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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지오다노의 <엑스페리먼트>

영화 <엑스페리먼트> 2010년

by 노용헌

<엑스페리먼트>(2001)

2001년 올리버 히르비시겔 감독의 영화 <엑스페리먼트>는 바이에른 영화제 시나리오 상 수상하였고 ‘독일 최고의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다. 2010년 <엑스페리먼트>는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했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천재적 각본가이자 총제작자 폴 쉐어링의 장편 감독 데뷔작으로 제1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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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동물입니다!”

클라우스 톤 교수는 강당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말은 늘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인간은 기계입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일반심리학과 클라우스 톤 교수는 몸에 꼭 끼는 티셔츠를 입고 맨 앞에 앉은 여학생에게 미소를 보냈다. 여학생은 강의 때마다 그렇게 맨 앞자리에 앉아 행복한 표정으로 강의를 들었다. 웅성거림이 잦아들자 톤 교수는 말을 이었다.

“인간의 행동은 유전양식, 환경조건에 따른 반응, 그리고 교육과 경험을 톱니처럼 얽어 만든 인공두뇌의 기능과 같습니다. 너무 도발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허튼소리로 치부하거나 어쩌면 신성모독이라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입니다. 모든 생물은 기계입니다. 여러분이 자유롭게 선택했다고 여기는 문화, 기술, 철학,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내장된 여러 기능 중 하나일 뿐입니다. 여러분! 문화와 도덕의 얇은 표피를 걷어내면 그 아래에는 태초부터 존재했던 인간의 본성과 유전적 조합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조종하여 마침내 하나의 목적, 즉 자기 종을 생존시키는 데에 집중시킵니다. 여러분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는 인간의 운영체계 두뇌가 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동양식에 대해 진정 알고 싶다면,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P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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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4년간의 시베리아 수용소 생활에 대해 말하기를, 감옥살이 덕분에 인간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감금의 공포를 이겨낸 사람이라면 앞으로 어떤 공포가 닥치더라도 모두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말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감옥은 도스토예프스키가 경험한 감옥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풍자는 여전히 일리가 있습니다. 처벌 형식이 수차례 개혁되었지만 감옥은 여전히 실패한 사회기관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선진국을 포함한 세계 어떤 나라의 감옥도 수감자들을 제대로 ‘교화’하지 못하고 추가 범죄 방지는 더더욱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범죄와 감옥에서의 폭력이 극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처벌 비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동시에 감옥이 주는 공포감은 사라졌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톤 교수는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말을 이었다.

“이제 감옥에서의 폭력이 증가하는 원인에 대해 살펴볼까요? 여러 가설들이 있는데, 가장 인기 있는 것이 기질 가설입니다.”

톤 교수는 칠판에 또박또박 ‘기질 가설’이라고 적었다.

“간단히 말해 감옥에서의 폭력은 수감자와 교도관의 기질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폭력과 폭력이 마주친 상황인 거죠. 정말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두 번째 가설은, 감옥을 공격성과 폭력을 부르는 병리학적 상황으로 묘사합니다.”

톤 교수는 칠판에 ‘상황 가설’이라고 적었다.

“자유 박탈과 사회적 감시라는 소외된 상황에서 수감자들은 이른바 당연한 반응으로 공격성을 발전시킵니다. 게다가 ‘수면자 효과’도 추가되는데, 말하자면 잠들어 있던 공격성이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바로 깨어난다는 말입니다. 이것 역시 아주 그럴듯하게 들리죠?”

톤 교수는 목소리를 높여 호소하듯 말했다.

“애석하게도 이 모든 가설들은 실험으로 검증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학술적 검증 역시 쉬운 일은 아닌데, 실제 교도소를 관찰할 경우 주변효과, 장기효과, 교도관의 간여 등등 때문에 믿을 만한 수치를 얻기가 힘듭니다. 정확한 검증을 위해서는 여러 간섭 요소들을 제거한 순수한 교도소 환경을 만드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변수를 최대한 통제한 순수 실험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죠.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관찰하는 일은 특히 흥미로울 것입니다.” (P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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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질문했고 타렉은 대답했다. 그리고 경찰은 타렉을 경찰서로 데려갔다. 인간적인 온기를 느끼기 어려운 냉랭한 공간. 거기서 또 다른 경찰 두 명이 다시 타렉을 취조했다. 몇 시간째 다시 똑같은 질문들.

“벌써 다 말했잖아요! 우연히 발견했다니까요!”

