것이 정말로 문제가 되어서가 아니다. 영원의 상 아래에서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다 실패자들이니까. <죽음은 최후의 어둠이 오기 전에 결국 모든 것이 똑같이 덧없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의 삶에서 자신감을 갉아먹는다>라는 글을 내가 어디에서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 <덧없다>는 것이 옳은 말이다.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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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모는 죽었지만 나는 그들이 벨젠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하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 있어 기쁘다. 어느 날 아버지의 수술실 밖에 이런 경고문을 든 나치대원이 배치되었다. <독일인들이여, 깨어나라. 모든 유대인들을 피해라. 유대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더렵혀진 것이다.> 아버지는 철십자 훈장, 1등 무공 훈장이 포함된 훈장들과 함께 장교 정복 차림을 하고 그 나치대원 옆에 버티고 섰다. 나치대원은 점점 더 당황했고 차츰차츰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아무 말 없이 조용했지만 사람들 숫자가 늘어날수록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져서 마침내는 공격적인 야유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들의 적개심은 나치대원을 겨냥한 것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짐을 싸서 자리를 뜬 것도 나치대원이었다. 그 나치대원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지도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어머니가 잠들어 있을 때 아버지는 가스를 틀었고 그렇게 그들은 세상을 떴다. 그들이 떠난 이래로 나는 가능한 한 독일인과의 만남을 피했고 독일어로 되어 있는 책은 단 한 권도, 횔덜린의 시집마저도, 펼쳐 보지 않았다. 그러면서 잊으려고 애를 써왔다.

물론 몇몇 독일인들, 히틀러에 대항했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한 좋은 사람들은 분명히 내 편이 되어 주었다. 나는 그들과 악수를 하기에 앞서 그들의 전력을 확인했다. 독일인을 받아들이려면 신중해야 하는 법이다. 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내 친구나 친척의 피를 손에 묻히지 않았다고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지만 내가 받아들인 경우에는 단 한 점의 의심도 없었다. 그들은 나치에 저항했다는 기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었고 나는 그런 그들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나는 독일어를 말하기가 힘든 척했다.

그것은 내가 독일어로 말을 해야 할 때 (비록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취하는 일종의 자기방어적인 측면이었다. 물론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언어를, 미국식 억양이 섞이기는 해도, 썩 잘 구사할 수 있지만 그러기를 싫어한다. 내 상처는 아직 치유되지 않았고 독일을 떠올리는 것은 상처에 소금을 문지르는 격이다. 어느 날 나는 뷔르템베르크에서 온 남자를 만났고 그에게 슈투트가르트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어보았다.

“4분의 3이 파괴되었어요.” 그가 대답했다.

“카를 알렉산더 김나지움은 어떻게 되었나요?”

“돌무더기 폐허죠.”

“그러면 호엔펠스 성은요?”

“그것도 돌무더기.”

나는 웃고 또 웃었다.

“뭐가 그렇게 우습지요?” 그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웃기는 거라고는 하나도 없는데요.” 그가 말했다. “나는 뭐가 웃기는 건지 통 모르겠네요.”

“신경 쓰지 마세요.” 내가 같은 말을 되뇌었다. “웃기는 건 없으니까요.” 내가 달리 뭐라고 할 수 있었을까? 나 자신으로서도 내가 왜 웃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는데 무슨 수로 그에게 설명을 해줄 수 있었을까? (P143-146)


그런데 오늘 이 모든 것이 내게로 돌아왔다. 카를 알렉산더 김나지움으로부터 조그만 인명부와 함께 뜬금없이 날아온, 제2차 세계대전 때 산화한 동창들을 기리는 추모비 건립에 기부해 달라고 요청하는 호소문으로. (...) 내가 왜 <그들>의 죽음에 신경을 써야 하지? 나는 <그들>과 절대적으로 아무런 관련도 없었는데, 나는 결코 그러지 않았는데. 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내 삶에서 17년을 잘라 내어 버렸는데 이제 오서 <그들>이 내게 기부를 바라다니!

하지만 결국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호소문을 읽어보았다. 4백 명 이상의 동창들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다. (P147-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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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쿠르트.> 그랬다, 나는 그를 기억할 수 있었다. 그는 캐비어 패거리 중 하나로 괜찮은 아이였기에 나는 그가 안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뭘러, 후고. 아프리카에서 사망.> 그도 기억할 수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고 내 기억은 빛바랜 은판 사진처럼 보조개가 있는, 그러다 다른 특징들은 떠오르지 않는 금발 소년의 희미하고 흐릿한 윤곽을 만들어냈다. 그는 이제 죽었구나. 불쌍한 친구.

그러나 이 경우에는 얘기가 달랐다. <볼라허, 사망, 묘지는 불명.> 그는 죽어 마땅했다 —만일 누군가가 죽어 마땅하다면(그런데 <만일>은 중요한 뜻을 지닌 단어다.) 그리고 슐츠도 마찬가지였다. 아, 나는 그들을 아주 잘 기억한다. 그들이 보낸 운문을 잊지도 않았다. (...)

그랬다, 그들은 죽어 마땅했다— <만일> 누군가가 죽어 마땅하다면.

그렇게 나는 H로 시작하는 이름들만 빼놓고 명단 전체를 훑어 내렸다. 그리고 다 읽어 내렸을 때 나는 우리 반이었던 마흔여섯 명 중 스물여섯 명이 천년제국을 위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명단을 내려놓고 — 기다렸다.

10분을 기다리고, 30분을 더 기다리는 내내 나의 오래전 과거라는 지옥으로부터 온 그 인쇄물을 바라보면서. 그것은 초대도 받지 않고 와서 내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며 내가 잊으려고 그처럼 애를 썼던 무엇인가를 긁어 올리고 있었다.

나는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전화를 몇 통 걸고 편지를 몇 장 받아쓰게 했다. 그러고도 여전히 나는 내게 들러붙어 괴롭히는 한 이름을 찾아볼 용기를 내거나 나 자신을 다그칠 수 없었다.

마침내 나는 그 끔찍한 것을 없애 버리기로 했다. 내가 정말로 알고 싶거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를 다시는 보지 못할 텐데 그가 살았건 죽었건 거기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문이 열리고 그가 걸어 들어오는 일은 정말로 불가능한 일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지 않은가?

나는 조그만 인명부를 집어 들고 막 찢어 버리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내 손을 멈췄다. 그런 다음 마음을 굳게 먹고 떨면서 H로 시작되는 페이지를 펼쳐 읽었다.

<폰 호엔펠스, 콘라딘. 히틀러 암살 음모에 연루, 처형.> (P148-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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