“우연히! 비가 쏟아지는 숲에서? 그것도 우연히 카메라를 메고 말이죠, 파트 씨?”“카메라는 늘 가지고 다닙니다. 당신네들이 믿든 말든, 난 아침마다 숲에 가는 걸 즐기는 사람이고 비가 올 때도 마찬가집니다.”

타렉은 옆에 앉은 경찰을 흘긋 보았다. 그의 얼굴 근육이 실룩거렸다. 취조 중인 경찰은 타렉보다 어려 보였다. 친절하고 운동을 좋아하게 생긴 미남형에 가까운 평범한 얼굴이었다. 타렉은 경찰이 사는 집, 거실의 가구 배치, 여자친구들 그리고 그녀들이 열광하는 자동차는 뭘까 상상했다. 옛날에 본 경찰 영화들을 떠올려보았다. 기억이 가물가물 아련했다.

“참 그럴듯하게 둘러대셨습니다만, 납치 및 살인 사건에서 거짓진술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아시죠?”

“제발 그만 좀 합시다! 그 청년을 내가 죽였습니까? 이거야 원. 난 오두막을 우연히 발견했을 뿐이고 나머지 일은 당신들 일이잖아요. 발견한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게다가 당신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기까지 했잖습니까?” (P20-21)


“그걸 왜 해?”

지나가 소리쳤다. 누나의 격렬한 반응에 타렉은 깜짝 놀랐다. 랄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타렉을 빤히 보았다.

“자자, 진정들 하라고!” 타렉은 설득을 시작했다. “왜들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뭐가 어때서?”

“이유가 뭐야?”

“난 기자야. 기자는 그런 것도 하는 거야.”

“그건 이유가 못 돼, 타렉! 하필이면 그런 실험을!”

“충분히 되지. 다시 기사를 쓰고 싶어, 누나. 그리고 분명히 아주 멋진 기사가 될 거라고. 학생들에게도 두루 물었는데, 실험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그런데도 소문은 무성했다고. 들리는 말에 의하면 국방부도 관여되었대!”

“완전 미친 짓이야!”

“1년 동안이나 허가를 못 받은 실험인데, 국방부에서 관여하면서 갑자기 허가가 나왔다는 거야. 뭔가 이상하지 않아? 무슨 실험을 하려는 걸까? 무슨 일이 벌어질까?” (P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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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에는 21명의 이름이 올랐다. 총 127명이 검사를 받았고 그중 21명이 실험 참여자로 선정되었다. 몇몇이 마지막 순간에 참여 결심을 취소했고 그 덕분에 스트레스 수치가 약간 높아 후보 명단으로 밀려났던 타렉 파트가 최종 명단에 오를 수 있었다.

21명의 피험자들은 무작위 선정 방식으로 죄수 집단 12명과 간수 집단 9명으로 분류되었다. 간수 9명은 다시 3교대로 나뉘었다. 최종 선정된 21명의 피험자들은 24세에서 42세 사이였고 직업도 다양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든 면에서 보통이라는 점이다. 지능지수, 감성지수, 화의 표출, 감정 표현, 호기심, 두려움, 건강, 모두 보통이다. 공격성 역시 전체 국민의 중간에 있다. 16명은 오른손잡이고 4명이 왼손잡이 그리고 한 사람이 양손잡이다. 전체 국민과 분포 비율이 일치한다. 반사 신경도 보통이고 정신적 장애가 없으며 뇌를 다쳤거나 그 밖의 신경성 장애도 없다. 또한 신체적으로 건강하다. 남성성 검사에서도 모두가 보통 남성이었다. 뇌파 곡선도 정상이었다. 그렇게 100퍼센트 보통 남성 21명이 최종 선정되었다. (P75)

복도는 사방 6미터 가량의 정사각형 로비에서 끝났다. 사방이 플라스틱 벽이었고 벽마다 철망으로 된 문이 달렸는데, 문 뒤로도 계속 복도가 이어졌다.

“잠깐, 멈춰!” 남자는 명령조로 말하고 로비를 건너 맞은편 철망 문을 고무막대로 툭툭 쳤다. 로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눈을 둘 만한 어떤 것도 없었다. 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형광등에서 나는 윙윙 소리와 옆에 선 남자의 숨소리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맥박 소리, 타렉은 왼발로 오른쪽 발등을 문질렀다.

제복 입은 또 다른 남자가 철망 너머에 나타났다. “왜?”

“죄수 77번, 소독 및 환복. 수감 준비 완료!”

시계도 없고 창문 하나 없어 시간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가늠컨대 얼추 오후였다. 간수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죄수들을 데리고 왔고 방 네 개가 다 찼다. 방에는 작은 간이침대 세 개가 3층으로 포개져 있고, 침대 앞 공간은 너무 좁아 몸을 돌리기도 어려웠다. 문은 철망으로 되었고 문 앞에는 약 3미터 넓이의 복도가 이어졌다. 방 네 개 모두 환하고 깨끗하며 매우 좁았다. 플라스틱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섞여 났다.

간수 하나가 복도 끝을 지키고 서 있었다. 타렉은 같은 방 동료 둘과 함께 철망에 기대어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잠금철 막대가 삐걱대는 소리, 간수들의 짧은 지시, 바닥을 울리는 간수들의 장화 소리. 옆방에서 나는 소음과 속삭이는 소리.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P9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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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들은 줄줄이 화장실로 인도되었다. 타렉이 여섯 번째로 좁은 화장실에 들어섰을 때, 벌써 지린내가 났다. 그러나 구역질을 일으키는 것은 지린내가 아니라 비좁음이었다. 타렉은 눈을 감고 숨을 참은 채 서둘러 볼일을 봤다. 화장실 시간이 끝나고 죄수들은 다시 줄을 맞춰 섰다. 간수들은 아까보다 더 당당해졌고 훨씬 안정되어 보였다. (P104~105)

“아니야.” 베루스가 반대했다. “블랙박스에 들어가면 보이지가 않잖아. 한 놈에게 겁을 줄 수는 있겠지만 다른 놈들은 그대로라고. 내 생각에는 말이야, 보이는 데서 예방 차원에서 한 놈을 골라 벌을 주어야 해. 그래야 딴 놈들도 허튼 생각을 못한다고.”

“대단한데!” 토데가 놀라며 말했다. (P109)

“보통사람이 간수나 죄수가 되어 교도소 생활을 한다면, 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라는 질문을 기반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웠다. “교도소 상황에서 비록 스트레스와 무력감을 느끼겠지만 극단적인 공격성을 보이기보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끝까지 상황을 견딜 것이다.”

실험 설계는 비교적 단순했다. 피험자들을 무작위로 간수 집단과 죄수 집단으로 분류하고 교도소와 똑같은 환경에서 14일 동안 각자의 역할을 수행케 했다. 이때 피험자들은 맡은 역할의 의무와 요구조건에 대해 소속 집단에 따라 매우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하루 200유로를 받고 사회심리학 실험에 참여할 피험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냈고 여기에 127명이 응모했다. 총 127명 중에서 질문지, 뇌파 검사, 근전도 검사, 심전도 검사, 이원 청취 검사, 신경계 검사, 가족 유전, 신체적 정신적 상태, 정신병력, 전과, 반사회적 태도나 마약 남용 등 폭넓은 사전검사를 거쳐 최종 21명을 선발하였다.

최종 선정된 21명은 성격검사에서 정확히 전체 인구의 평균 결과를 냈고 신체적으로 건강하며 특히 감정적으로 안정된 사람들이었다. (성적 영향을 줄이기 위해) 피험자들은 모두 남성으로 했고 23세에서 43세 사이의 중간 계층 출신으로 상호 친분이 없는 사람들로만 선정했다. 무작위로 간수 9명과 죄수 12명을 나누었다. (P115~116)

53번은 꼼짝하지 않고 간수를 빤히 보기만 했다. 아무도 82번을 돕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 주저앉은 채 블랙박스로 질질 끌려가는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었다. 에케르트가 블랙박스의 육중한 문을 열었을 때, 타렉은 그 안의 암흑을 보았다. 침묵과 두려움.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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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루스는 오전 내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아침 뉴스, 토크쇼, 광고, 만화, 스포츠 뉴스, 날씨 뉴스를 돌려가며 보았다. 청소를 했고, 끓는 물에 넣기만 하면 되는 3분 요리로 식사를 마치고 두 번째 근무를 위해 제복 셔츠를 다렸다. 파랗고 촌스러운 항공사 제복과는 비교도 안 되게 멋졌다. 게다가 카키색은 그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었다. 베루스는 옷을 갖춰 입고 거울 앞에서 여러 포즈를 취해보았다. 장화를 신고 위풍당당하게 거실을 걸어보았다. 조심조심 소리 나지 않게 걷던 평소와는 달리 일부러 탕탕 소리가 나도록 걸었고 아랫집 반응을 기다렸다. 조용했다. 베루스는 행복했다. 기분 좋은 날! 교대 시간보다 한 시간 빠른 12시쯤에 벌써 제복을 입고 대학으로 향했다. 카니발 기간이라 그런 차림으로 길을 활보해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P131~132)

“수감자 조합을 대표해서 밝히건대, 실험에서 자행되는 일은 비인간적이며 계약 내용에도 위배됩니다. 우리는 시정할 것을 요구하는 바이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집단으로 실험을 중단할 것입니다.”

타렉을 노려보던 간수가 나섰다. “그 조합에 소속된 자가 누구야?”

11번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수감자들이 머뭇거리며 손을 들었다. 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시정할 것이 뭐지?”

“처우 개선, 즉 벌칙과 모욕적 행위를 없애주십시오. 음식의 질을 높이고 계약서에 명기된 대로 독서, TV시청, 편지 쓰기를 보장해주십시오!”

“그 밖에 다른 건?”

간수는 심드렁한 태도로 물었다. 11번은 당황한 듯 보였다.

“일단은 그게 전부입니다.”

“그래?” 그는 다른 두 간수를 돌아보았다.

“거부한다! 모두 방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53번은 이번 사건의 책임자로 블랙박스에 감금한다!” (P145)


저항기를 가장 많이 분류한 상으로 21번은 초코바를 얻었다. 누가 빼앗아 먹기라도 할까 봐 받자마자 한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69번이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왜, 69번? 너도 하나 먹고 싶은 거야, 그래?”

69번의 얼굴이 밝아졌다. “네, 교도관님.” (P163-164)


점호 시간. ‘선도위원회’에서 82번, 15번, 77번의 수감 기간을 이틀 늘리기로 결정했다는 전달사항이 있었다. 타렉은 기가 막혔다. 선도위원회는 뭐며, 어떤 위원회기에 수감 기간을 맘대로 늘리나 싶었다. 또 계약서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혹시, 있었던가? 그러나 타렉은 잠자코 있었다. 간수들이, 특히 베루스라는 간수가 유독 자기를 살피는 걸 알았기 때문에, 타렉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목욕의 여파로 살갗이 아직도 화끈거렸다. ‘참아야 한다.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한다. 흥분하면 안 돼! 모든 걸 기억했다가 나중에 낱낱이 기록해라! 참아라!’

근무 교대를 했는데도 아침 근무조는 퇴근하지 않고 더 머물렀다. 보쉬만 퇴근했다. 잔뜩 목소리를 죽인 소곤거림. 머리만 조금씩 움직이며 주고받는 짧은 문장. 뭐라고 하는지 내용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죄수들은 대부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38번은 홀로 계속 스트레칭을 했다. 정한 순서대로 차근차근 모든 동작을 했다. 타렉은 벽에 기대어 죄수와 간수들을 관찰했다. 그렇게 벽에 기대어 관찰하는 것은 나름 괜찮았다. 기자의 눈으로 관찰하기!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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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왜지?”

슈타인호프는 다시 뒤로 기댔다. “실수라고 해두지.”

“만약 네가 이 ‘훈련’을 버티지 못하면, 이론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거야?”

“그러려면 우선 진짜 훈련처럼 임해야지. 그 뒤는 나도 몰라.”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그래.”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같은 방 동료잖아!” 69번이 끼어들었다.

슈타인호프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냥 우연히 같은 방에 배정되었을 뿐, 전에 만난 적도 없잖아. 우스꽝스런 원피스에 수영모를 쓴 남자 두 명! 단지 같은 방에 있다고 내가 너희들을 믿어야 한다고?”

타렉은 벌떡 일어나 과장된 몸짓으로 수영모를 벗었다. “이러면?”

“어, 모자를 벗으면 안 되는데!” 69번이 외쳤다.

“젠장. 나도 알아! 이러면? 이제 내가 보여!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타렉 파트, 28살 그리고.....”

호루라기 소리가 시끄러워 멈출 수밖에 없었다. 거의 동시에 간수가 쫓아와서 몽둥이로 철망을 두드리며 타렉에게 소리쳤다.

“수영모 착용! 즉시 착용한다. 실시! 77번!”

베루스와 세 번째 간수도 달려왔지만 먼저 온 간수가 그들을 안심시켰다.

“정리됐어! 아무 문제 없어! 모든 게 다시 정상이야! 그냥 머리가 가려워서 그런 거래.”

베루스가 철망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여러 군데가 가려웠어, 77번, 어?”

타렉은 이제 뭔가 또 일이 생길 거라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베루스는 그를 그냥 내버려두었다. 베루스는 복도 감시를 인계받아 타렉을 지켜보았고 가끔씩 두둑 소리를 내며 목을 풀었다.

타렉은 곰곰이 생각하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났다. “이봐, 대위! 만약에 협력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거라면? 훈련의 진짜 목적이 그걸 수도 있잖아!”

“놀랍군. 그런 생각을 다 해내다니, 77번.”

“그럴 수도 있잖아, 아니야?”

38번은 머뭇거렸다. “....... 그럴 수도 있지, 아닐 수도 있고.”

타렉은 한숨을 쉬었다. “파일럿! 뭐 그렇게 감추는 게 많아!” (P174-175)

“아니야, 38번. 난 아니야. 거기서 빼라고. 난 그저 관찰하고 기록할 뿐, 저들에게 복종하는 게 아니야.”

“둘 다 이제 좀 조용히 할 수 없어?”

“77번, 넌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겁쟁이야. 너도 우리와 똑같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어. 왜냐하면 너 자신이 수감자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명령을 내리는 자가 누구인지 잘 아니까. 모든 게 시뮬레이션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겠지만, 그게 바로 너의 실수야. 전투기 비행시뮬레이션 기기 앞에 앉아서 ‘그냥 시뮬레이션이데 뭐.’라고 생각하는 순간 벌써 게임은 끝난 거야. 시뮬레이션에 불과하다 여기면 주의하지도 않을테고 집중력도 떨어질 테지. 그러다 위기 상황이 닥치면 바로 ‘펑!’ 그걸로 끝나버리는 거지. 그게 만물의 이치야. 비행을 하면 금방 그 이치를 깨닫게 되지. 연습이란 없어. 오직 실제 상황이 있을 뿐이야.”

“38번, 빌어먹을 헛소리 집어치워. 난 자유인이야. 나가고 싶으면 언제든 나갈 수 있다고.” (P186-187)


“두 집단의 태도는 포로로 잡혔다 돌아온 군인들의 보고와 완전히 일치합니다. 클라우스! 자네도 같은 생각이야? 실험을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해?”

톤 교수는 머뭇거리나 입을 뗐다. “아니, 그 부분에선 의견이 서로 달라. 내 생각에는 현재 스트레스가 상승했지만 곧 최고점에 도달해서 더는 오르지 않을 거야. 열역학과 자기조직체계에서 쓰는 용어를 빌린다면 ‘불안정의 최고점’이라 할 수 있지. 여기에 작은 에너지가 보태지면 새로운 안정이 시작되는 거지. 최고점에 도달한 불안정. 즉 절벽 꼭대기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암석을 살짝만 건드리면 아래로 떨어져 새로이 안정된 상태로 바뀌는 거지. 암석은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져 계곡 어딘가에서 멈출 테고 그때부터 새로운 안정이 시작되는 거야. 나는 이것을 자기조직체계의 ‘시시포스 원리’라 부르지. 인공두뇌학에서 보면 두뇌는 ‘블랙박스’야. 외부의 영향이 어떤 방식으로 두뇌를 방해하고 균형을 깨트리는지는 오직 분석을 통해서만 파악 가능한 닫힌 체계란 말이야. 오로지 외부 영향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분석함으로써 그 기능방식을 해독할 수 있다 이거야. 그렇게 본다면, 다소 급격한 감은 있지만 실험은 내가 기대한 대로 잘 진행 중인 셈이고, 물론 유타 그림 박사의 우려도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이 실험이 프랑켄슈타인 놀이가 아니라는 걸 윤리위원회에 설득하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잘 알잖아. 게다가 이 프로젝트 하나에 보조금, 연구 장학금, 직원 채용, 박사학위 및 석사학위가 걸려 있다고. 경쟁 연구소의 시간 압박도 만만치 않고 말이야. 한 마디로, 지금 실험을 중단하는 것에는 반대야. 피험자들의 심리상태를 살펴야 한다는 데는 나도 같은 의견이지만.” (P20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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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렉이 어디 있는지 알아요.” 지나가 한참 있다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연락하기가 힘들어요.” 지나는 도라에게 실험에 대해 설명했다. 처음에 도라는 무슨 실험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기 독일어가 서툴러 잘못 이해한 줄 알고 재차 물었다.

“아니요, 제대로 알아들은 거 맞아요.” 지니가 말했다.

“일종의 교도소에요.”

“타렉이 그런 걸 왜 해요?”

“그러게요. 나도 이해가 안 된다니까요. 아무래도 타렉에 대해 설명을 좀 해야 할 것 같네요. 들어볼래요?”

“나가보지 않아도 괜찮으세요?”

지나는 손을 저었다. “밤에는 별로 할 일이 없어요. 혹시 암실에 얽힌 이야기 알아요?”

도라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우리 아버지는 사진작가였어요. 패션이나 광고 사진을 찍는 멋진 사진작가였죠. 완벽주의에 성격은 불같고. 그게 우리 아버지였어요. 아버지는 아홉 살짜리 아들을 하루 종일 암실에 가두어 뒀었죠. 하루 종일! 아시겠어요? 타렉이 암실에서 놀다가 그만 중요한 필름을 망쳐놓았어요. 아버지는 노발대발했죠.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아마 아가씨는 상상도 못할 거예요. 아버지는 타렉을 암실에 가두고 붉은 색 암등까지 전부 꺼버렸어요. 빛이라곤 하나도 없이 깜깜하고 인화에 쓰이는 각종 약품 냄새가 지독한 암실에 하루 온종일 갇혀 있었던 거죠. 타렉은 바지에 오줌을 쌌고 어둠의 공포와 냄새 때문에 구토를 했고요. 소리를 지르며 문을 두드렸지만 나 역시 아버지가 두려워 동생을 도와줄 엄두를 내지 못했고 어머니는 여행 중이었어요. 아버지는 못 들은 척 무시했고요. 그때 난 타렉이 죽는 줄 알았죠.” (P213-214)


“아마도! 베루스는 나를 노리고 있어. 나 하나면 족하지. 69번은 초코바를 얻는 조건으로 나를 때린 거라고. 확실해. 나도 여기서 나가고 싶어. 하지만 내 발로 산책하듯 유유히 걸어가고 싶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니, 바보 같은 생각이야.”

“그래 맞아. 오른쪽으로 원을 그린 것과 똑같이 바보 같지. 여기서 끝까지 버틸 거야. 베루스에 대항하고 전체 시스템에 대항할 거야. 우리는 무감각, 무신경, 두려움으로 짜인 거미줄에 걸린 파리라고. 움직여야 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결국 거미에게 잡아먹히고 말거야.”

“정말 바보군. 아직도 모르겠어? 세상이 다 그래. 무작위로 분류해서 누구는 교도관이 되고 누구는 죄수가 되지. 그리고 프로그램대로 돌아가는 거야.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내가 기계라고? 좋아! 똑똑히 들어. 어차피 우리 모두가 기계야.”

“틀렸어. 그렇지 않아. 만약 우리가 오른쪽으로 원을 그리며 날 수 있다면 말이야. 만약 우리가 내일 면회를 하게 된다면 말이야.” (P216-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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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는 한숨을 쉬고 주변을 보았다. “모든 게 이상해 보여요. 환한 교도소도 그렇고 선글라스를 쓴 간수들도 모두, 왜 이런 걸 하는 거예요. 타렉?”

“실험에 대한 기사를 쓰려고요. 사실 난 택시 운전사가 아니에요. 벌써 알고 있겠지만.”

“치글러가 알려줬어요. 그리고 지나와 드레제도.”

“뭐요? 치글러? 그리고 드레제까지?”

“당신을 찾는 데 드레제의 도움이 컸어요. 여기도 드레제가 데려다 주었어요. 아무래도 혼자서는 못 찾을 것 같았거든요.”

“하필이면 뚱보 드레제라니.”

“그 사람 말로는 자기가 당신 친구라던데.”

“아는 사이긴 해요. 내가 택시 운전사 자리를 마련해줬거든요. 나 때문에 경찰서에서 고생을 좀 했는데 그게 미안해서요. 어떤 정보를 경찰에 알리지 않은 죄로 집행유예 형을 선고받았거든요. 어차피 나한테도 너무 늦게 알리긴 했지만요. 드레제가 말 안 했어요?”

“아니요.”

“돈밖에 모르는........ 생각이라곤 없는 멍청한 돼지죠.” (P235)


하이너 보쉬는 감시카메라의 사각지대인 한쪽 구석에 앉았다. 손과 발이 묶였고 입에는 넓은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얼굴에 맞은 자국은 사라졌지만 두려움은 여전했다. 끝없는 끔찍한 공포에 정신을 잃었고 제복은 땀에 젖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간수들이 앉아 있었다. 모두! 아침, 오후, 밤 근무조 모두 다! 스벤 글래저, 로베르트 아만디, 폴커 에케르트, 홀거 베루스, 보리스 렌첼, 베르너 토데, 울리히 캄프스, 크리스티안 슈톡. 여덟 명. 문제에 맞닥뜨린 여덟 명. 맡은 역할을 기꺼이 최선을 다해 확실하게 해냈던 여덟 명. 74번의 정보에 따라 이들은 보쉬를 붙잡았고 77번이 준 쪽지를 찾아냈다. 이들은 보쉬를 취조했고 보쉬는 계속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했다. 그러나 에케르트와 베루스가 새로운 정보를 추가하면서 사건의 전후가 확실하게 드러났다. 상황이 복잡했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이들은 먼저 톤 교수와 연락하려 했다. 하지만 모니터 방의 대학생 말이, 회의 때문에 월요일까지는 연구소에 오지 못한단다. 이것은 이들에게 진짜 문제였다. 문제를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진짜 문제.

“여기 이렇게 계속 앉아서 토론만 할 일이 아니야.” 렌첼이 말했다.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톤 교수가 없다면 우리끼리라도 말이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어!” 아만디가 갑자기 외쳤다.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은 모습이 아주 선량해 보였다. “보쉬를 내보내고 77번에게는 벌을 주면 그만이야. 아주 간단하다고!”

베루스는 격하게 책상을 내리쳤다. “아니!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아직도 모르겠어? 이건 그저 단순한 규칙 위반 그 이상이라고! 전체 실험이 걸린 문제야! 간단히 설명할 테니 들어봐. 77번은 보쉬의 도움을 받아 몰래 교도소 비밀을 빼돌리려 했어. 거짓말을 퍼트리고 우리를 비난했다고. 우리를 고발해서 실험을 중단시키려 했단 말이야. 여자친구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지. 이제 뒤를 밟았더니 보쉬 집에 두 번씩이나 드나들더군.” 베루스는 숨을 들이마시며 동료들이 귀를 기울이는지 점검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뿐이 아니야. 에케르트 말로는 오늘 아침 소장의 여자 쥐가 곧 실험을 중단하겠다고 했대. 그러니까 실험이 양쪽 방향에서 위험에 처했다 이거야. 그리고 바로 이 절묘한 순간에 소장이 사라졌어. 좀 이상하지 않아, 어?” (P260-261)

도라는 혹시라도 훗날 이때를 회상하게 되면 자신이 사진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사진이 자신을 발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도라는 낮은 신음 소리와 함께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심한 폭행을 당한 후 웅덩이에 버려진 한 젊은이의 시체 사진이었다. 동생의 시체! 그 누구도 웅덩이에 있는 미하엘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었다. 하필이면 지금 여기, 타렉의 집에서 그 사진을 보게 되다니.....

도라는 사진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 꼼짝할 수 없었다. 그저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꼭 쥐고 비참하게 죽은 동생을 노려보았다. 정신을 잃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타렉이 이미 자기를 알고 있었고, 오로지 기사를 쓰기 위해 관심을 가졌으며 추측컨대 오래전부터 자기를 관찰하며 접근할 기회를 노렸으리라 생각하니 걷잡을 수 없는 절망이 몰려왔다. 절망은 목을 조르고 깊은 곳까지 뻐근하게 짓눌렀다. 도라는 새어나오는 신음 소리를 눌러 참으며 앞으로 고꾸라져 몸을 웅크렸다. 바닥을 기며 울었다.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가슴이 먹먹하게 아파와 몸을 웅크렸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먹먹한 통증은 폭풍처럼 온몸을 휘감아 약간만 허리를 펴도 온 몸이 금방 갈가리 찢길 것만 같았다. (P277-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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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동기였고 지금은 막스플랑크 행동심리학 연구소에서 일하는 회의 진행자가 톤 교수의 발표를 소개했다. 톤은 느긋하게 일어나 천천히 연단으로 나갔다. 그리고 청중들이 집중할 때를 기다리며 늘 하던 대로 조용히 셋을 세었다. 살짝 한 번 웃어 보이고 발표 제목이 적힌 첫 번째 화면을 스크린에 띄웠다.

“존경하는 슈나이더 박사님, 그리고 여러 동료 여러분, 제 발표의 제목은 ‘교도소 시뮬레이션의 자기조직 및 사회적 역동’입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 연구소에서 진행 중인 교도소 실험의 임시 보고이기도 합니다.” 그는 목을 가다듬었다.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4년간의 시베리아 수용소 생활에 대해 말하기를, 감옥살이 덕분에 인간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감금의 공포를 이겨낸 사람이라면 앞으로 어떤 공포가 닥치더라도 모두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말입니다.” (P301-302)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기대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도라는 발걸음을 재촉했고 제 발자국 소리에 놀라 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발자국 소리가 바닥을 울리고 철제 옷장에 부딪혔다. 탈의실을 가로질러 반대편 철문에 도달했다. 철문 뒤로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보였다. 교도소는 한 층 밑에 있다는 걸 알았지만 도라는 우선 5층으로 가서 며칠 전에 다른 방문객들과 함께 갔던, 실험이 하루 종일 감시된다던 모니터 방을 살피기로 했다. 그곳에 누군가 있을 테고 그 사람이 타렉을 불러줄 것이며 적어도 자기를 알아볼 것이라 생각했다.

도라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스스로 용기를 북돋우는 동안 톤 교수는 지하 2층에서 길을 못 찾고 헤맸다. 아래에 와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지하실은 일반 복도나 강의실 체계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길을 찾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톤 교수는 자기 교도소를 찾느라 끝없는 복도와 창고들을 달리다가, 방금 전 수감자 열 명이 달아났고 글래저와 아만디가 뒤를 쫓은 통로에 도착했다. 통로 끝으로 실험실의 플라스틱 벽이 보였다. 톤 교수는 서둘렀다. 그리고 수감자들이 뚫은 구멍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을 보았다.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발자국 소리도 없었다. 그래서 더욱 불안했다.

톤 교수가 구멍을 통과했을 때 처음 눈에 띈 건 텅 빈 교도소였다. 그다음엔 테이프로 칭칭 감긴 채 죽어 있는 82번, 그리고 세 번째로 에케르트였다. 그는 총을 들고 소리를 지르며 갑자기 화장실에서 튀어나와 다짜고짜 톤 교수의 얼굴에 가스총을 발사했다. (P333-334)

실험결과

교도소 환경은 모든 피험자의 감정 상태와 교도관, 수감자 두 집단 사이의 관계 변화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두 집단 모두에서 부정적인 자존감을 갖는 경향이 명확히 드러났다. 실험이 진행될수록 수감자들은 다른 사람을 괴롭히려는 의도를 점점 빈번하게 보였다.

교도관, 수감자 두 집단 모두 상대 집단에 대한 태도를(긍정 혹은 부정)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부정적이고 공격적이며 비인간적인 태도를 보였다. 수감자들은 전체적으로 수동적인 태도를 빠르게 받아들였고 교도관들은 전반적으로 지배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를 보였다. 실험 동안 명령형 어법이 가장 흔하게 사용되었고 대화 역시 개인적인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 개별 정체성과 상관없는 얘기만 나누었다.

교도소 환경이 피험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의 증거는 매우 명확했다. 피험자 네 명이 급성 우울증, 공포증 그리고 정신적 원인에 의한 신체 질환으로 실험을 중단해야 했다. 신체적 폭력을 명확히 금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실험 8일 만에 예상치 못한 강도 높은 폭력이 발생하여 실험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피험자 두 집단에 나타난 이런 극단적인 병적 반응은 교도소 환경이라는 사회적 힘의 강도를 잘 보여준다. 피험자 스스로의 주장이 아니라 신뢰할 만한 검사를 통해 확인된 바로는 피험자 모두 완전히 정상인이었고 정서적으로도 안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도소 환경에 대처하는 태도나 적응력은 개인차가 명확했다. (P357-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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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 소설은 1971년 스텐포드 대학교에서 실제로 있었던 심리학 실험을 토대로 하는데, 이 실험은 피험자들의 예상치 못한 극적 반응으로 6일 만에 중단되었다.

이 소설을 준비하면서 나는 복종 심리, 독방 감금, 고문 그리고 세뇌에 대한 여러 논문들의 도움을 받았고 국제 엠네스티 연감의 도움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순수하게 지어낸 이야기다. 등장인물, 관점 그리고 있을지도 모를 사소한 실수들 모두.

마리오 지오다노. (P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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